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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돈 버는 재주를 찬양한다

이건희와 빌 게이츠는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사업가이고,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들에 속한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갑부인 빌 게이츠의 재산은 약 465억 달러란다.

제2의 갑부는 440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20세기 가장 위대한 투자가'라 불리는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이란다. 1930년도 네브라스카 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우리 나이로 75살쯤 되겠다.

버핏은 1956년 단돈 100달러로 주식투자를 시작해서 오늘과 같은 부를 이루었다니, 돈 버는 재주에 관한 한 가히 천부적 재주를 타고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포브스>가 선정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에 이어 미국 두 번째 부호이다. 버핏이 언젠가 화제가 된 것은 후손에게는 300만 달러만 남기고 전 재산 410억 달러 모두를 자선단체에 기증할 방침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민 경제와 중소기업의 어려움 속에서도 대기업들은 상당한 이익을 남겼다고 한다. 그에 따라 재벌들이 소유한 주식도 그 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재산도 증가했을 것이다. 자타가 최고의 기업가로 공인하는 삼성 이건희 회장도 삼성전자 주가 상승 등으로 2003년 말 보다 1246억원 증가한 1조 3126억원으로 국내 주식재산 1위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지난달 14일 발표된 삼성전자의 순이익이 100억 달러(1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참으로 위대한 삼성이다. <비즈니스위크>와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한 전 세계 경제언론들이 삼성을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덩달아 이를 본 일본 언론들도 "일본 업계는 삼성의 선택과 집중을 배워야"야 한다고 야단인 모양이다. 삼성의 순이익이 일본 최대 전자업체인 마쓰시타 전기를 비롯해 히타치, 일본전기(NEC), 도시바 등 상위 10개 전자업체의 순이익을 합한 액수(5370억엔)의 2배에 이른다고 하니 놀랄 만도 하겠다.

결국 한 기업의 순이익이 이 정도라면 일본도 특정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한 간부는 "이 정도의 이익률의 차이가 난다면 국내(일본) 기업도 선택과 집중에 나설 수 있는 자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외형적인 성장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으로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이러한 외형적 수치가 무엇보다 최근 달러화의 약세에 따라 국내 원화가 강세로 돌아서게 되는 환율변동이라는 요인이 있었고, 작년 2분기 이후 지속적으로 이익 규모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삼성의 경제적 힘이 마치 우리 민족의 힘 같아 뿌듯하다. 간혹 외국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도중에 주눅이 들다가도 한국의 몇몇 대기업 덕분에 듣기 좋은 말을 들을 때면 어깨를 움찔대던 기억이 새롭다.

이건희와 빌 게이츠와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실 내 관심사는 이런 경제적인 면에 머물러 있지 않다. 오히려 내 관심은 세계 초일류 기업을 소유한 한국과 미국의 두 거부의 사상과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의 경제관, 세계관, 인생관을 샅샅이 검토해 본 것도 아니다. 그저 피상적으로 들려오는 소문을 종합해서 비교해 보려는 것뿐이다.

'아이들의 인생과 잠재력은 출생과 무관해야 한다.' 이 말은 세계적인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설자인 빌 게이츠가 지난해 파리에서 발행된 무가지 <메트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에 덧붙여 자신의 자식에겐 자신의 전 재산의 4600분의 1만 남길 것이라고 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465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에서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가 세 자녀에게 1천만 달러만 물려주고 나머지 전 재산의 99%를 자선사업에 쓰겠다는 것이다.

왜 안 물려주겠다는 것인가? 그의 대답은 아주 간결하다. "아이들이 너무 많은 돈을 가진 채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며, 자신과 아내는 건강, 교육, 연구 등과 관련해 불평등이 가장 심한 분야에 나머지 재산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자신의 '재단'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보다 재산이 적은 부자들에게 아주 점잖게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이 땅의 졸부들이여! 이 말을 경청해서 마음에 새겨 받들기 바란다.

"재산을 모은 이들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이를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을 발견하길 바란다."

이 짧은 인터뷰만 가지고 빌 게이츠의 진정한 의도와 생각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하튼 내가 읽어낸 바로는 빌 게이츠는 건강, 교육, 연구 분야에 있어서 어떤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해소를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쓰겠다는 것이다. 불평등에 대한 인식에 내가 주목하는 이유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자.

