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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1997년 12월 15일자 1면.
"<중앙일보>의 대선보도는 국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도외시한 '비이성적 행태'로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언론이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는 오만과 독선을 갖거나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자처한다면 더 이상 언론과 이 나라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언론인의 각성을 촉구하며 언론이 공평무사한 본연의 자세를 되찾을 것을 결의합니다."

지난 97년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던 12월 16일 각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들이 채택한 '공정보도를 위한 우리의 뜻'이라는 결의문의 일부이다. 당시 <중앙일보>를 제외한 중앙 종합일간지와 SBS(2명 서명했으나 곧 철회)를 제외한 방송4사, 28개 지역 언론사 등 모두 46개 언론사의 정당출입 기자 103명이 결의문 서명에 참여했다.

웬만해서는 타사 보도내용에 간섭하지 않는 언론계 관행을 감안할 때 기자들이 소속사를 넘어 한목소리를 냈을 뿐 아니라 중앙일보 실명을 적시한 당시 결의문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일선에서 정치기류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기자들 눈에<중앙일보>의 대선관련 보도가 지나치게 '이회창 후보 편들기'에 나선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정치부 기자 103명 "<중앙> 보도 '비이성적 행태'"

김대중·이회창·이인제 세 후보가 각축을 벌였던 97년 대선 당시 중앙일보는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기자들뿐 아니라 시민단체에서도 많이 받았다.

그해 16개 시민·언론단체들이 불공정 선거보도를 감시하기 위해 결성한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 '15대 대선 감시백서' 등에 따르면 당시 중앙일보 보도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에 대한 '상처내기'를 통해 대선 구도를 '김대중 대 이회창'의 양자대결로 몰아가려 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중앙일보는 '청와대의 국민신당 200억원 지원설' 기사를 비롯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국민신당이 유착돼 있다는 기사를 97년 10월부터 연이어 머릿기사로 올렸다. 이로 인해 이인제 후보측은 당시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한겨레 21>이 증빙자료까지 곁들어 폭로했던 '청와대 고위 비서관들의 이회창 후보 지원' 사실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등 이인제 후보와 달리 이회창 후보에 대한 중앙일보의 보도는 사뭇 우호적이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밖에도 '백서' 등에는 "이회창 후보에 우호적이고 이인제 후보에 적대적"인 중앙일보 보도양태에 대한 사례가 많이 거론됐다.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에 대해서도 불리하게 보도·편집된 사례가 많지만 우선 목표는 이인제 후보였으며 이는 한나라당이 강조했던 이른바 '사표방지론'(이인제 후보는 당선되지 못할 것이며 이인제 후보에게 표를 던지면 김대중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내용)과 연계된 것이었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또 이 과정에서 97년 11월 29일 국민신당은 중앙일보 내부에서 작성된 '이회창 경선전략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이라는 문건을 폭로했다. 이회창 후보의 기본 전략 및 스타일상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이 담긴 이 문건이 언론사에서 작성됐다는 점에서 당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국민신당 및 국민회의 등에서는 중앙일보의 사과를 요청했지만 중앙일보는 이에 대해 '한 기자가 정보 보고한 것이며 이회창 후보 진영에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 <중앙일보> 1997년 12월 16일자 사설.

<중앙>, '양자대결 구도' 강조... 이회창 후보측 전망과 맞닿아

이러한 흐름의 정점은 중앙일보 97년 12월 15일자. 1면 머릿기사 「대선 양자구도 압축, 이회창·김대중 각축... 이인제 주춤」, 3면 「실체 드러나는 양자 대결구도', '이젠 부동층 잡기 총력」 등은 이회창 후보와 김대중 후보의 양자대결로 좁혀졌으므로 이인제 후보에 대한 지지는 사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양자대결 구도면 필승'이라고 봤던 한나라당 전망과 맞닿아 있는 것이었다.

특히 ▲"김대중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이회창 후보가 바짝 뒤쫓고" 있는 데 반해 "이인제 후보는 상승세를 회복하지 못하는 형편"이라는 부분 ▲이회창·이인제 후보의 대선전략을 검토하면서 "반DJ의 맹주가 되는 것이 급선무였다"고 한 부분 ▲한나라당(165석)과 국민신당(8석) 의석수를 비교하면서 "많은 의석은 한나라당이 보수 중산층에 '안정된 국정운영'을 호소하는 데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고 평하고 "이같은 조직은 여러 면에서 위력을 발휘했고 후보 개인이 고군분투하는 국민신당과 격차를 벌였다"는 부분이 대표적 편파보도 사례로 지적됐다.

당시 국민신당 당원들은 이같은 보도를 접한 뒤 중앙일보 사옥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는 한편 당의 전조직을 동원, 중앙일보 구독사절 범국민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이어 중앙일보의 '손명순 여사 신당 200억원 지원설'과 '청와대 신당 지원설' 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고 중앙일보 편집국 간부 등이 '지위를 이용한 선거행위'로 공직자선거법을 위배했다며 이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새정치국민회의도 "최근 중앙일보가 한나라당 기관지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삼성과 이회창 후보, 중앙일보의 추악한 정경유착 음모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비판 논평을 냈다.

