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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행복하지 않다면 내일도 행복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우리는 지금 행복을 선택한 거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정신세계원 펴냄)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책의 저자들은 박범준, 장길연 부부로 도시에서 보장된 직장을 버리고 전라북도 무주 산골에서 살기로 결정한 이들이다. 지난해 초 KBS 2TV의 <인간극장>에 방영되어 화제를 모은 부부인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아마도 서울대와 카이스트라는 화려한 학벌을 가진 부부가 산골의 삶을 택한 것이 더욱 흥미를 끌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쓴 책은 이러한 흥밋거리에 맞춰져 있지 않다. 지은이들은 지금의 삶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며 행복해하지만 솔직히 소박하게 써낸 삶의 풍경은 그리 탐낼 만한 것도 아니다. 화장실은 '푸세식'이고, 잠자다 보면 얼굴위로 벌레가 떨어지고, 아궁이에 장작불을 피우다 눈물이 난다. 이런 구절들은 낭만적인 전원생활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도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과연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두 부부는 바로 지금 행복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인정된 행복의 조건을 거부했다. 안정된 직장과 돈의 소비능력을 통한 행복보다는 산골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택했다. 큰돈도 벌지 못하고 또 쓸 일도 없지만-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1년에 전세 50만원으로 빌린 집인데, 천여 평이 넘는 논밭도 함께다-그들은 스스로 선택한 삶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말한다. 스스로 행복하면 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을지도 모른다. 지금 행복할지 모르겠는데 미래엔?

바로 이 질문,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우리는 직장생활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그 직장생활이라는 것은 스트레스를 준다. 여전히 귄위적인 상하관계, 출근은 칼같이 퇴근은 엿가락 늘어지듯 하고 그나마 언제 책상이 치워질지 모른다는 압박감이 없으면 다행이다. 도대체가 행복하기 힘든 조건을 골고루 갖춘 생활인 경우가 많다. 실직의 고통 앞에서 이는 사치스러운 푸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미래의 불행을 피하기 위해 현재의 불행을 감내해 나가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의문을 지워내기 힘들다.

먹고사는 문제에 얽매여 걱정만 할 것인가

▲ <방외지사> 겉그림
ⓒ 정신세계원출판국
그런데 여기 또 이러한 삶의 굴레를 과감히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장에 얽매여 먹고 사는 문제로 걱정만 하다가 한 세상 끝나는 것인가?"라고 외치는 <방외지사 우리시대 삶의 고수들>(정신세계원 펴냄)이다. 저자 조용헌씨는 '방(方)'이란 테두리, 닫힌 공간, 고정관념을 뜻한다고 말하며, '방외지사'란 그 고정관념과 경계를 뛰어넘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1,2권으로 나뉜 이 책은 13명의 방외지사의 삶을 소개해주고 있다. 다양한 삶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역시 관심을 끄는 것은 밥벌이의 걱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 방외지사들이다.

먼저 박태후(50)씨는 "죽기 전에 살고 싶은 대로 살고 보자"며 20년 동안 해 왔던 공무원 생활을 접고 고향집으로 내려가 작은 수목원을 가꾸며 10년째 살고 있다. 아내, 두 딸과 함께 생활하는 박씨는 매월 들어오는 130만 원의 연금만 가지고도 딸 대학도 보내고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100평 정도의 텃밭만 있으면 4인 가족의 먹거리는 충분히 해결된다. 대개 아침과 저녁에 한 시간씩만 농사일을 하고 나머지는 맘대로 '논다'. 운동도 하고 집안 정원도 돌보고, 그림도 그리고….

박씨는 "해가 중천에 뜬 아침 10시까지 방에서 뭉그적거릴 때 가장 행복감을 느꼈다"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고 약을 올린다.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 타고 강산을 떠도는 시인 이원규(42)씨는 잡지사 기자를 하다 사표 내고 달랑 300만원만 가지고 무작정 지리산으로 갔다. 주거는 빈집에서 공짜로 묵고, 돈이 떨어지면 알아서 생긴다고 걱정을 하지 않는다. 때로는 놀러온 지인들이 돈을 주고가고, 스님들도 가끔 라면이나 쌀을 넣어주고 간다고 한다. 정 어려우면 녹차 만드는 일 보조해주고 월 100만 원씩을 받고, 일당 10만 원인 섬진강 올갱이 잡는 일도 하면 된다. 한달 생활비는 50~60만 원이면 충분하단다.

그는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변인 섬진강변을, 특히 봄에 매화 필 때 둥-두-두-등 소리를 내고 달리면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다며 지리산 생활에 만족을 표시하고 있다.

