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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좋은 기분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뜨끈한 온돌방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려 책을 읽으면 긴긴 겨울방학도 금세 지나간다. 고구마를 쪄 놓거나 귤껍질을 까면서 흥미진진한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밤이 깊은 줄도 모를 때가 많다.

▲ <안데르센 동화집>의 표지. 요즘 책들은 옛날보다 표지가 화려하다.
ⓒ 지경사
내 기억 최초의 책

내 기억에 책에 대한 경험은 가장 최초 경험은 바로 <안데르센 동화집>이라는 열 권짜리 전집이다.

여자아이가 좋아할 만한 예쁜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신비한 이야기를 늘어놓던 노란색의 안데르센 동화집. 신데렐라 이야기며 인어 공주 이야기를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상상력을 키워나갔는지….

예닐곱 살에 읽었던 이 동화들에 대한 추억은 마치 한 폭의 그림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특히 철모르는 어린 시절, 그 당시에는 이 이야기들이 정말 사실처럼 느껴져서 꿈에 나타날 정도였다. 그만큼 내게 동화란 꿈을 꾸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게 한 좋은 소재였던 것 같다.

과학자 꿈을 꾸게 한 전집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즐겁게 자주 읽었던 책들은 이런 동화류와 달리 노란색 표지로 된 <어린이 동아대백과전집>이나 계몽사에서 나왔던, 화보가 멋진 <과학백과 시리즈>였다.

이 두 종류의 전집은 화려한 사진들과 그림들로 마치 잔치를 벌인 듯했고, 담겨 있는 이야기들 또한 세상의 온갖 다양한 것들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제공해 주는 내용들이었다.

한창 세상의 이런 저런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솟아날 나이에 접해서인지 이 두 전집은 초등학교 시절 내내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친구와 같았다. 심심할 때면 공룡이야기가 나온 한 권의 책이나 우주 이야기가 담긴 책을 펼쳐 보면서 진지하게 과학적인 풀이들을 읽곤 했었다.

무당벌레나 나뭇잎 종류가 담겨 있는 화보들은 주위에 있는 작은 생물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했고, 세계적인 불가사의를 담은 <7대 불가사의> 책은 언젠가 이곳들을 꼭 방문해야겠다는 다짐을 갖게 했다. 다 자란 후 이 책에 담긴 '스톤헨지'를 가서 보고는 그 동안 꿈꾸어 왔던 것과는 다른 그 작은 규모에 얼마나 실망했는지….

책이란 간접적인 체험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아이들의 훌륭한 교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내 초등학교 시절은 이렇게 과학적인 책들과 함께 지나갔다. 유년기에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 궁전의 공주로 살고 있었던 나는 어느새 흰 실험복을 입은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가 되고 싶은 꿈을 꾸게 되었다.

동화와 과학책 이외의 또 다른 종류의 책들이라면 학교에서 숙제로 내주었던 온갖 반공 도서들과 100권이나 되는 청소년용 도서 전집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다른 책들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 두 종류의 백과 전집에 대한 나의 애착과 비교할 만한 책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만 하더라도 책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특히 화보가 들어간 비싼 전집류를 사보는 집은 얼마 되지 않아 친구들끼리 서로 책을 돌려보기도 했다. 요즘처럼 책이 흔한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명랑 만화, 보물섬, 그리고 둘리

이른바 '명랑 만화'라고 불렸던 만화책 또한 내 초등학교 시절 독서 일기의 한 페이지를 차지한다. 심각할 정도로 나의 구미를 당겼던 만화책은 바로 <점프>와 <보물섬>이다. 주·월간지로 나왔던 이 만화책 중에 <보물섬>은 사라졌고 <점프>는 지금도 존재하는 듯하다.

▲ <아기 공룡 둘리> 단행본. 이제는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만화영화까지 제작되었다.
ⓒ KBS미디어
특히 허영만의 만화와 '둘리'가 있는 <보물섬>을 보기 위해 아빠에게 온갖 점수를 따려고 노력했던 일들은 이제 먼 추억이 되어 버렸다. <보물섬>은 다양한 종류의 만화가 많이 들어 있는데다가 초등학생 전과만큼 엄청 두꺼운 만화 월간지이다.

가격도 비싼 편이었지만 그래도 두고두고 읽으면서 즐기는 그 맛이란 다른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다. 어쩌다 시험이나 잘 치르면 볼 수 있었던 그 만화책들이 얼마나 맛있게 느껴지던지 마치 아이스크림을 먹은 느낌이라고 할까.

요즘 아이들에게 있어 책이란?

요즘 아이들에게 있어 책이란 어떤 것일까? 엄마들의 엄청난 교육열 덕분에 '책이 귀해서 다른 집에 빌리러 가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아이들은 지나치게 많은 책과 독서 숙제로 괴로워하기까지 한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쉽게 대중 매체와 인터넷 공간을 접할 수 있고, 그래서 책보다는 이와 같은 손쉬운 정보 전달 도구에 익숙해져 있다. 아이들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와 지식, 그리고 재미를 얻는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다 자란 후에 과거를 되짚어 본다면 어떨까? 과연 그들이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쉽게 얻었던 지식과 정보, 간접 경험, 그리고 재미들이 제대로 기억이나 날까 싶다. 쉽게 얻을 수 있었던 대중 매체를 통한 정보와 경험들은 그만큼 잊혀지기도 쉬운 법이다.

나에게 있어 몇 권의 책들이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 남는 이유는 아마도 책이 귀하던 시절에 그 책들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네 귀퉁이가 다 닳도록 읽고 또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세상에 대한 이해를 얻었기에 살아가는 데 아무런 불편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요즘 아이들에게도 책을 통해 얻는 상상력과 지식은 중요할 것이다. 보다 끈기 있는 태도로 책 읽는 습관을 들인다면, 말초적인 흥미 거리보다 깊은 내용이 담긴 책을 더욱 가까이 하지 않을까 싶다.

어린 시절에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꿈과 상상력, 그리고 다양한 지식들은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책들은 어린 시절에 대한 나의 기억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데 큰 몫을 했다. 그 소중한 경험이 어른이 된 나에게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추억이 되듯이, 이 시대의 많은 부모들 또한 아이들에게 그런 값진 경험을 만들어 주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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