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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이나 지났다. 남편을 빼놓고 아들과 둘만, 거의 한 달을 조르고 협박하고 애원해 어렵사리 얻은 휴가였다. 여름휴가도 포기한 채 아꼈다 떠난 여행이었다. 제주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지인의 본가에 짐을 풀었다. 친구와 여덟 살짜리 아들, 우리 모자 이렇게 넷이 한 오붓한 여행이었다. 여행의 테마는 단 하나 '빈둥거리며 질릴 때까지 제주 바다를 가슴에 담아 오기'였다.

십 년 전 아들과 함께 떠난 제주도

첫째 날, 도착해서 그냥 바다와 하늘만 보며 빈둥거린다.
둘째 날, 또 다시 바다와 하늘을 보며 빈둥거리며 쉰다. 기운이 펄펄 넘치면 바닷가에 나가 모래성도 쌓고 파도에 발을 적신다.
셋째 날, 혹 너무 심심하거나 그래도 뭔가 아쉬우면 마라도든 우도든 다녀온다. 비싼 비행기 삯이 못내 아까우면 깜냥껏 관음사든 빙떡을 파는 동문 시장이든 절대 택시를 이용하지 않고 버스로 다녀온다.
마지막 날, 또 다시 빈둥거리다 암담한 도시로의 복귀를 위해 모든 시름을 푸른 제주바다에 풀어 놓고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이쯤 되면, 장안의 종이 값을 올린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유홍준식의 분류법에 따르자면 단연 최상급의 여행이다. 12월 23일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겁대가리 없이 용감한 일곱살 아들이 비행기가 이륙할 때 얼굴이 백지장으로 변해 바들바들 떨며 비행기 공포증을 갖게 된 것을 빼고는 큰 문제는 없었다.

구멍이 숭숭 뚤린 제주도 검은 돌담 안에 예순이 넘은 해녀인 지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단출하게 살고 있었다. 아직도 외지에 나간 이 마을의 아들, 딸들이 방학을 맞아 고향에 돌아오면 바닷속 가장 깊은 곳에서 딴 질 좋은 성게며 해산물을 들고 마실을 다니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었다.

▲ 제주 구좌의 겨울 바다. 삼 년쯤 지나 사진을 인화했더니 한낮의 바다가 저녁바다로 바뀌었다.
ⓒ 이승열
지인은 자신의 본가에 우리를 소개하고 제주 시내 집으로 돌아갔다. 돌담 사이로 달빛이 부서져 들어오는 보름을 며칠 앞둔 겨울이었다. 돌담길을 돌아 구불구불한 골목을 100m만 나가면 펼쳐지던 제주의 겨울바다. 여름에는 어림도 없을 추위에 행동이 굼떠진 게를 한바가지 쓸어 담는 것, 그것말고는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온돌방에서 뒹굴던 차림으로 집 앞 바다에 나가 한나절 내내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거나 바지를 걷고 바다와 하나가 될 때까지, 종일 바닷가에 앉아 무심히 바다만 바라봤다. 다리가 아플 때까지 걷고 너무 멀리 나가 돌아올 힘이 없으면 지나가던 경운기도 얻어 타고, 화물차 짐칸에도 실려 바다 바람을 맞으며 돌아오면 그만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늦은 밤, 우도 여행을 위해 지인이 본가에 왔다. 편을 갈라 달빛이 비치는 좁은 돌담 안에서 대문을 골대 삼아 축구도 하고, 여행의 마지막 밤이 아쉬워 들이킨 맥주 한잔이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게 한 고통스런 밤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우도로 떠난 낚시여행

12월 25일 크리스마스. 토속 신앙이 강한 제주에서는 별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성산포에서 차를 배에 싣고 우도로 향했다. 여름철 계곡 물놀이용 비닐 보트보다는 조금 큰, 래프팅할 때 타는 보트보다는 한참 작은 비닐 보트에 힘을 합쳐 바람을 넣고 우도 앞 바다에 보트를 띄웠다. 닻으로 사용할 돌맹이 두 개, 어른 셋, 아이 둘 다섯 명이 타니 보트가 꽉 찼다.

돌맹이를 노끈에 묶어 닻을 내리고 포인트를 정한 후 보트를 정지시켰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떡밥을 낚시 바늘에 꿰어 바다 속에 던지기만 하면 바로 우도 바다 속을 빽빽하게 헤엄치던 물고기들이 덥석 물었다. 흔들흔들 겨울바람의 살랑거림에 보트가 흔들거렸다. 보트의 흔들림에 친구의 아들이 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노를 저어 차에 아이를 내려놓고 포인트를 옮겨 한 시간쯤 다시 바다 낚시에 열중. 엄청난 양의 놀래미들이 보트 바닥에서 펄떡거렸다. 갑자기 보트가 흔들리며 손끝이 묵직했다. 가까스로 당기며 녀석의 모습이 물 속에서 비친 순간 유유히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내 팔뚝보다도 굵은 놈이었다. 아쉬웠다. 약간의 바람이 불고 썰물 시간이 가까워졌지만 다시 한번 포인트를 옮겨 조금만 더 바다 낚시를 즐기기로 했다.

