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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땅의 겨울 아침… 지난 밤 어두운 내내 동장군의 거침없는 활보는 또 다시 동토의 제국이 되었고, 화천강은 날카롭게 얼어있었습니다. 오늘은 화천을 지나 평화의 댐을 거쳐 인제로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얼굴로 밀려드는 차가운 바람과 살갗 속으로 파고드는 추위는 강원도의 힘을 느끼게 해주고도 남았습니다.

인제로 넘어가는 길은 460번 지방도가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차선의 도로는 해음령은 넘기 전까지 거의 직선에 가까운 길입니다. 북으로 가면 갈수록 눈에 보이는건 군부대와 몇몇 민가뿐 이른 겨울아침은 마치 시간마저도 얼어붙은 듯 조용하고 아득한 세계였습니다.

▲ 겨울아침의 꺼먹다리 전경.
ⓒ 문일식
올라가다보면 꺼먹다리로 불리는 다리에 이르게 됩니다. 꺼먹다리는 1945년 화천댐이 건설되면서 지어진 철골과 시멘트로 만든 우리 나라 최고의 다리로 알려져 있고, <전우>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 등 영화촬영지로서도 알려져 있는 다리입니다. 다리의 상판이 까만 콜타르 목재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근대 문화유산 110호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해산령을 넘는 460번 지방도를 들어서기 전에 지도상으로 끊겨져있는 길을 따라 가보았습니다. 항상 끝이라는 것에 대한 묘한 호기심이랄까? 그런 생각으로 찾아나선 7번 군도의 끝자락은 허망하게도 군부대였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불쑥 찾아든 경기도 차량에 무척 의아해 했을 위병들의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났습니다. 다시 차를 돌려 구불구불 올라가야하는 해산령 길을 넘었습니다.

▲ 해산령을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산아래 군부대 풍경.
ⓒ 문일식
'아흔아홉 구빗길'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차의 힘찬 엔진소리는 겨울의 정적을 깨고, 한굽이 한굽이 올라갈 때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세의 모습이 마치 바다 위의 거대한 파도처럼 힘찬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저멀리 눈이 채 녹지않은 흰 빛의 산세가 아스라이 펼쳐져 보였습니다. 차를 세워놓고 아래를 바라보니 저 아래 군부대와 함께 산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군인들의 힘찬 군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 최북단의 최고봉 최장터널 해산터널의 입구
ⓒ 문일식
드디어 해산령 정상입니다. 해산령 정상은 긴 터널을 통과해야 합니다. '최북단 최고봉 최장 터널'이라는 유장한 수식어가 붙은 해산 터널은 1190m의 고지대에 위치한 1986m의 일직선 터널입니다. 마치 호랑이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가 싶더니 저 아득한 곳으로부터는 작은 빛이 스며 나왔습니다.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해산터널의 끝에는 아침 햇살의 유난스런 반짝거림을 고이 머금고 있기 때문입니다.

▲ 해산터널을 통과한 직후에 나오는 해산령쉼터. 벤치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압권입니다.
ⓒ 문일식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해산터널을 지나는 마음은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해산터널을 지나고 나면 해산령쉼터에 이르는데 벤치에서 바라보는 이른 아침의 산세가 장쾌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해가 뜨는 산'이란 의미에서 나온 해산령은 말 그대로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지난 번의 눈으로 희끗희끗한 산세의 모습은 비록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지라도 포근함을 안겨주었습니다.

화천에서 아흔 아홉 구빗길을 넘었듯이 해산터널을 지나면 다시 그만큼의 구빗길을 내려가야 합니다. 한참을 내려가다보면 평화의 댐에 이르기 전에 우리나라의 오지중의 오지인 비수구미로 내려가는 가파른 길이 나옵니다. 비수구미 마을은 자연휴식령제로 작년까지는 출입이 안 되던 곳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오지중의 오지였는지는 쉽게 짐작이 갑니다.

▲ 평화의 댐 위에서 바라본 북녘 풍경.
ⓒ 문일식
460번 지방도는 평화의 댐 위를 지나가는 도로입니다. 2차선 편도로 이루어진 평화의 댐 상부에서 바라보는 북쪽의 풍경은 평화의 댐이 생겨난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평온해 보였습니다. 평화의 댐에 갇히고, 임남댐(금강산댐)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물줄기는 이내 얼어붙어 정적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 세계평화의 종공원에서 바라본 평화의 댐 전경.
ⓒ 문일식
어렸을 적 평화의 댐 건립을 위한 성금을 낸 기억은 많은 분들이 가지고 계실겁니다. 북한에서 임남댐을 폭파하면 북한강을 타고 한강으로 흘러 63빌딩 절반이 잠길 정도로 물바다가 된다는 위기의식과 대중매체를 통해 뭇사람들에게 전파되는 공포심으로 지어지기 시작한 평화의 댐은 그런 국민의 성원이 모여 공사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임남댐의 저수용량이 정부 발표보다 턱없이 낮다고 드러나면서 일시 중단된 듯 했지만, 임남댐이 부실이 포착되고, 홍수조절능력이 입증되면서 공사를 이어갔기에 결국 2005년 무려 18년 만에 완공된 다목적 댐입니다.

