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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류동 바위에 새긴 북한 노래
ⓒ 백유선
금강산 바위에는 북한에 의해 새겨진 많은 '글발'들이 있습니다. 이전 기사에서 이미 표식비와 짧은 구호에 대해서는 살펴보았으니, 이번에는 구룡연 코스와 삼일포 코스에서 본 바위에 새긴 북한의 노래와 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니다.

노래와 시는 대체로 고(故)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인 김형직, 또 어머니인 강반석, 그리고 김일성 주석, 부인 김정숙 등의 항일 혁명 투쟁을 칭송하는 내용들이 다수입니다. 대체로 작은 글씨로 새긴 후 붉은 색칠이 되어 있습니다.

이미 언급했지만 북한은 금강산을 근로자의 휴양처로서 뿐만이 아니라 혁명적 교양 장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일성 주석의 항일 혁명 역사를 중심으로 한 노래들을 눈에 띄는 적당한 바위에 새기도록 했다고 합니다. 휴양 중에도 사상학습은 필요하다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 바위에 새긴 북한의 노래들은 그다지 남한관광객의 시선을 끌지 못합니다.
ⓒ 백유선
구룡연 코스의 바위에 새긴 노래와 시

구룡연 코스에서는 금강문에 도착하기 직전에 노래를 새긴 '글발'이 처음 나타납니다. 남한에서는 이렇게 긴 노래 가사나 시를 적어 놓은 것을 보기 힘듭니다만, 이곳 금강산에서는 짧은 구호와 함께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짧은 구호들이 주로 금강산 바위 봉우리의 절벽에 새겨져 있는데 비해, 노래 가사들은 길가 주변의 바위에 새겨져 있어서 가까이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호들은 큰 글씨이지만 노래 가사는 글자 수가 많아 작은 글씨로 새겨 놓았습니다.

맨 처음 보이는 것은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이란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김일성 주석의 어머니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할머니인 강반석 탄생 70주년을 기념하여 1962년에 새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강반석은 조선국민회를 만들어 항일투쟁을 한 김형직의 부인이기도 합니다. 북한에 의하면 그녀 역시 남편과 그녀의 아들인 김일성을 도와 항일 투쟁을 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김일성을 항일 투사로 길렀다고 하여 북한에서는 '조선의 어머니'로 불릴 정도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발은 강반석을 추앙하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구태여 그 내용을 모두 옮기는 이유는 이런 노래들이 북한 사회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어머님의 사랑

효성어린 좁쌀 한말
앞에 놓고서
강반석 어머님은 말씀하셨네
나라 찾는 크나큰
위업을 위해
생명도 가정도 바쳐야 함을
아 위대하신 어머니 사랑
하늘땅에 비기랴 어머니 사랑


▲ 노래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 강반석 어머님 탄생 70돐 기념. 1962.4.21’
ⓒ 백유선
이 바위의 뒷면에는 '푸른 소나무 영원히 솟아 있으리'라는 서사시의 일부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시는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할아버지이며, 강반석의 남편인 김형직을 추모하는 시입니다. 이 글발은 조선국민회 창립 55주년을 기념하여 1972년에 새겼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전 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김형직은 1917년 조선국민회를 창건하고 3·1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북한에서는 항일투사로 이름이 높습니다. 최근 우리 독립기념관에서 이를 입증하는 사료가 보관되고 있음이 알려져 그의 항일투쟁 사실이 거짓이 아니라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푸른 소나무 영원히 솟아 있으리 서사시 중에서

사람들이여! 무심히 쳐다보지 말라
금수강산 삼천리에
푸른 소나무가 그처럼 빛나고
그처럼 사시사철 푸르러 설레이는 것은
김형직 선생님의 높고 높은
그 원대한 뜻을 지니었기 때문이여라


▲ 서사시 ‘푸른 소나무 영원히 솟아 있으리, 조선국민회 55돐 기념. 1972. 3’
ⓒ 백유선
이곳을 지나면 금강문 앞의 휴식터에 이르게 됩니다. 휴식터 한 편의 큰 바위에는 김일성 주석을 칭송하는 송가인 '수령님의 만수무강 축원합니다'라는 노래의 가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탄생 60돌을 기념하여 1972년에 새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이때쯤 금강산에 본격적으로 글씨를 새기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기에 새겨진 글씨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는 이미 이전 기사에서 간단히 살펴본 바 있습니다.

수령님의 만수무강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이 행복을 안겨주시려
한평생을 바치시는 우리 수령님
어버이 그 사랑 그 품속에서
오늘의 이 행복은 꽃폈습니다
하늘땅의 끝까지 따르렵니다
해와 달이 다하도록 모시렵니다
수령님의 그 은혜 길이길이 전하며
일편단심 충성을 다하렵니다.
위대하신 어버이 수령님을 우러러
인민들은 만수무강 축원합니다


▲ 노래 ‘수령님의 만수무강 축원합니다. 수령님 탄생 60돐 기념. 1972.4.15’
ⓒ 백유선
금강산의 글발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남한의 관광객들에게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길 옆에 있는 바위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옥류동의 글발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옥류동의 경치의 아름다움 때문에 바위의 글씨에 눈을 돌릴 틈이 없습니다. 저도 옥류동의 글발들은 내려오는 길에야 자세히 살필 수 있었습니다.

