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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8도까지 떨어진 지난 2월 4일, 5일에 떠난 철원ㆍ화천ㆍ인제ㆍ홍천 여행의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백마고지 위령비를 지나 민통선 앞의 노동당사와 도피안사를 거쳐 고석정 국민관광단지 앞까지 이르는 463번 지방도는 화천으로 가는 매력적인 길입니다. 아래로 내려와 포천 쪽에서 가는 방법이 아니라면 그야말로 화천으로 가는 정코스이자 유일한 길이기도 합니다.

▲ 철원을 떠나기 전 배웅을 하고 있는 쇠기러기떼.
ⓒ 문일식
고석정에서 출발을 앞두고 있을 무렵 또 한떼의 쇠기러기들이 서쪽을 향해 날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철원 입성을 축하 비행했던 것처럼 떠나려는 지금 잘가라며 배웅을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내년에 또 한 번 추위를 느끼러 오마.' 한없이 멀어져가는 쇠기러기떼들…. 작은 점이 되고, 작은 산등성이 위로 넘어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만 보았습니다.

오후 3시가 넘은 시각…. 화천까지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지며 서둘러 차를 몰아 463번 지방도에 올랐습니다. 한껏 얼어붙은 바깥 세상, 그 오후 풍경이 차속에서 만큼은 나른하게 느껴졌습니다. 차창을 내리자 동장군의 기습에 정신이 얼얼할 정도였습니다. 가끔 한 대씩 지나는 차들에 반가움이 느껴질 정도로 한갓진 도로였습니다.

서면에 들어서면 잠시 56번 군도가 463지방도와 나란하게 갑니다. 그야말로 가로지르는 길입니다. 가로로 놓여진 56번 군도는 47번 국도와 지금껏 달려온 463지방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40여 분 만에 잠곡저수지에 이르러 얼어붙은 호수의 풍경을 잠시 만끽했습니다. 입안이 텁텁해질 정도로 지루함이 느껴지고, 라디오에서는 전파를 제대로 잡지 못해 파열음이 귀에 거슬릴 정도였습니다.

▲ 화천과 춘천을 넘나드는 삼일계곡의 을씨년스런 겨울 풍경.
ⓒ 문일식
사내면에 이르러 463번 지방도는 그 생명을 다하고, 75번 국도에게 그 임무를 대신하게 합니다. 얼마 안가 다시 56번 국도에 오르고, 얼어붙은 삼일계곡을 따라 잠시 춘천으로 들어섰습니다.

▲ 56번국도와 5번국도가 갈리면서 나타난 화천 표지판.
ⓒ 문일식
삼일계곡의 물길이 지촌천에 모여 다시 북한강으로 빠져나갈 즈음에야 물의 나라 화천 표지판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한바퀴 크게 돌아 지촌천을 가로지르는 오탄교를 건너자 달거리고개라는 가파른 고개를 넘습니다.

▲ 화천으로 가는 5번 국도상에서 바라본 화천군의 풍경.
ⓒ 문일식
물의 나라 화천. 말 그대로 북한강을 끼고 달리는 5번 국도에서 바라본 풍경은 물 반, 산 반이었습니다. 얼어붙은 북한강의 푸른 빛과 멀리 화천 시내 뒤편으로 우뚝 솟은 설산의 풍경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는 못배기게 했습니다.

▲ 붕어섬 유원지 입구 다리에 있는 펄떡거리는 붕어상.
ⓒ 문일식
화천 시내의 옆구리를 파고들자 수려한 북한강변에 붕어섬 유원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붕어섬은 춘천댐 담수로 인해 만들어진 섬입니다. 붕어섬으로 들어서는 다리위에는 붕어의 조각상이 있는데 마치 막 뭍으로 나올 때의 펄떡거림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주로 운동시설이 대부분인 이곳은 강변을 따라 거닐며 산책하기에 딱 좋은 곳인 것 같습니다.

▲ 얼마 전 끝난 화천 산천어축제장의 모습.
ⓒ 문일식
둔치를 따라 달리면 왼편으로는 화천 시내가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의 나라라 그런지 다리가 참 많았습니다. 화천대교를 건너면 춘천으로, 화천교를 건너면 파로호와 평화의 댐을 거쳐 인제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화천교 안쪽으로는 얼마전에 성황리에 막을 내린 산천어 축제장이 있습니다. 인파로 북적거렸을 축제장의 풍경은 한없이 적막해 보였습니다.

▲ 파로호 안보전시관의 전경.
ⓒ 문일식
산이 가둬놓은 파로호를 보기 위해 대붕교를 건너 얼마쯤 가다보면 전차, 장갑차 등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이 화천 파로호 안보전시관입니다. 시간이 많이 늦었는지 문이 닫혀 있어 그냥 나와야 했고, 다시 파로호를 향한 바쁜 걸음을 옮겼습니다. 안보전시관에서 얼마 가지 않아 파로호의 풍성한 수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파로호는 화천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담수호입니다.

▲ 파로호의 화천댐의 모습
ⓒ 문일식
이곳 파로호는 6·25 당시 대대적인 승전을 올렸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엔군의 파상공세에 밀려 후퇴를 하던 중공군 6만2000여 명이 이곳에서 사망하거나 생포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이야기로는 중공군 포로를 쓰레기 줍듯이 담았다고도 하며, 일개 소대병력이 대대병력을 포로로 잡았다고 하니 그야말로 대승이었습니다. 이에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은 이 호수를 파로호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 적의 진격을 지연 시키는 군사시설
ⓒ 문일식
의정부나 포천 등 경기도 북부로 가게 되면 흔히 볼 수 있는 시설물이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인데 이 역시 분단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시가 될 경우 틈이 있는 곳에 세워진 작은 기둥을 폭파시켜 큰 돌덩어리가 도로를 차단함으로써 북한군의 진격을 지연 시키기 위한 시설인데 이제는 과연 효과가 있는 시설물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 북한강의 일몰.
ⓒ 문일식
파로호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화천에서 하루를 묵기 위해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왔습니다. 파로호가 시선에서 사라지고, 서서히 화천 시내에 들어설 무렵 북한강변 주변으로 해가 서서히 지면서 일대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잔잔한 수면과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고요하기만한 갈대 사이로 주홍빛 색감을 엷게 펼쳐놓고, 시시각각으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화천 시내 여관에서 하루 묵을 요량으로 이곳저곳 둘러봤는데 방이 없었습니다. '아차, 토요일이라 군인들이 외박 나오는 날이구나.' 정말 아차 싶었습니다. 시내의 여관이란 여관은 죄다 둘러보았는데도 방을 전혀 구할 수 없었습니다. 어찌나 돌아다녔는지 화천 시내가 대충 눈에 그려질 정도였습니다.

결국 시내에서 묵는 걸 포기하고 평화의 댐 쪽으로 방향을 돌렸고, 다행히 민박집을 구해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트렁크 뒤에서 추운 날씨에 시원해져 있던 캔맥주 한 잔을 머금으며 화천 시내에서 있었던 웃지 못할 일들을 되새겼고, 동장군이 엄습한 바깥 세상은 아주 잊은 채 하루의 피곤함을 맘껏 달랬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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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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