왜 안 물려주겠다는 것인가? 아주 철저히 한국적 사고방식과 우리네 구태의연한 사회적 관습에 물든 내 짧은 소견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난 이런 얘기를 지금껏 살아오면서 몇 번 들었다. 그것도 아주 어렵게 자수성가한 사람이 모은 전 재산을 대학이나, 문화재단에 기증하는 것을 하나의 미담거리로 다룬 사회면 기사거리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나 한 나라를 좌지우지할만한 재벌들이 자신의 재산을 고스란히 사회에 환원한 자는 보지 못했다. 아니, 자신의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서 기를 쓰고 법망을 피해가면서 속 들여다보는 짓거리를 하다가 죽어간 몇몇 재벌들은 보았다.

재산 분배과정에서 배다른 자식들끼리 머리치고 박으며 살다가 죽어가는 꼴도 보았다. 싸우는 것이야 개인 일이니,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 하지만 그 재산 형성과정의 불법이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노동자 착취와 기업의 비윤리성, 경영 철학의 부재와 자본에 대해 가지는 철학적 바탕의 상실까지 거론해서 그 무엇하랴.

이건희 회장은 노블리스 오브리제를 알긴 아는가?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장제형씨가 지난번 <오마이뉴스>에 삼성 이건희 회장 일가의 단 1주일간의 독일여행-아테네 올림픽 직후-을 위해, "삼성 독일 현지법인이 2개월 전부터 직원 수십 명과 아르바이트들을 동원해 '철두철미'하게 준비하면서, 어떻게 '과잉충성'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글을 올렸던 적이 있었다.

그 글에서 그는 '회장 일가의 예상 방문지 및 동선, 독일 주요 기업에 대한 정보, 독일 명문가, 베를린 쇼핑 명소, 최고급 레스토랑, 박물관, 미술관, 극장 등등에서부터 개(犬)학교에 이르기까지 회장 일정과 관련될 만한 모든 정보를 모으고,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해서 그에 관련되는 정보들을 100% 확보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적인 요구'가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일류의 재벌 기업에서 일하는 일류 직원(?)들의 근무행태를 지적했다.

게다가 그 글에는 이 회장 일가를 위해 레스토랑 음식에 대한 사전 시식(試食)은 물론 잠자리, 그 손자 손녀들의 외출까지 사전 예행연습을 해가며 철저히 '음지'에서 일하는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유럽에서 일하는 삼성 사원들이 어떻게 '이건희 회장 자신도 그들의 존재와 오래된 준비를 몰랐을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했는지를 한 치의 보탬도 없이 전해주고 있다.

그는 그 글에서 "약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 삼성의 '알바'가 되어 삼성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세계 일류를 꾀하고자 하는 기업의 업무 시스템 및 삼성 직원들의 업무 능력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고, 동시에 '무노조 경영' 혹은 '황제식 경영'을 통해 형성된 노사 관계가 일반 직원들로 하여금 어떻게 행동하게 만드는가를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 다시 이건희 회장이 유럽을 방문하는 모양이다. 아마 국내의 슬로프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유럽의 스키장에서 희한한 일을 저지른다는 보도이다. 프랑스 언론에 이어 영국의 유력 일간지(<더 타임즈>)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스키장 전세 건을 주요 기사로 잇달아 보도하면서 이 사건이 글로벌 기업 삼성의 이미지에 상처를 주고 있다고 한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혼자서 스키 즐기려고' 유명한 투루아 발레 지역의 3개 활강코스를 전세 낼 돈을 지급했다는, 유럽인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어이없는 짓을 했다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미국인이나 우리처럼 돈 많은 자들을 '절대적 존재'로 선망하지 않는다. 한 인간을 그저 한 개별적 인격체로 대할 뿐이다. 이건희보다 더 부자였고 권력을 가진 봉건적 귀족들 밑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투쟁을 벌였던 것이 그들 조상의 역사였다.

그 도시의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사람으로부터 "이런 줏대 없는 행동은 우스꽝스럽고 적절하지도 않다"는 핀잔을 듣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단다.

