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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스스로 생각하기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렇다고 별나게 세상을 산다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제가 편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면 남이 뭐라고 하던 별반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좋게 말하면 개성인 거고 나쁘게 말하면 얼굴 두꺼운 거죠. 일상생활에서도 창피하다는 느낌을 갖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부끄러움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한 예로 위아래 깔끔하게 양복을 맞춰 입고 출근할 때도 가방은 서류용 가방이 아닌 흔히 '쌕'이라고 하는 배낭을 메고 다닙니다. 비단 양복을 입는 경우가 아니어도 그것을 한 쪽 어깨에 메고 다니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그 편한 배낭이 몇 개월 전 어깨에 가로 질러 멜 수 있는, 흔히들 크로스 백이라고 하는 가방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부터 이전 배낭과 크로스 백 두 종류 가방 이야기를 합니다.

양복에 도시락 배낭 메고 출근하다

▲ 예전에 들고 다녔던 가방입니다. 이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너 등산하냐?"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10년 넘은 가방입니다.
ⓒ 강충민
저는 걸어서 출근합니다. 건강을 위해 일부러 걷기도 한다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저에겐 차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제 차를 가져 본 적이 없고 아내에게는 결혼하기 전부터 있던 10년 넘은 '엑센트'가 있습니다. 우리는 맞벌이 부부인지라 아침에 아내는 저보다 먼저 집을 나서 엑센트를 운전하여 이제 갓 돌이 지난 딸 지운이를 처남댁에 데려다주고 출근합니다.

저는 아들 원재를 어린이집 차에 태워준 다음 걸어서 출근합니다. 회사는 걸어서 25분 정도 걸립니다. 어떨 땐 시계로 재면서 빠른 걸음으로 시간을 단축하는 재미도 참 괜찮지요.

그리고 저는 도시락을 갖고 다닙니다. 점심 값 절약하자고 하는 것도 있지만 오늘은 무얼 먹을까 하는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요. 뭐 도시락 반찬이라야 별난 것 없고 아침에 먹던 것 그대로 도시락에 담기만 하면 그만이죠. 가끔 질리지 않게 밥 위에다 계란프라이도 하나 얹고요.

이 도시락은 '쌕'이라고 하는 배낭에 넣고 다닙니다. 그 배낭은 가끔 도시락 외에 책이나 서류 같은 것들로 조금 무거워질 때도 있는데 그 땐 아예 양 어깨에 짊어지고 걷습니다. 몇 개월 전까지 아침 출근길, 연동 신시가지에서 신제주 국민은행 근처로 양복 차림에 배낭을 메고 걷는 사람을 보셨다면, 그 사람이 바로 저일 겁니다.

▲ 이 가방에 도시락을 넣으면 위치가 불안정하여 조금 신경이 쓰였습니다. 신혼여행 갈 때도 전 이 가방 하나 달랑 들고 갔습니다.
ⓒ 강충민
그런데 이 쌕이라는 것이 서류나 책 같은 것들은 그나마 괜찮은데 도시락 가방으로 하기에는 용도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점심시간 도시락을 꺼내면 반찬이 한쪽으로 쏠려 영 모양이 아니고 어쩌다 김치를 갖고 가는 날에는 김치 국물이 밖으로 새어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물론 반찬통이 밀폐가 잘 안되는 탓도 있었고요.(이 문제는 나중에 아내와 시장에서 꼼꼼히 밀폐가 잘 되는 보온도시락과 반찬통을 사는 것으로 해결했습니다.)

도시락통을 바꾸면서 같이 가방도 바꿀까 했는데 뭐 제가 느끼기에 큰 불편은 없어 관뒀습니다. 또 도시락과 서류를 같이 넣고 다닐만한 가방을 찾는 것이 귀찮기도 했고요. 제 걸음걸이에 맞춰서 도시락이 쌕 안에서 흔들리는 것이 약간 신경 쓰이는 일이긴 하지만요.

"안 쓰는 가방 있는데 줄까?"

그런데 가방이 새로 생기면서 이런 신경 쓰이는 일이 일시에 해결되더군요.

몇 개월 전 서울에 출장갈 일이 생겼습니다. 몇 개의 서류를 챙겨야 했고 평소와 같이 쌕에 그것을 넣었습니다. 단정히 양복을 위아래 갖춰 입고 오른쪽 어깨에 쌕을 메고 서울행 비행기에 오른 거죠.

모처럼 서울 가는 김에 제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공항에 마중 나오라고 했고요. 친구는 흔쾌히 좋다고 하며 저녁에 술 한 잔 하자고 하더군요. 참고로 그 친구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보다는 시간과 돈이 훨씬 많고요. 무엇보다 저와 아주 친합니다.

친구 덕에 김포공항부터 서울 시내까지 일을 봐야 할 곳도 아주 편하게 다니고 참 좋더군요. 일을 다 마친 후 친구와 저는 저녁을 먹으며 술 한 잔 하기 시작했습니다. 흉허물 없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는데 친구가 제 가방을 보더니 한 마디를 하더군요.

