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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연구단체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이 17일 주최한 특별강연회에서 남덕우 전 총리(왼쪽)와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가 한국경제의 진로에 대해서 강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성장정책을 쓰지 않으면 1만달러 소득 자체를 유지할 수 없게된다. 지금은 성장을 통해 실업자를 줄이는 것이 분배정책의 최우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만능은 아니다. 지나친 시장경제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려면 사회안전망 확충이 필요하다"


서강학파와 학현학파의 양대 수장인 남덕우 전 총리와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가 한국경제의 진로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펼쳤다.

서강학파는 선 성장 후분배, 재벌 육성을 중심으로 한 압축성장을 주창해온 학파로 60~80년대 경제부처 고위관료로 진출해 한국의 경제정책을 주도한 서강대 출신 학자·교수들로 이뤄진 그룹이다. 주요 인물로는 남 전 총리와 함께 이승윤 전 부총리, 김만제 전 부총리,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포진해 있다.

반면 학현학파는 균형성장론과 분배 우선 정책을 주창하는 학파로 ‘학현’은 변형윤 교수의 아호다. 서강학파와는 달리 현실 정치 참여에는 거리를 둬왔으나 IMF 관리체제 이후 이 학파 인맥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대거 진출해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중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등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변 교수의 제자인 김태동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전철환 전 한국은행 총재 등이, 참여정부에 들어와서는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김대환 노동부 장관 등이 대거 입각했다.

남 전 총리와 변 교수는 양대 학파를 대표하는 수장답게 지난 17일 국회 연구단체인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대표 정덕구 의원)이 주최한 특별강연회에서 한국경제의 문제점과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양보없는 설전을 펼쳤다.

먼저 강연에 나선 남 전 총리는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앞에 두고 정부의 경제 정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남 전 총리 “정부 규제혁파로 시장경제 자율기능 극대화해야”

그는 먼저 “현 정권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부 개입과 규제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며 “정부의 규제완화 구호에도 불구하고 규제 건수는 2000년 2806건에서 2003년 3375건으로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남 총리는 이어 “지금과 같은 정치·사회적 혼돈 속에서도 4~5%의 경제성장률이나마 유지하고 있는 것은 시장경제의 자율기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며 “정부가 이 시기에 해야할 일은 시장의 자율 기능에 제동을 걸지 말고 이를 가로 막는 정부의 규제를 혁파해 민간의 자율 능력을 극대화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서 남 전 총리는 “행정수도 2160만평을 토지개발공사가 토지채권을 발행해 전량 매입한 후 기업도시로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 토지를 매입하는 기업에게 토지이용에 관한 전권을 위임하고 세계 최고의 기업도시를 만들라고 하면 나서는 기업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규제를 앞세우고 기업의 혁신능력을 활용할 줄 모르는 것이 우리 경제 운용의 맹점”이라고 꼬집었다.

남 전 총리는 또 “정부에서 수많은 로드맵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정부가 모든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못한다”며 정부가 우선 추진해야할 핵심 과제로 ▲과학기술정책의 효율화 ▲부품소재산업 개발 ▲동북아 서비스 중심지 개발 ▲농업의 기업화와 과학화 등 4대 분야를 제시했다.

반면 변형윤 교수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회 양극화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정부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우고 ‘시장경제가 만능은 아니다’는 화두를 제시했다.

▲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은 남덕우 전 국무총리와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를 초청해 `한국경제의 진로`란 주제로 특강을 가졌다. 이현재 경제부총리, 남덕우 전 국무총리와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와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소속 정덕구 의원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종호
변 교수 “복지 신경쓰며 4~5% 성장, 그것만으로도 위안”

변 교수는 먼저 “현 정부가 분배를 중시하는 것 같지만 현재 우리의 지니계수(소득분배 불균형 수치,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정도가 높다)는 부끄러울 정도로 높다”며 “시장경제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필연적 산물인 소득분배 악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 교수는 또 “시장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때 가장 고통을 받는 계층은 가난한 사람들인데 이들 빈곤 계층을 배려하지 않고는 시장경제가 발전하기 어렵다”며 사회안전망 확충을 지속적 시장경제 발전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분배에 대한 사회 일각의 오해에 대해서도 변 교수는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분배론자들은 마치 성장을 하지 말자는 것처럼 오해를 받고 경제의 저성장을 성장을 안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답답한 심정”이라며 “사회안전망과 복지를 위해 돈을 쓰면서 4~5% 성장에 그친다 해도 그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 교수는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4개국의 예를 들며 “이들 4개국을 가보니 국가경쟁력도 높고 소득분배도 잘 돼 있었다”며 “복지와 분배를 무시하고 7%의 고성장을 고집하는 것 보다 복지와 분배를 추구하면서 4~5% 성장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미국식만 따라가지 말고 북유럽 4개국을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 형성

이날 특별강연회에서는 한국경제의 진로에 대해 이견이 많았지만 사회안전망 확충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모습도 보였다.

남덕우 전 총리는 “이 나라에서 아직도 결식아동이 10만 단위로 있다는 보도를 접할 때 마다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불황기에 정부가 할 일은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하는 것으로 재활부조, 노인 보호 등 사회복지 서비스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축사를 통해 “외국에서는 정리해고를 해도 격렬한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데 우리는 회사가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경우 노사간 이견으로 곤경에 빠지게 된다”며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회안전망이 필수 요소”라고 강조했다.

정덕구 의원은 특별강연 행사를 마무리 하면서 “남 전 총리는 우리 경제의 주요 문제와 해법으로서 성장정책의 중요성을 제시했고 변 교수는 성장의 이면에 놓여있는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적 배려를 강조했다”며 “두 분의 말씀을 종합하면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할 길은 건강한 시장경제와 따뜻한 사회안전망 확충이라고 본다”고 토론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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