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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겉그림
ⓒ 도요새
"닭은 잠시 이승에 나타났다 달이 차면 사라져버리는 일시적인 존재에 불과하지만 태초에서 지금까지 면면히 숨을 이어온 알속의 DNA야말로 진정 닭이라는 생명의 주인이다. 적어도 이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닭이라는 생명에게는 말이다."

이는 동물생태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쓴 〈알이 닭을 낳는다〉는 책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그는 동물생태학자이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보다는 DNA와 같은 동물들의 속내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더욱이 다른 동물들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을 비교하는 일도 자주 한다. 이 책도 그런 틀 속에서 나온 것인데, 그만큼 여러 동물들의 특성들과 인간사회의 특성들을 대조하여 밝힌 것이다. 가히 동물사회를 통해 인간사회가 깨닫고 배워야 할 바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동물들의 성 역할에서 주도권은 여성에게 있는데 반해 인간들의 성 역할 주도권은 유독 남성에게만 국한돼 있다는 것, 자연생태계는 그만큼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데 반해 유독 인간 사회에서만은 획일성만을 획득하여 천하를 평정하려는 욕망이 가득하다는 것, 동물들은 번식기 50년과 번식후기 50년을 똑같이 중요하게 여기는데 반해 유독 인간들만 특히 한국사회에서만큼은 번식기에 더더욱 힘을 쏟아붓는다는 것 등이다.

실로 그렇다. 성에 관한 한 궁극적인 결정권은 거의 예외 없이 암컷에게 있다. 자연계에서 수컷들은 모두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화려한 치장을 한다. 온갖 춤과 노래를 동원하여 교태를 부리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아무리 제 스스로 잘났다고 우겨도 암컷이 잠자리를 같이 해 주지 않으면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길 재간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고 보면 결국 수컷의 운명이란 암컷의 자비에 좌우되는 불쌍한 존재들이다.

인간과 거의 99%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침팬지 사회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들 사회에서 앞에 나서서 힘을 과시하는 것은 수컷이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사실 암컷이 지니고 있다. 이는 해마나 해룡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교미를 마친 후 수컷이 수정란을 자신의 배 주머니 속에 키운다. 그만큼 수컷이 많은 투자를 하는데도 그 선택권은 어김없이 암컷에게 있는 것이다. 공작새의 수컷도 그렇다. 그들은 보기에도 거북할 정도로 버거운 깃털들을 몸에 붙이고 다닌다. 그만큼 암컷에게 아양을 떨고 잘 보이기 위함이지 않는가.

그런데도 유독 인간사회에서만큼은,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남성 중심·부계중심의 사회를 강조하고 있는 인상을 지을 수가 없다. 지금은 부계중심이었던 호주제를 그나마 뜯어고쳤지만 아직도 바꾸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이미 스웨덴과 프랑스 같은 곳에서는 장관의 반 이상이 여성이거나 후보 공천에서도 남녀 후보자를 동등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우리 나라만큼은 아직까지도 남성중심의 장관직을 떠받들고 있다. 그 숲 속에 언제까지 머물러 있어야 할지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연생태계의 다양성 차원에서,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의 유명한 생태학자 페인 교수가 그런 실험을 했다고 한다. 바닷가 웅덩이 군집들을 두 부류로 나누고 한쪽 부류에서는 불가사리를 계속 제거했고, 다른 부류는 그대로 두었단다. 그런데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발견하게 된 것은, 불가사리를 제거한 곳에서 훨씬 적은 수의 종들만 살아 남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나라 정부의 규제 모습이지 않나 싶다. 정부가 할 일이 있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불가사리의 역할일 것이다. 이른바 시장 속에서 다양성을 획득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장을 너무 지나칠 정도로 자유롭게 놔두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수한 기업이 독점하도록 내버려두지도 않는 모습이다. 너무 풀어놓아 황량한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지 않게 하고, 너무 월등한 우수 기업이 독점하여 소비자들이 골탕 먹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자연생태계나 시장경제나 할 것 없이 다양성을 잃으면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진다. 그러나 불가사리는 결코 씨를 말릴 종들을 미리 결정하지 않는다. 정부의 간섭도 기업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확보하는 수준에서 멈춰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125쪽)

동물들의 번식기 50년과 번식후기 50년, 그것과 관련해서 그는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는 책을 이미 펴낸 바 있다. 거기에서 강조한 것이 있다면, 유독 인간들만 번식기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번식후기는 그저 잉여시기나 되는 것처럼 엉거주춤 따라가도록 내버려두며 산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나라에서 두드러진 현상이지 않았나 싶다.

이제 우리 나라도 2020년이 되면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15세 미만 어린이 인구를 앞지를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국정부는 최근 70세를 정년으로 연장하는 정책을 발표했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번식 후기 50년을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가 말하는 '인생 이모작'을 지금부터 골똘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지 않나 싶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를 덧붙일 게 있다. 그것은 우리사회와 우리 나라가 위기관리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최재천 교수는 그것을 개미군락의 노동활동에 빗대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언뜻 보면 개미사회에서 일을 하는 것들은 3분의 1에 지나지 않을 뿐, 나머지 3분의 2는 놀고먹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그 놈팡이 개미들은 단순히 놀고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소방대원들과 같이 '대기조' 대원에 해당된다고 한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화재에 대비하여 늘 긴장 상태로 대기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개미사회는 그들이 가진 잠재노동력의 3분의 2를 위기관리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사회가 배워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을 가리켜 세계 어느 누구 하나 게으르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많은 시간을 노동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떠한가? 죽도록 일하여 많은 것을 쌓았지만 그 탑이 허물어지는 순간도 모를 때가 많지 않는가. 그만큼 위기관리에 투자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사회가 개미사회처럼 어떠한 위기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을 사회 구조를 탄탄하게 확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알이 닭을 낳는다 - 생태학자 최재천의 세상보기

최재천 지음, 도요새(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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