백수의 제왕 강기욱(44)씨는 백수시대에 새로운 삶의 모델을 제시해준다. 그는 아내와 두 딸을 둔 가장. 그러나 대학졸업 후 월급 받는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 백수지만 3500여 평의 대저택에 살고 있다. 고봉 기대승의 후손들이 사는 전라도 광주의 너브실이란 마을에서 가장 큰 고택이다. 대나무 숲만 700평이다. 수입은 고택에 살면서 관리해주는 대가와 간혹 있는 문화답사 안내비. 네식구 한달 생활비는 50만원이다. 그의 신조는 "눈 먼 새도 공중에 날아다니면 입에 들어오는 것이 있게 마련"이란 신조로 대숲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일만하며 사는 서울 사람들을 연민한다.

그도 처음 이집에 들어와서 3년은 외로웠다고 한다. 농사도 짓지 않고 외부사람과 교제도 없다보니, '내가 완전히 사회로부터 낙오되었는가! 나는 낙오된 인생인가!'하는 열등감이 들었다고. 그 열등감을 극복하는데 3년 정도 걸렸다고 한다. 집사람이 함께 있어준 것이 커다란 위안이었는데, 3년이 넘으니까 비로소 안정이 되었다고 한다. 안정을 찾았다는 의미는 자연과 함께 호흡할 수 있게 되었음이라고 말한다.

새벽의 여명이 아름답게 느껴졌고, 새 지저귀는 소리가 반가웠고, 밤이 되면 달이 아름답고, 저녁이 되면 석양의 노을빛이 가슴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자연과 함께 호흡을 하고 있다는 통찰이 오면서 외롭지 않게 되었고 잔잔한 평화가 밀려 왔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생활을 즐기게 되었고 '아! 나는 복 많은 사람이구나!'하는 자각이 들었다고 한다.

행복을 위해 돈을 포기한 사람들

여기에 소개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행복을 위해 돈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안정된 직장 또는 더 많은 보수를 위해 현대인들이 틀 지워진 분주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이들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행복만큼 주관적인 척도가 없다. 남들이 뭐라 하던 스스로 행복하면 된 것 아닌가. 항상 남의 시선에 맞춘 행복의 기준을 위해 현재의 행복하지 않음을 감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보다는 정말 행복한 것임이 분명하다.

<방외지사>의 저자 조용헌의 말대로 인생에는 한 길만이 아니고 여러 길이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그 동안 과도하게 방내지향적인 가치체계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설사 나는 방외의 다양한 삶들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우리네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길들이 더 많이 나와 답답한 우리네 삶에 다양한 물꼬를 터주었으면 좋겠다.

독후감은 이런 바람에서만 멈추진 않는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읽는 이에게도 던지기 때문이다. 질문은 단순하지만 대답도 쉽진 않다. 하지만 위의 책들은 행복한 길을 가는데 돈은 필수조건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그 다른 길을 그냥 즐겁게 걸어가면 된다고 말해주고 있다.

<방외지사>에서 되새겨 볼 문구들

- 헬렌 니어링은 노동, 독서와 사색, 타인과의 교류로 하루를 3등분하였다.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진정한 의미는 이러한 3등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68쪽)

- 시인 이원규 왈 "섬진강 은어가 가장 맛좋은 시기는 5월쯤 보리이삭 팰 때다. 이 때 나오는 은어를 보리은어라고 부른다. 보리은어는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수박향이 난다. 5월에 한번 와서 보리은어를 맛보시라! 삶의 쾌락을 느낄 것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가엽게도 보리은어를 맛보기가 어렵다. 시간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 산에 들어와 살 때는 서울의 지인들이 방문하다고 통기를 하면 보름 전부터 기다렸다. 녹차도 준비해 놓고, 옆집에 가서 매화차도 얻어다 놓고, 은어 잡을 투망도 손을 보아 놓았다. 그렇게 정성껏 준비해 놓으면 약속날짜를 하루나 이틀 전에 취소한다. 여러 번 속다보니까 요즘은 서울 사람들 약속을 믿지 않는다. 지리산에서 서울 가기는 쉽지만, 서울에서 지리산에 오기는 어렵다. 지리산은 시간이 고무줄이지만, 서울은 그물코처럼 촘촘하다.(72쪽)

- "자연의 리듬은 해 뜨면 일어나고 해 떨어지면 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문명의 리듬을 강요받아 왔다. 그러다 갑자기 자연 속에 들어오면 문명의 금단 현상이 일어난다. 혼자 있으면 한가하고 즐거워야 하는데 오히려 불안하다. 이게 현대인의 불행이다. 현대인은 똥개훈련을 너무 많이 받아서 혼자 있을 수 없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문명의 속성인 경쟁과 죽임을 싫어했던 것 같다. 대학졸업 후 지금까지 나는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왔다. 사회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나는 그 동안 행복했다."(94쪽)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박범준.장길연 지음, 서원 사진, 정신세계원(2005)


방외지사 1 - 우리 시대 삶의 고수들

조용헌 지음, 김홍희 사진, 정신세계원(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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