5공화국 말기 '위기돌파용'이었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허탈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이제는 국민의 성금으로 지어진 다목적댐이고, 관광명소로 거듭난다는 생각을 해야할 때인 것 같습니다.

▲ 비목공원에 있는 무명용사의 무덤. 많이 숙연해집니다.
ⓒ 문일식
평화의 댐을 건너 아래로 내려가면 한국 수자원공사에서 세운 평화의 댐 물문화관과 비목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비목공원은 이곳이 가곡 '비목'의 탄생지 임을 알려주는 곳입니다. 기념탑과 함께 철조망에 둘러쳐진 작은 돌언덕에 철모를 씌운 나무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저절로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입니다.

가곡 '비목'은 당시 청년장교였던 한명희씨가 우거진 잡초 속에서 무명용사의 철모와 돌무덤을 발견하게 되고, 6·25당시 자신과 비슷한 또래였을 거라는 생각에 시를 지은 것이 그 탄생 배경입니다. 한 치의 땅이라도 빼앗기 위해 고지쟁탈전을 벌이며 산화해 갔던 6·25 무명용사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화의 댐 안쪽에는 세계평화의 종공원이 조성 중입니다. 세계 각국의 종을 모아 전시해 놓을 뿐 아니라 평화의 종이라 불리는 37여톤 높이 5m,너비 3m의 대형종을 2007년 국제연합 창립일에 맞춰 완공할 예정이며, 종에 사용되는 재료는 세계에서 분쟁을 겪거나 분쟁 중인 60여개국의 탄피를 수집해 만들 거라고 하니 새삼 그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 미끄러져 내려가고 싶은 충동에 빠진 종공원에서 내려가는 길.
ⓒ 문일식
평화의 종에 올라서니 평화의 댐아래로 펼쳐진 북한강 물줄기 흔적이 여지없이 펼져졌습니다. 멋진 풍경이 가득한 곳에 수많은 종들이 울리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은은하게 가슴을 적시며 바람따라 퍼져갈 종소리들이 귀를 간지럽히는 듯했습니다. 다시 내려 가려는데 계단 옆 내리막길에 눈이 쌓여 가파른 빙판길이 되어 있었습니다. 미끄러져 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있었지만, 바로 아래에 차를 대놓는 바람에 계단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평화의 댐을 지나 얼마 안 가면 화천과는 작별을 고하고 양구땅에 이릅니다. 한반도의 4극점(동서남북의 끝단)인 울릉도, 평북 용천, 제주 마라도, 함북 온성에서 그어지는 중앙경선, 중앙위선이 교차하는 곳이 바로 이곳 양구군 남면 도촌리 일대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양구는 대한민국의 '국토정중앙'이라고 불리웁니다.

▲ 두타연으로 들어가는 군부대 입구. 민간인 통제구역입니다.
ⓒ 문일식
460번 지방도를 따라 양구를 지나다보면 수입천을 따라 방산에 이르는데, 이곳에는 지난해 비로소 개방된 우리나라 열목어의 최대 서식지이자 자연경관이 뛰어난 두타연이 있습니다. 민통선 내에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의지대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다시금 꼭 와보고 싶은 곳입니다. 두타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양구군청 문화관광과에 4인 이상 입장 1~2일 전에 예약신청을 해야합니다.

▲ 광치령만 넘어가면 인제 땅 입니다.
ⓒ 문일식
460번 지방도는 장가고개를 넘고 양구군 동면에 들어서면서 그 끝을 다하고, 31번 국도가 이어집니다. 남면으로 향하다보면 광치령을 넘는 31번 국도를 따라가는데 광치령을 넘어서면 인제군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인제에 오면 유명한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이 고장에서 군대생활을 하신 분이라면 당연히 떠오를 말일 겁니다. 그 원통리를 지나고서야 설악산의 서쪽에 이르렀습니다. 한계령을 따라 인제의 동남쪽을 거쳐 홍천을 향해가는 마지막 여정이 기다리고 있고, 날은 어느덧 햇살을 가득 머금은 오후로 접어 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 송고했습니다.

★ 여행일정(460지방도를 타고가는 드라이브 여행)
화천 꺼먹다리 ▶ 비수구미마을 입구 ▶ 평화의 댐 ▶ 양구 두타연 입구 ▶인제 광치령
 
★ 여행정보
1. 460번 지방도를 타고 화천부터 시작하는 드라이브 여행으로 적격입니다.
2. 겨울도 운치 있지만, 수량이 풍부한 여름이나 단풍이 시작되는 가을이 적기라 여겨집니다. 
3. 지난해에 개방된 비수구미마을도 찾아가 볼만 합니다.
4. 평화의댐,비목공원,세계평화 종공원은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습니다.
5. 역시 지난해 여름부터 개방된 두타연은 이곳을 지난다면 꼭 가봐야 할 곳입니다. 두타연 출입안내는 양구군청 홈페이지(http://www.yanggu.go.kr/)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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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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