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의 줄거리가 노출되어 있습니다.
 <청연>시사회 끝나고 기자 간담회에서의 감독과 배우들
ⓒ 임순혜

95억6천만원의 제작비를 들여 완성한 항공 블록버스터 <청연>이 공개되었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정혜주씨의 글 '제국주의의 치어걸, 누가 미화하는가'라는 글을 읽고 한국 최초 민간 여류비행사 박경원이라는 실존인물을 영화는 어떻게 다루고 있나 무척 궁금했다. 그러나 영화는 일제 식민지하에서 꿈을 이루려 했던 당시 진보적인 신여성의 치열한 고민과 고뇌를 그렸다기보다는, 여류비행사 박경원(장진영 분)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영화였다. 우선 가난했던 시골의 한 소녀가 일본에 건너와 비행학교에 들어가기까지의 이야기는 영화에서 생략되었다. 비행학교를 다니면서 택시 운전을 하며 학비를 버는 장면은 나오나, 가난에 찌들어 고통 받으면서 어렵게 비행학교에 다니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단지 택시 운전을 하면서 운명적인 사랑 한지혁(김주혁 분)을 만나는 것만 다뤄질 뿐이다.
 <청연>의 한 장면, 여류 비행사 박경원
ⓒ 코리아픽쳐스

한지혁이 입대 후 박경원을 만나기 위해 다찌가와 비행학교 근처 기상장교로 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비행사로서의 박경원의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한 한지혁의 조력과 여류비행사 박경원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장면, 조국 방문 장기비행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모금을 하는 장면들이 보여진다. 그러나 중의원이 된 한지혁의 아버지가 다찌기와 비행학교로 벚꽃여행을 온 날, 뜻밖의 저격 사건이 일어나 한지혁의 아버지와 일본 중의원이 살해되는 일이 발생한다. 저격범은 박경원의 취재를 빌미로 접근해온 조선적색단 일원인 한지혁의 친구임이 밝혀져, 한지혁과 박경원은 구속되어 모진 고문에 시달리게 된다. 한지혁은 사랑하는 박경원을 구하기 위해 조선적색단원임을 자백하고 사형을 당하고, 박경원은 유골을 직접 조선에 전해달라는 한지혁의 유언에 따라 조선에 가기 위해 일장기를 달고 '일만친선비행' 길에 올랐다가 조난을 당한다.
 <청연>에서 한지혁과 박경원
ⓒ 코리아픽쳐스

영화는 많은 제작비를 들이고 연출자가 공을 들인 영화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야기 전개의 개연성이나 두 사람의 극적인 만남, 두 사람을 둘러싼 주변 인물의 설정, 극적인 상황으로 인한 죽음이라는 결별, 그토록 원하던 조국방문 비행 등 드라마로서의 전개는 나무랄 것이 없다. 박경원 역의 장진영, 한지혁 역의 김주혁, 일본 여류비행사 기배 역의 유민, 후배 여류비행사 이정희 역의 한지민 등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으며, 비행경기대회와 폭우 속에서의 '일만친선비행' 장면 등도 뛰어나다. 장면, 장면마다 최고의 아름다운 컷을 구사하려 한 노력이 보이며 실제 아름답고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은 영화였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왜 감독이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택하였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실존 인물이었던 박경원이라는 존재를 빼면 영화는 완전히 허구로 구성되어 있다. 그 점은 윤종찬 감독이 영화시사회가 끝난 후 스스로 밝혔다.
 영화 설명을 하는 윤종찬 감독
ⓒ 임순혜

윤종찬 감독은 "면죄부 주려 안했다. 독립투사나 영웅 반열에 올리고자 찍은 것은 아니다"라며 "그녀는 꿈을 추구하며 친일, 매국노 칭호를 같이 받았던 사람이다. 양날의 칼을 쥐고 있었던 여인인 박경원이 비행기를 타고자 했던 것이 첫번째 원죄이고, 두번째는 다른 사람들은 조종사 자격증을 따고 귀국했으나 박경원은 욕심을 부려 장거리 비행을 추구한 점이다. 자신의 꿈에 가까워질수록 조선과 멀어졌고, 친일파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됐다. 조선인들은 장기비행을 도와주지 않았고 자의적으로 일장기를 들고 타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마지막 비행이 '일만친선(日滿親善) 비행'이었다는 것과 그가 일장기를 들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각색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멜로 라인은 각색을 통해 집어넣었지만 마지막에 그가 일장기를 든 것은 분명히 그의 선택이었다"며 일장기를 들고 비행에 올랐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관객이 판단하길 바랐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박경원이 일장기를 들고 비행기에 오른 이유가, 한지혁이 박경원의 꿈을 이루어주게 하려고 죄를 뒤집어쓰고 죽은 것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점은 윤종찬 감독의 해명과 배치된다. 박경원의 '일만친선비행'에 대한 감독의 해석이 들어가 있으며 어쩌면 친일 매국노라는 평가에 대한 면죄부를 내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기 때문이다.
 <청연>에서 박경원의 비행장면
ⓒ 코리아픽쳐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역사적 인물이나 사실을 영화화할 때 영화가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가 영화에서 제외될 수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관객들은, 역사적 인물에 대해 영화는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하는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영화를 보러가며, 영화가 역사적 인물에 대해 어떤 새로운 해석을 하며, 그 해석은 과연 올바른 관점인가를 판단하려 하기 때문이다. <청연>이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 점을 간과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박경원이라는 실제 인물을 소재로 한 픽션드라마인 것을 분명히 밝히고, 박경원이라는 실명을 영화에서 사용하지 않았어야만 박경원을 미화한 영화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관객은 박경원의 전기영화라는 오해를 가지고 영화를 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경원이 실존인물이 아니라면, 일제 치하에서 한 여류비행사의 극적이고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가슴을 저리게 하며, 연기자들의 연기와 영화의 완성도, 작품성에 이의를 달 사람은 적으리라 생각된다. <청연>은 역사를 영화에 담을 때 기본적인 원칙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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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미디어기독연대 대표,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운영위원장, 언론개혁시민연대 감사, 가짜뉴스체크센터 상임공동대표, 5.18영화제 집행위원장이며, NCCK언론위원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특별위원, 방송통신위원회 보편적시청권확대보장위원, 한신대 외래교수,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심의위원을 지냈으며, 영화와 미디어 평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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