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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반 친구한테 구타당해 죽은 부산 G중학교 H군의 빈소. H군의 유족들은 지난 7일 장례를 치렀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교실에서 급우로부터 폭행당한 중학생이 지난 5일 사망한 사건을 놓고 네티즌들 사이에 논란이 분분하다.

부산 G중학교 2학년이었던 H군(14)이 같은 반 친구 C군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것은 지난 1일 오전 10시45분경. H군이 다른 학생에게 책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C군의 몸을 스친 것이 비극의 발단이 됐는데, 감정이 상한 C군은 H군을 의자로 내려치고 발길질을 해대는 등 무자비한 폭행을 자행했다.

11시 10분경 부산 백병원 응급실로 후송된 H군은 사경을 헤매다가 5일 오전 7시40분 숨을 거뒀는데, 이튿날 부검에서 H군의 사인은 '동맥파열'로 밝혀졌다.

네티즌들은 14살 중학생이 저지른 폭행의 잔혹성에 분개했고,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는 H군의 죽음을 추모하는 소모임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한 미확인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네티즌들 사이에 "담임교사가 C군을 두둔하는 글을 올렸다", "C군이 풀려나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등 사실무근 주장이 유포되면서 C군의 이름이 순식간에 인터넷 인기 검색어가 됐고, C군을 비난하는 글들이 쇄도했다. 덩달아 C군의 가족과 친구들의 신상정보까지 무차별 유포되는 등 C군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사람들이 사이버 폭력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심지어 아직 재판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2년6개월형을 선고받은 C군이 보석금으로 풀려난 뒤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 "재력가인 C군 부모가 언론사와 포털사이트를 매수해 파문 확산을 막고 있다"는 헛소문까지 나왔다.

'담임교사의 글' 등 조작된 글... 포털사이트 금칙어 지정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위와 같은 주장들은 사실이 아니었다.

G중학교는 "C는 여자아이들에게도 인기짱", "H가 C를 많이 귀찮게 해서 생긴 일"이라는 등의 표현으로 네티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이른바 '담임교사의 글'에 항의하는 네티즌들 때문에 홈페이지가 몸살을 앓았다.

G중학교는 8일 "문제의 글은 누군가 담임 선생님의 입장인 듯 가장하여 쓴 글"이라며 네티즌들의 자제를 호소했다. 학교의 해명에 따르면, 수많은 네티즌들이 출처 불명의 글에 '낚인' 셈이지만 네티즌들의 비난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7일 H군의 장례를 치른 유족도 네티즌들의 이상 기류에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다.

H군의 외삼촌 K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C군이 풀려났다"는 주장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고 답했다. K씨는 "C가 폭행을 저지른 뒤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다가 학교에 잠시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런 정황이 와전된 게 아닌가? H가 죽은 뒤 C가 폭행치사죄로 구속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C군의 부모가 아들의 처벌을 무마하고 포털 사이트에 압력을 행사할 정도의 재력가라는 일부 네티즌의 주장에도 '거품'이 많았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이번 사건을 상세히 보도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지난 5일 메인 기사로 올렸다가 C군과 그의 지인들을 겨냥한 사이버 폭력이 횡행하자 댓글란을 없애버렸는데, 이런 조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포털사이트 '다음'도 C군과 H군의 이름을 금칙어로 지정해 관련 소모임 결성을 막는 조치를 취했다.

미디어평론가 "사이버폭력 근절 묘안 없어 딜레마"

네티즌들의 비난여론에 대해 "학원 폭력과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다"는 긍정적 해석도 없지 않지만, 이같은 여론이 무차별적인 사이버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미디어평론가 백병규씨는 "우리사회 전반에 불신이 뿌리깊게 쌓여있는 상황에서 개개인의 축적된 분노가 자극적인 사건을 만나 폭발·해소되는 경향이 있다"며 사회적 병리를 해결할 출구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이버 폭력을 낳는다고 분석했다.

백씨는 "네티즌들은 선악 개념이 명확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철저히 단죄하려고 하는데, 그렇다고 사이버 폭력을 근절할 묘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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