"너 이 가방 들고 다니니?"
"응 뭐 어때? 되게 편해…."

저도 무심코 친구의 말에 답했습니다.

"내가 안 쓰는 가방 있는데 줄까? 들고 다니기도 편하고 어깨에 메면 좋을 것 같은데…."

친구가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제가 괜히 자존심 상할까봐 조심스러웠는지도 모릅니다.

"응 그래 줘… 고맙게 쓸 게, 어디 있는데…?"

▲ 친구에게 받은 명품가방입니다. 안에 도시락이 들어 있는데 표시가 안나 마음에 듭니다. 왼쪽 옆 작은 지갑의 용도는 잘 모르겠습니다.
ⓒ 강충민
짝퉁이건 명품이건 도시락 가방으로 딱이네!

그래서 제 가방이 쌕에서 크로스 백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가방을 바꾸니 참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을 오른쪽 어깨에 메거나 크로스로 메어도 도시락이 흔들리지 않고 항상 제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또 전에 들고 다니던 쌕보다는 왠지 모르게 폼이 나는 것 같았고요. 특히 양복 입을 때는 제 스스로도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렇게 그 가방을 열심히 메고 다니는데 주위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진짜니?" 하는 소리였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XX비통'이라는 명품가방과 똑같이 생겼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뒤에는 "짝퉁이겠지…" 했고요.

그러고 보니 하나에 몇 십 만원, 어떤 거는 몇 백 만원까지 한다는 'XX비통' 같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친구에게 "이거 진짜니?" 하고 물어 볼 수도 없고 해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도 처음에만 관심을 가졌지 두 번 다시 물어보지 않더군요.

저도 그냥 "응, 짝퉁이야" 했고요. 뭐 도시락 넣고 다니는데 명품인지 짝퉁인지 가려봐야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명품에는 도시락 넣고 다니면 안 되니?"

그 가방을 준 친구가 한 달 전쯤에 제주도에 볼일이 있다고 내려 왔습니다. 그날 저녁 회사 근처 신제주에서 그 친구와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굴전에 막걸리를 마시는데 참 좋더군요. 쭈욱 시원하게 한 사발 들이킨 다음 살이 통통하게 오른 굴전을 먹으니 제법 취기도 오르더군요.

친구가 한 때는 자기 가방이었던 제 가방을 보며 한 마디 하더군요.

"너 그 가방 들고 다니는구나."
"응 참 좋아. 도시락 넣고 다니기에 참 딱이야."

저는 친구의 물음에 친절하게 가방을 열고 도시락이 담긴 모습까지 보여줬습니다.

▲ 가방 안에다 이렇게 도시락을 넣으면 정말 딱입니다. 기사에서처럼 짝퉁이어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도시락을 넣고 서류나 책을 넣어도 안성맞춤입니다.
ⓒ 강충민
"야! 그거 진짜야."

친구가 막걸리를 마시다 내려놓으며 한 마디 합니다.

"그럼 진짜 XX비통이야?"

친구는 제 물음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순간 친구가 가방이 진짜라고 알려준 이유가 제가 도시락을 넣고 다녀서인가 궁금해졌습니다.

"명품가방에는 도시락을 넣고 다니면 안 되는 거였니?"

제가 이렇게 묻자 친구는 대답 대신 막걸리 잔을 제 잔에 부딪히며 씨익 웃었습니다.

다시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는데 가방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닙니다. 얘기 도중에 막걸리 집 바닥에 두었던 가방을 살며시 집어 의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딱히 도시락 말고 넣을 것은 가끔 서류나 책 따윈데 그렇다고 돈다발을 넣고 다닐 수도 없고 말이죠.

친구에게 진짜라는 얘기를 듣고 며칠간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도시락 가방을 하나 새로 살까도 했고, 명품을 떡하니 나에게 준 친구는 정말 좋은 친구다, 라는 생각도 했고요.

그러다 그냥 평소대로 씩씩하게 도시락을 넣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새로 도시락 가방을 사 봤자 남는 가방의 용도도 딱히 마땅치 않았고요. 무엇보다 도시락을 넣고 다니기 위한 맞춤형가방은 이것만큼 적당한 것을 찾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또 만일 친구가 어느 날 저에게 "사실은 그거 짝퉁이야" 해도 서운할 거 하나 없습니다. 설령 짝퉁이었더라도 제 가방에 대해 신경을 써 주는 친구는 그리 흔치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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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대학원에서 제주설문대설화를 공부했습니다. 호텔리어, 입시학원 강사, 여행사 팀장, 제주향토음식점대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사 등 하고 싶은일, 재미있는 일을 다양하게 했으며 지금은 서귀포에서 감귤농사를 짓고 문화관광해설사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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