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취재원 황우석에 대한 두 가지 단상'이란 글이 실린 2005년 7월 15일자 <서울대 동창회보>.

[기사 수정 : 16일 저녁 7시 10분]

"기사작성을 포기하고 다른 기자들의 기사작성까지도 '방해'하는 등 '반(反)기자적 행동'을 한 것이 오히려 자부심을 갖게 하는 일화가 있다."

2000년 5월 당시 서울대를 출입했던 <연합뉴스> 김모 기자가 지난해 7얼 15일자 <서울대 동창회보>에 쓴 '취재원 황우석에 대한 두 가지 단상'이라는 글의 일부다. 김 기자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한 사건은 2000년 일어난 '황우석 교수의 성희롱 발언' 파문을 일컫는다.

최근 세계를 뒤흔든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언론의 감시소홀이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 언론이 눈감았던 2000년 황 교수의 성희롱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의 중 성희롱 발언 파문... 황 교수, 시인하고 사과

당시 파문은 황 교수가 2000년 10월 24일 서울대 자연과학대의 '유전공학 개론' 수업에서 특강을 하던 중 성희롱적 혹은 여성비하적 발언을 한 데서 비롯됐다.

그러자 일부 수강생들이 수업 시간에 즉각 문제를 제기했고, 서울대 여성단체들의 모임인 '관악여성모임연대'도 이튿날 뒤인 10월 26일 '황우석 교수의 사과를 요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 적시된 황 교수의 주요 성희롱 발언은 다음과 같다.

▲ 복제양 '돌리'의 유래를 얘기하면서 '돌리 파튼'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매우 선정적인 손동작과 함께 '젖퉁이가 눈을 친다'는 식의 표현을 사용하며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
▲ 자신이었다면 돌리가 아닌 '젖소부인, 애마부인' 등을 이름 붙였을 것이라고 함
▲ 룸살롱에서 여성 접대부와 나눈 이야기를 자랑인 듯 이야기하고 음탕한 얘기들을 늘어놓음
▲ 병에 안걸리는 소의 정자를 인공수정용으로 파는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가운데다리' 등 적나라한 표현을 써가며 성적 비유를 함
▲ 자신이 고른 젖소의 우수성을 거론하면서 사람 나이로 환산하면 130세 정도 되는 소의 젖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130세 먹은 할머니의 가슴은 '말라붙은 건포도'라고 묘사하는 등 여성의 몸을 비하함
▲ 3명의 학생을 일으켜세웠는데 그중 여학생에게만 '립스틱 바라는 입술의 세포' 식으로 형상화시킴

관악여성모임연대는 이밖에도 "성적인 비유와 음담패설, 여성비하적 발언, 여성을 대상화하는 발언을 계속 했다"면서 "특히 여학생들이 항의했을 때 '농담이야', '항의할 줄 알았다' 식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또 어느 학생은 너무 분해 손이 떨려 필기를 못했고, 어느 학생은 눈물까지 흘릴 정도였다고 상황을 전했다.

▲ 2000년 황우석 교수의 성희롱 발언 사건을 다룬 서울대 학보 <대학신문> 11월 6일자 기사.
이와 관련, 김 기자의 <서울대 동창회보> 글이나 당시 서울대 학보 <대학신문> 관련 기사에도 관악여성모임연대 성명에 나온 사례가 각각 하나씩 적시돼 있다. 그러나 황 교수는 "수업시간이 오후여서 졸음을 쫓기 위해 잠시 여담을 한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사건은 황 교수가 강의실에서 정식으로 사과하고 성폭력 예방강의 교육을 수강하기로 학생들과 합의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황 교수는 별도의 수업 시간을 마련, 학생들이 지적한 발언에 대해 인정하고 "불쾌한 경험을 한 수강생들에게 사과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논란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다. <대학신문>은 그해 11월 6일자를 통해 "교수가 자신의 부인을 가리켜 (성적으로) '아직 쓸 만하다'는 등의 발언을 하자 학생들이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하고 나섰다"며 "성폭력으로 규정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대학신문>도 황 교수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 "자연대 수업에서 강의하던 한 교수"라고 익명 처리했다.

학내에서는 상당한 파문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은, 학교 바깥으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서울대를 출입하는 기자들이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흘 뒤인 11월 3일, <문화일보>가 여러 대학에서 발생한 성폭력사건을 종합한 기사 끝에 "서울 S대에서는 지난달 H교수가 수업 도중 음담패설을 한 데 대해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대자보가 나붙기도 했고…"라고 언급했을 뿐이다.