사건을 바로 이 순간 일어났다. 이미 썰물 때가 가까워져 바람이 강해진 것을 모르고 무리하게 노를 젓다 그만 노 한쪽이 부러져 바다에 떠내려가고만 것이다. 마음이 급해져 두 여자는 손으로 한 남자는 노를 열심히 저어 노를 향해 전진했으나 무리였다.

우도 앞 바다에 점점이 박혔던 해녀들도 이제 물질을 접고 해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위험하니 빨리 뭍으로 나오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젠장 누군들 안 나가고 싶어 안 나가나? 못 나가는 거지. 씨, 구해줄 생각은 않고."

아무리 열심히 저어도 부러진 노는 보트에서 점점 더 멀리, 멀리 떠내려가고 있었다. 노를 포기하고 이번엔 해변 쪽으로 저어 보았으나 이미 달의 강한 힘이 바닷물을 수평선으로 끌어 당기고 있었다. 점점 더 작게 보이는 아이가 탄 차. 멀어지는 해변, 뭍으로 오른 해녀들의 모습도 어느새 까마득해졌다.

결단의 시간. 제주 사나이가 윗옷을 벗고 바지를 벗고 팬티 차림으로 겨울 바다에 뛰어들어 보트를 밀기 시작했다. 한 여자는 열심히 노를 젓고 한 여자는 열심히 손을 젓고 일곱살 꼬마는 앉아 오돌오돌 추위에 떨며 공포감에 사로잡히고... 잠시 배가 해변 쪽으로 가까워지는 듯하더니 다시 수평선 쪽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30여 분의 사투. 해변은 이제 저 멀리 까마득한 점이 되어 있었다.

이젠 구조를 기다리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마 해녀들이 우리 못 들어온 것 알고 있으니 신고해 줄 거야. 혹 밤이 되면 옷에 불을 붙이면 멀리서도 보일 거야. 수평선에 바다 낚시배 여러 척 떠 있었으니까...'

아들아, 우리 대마도까지 갈까?

공허했지만 하염없이 멀어지는 우도 해변을 보며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다림뿐이었다. 잘 참고 있던 아들이 물었다.

"엄마, 이렇게 떠내려 가다가 아무도 구해 주지 않으면 우리 죽는 거야?"
"아니, 파도에 밀려 하루쯤 가면 거기가 일본 땅 대마도거든. 허락 안 맞고 남의 나라 갔으니까 잠깐 조사 받으면 아마 밥도 줄 거야. 어쩌면 텔레비전에서 나와 인터뷰하자고 할지도 모르니까 넌 무슨 말 할 건가 생각하고 있어. 대마도에서 비행기 타고 서울로 직접 가면 돼."

결국 저 멀리 수평선에 떠 있던 낚시배가 보트와 사람과 돌멩이를 검은 모래 해변으로 근처로 옮겨다 주면서 세 시간 정도의 바다 낚시 상황은 종료됐다. 우선 낚시배에 보트를 묶고 아이를 먼저 인계하고 여자 둘이 옮겨타고 제주 사나이가 옮겨 타고 보트가 올라왔다. 낚시배에서 아이를 받아 품에 꼭 안은 아주머니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근데요, 왜 한겨울에 웃옷도 벗고 양말도 벗고 있어요? 안 추워요?"

▲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우도 앞바다에서의 조난은 지금까지 일급비밀이다.
ⓒ 이승열
96년 크리스마스, 바다 너머로 지는 해는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젖은 옷을 입은 채로 사진을 찍었나, 대강 상황을 수습하고 사진을 찍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겨울 우도봉 꼭대기에서 바다 바람을 맞으며 추위에 떨면서도 오랜 시간 기다린 후 기어이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해를 본 것, 달빛 쏟아지는 돌담 안에서 열심히 아까 잡은 놀래미 회를 뜬 것, 그리고 그 회가 입 속에서 살살 녹으며 목울대를 자극했던 소주 한 잔의 기억이 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겨울 우도 이야기가 '이 여름을 시원하게'의 응모 자격이 되나 되지 않나를 판단하려 행간까지 읽었으나 내 능력으로는 판단불능이다. '소재나 형식에 얽매지 않고 한여름 오마이뉴스 독자들을 시원하게 만들 어떤 글이든 환영'한다고 했으니 그에 억지 춘양이로 꿰맞추면 그리 무리도 아닐 듯, 1996년 크리스마스날 겨울 제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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