이런 구설수에 대해서 익명을 요구한 파리 주재 삼성 직원은 "한국의 스키장은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이 회장이 스키를 타기 위해 슬로프를 전세 낼 생각까지 한 것에는 놀랐다"고 말했다 한다. 남들은 구경꾼으로 만들고, 스키 강사를 고용하면서까지 슬로프를 독점해서 초보 스키를 즐기려는 것이 '놀라운 사고의 발상'인가?

그러면서 그는 "이번 일로 한국인들이 프랑스 스키장에 몰려든다면 나쁠 게 무엇인가? 루이 뷔통 상점 앞에 길게 늘어선 한국인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다고 하니 정말 그 회장님의 그 직원이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가가 정당하게 돈벌어 쓰겠다는데 뭐 그리 잔말이 많으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런 그에게 도덕적 의무까지 들이댈 필요가 있느냐 하면 말을 삼가겠다. 덧붙여 삼성 덕택에 잘 먹고 살고 있지 않느냐고 대들면 '그냥 머저리처럼 웃겠다.'

그런데 그게 누구 덕에 돈벌고, 누구를 희생해서 돈을 벌었느냐, 과연 그 부의 축적으로 정당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느냐, 그도 역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한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적절한 윤리적-도덕적 태도는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문제는 좀 다르다. 사회공동체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될 기본적 소양의 문제라면 좀 핀잔 아닌 훈수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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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한번 다 같이 잘 살아보세'

박정희 군사정권 이래로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내세운 채, '조국의 근대화는 빈곤으로부터의 탈피에 있다'는 모토로 오직 한 길만을 고집해 왔던 경제 제일주의적 정책으로 인해서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과정 속에서 독재정권의 지원을 받은 몇몇 재벌이 흥망성쇠를 거듭해왔다.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이라는 한 국가 공동체 안에 심어 놓았던 군사 문화의 잔재, 지역 계층 간의 분화와 차별 의식, 나아가 지난 독재 시대의 해악들을 포함하는 온갖 부정적 요소들은 "오직 '나만' 잘 살아보자"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우리가 당면한 국가 내부의 분열과 갈등 역시 바로 그 신념이 불러들인 게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아직도 전 근대적 사고 유형인 '조국의 근대화와 빈곤의 타파'라는 이데올로기적 사고방식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 같다.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회 구성원간의 갈등과 부조화는 날로 심화되어 왔다. 오직 경제적 부에 대한 추구는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서 우리를 몰아 세웠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였다.

지나치게 경제적 '파이'의 양만을 생각하다 보니, 결코 도외시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삶의 질을 따져보고, 인간의 기본적 권리가 무엇인지, 나아가 우리가 처한 역사적 시점을 되돌아 볼 만큼의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냐'하는 반성적 물음을 물을 여유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능력에 따라 부(富)가 오고 가는 사회에서 부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제적 풍요함이 주는 화려함, 안락함 그리고 그 쾌락이 전적으로 거부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부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난도 결코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가난 그 자체가 자랑이 될 수 있는 시대 또한 아니다. 우리는 이 점을 인정한다.

먹고, 마시고, 입는 의식(衣食)은 물론이고 주(住)에 있어서의 호사(豪奢)스러움까지 엄격히 금지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노도와 같이 몰려오는 자본의 물결에 휩쓸리는 것 자체를 어떻게 혹독하게 비난할 수만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가진 자에 대하여 혹은 부(富)에 대하여 통렬한 비난을 퍼붓는 것은, 부 그 자체가 아니다. 부에 대한 사회적 부산물들이다. 이 부산물들의 부정적 잔재들은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학벌을 위한 교육 독점적 권리를 누리고, 이것이 굳어져 세습적 계급화 과정에까지 이르고, 나아가 원정 출산 따위의 저급한 행태를 통해서 잘 드러난다.

이것들로 인해 우리 사회의 도덕적 파탄을 가져오고,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양극화 현상을 더욱 첨예화해서 사회 구성원들 간의 부조화와 갈등구조를 심화시켜 왔다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오직 '돈'이다. 인간을 형성하고 평가하는 것도, 모든 사회적 지위의 가치, 정치적 권력의 가치의 기준도 바로 '돈'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 개인의 도덕성과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재산이 그 사람의 인간성을 잰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개혁을 통한 '가치의 전도'를 요구한다.