"뛰어난 과학자의 앞길을 망치는 일을 용케 피했다"

당시 황 교수는 99년 복제소 '영롱이' 탄생에 이어 백두산 호랑이 복제 계획을 내놔 주목받는 과학자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90년대 중반 이후 몇몇 대학의 성희롱 사건이 크게 논란거리로 떠올랐음을 감안하면, 본인이 성희롱 발언을 시인하고 사과까지 했음에도 기자들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여기에는 '각광받는 황 교수를 보호해야 한다'는 기자들의 판단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성 비하 발언에 고의성이 없었다는 황 교수의 해명과 직접 공개사과에 나선 노력 등이 정상참작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김 기자가 <서울대 동창회보>에 쓴 글 중 "2000년 성희롱 파문을 보도하지 않았기에, 뛰어난 과학자의 앞길을 망치는 일을 용케 피할 수 있었다"고 한 대목은 최근 논란이 된 '언론의 황 교수 감싸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김 기자는 "황 교수의 해명을 적극 반영하더라도 '후폭풍의 파장'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며 "고민 끝에 기사화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고 회사에도 이를 건의했다"고 당시 사정을 밝혔다. "다행히 타사의 동료·후배 기자들도 대체로 이에 호응해줬다"고 그는 덧붙였다.

더불어 "얼마 전 여의도에서 만난 한 서울대 교수는 '김 기자와 당시 출입기자들이 오늘의 '황우석'을 만든 거야'라고 말하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최근(2005년) 황 교수가 배아줄기세포 연구결과로 세계를 놀라게 했을 때 필자의 머리 속에는 안도감이 먼저 스쳐 지나갔다"고 소회를 밝힌 그는 "진정한 기자정신은 단순한 사실 그 너머에 있는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깊게 깨달았다"며 글을 맺었다.

언론의 '연구윤리' 감시 소홀, 그 시작은 '강의윤리' 무시?

결국 '촉망받는 과학자'를 '성희롱 사건'으로 낙마시켜서는 안된다는 기자들의 판단이 황 교수의 성희롱 발언 파문이 기사화되지 않은 배경이 된 셈이다. 그러나 당시 기자들의 판단이 올바른 것이었는지에 대해 당시 <대학신문> 기자였다고 자신을 밝힌 사람은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에서 "당시로서는 최선의 판단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고 돌아봤다.

기대받던 과학자의 장래와 연구 성공에서 예상되는 국익 등을 고려해 보도를 자제한 자세가 지금의 '황우석 신화'를 만든 언론의 감싸기로 확대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언론이 당시 '강의윤리'의 잘잘못을 따끔하게 가렸다면 '연구윤리' 소홀에서 비롯된 지금과 같은 대형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아울러 황 교수가 그 후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임기응변식 발뺌을 거듭하며 진실한 사과와 해명을 게을리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언론의 황 교수 보호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당시 언론의 안이한 대처가 남긴 후과는 매우 크다.

예컨대 난자 문제와 관련, 황 교수는 처음에는 '연구원의 난자 제공설은 사실무근이다'라고 강변했으나 나중엔 '사후에야 알게 됐다'는 식으로 말을 바꿨다. 그러나 서울대 조사위원회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황 교수는 연구원 난자 제공시 해당 연구원을 자신의 차로 병원에 데려갔고 시술 후에도 함께 돌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상황이 불리하면 일단 발뺌하는 식으로 황 교수가 대응해온 사례는 여럿 있다.

실제로 당시 사건을 마무리짓는 전제 조건이었던 '성폭력 예방교육 강의 수강', '서울대 윤리위원회 회부', '성폭력상담소 책자 인용' 등은 그 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에도 언론들은 '잘 나가는' 과학자의 '연구윤리' 감시와 견제에 소홀했다.

이와 관련, 당시 서울대 출입기자였고 지난해 <서울대 동창회보>에 글을 게재한 김 기자의 입장을 들어보고자 했으나 그는 "지나간 일을 가지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면서 "이 일과 관련해서는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한편, 당시 서울대 학생처 부처장으로 사건을 맡았던 이정재 조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논란이 돼서 학생들과 기자들하고 청중들이 황 교수 얘기를 반복해서 다시 들었으나 반응이 엇갈렸다"며 "'문제가 안된다'는 여론도 많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황 교수가 똑같은 내용을 대학원생이나 외부에서 강연했을 때는 문제되지 않았는데 학부 2학년 학생들에게 문제가 됐다"며 세대간 가치관 차이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또 "학생들 요구대로 황 교수가 사과 강의도 했고, 수강생들에게 사과 이메일도 보냈다. 관련 교육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황 교수가 학생처가 만족할 만큼 협조를 잘해줘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문제가 끝났다"고 덧붙였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