그러자 중앙일보는 다음날(97. 12. 16) 「사실보도를 왜 트집잡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 "어떤 압력이나 비방·중상에도 흔들림 없이 국민의 알 권리와 진실 추구란 언론 본연의 사명에 충실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중앙일보는 또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 기간인 12월 15일 여론조사 전문가의 발언을 빌려 "2∼3일 전부터 김대중-이회창 양자대결 구도로 경쟁양상이 좁혀지고 있다"는 내용을 1면 톱기사로 보도했다.

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다'며 중앙일보에 대해 경고 조치를 내렸다. 결과적으로 중앙일보는 선거법을 어겨가며 무리한 보도를 감행한 셈이었다. 103명 정치부 기자들의 '양심선언'은 이같은 상황에서 나왔다.

97년 <중앙> 보도 등에 대한 비판... 'X파일' 내용과 부합

당시 기자들 사이에서는 결의문에 중앙일보를 명시하는 문제와 관련, 서명 참여자 사이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편파보도 지적을 받은 곳이 중앙일보 한 곳만이 아니기 때문. <조선일보>도 김대중 후보를 직접 겨냥한 부정적인 보도 및 이회창 후보에 대한 긍정적인 보도를 많이 내보냈다고 비판받았다.

예를 들면 조선일보는 IMF 구제금융 신청 문제와 관련, 「정치권 IMF 재협상 발언, 외화난 악화 부채질」(97년 12월 11일 1면 머릿기사) 등을 통해 여당이던 한나라당보다 재협상론을 거론했던 김대중 후보측에 IMF 책임을 더 강하게 묻는 듯한 보도를 잇따라 내보냈다.

당시 정치부 기자들의 결의문은 중앙일보를 직접 거명하면서도 중앙일보 이외 언론에 대해서도 뼈를 깎는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최근 공개돼 파문을 불러일으킨 이른바 'MBC 이상호 기자의 X파일'에는 97년 대선 당시 중앙일보의 이회창 후보 적극 지원 및 다른 일간지의 김대중 후보 흠집내기 관련 내용도 담겨 있다. 97년 현장에 있던 정치부 기자들의 '양심선언'이 이번 'X파일'에서 지적된 내용과 부합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 듯하다.

"언론의 '대통령만들기' 용병전락, 참을 수 없었다"
[인터뷰] 97년 '결의문' 채택에 참여한 한 일간지 기자

지난 97년 '공정보도를 위한 우리의 뜻'이라는 결의문을 채택하는 데 참여했던 한 일간지 정치부 기자.

그는 25일 밤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언론이기를 스스로 포기했던 언론사들이 어느 정도까지 정치모리배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직접 봤다"고 당시 상황을 돌아봤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성명을 발표하긴 했지만 (추악한 커넥션의) '진실은 이런 것'이라고 밝히지 못한 게 부끄러울 뿐"이라며 최근 '삼성 불법대선자금 X파일' 사태로 드러난 정언유착 실태에 대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또 당시 중앙일보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 중에도 정도를 걷지 않은 곳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중앙일보가 '이회창 후보 대선전략' 문건 등과 관련, "내부 정부보고 자료일 뿐이라고 변명하는 모습에서 언론(인)의 상궤를 벗어나 정치집단 혹은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걸 봤기 때문에 실명을 적시했다"는 것.

다음은 이 기자와의 일문일답.

- 결의문을 채택하게 된 계기는.
"특별한 계기랄 건 없고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했다. 당시 서명에 동참한 기자들은 언론이 '대통령 만들기'의 용병으로 전락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내가 기자일 수도, 누구도 언론인일 수도 없다고 마음이 통해 소속사와 출입처 혹은 출신에 관계없이 서명했다."

- 결의문에 중앙일보 실명이 거론됐는데.
"중앙일보 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 중에도 정도를 걷지 않은 곳이 있었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당시 '이회창 후보 대선전략' 문건 등과 관련, '내부 정부보고 자료일 뿐'이라고 변명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언론(인)의 상궤를 벗어나 철저하게 하나의 정치집단 혹은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걸 봤다."

- 최근 'MBC 이상호 기자의 X파일'이 공개되면서 당시의 추악한 커넥션이 사실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는데.
"특별한 감회는 없다. 그 당시 우리가 이번 X파일 같은 의혹을 제기했던 건 아니다. 단지 정치부 기자로서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의 '대통령 만들기' 작업을 현장에서 목도했기 때문에 결의문을 채택한 것이다.

언론이기를 스스로 포기했던 언론사들이 어느 정도까지 정치모리배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직접 봤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가 성명을 발표하긴 했지만 (추악한 커넥션의) '진실은 이런 것'이라고 밝히지 못한 게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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