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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지 45년이 되는 날입니다. 마침 뉴스에 5.16을 재평가 하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정인봉 한나라당 인권위원장의 주장입니다만, 이번 기회에 5.16의 본질을 이해하고 다시 평가해 볼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정 위원장은 "4.19와 5.16이 힘을 합쳐서 오늘의 경제번영과 민주화를 이뤄냈다, 5.16이 없었다면 4.19도 묻혀버렸을 것이며, 4.19가 있어서 5.16이 빛을 볼 수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4.19는 의거이고, 5.16은 혁명이었는데 지금은 지식인들이 5.16을 쿠데타라 한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평가에 따르자면 4.19와 5.16은 거의 동격의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상호보완적 역할을 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했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주장은 4.19와 5.16을 서로 상반된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는 일반인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라서 독특하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온통 모순으로 점철된 주장입니다.

첫째, 본질적 차이에 대한 인식입니다.

4.19는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민중들이 무계획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권력을 탐하지 않았으며, 무장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부당하고 부패한 독재정권에 항거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5.16은 일부 군인들이 치밀하게 계획하여 합법적 민주정권을 탈취한 것입니다. 순수하지도 무계획하지도 않았습니다. 즉 비무장 민중의 항거와 군인이 병영을 이탈하여 정권을 탈취한 쿠데타가 본질적 차이입니다.

둘째, 4.19와 5.16은 서로 협력한 일이 없습니다.

4.19로 민중은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정부를 세우고 생업으로 돌아갔을 뿐 입니다. 5.16을 바라지도 않았으며, 5.16에 협조한 사실이 없습니다. 4.19세대 중 일부가 쿠데타 세력에게 굴복하여 기생한 일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민중은 결코 5.16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4.19로 세워진 정부가 안착하지 못한 틈새를 5.16 쿠데타 세력이 공략했을 뿐입니다.

셋째, 5.16은 민주화를 지연하였을 뿐 결코 민주화를 이뤄낸 일이 없습니다.

5.16세력의 폭압이 민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키워서 결국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이라면 일제의 식민통치가 우리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주장과 같은 것입니다. 4.19가 성큼 내딛게 한 민주화를 5.16이 수십년 후퇴시켰을 뿐입니다.

넷째, 5.16이 경제번영에 기여한 일이 없습니다.

다만 5.16쿠데타를 주도한 세력이 집권하는 동안에 우리의 경제가 절대 빈곤을 벗어났다는 점과 높은 성장을 이룩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5.16이 일어나지 않고 당시의 집권세력이 계속집권해서 경제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근거는 박약합니다.

군사정권의 민중탄압과 굴욕적인 한일협정으로 받은 일본의 자금, 월남에 파병한 젊은 병사들의 목숨값으로 경제개발의 밑거름을 삼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고,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생겨난 양극화의 문제는 오늘의 대한민국에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또 그런 일들이 애국심의 발로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집권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평가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다섯째, 5.16이 없었다면 4.19가 묻혀버렸을 것이라는 추측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주장일 뿐입니다.

4.19로 인하여 집권한 민주당 정권은 오히려 그 가치를 훨씬 잘 간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5.16쿠데타 세력의 입장에서는 4.19의 정신은 독재정권에 대한 민중의 항거이므로 달가울 리가 없는 것이겠죠. 그래서 4.19는 의거로 불리우도록 의미를 축소하였으며, 자신들의 쿠데타는 5.16혁명이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여섯째, 4,19가 있었기에 5.16이 빛을 볼 수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4.19가 그 이전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려 주었기에 5.16이 성공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좀 이채롭지만 그럴 듯 합니다. 그러나 4.19는 5.16을 목적한 바가 전혀 없습니다. 단지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민중의 의사가 폭발한 것일 뿐입니다. 쿠데타로 또 다른 독재정권을 수립되기를 바라던 국민은 없었습니다.

4.19라는 순수한 민중봉기와 5.16이라는 군인들의 반란을 섞어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지 의도가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4.19는 민주주의를, 5.16은 군인들의 권력욕을 각각 상징하고 나타낼 뿐 전혀 공통점이 없습니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다른 것을 서로 절묘히 섞어내는 솜씨가 감탄스러울 뿐입니다.

4.19의 정신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죠. 그것은 우리에게 귀중한 민주주의의 밑거름입니다. 거기에 비하여 5.16은 추한 군인들의 정권찬탈을 위한 쿠데타입니다.

5.16세력이 집권후 하던 일들이 바로 반민주적 본질을 잘 보여준 바 있습니다.

온갖 공작과 음모가 난무하고, 국민의 주권은 정권에게 차압되었으며, 숱한 민주인사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특히 대통령 자리를 다투던 야당인사를 수차례 죽이려고 시도했고, 직선으로는 종신집권이 어렵게 되자 유신을 선포하고 채육관 선거를 하던 세력입니다. 걸핏하면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간첩으로 만들어 죽여 버리던 세력입니다. 결국 부하의 손에 죽는 순간까지 집권하였으니 종신집권은 성공한 셈입니다. 권력욕에 불타는 군인의 반란이라는 근거입니다.

지금 국민이 잠시 민주주의의 비효율적 측면에 대하여 염증을 느낀다고 해서 그런 류의 독재를 합리화할 일은 아닙니다. 조금 더 천천히 발전하더라도 기초가 탄탄한 대한민국을 만들었어야 합니다. 독재자의 전횡으로 압축성장을 하는 것보다 장기적인 발전상을 염두에 두고 천천히 왔어야 합니다. 5.16은 성공한 쿠데타일 뿐 4.19와 감히 비교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당시에 행해진 그들의 횡포를 좀 더 깊이 있게 밝히고 재평가를 하는 것이 옳습니다. 혹시 그들의 집권기에 절대빈곤을 면했다는 이유로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국민들이 있다면 실상을 좀 더 상세히 알리는 작업을 해야 옳습니다. 특정 정치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잘못을 묻어두고 좋은 평가를 내리자는 주장은 진정한 재평가가 아닙니다.

다시는 5.16을 감히 숭고한 4.19와 비교해선 안될 일입니다. 민중혁명은 혁명이고, 군사 쿠데타는 쿠데타일 뿐입니다. 반란군의 후예같은 주장에 경악하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민중혁명과 권력에 눈먼 군인들의 반란은 섞어서 평가될 부분이 단 한치도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 서프라이즈에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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