옥류동에는 두 개의 노래가 새겨져 있습니다. '오직 한마음'과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아'가 그것입니다.

'오직 한마음'은 1972년 김일성 탄생 60주년을 기념하여 새긴 것으로, 북한의 표현에 의하면 "아름다운 조국 땅에서 어버이수령님을 높이 모시고 억년만년 행복하게 살아갈 우리 인민의 심정을 담은 노래"(<금강산의 력사와 문화>)라고 합니다.

오직 한마음

오늘의 이 행복을
그 누가 주었나
로동당이 주었네
수상님이 주셨네
김일성원수님이
이끄시는 길을 따라
목숨도 바쳐가리
오직한 마음


▲ 노래 ‘오직 한마음. 수령님 탄생 60돐 기념. 1972.4.15’
ⓒ 백유선
'오직 한마음' 곁에 쓰인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아'는 금강산에서 본 글발 중에서 유일하게 정치색이 없었습니다. 1968년 북한 정부 수립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새긴 이 노래는 다른 글발들과는 달리 가장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아
금강산 골안에 보물도 많네
비로봉 밑에선 산삼이 나고
옥류동 골안에는 백도라질세
아 인민의 금강산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네


▲ 노래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아, 공화국 창건 20돌 기념. 1968.9’
ⓒ 백유선
비봉폭포를 지나면 나타나는 무봉폭포 곁의 바위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노래인 '김일성장군의 노래' 1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한 번쯤은 불러 보았을 노래입니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 점령 아래에서 이 노래를 배웠다는 옛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유신 시절 술 한 잔 마시고 무심코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하며 흥얼거리다가 반공법에 의해 호된 고통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본래 이 노래는 1946년 김일성에 바치는 헌시로 지어진 것에 곡을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북한에서 여러 행사 때마다 불리는 노래로 사실상의 북한국가처럼 생각되고 있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곁에는 '조선조동당 창건 기념. 1945. 10'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것은 1946년이니, 1945년이라 새긴 것은 조선노동당을 창건한 연대를 그대로 적어 놓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언제 새겨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금강산에 다른 글발들이 본격적으로 새겨진 1970년대를 전후하여 새긴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할 뿐입니다.

김일성 장군의 노래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 우에
력력히 비쳐주는 거룩한 자욱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 장군


▲ 노래 ‘김일성장군의 노래, 조선로동당 창건기념. 1945.10’
ⓒ 백유선
삼일포 주변 바위의 노래와 시

삼일포의 봉래대로 올라가는 길에는 '세상에 부럼 없어라'라는 노래가 새겨져 있습니다. 1972년 조선소년단 창립 25주년을 기념하여 새긴 것입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였을 이 시의 내용을 통해 북한의 국정 홍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부럼 없어라

하늘은 푸르고 내마음 즐겁다
손풍금소리 울려라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조국 한없이 좋네
우리의 아버지 김일성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 없어라


▲ 노래 ‘세상에 부럼 없어라, 조선소년단 창립 25돐 기념. 1971.6’
ⓒ 백유선
한편 삼일포의 봉래대 뒤편에는 피바위로 이름 지어진 바위가 있습니다. 북한에 의하면 이곳에서 미군에 의해 84명이 학살되었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피바위에는 이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71년에 새긴 글귀가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 글귀를 '애국자들의 심장소리'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원쑤는 이 한 몸 죽인다 해도
혁명의 절개를 꺾지 못하리
장군님이 이끄시는 혁명의 한길
죽어서도 그 길을 못 버립니다.


▲ 바위 글 ‘원쑤는 이 한 몸 죽인다 해도, 1971’
ⓒ 백유선
피바위의 뒷면에 적기가가 새겨져 있다는 애길 듣고 있었으나 찾지를 못했습니다. 영화 <실미도>에 적기가를 부르는 장면이 삽입되어 국가보안법의 고무, 찬양 혐의로 고발되었다가 무혐의 처리되었다는 신문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식민지 시기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불렀다는 이 노래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늦어 서두르는 바람에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글발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충성각 주변에도 많은 글발이 있다는 이야길 들었지만 역시 시간 때문에 직접 가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 기사는 모두 제가 직접 보고 촬영한 내용들로만 작성했습니다.

금강산 기행기의 한 편을 이 글발들로 채우는 것은 이전 기사에서 표식비나 짧은 구호를 소재로 하여 각각 한 편의 기사를 작성한 목적과 같습니다. 아울러 이런 글발들의 내용을 전부 실은 이유는, 이것을 통해 북한 사회의 단면을 조금이라도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보듬어야할 같은 동포이니까요.

물론 이런 글발이나 그 내용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독자들의 몫이라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초 2박 3일 동안의 금강산 기행기의 열아홉 번째입니다.
이 내용은 글쓴이의 홈페이지('백유선의 고구려 유적답사기', http://noza.pe.kr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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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콘서트>,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공저), <우리 불교 문화유산 읽기>, <한번만 읽으면 확 잡히는 국사>(상,하)의 저자로 중학교 국사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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