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혹은...
이외수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선생은 내가 다녔던 학교의 길 건너편에서 살고 계셨다. 한때, 만주에서 개장사 한번 안 해본 사람 없듯이 그 나이 때 문학소년 아니었던 사람이 있을까마는, 내가 다니던 학교는 좀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는 선생님이 여럿 계셨고 이미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에 신춘문예에 데뷔한 선배들도 있었다. 그렇게 훌륭한 선생님과 잘나가는 선배들 덕분에 시(詩)에, 소설(小說)에 푹 빠져 있는 것이, 그래서 자율학습시간에도 또 경우에 따라서는 수업시간에도 문예부 활동을 핑계대면 얼마든지 땡땡이를 칠 수도 있었던 그런 학교였다.
하지만 잘나가는 선배들이 많다는 것은 못나가는 후배의 입장에선 언제나 자랑스러운 것만은 아님이 당연하다. 이런저런 백일장과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했을 때는 여지없이 줄빳따를 맞거나 학교 이름값도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좀 어이가 없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시(詩) 못쓴다고 얻어맞다니 얼마나 낭만적인 구타(?)인가?
그렇게 이 잘나가는 소년문사들로 가득한 학교에서는 일 년에 한번 시화전을 열었는데 일 년 내 깎고 다듬었던 시들을 골라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서 전시하는 행사였다, 특이한 것은 시화전을 학교에서 여는 것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 일반 문인들처럼 제대로 된 전시장에서 여는 것이 관례였다.
그때 며칠씩 야간 자율학습도 빼먹고 시를 고쳐가지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는 곳이 바로 이외수 선생님 댁이었다. 교복을 입고 담배 한 보루와 소주와 오징어를 사가지고 선생님 댁에 가서 우리들이 쓴 원고를 건네면 선생님은 그중에 몇 개를 골라 그림을 그려 주셨다. 때때로 쓴 글에 대해 이런저런 품평을 하시기도 했다. 여하튼 그렇게 그림을 받고서는 붕어조림으로 차린 식탁에서 선생님과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김C와 이외수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더 이상 소년도 문사도 아닌 대중음악공연의 기획자와 연출가로 이외수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사실 소속가수인 김C와 이외수를 서로에게 소개하고 그 둘로 무언가 만들어 보려했던 것은 다분히 즉흥적인 발상이었다. 두 사람이 왠지 외모가 비슷하고, (이 대목에서 김C는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부정하지만 둘의 사진을 가만히 보면 김C가 혹여 이C라 해도 의심의 여지는 없다) 오랜 시간 마누라 덕에 먹고 살았고, 둘 다 춘천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고, 창작을 하고 있고, 어딘가 모르게 비범하고, 왠지 지저분해 보인다.
그러나 비슷한 이미지들은 많지만 소설가로 또 가수로 사는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무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김C의 글에 이외수 선생의 그림을 앉혀 책을 만들어 낸 것은, 그래서 그 책이 아직까지도 잘 팔려나가는 것은 정말 우연한 성공이었다.
십 몇 년 만에 불쑥 찾아가 김C의 글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고, (이외수 선생님은) 또 그런 부탁을 그 자리에서 받아들였고, (김C와 이외수 선생님이)처음 만난 자리에서 하룻밤 새 50여 컷을 그려주었던 일들 모두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에 지난 금요일엔 김C가 소속된 록밴드 ‘뜨거운감자’의 공연에 선생이 직접 퍼포먼스까지 해 주셨으니 즉흥적인 발상이긴 했지만 기획으로는 대 성공인 셈이다.
이외수와 김C 그 둘의 슬픔
“김C의 음악에는 어쩐지 외로움이 느껴진다”고 이야기하는 이외수 선생과 “선생님의 그림에서 슬픔을 느낀다”는 김C.
그러나 나는 이 둘 모두에게서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슬픔을 읽는다. 작가로서의 성공과 연예인으로서의 성공. 이제는 먹고살 만해졌고 둘 다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각자가 살아온 지난한 삶, 그 바닥에 침전되어있는 우울한 시절이 슬픔을 노래하고 쓰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외로움과 슬픔은 어둡거나 우울하지는 않다. 오히려 기쁨보다 밝고 행복보다 즐거운 슬픔이다. 결국 그들이 쓰고 노래하는 것이 세상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시선이라고 할 때, 그 둘의 창작들은 별빛 같은 서정을 반짝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연장에서 이외수 선생과 김C의 묵행 퍼포먼스를 만들어 내는 나는, 그런 아름다운 슬픔을 관객들이 느꼈으면 싶었다. 물론 한 순간의 퍼포먼스가 모두에게 동일한 감상으로 다가가지는 못할 일이지만, 김C의 노래를 듣고 이외수 선생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돌아가시는 길에 이외수 선생은, 다음엔 화천의 감성마을에서 나무와 새, 개울물과 들꽃을 위한 공연을 만들어 보자시는데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못할 것도 없지 싶다.
물론 꽃과 나무 바람과 돌의 관객들은 어떤 공연을 만들어야 좋아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공연에 초대할 테니 혹여 누구 좋은 생각 있으면 알려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