그리스의 정치개혁자였던 솔론의 말처럼 "부에는 끝이 없다. 과다는 오만(hybris)을 낳는다. … 불의(不義)한 이익에는 곧 화(禍)가 미치기 마련이다. 화재와 마찬가지로 처음은 대단하지 않지만 그 끝은 몹시 나쁘다." 이를 받아 테오그니스는 "오늘 가장 원하는 것을 소유한 사람들은 그 두 배를 소유하고자 한다. 부(돈)는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 하였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자가 여전히 더욱 갖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부(富)는 오직 그 자신만을 목적으로 삼을 뿐이다. 돈은 다른 모든 인간에게 마땅히 주어진 자연적 권리와 도덕적 가치를 망각하게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생계의 방편으로 생활의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만들어졌던 그것이 그 자신의 목적이 되어 버렸고, 그 어떤 것도 도대체 진정시킬 수 없는 세상 일반의 물릴 줄 모르게 지속되는 한정 없는 욕구로 변해 버렸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갈등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부조화를 치유하기 위하여 솔론은 국가의 한 가운데에 움직이지 않는 석주(石柱)처럼 우뚝 서서 대립하는 집단 간의 조화를 확립하고, 대립되는 힘들 간의 평형을 세우는 일에 진력하였다. "나는 각자에 대하여 불편부당(不偏不黨)하지 않은 정의를 규정하는, 즉 낮은 지위의 사람과 높은 지위의 사람 모두를 위하여 동일한 법률을 제정했다"고 솔론은 말하고 있다.

아직도 부(富)가 권력과 명예를 거머쥐는 시대는 되어서는 안 된다. 부가 명예와 권력을 동반하는 구조는 분리수술을 받아야 한다. 부를 가진 자가 가난한 자들의 방해가 되고, 부를 축적하는 데에 있어 진입장벽을 형성해서도 안 된다.

모든 사람이 부를 축적하기 위한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 땅의 모든 병폐는 부를 획득하기 위한 기회의 불평등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일소(一掃)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이 너무 많은 돈을 가진 채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좋지 않다'라는 빌 게이츠의 말과 '덕의 최고의 단계는 가난이다'라는 신비주의 철학자 에크하르트의 말이 함께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왜일까?

삼성은 일류 기업일 수 없고, 이건희는 최고의 기업가일 수 없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취업 준비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 1위가 삼성이며,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이 이건희 회장이란다. 이런 삼성의 이미지와 모순되는 또 다른 삼성의 이미지가 존재한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금을 적게 내고 재산을 대물림하면서 변칙 상속 증여의 의혹을 받아왔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노조는 절대로 안 된다"던 아버지의 뜻을 여전히 굳건히 지켜가는 '무노조 삼성'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조를 구성하려는 사람을 핍박하고, 보장되어야 할 사생활을 파헤치는 것은 일류기업에 어울리는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것이 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면 범죄이지,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고. 아무리 법을 거미줄처럼 총총하게 만들어도 권력과 부를 소유한 '강한 자들'은 그 법의 거미줄에 걸려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쳐 놓은 그 거미줄을 찢어 버리고 나아갈 터이니 말이다. 총총한 법망(法網)에 걸려드는 자들은 오히려 힘없는 자들뿐이다. 이게 바로 법치주의의 약점이다. 그래서 '법은 보다 강한 자의 이익'이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기업이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란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니, 난 삼성을 일류기업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부디 바라건대, 기업의 역사에 '사회 윤리적 의식을 내팽개치고 역사의식이란 전혀 갖지 못한, 한때는 잘나가던 그저 돈벌이 잘하는 기업이었고, 그 밑에서 일하는 사원들은 황제인 회장에 복종하는 노예들이었다'고 기록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이 자신의 말로 약속한 다음 사항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꼭 보여지기를 바란다.

"다음으로 삼성이 사회에 기여하는 폭을 넓히는 일입니다. 삼성은 우리 국민, 우리 문화 속에서 성장해 왔기 때문에 우리가 이룬 성과를 우리 사회에 환원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1988년, 삼성 창사 50주년 기념사 중에서)

"삼성이 초일류기업이 되는 날 모든 열매와 보람은 함께 땀흘린 임직원들과 협력업체가 골고루 나누어 가지게 될 것임을 다시 한번 약속합니다. 먼 훗날 삼성의 역사에서 여러분과 내가 함께 이 시대를 빛낸 주인공으로 기록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1993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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