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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전용철 농민 추모 및 쌀협상 국회비준 무효와 살인진압 규탄 전국농민대회' 참가자들이 고인의 영정을 앞세운 채 광화문으로 행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유혈이 낭자했다. 의원들이 피터지게 싸운 것은 아니다. 이날 본회의장 대형 화면을 통해 지난달 15일 국회 앞 농민집회의 진압 장면이 생생하게 재현됐기 때문이다.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날 본회의 말미에 5분발언을 통해 지난달 쌀협상 비준안 처리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시위 현장을 담은 <민중의 소리>와 <코리아 포커스> 영상을 보여줬다.

국회 관계자 이외의 육성을 금지시킨 본회의장 규칙에 의해 영상은 소리없이 화면만 나갔지만,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피를 흘리는 시위 현장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이 의원은 고 전용철씨 사망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위한 국정조사권 발동을 여야 의원들에게 촉구했지만, 의원석 쪽은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의원들이 영상에 담긴 내용 때문에 숙연해진 것은 아니다. 본회의 안건 처리를 마친 의원들이 대부분 회의장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마침 이날 농민들은 서울에서 쌀협상 비준안 처리에 반발하는 시위를 벌였다.

본회의장 화면은 유혈낭자... 의원석은 아무 말도 없었다

국회는 지난 23일 쌀 비준안을 처리한 이후 '쌀'이나 '농민'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린 듯 하다.

당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쌀 비준안을 처리하면서 앞으로는 농민들의 피눈물을 닦아주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하지만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농민이 죽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농민들의 분노가 서울 시내 곳곳에서 분출하는 현재 상황에서는 거의 함구하고 있다.

기자는 사실 이날 대학로와 광화문에서 각각 열릴 예정이었던 농민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에 대해 양당의 우려섞인 한 마디를 기대했다.

경찰 측에서도 지난달 농민집회와 같은 과잉진압을 않겠다고 발표했지만, 주요 쟁점 법안과 관련된 집회이기 때문에 "폭력 시위와 과잉진압을 자제해달라"는 정치권의 한 마디가 아쉬웠던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농민 전용철씨가 사망하고 5일이 지난 후에야 "철저한 진상규명을 해야한다"는 선에서 농심 달래기를 마무리지었다. 농촌 출신 의원들이 진상조사특별위원회 구성을 촉구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각 당은 "국과수 수사 중"이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 지난 23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서 쌀협상 국회비준 저지 결의대회를 벌이던 농민들이 쌀협상 비준안 통과소식을 들은 뒤 모형국회를 불태우며 항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입만 열면 "국민의 눈물 닦아주겠다"던 정치인들은 지금

양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30일 농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책기구를 구성하기로 합의했지만, 사실상 뒷짐만 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제안했던 '정치권·정부·농민단체가 참여하는 3자회담' 구성에 대해 여당은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않은 채 농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회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추운 날씨에 거리에서 물대포를 맞거나 피를 흘리는 농민들의 항변에도 정치인들이 귀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 아닌지 아쉬울 뿐이다.

농민들의 고통이 이미 '정치인들의 마음 속에 있기'라도 한 것일까. 혹시나 국회 정문을 겹겹이 둘러싼 전경 버스들 때문에 시위대의 목소리가 국회에 들리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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