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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국어로 되살리는 고구려의 맥박>마산문화문고
ⓒ 경남문협
땅 문서 빼앗기고
호적마저 잃고 나면
우리란 존재
영원히 없다
아! 고구려여
삼국의 할아버지여

- 25쪽, 김영곤 '無'(무) 모두


중국이 도깨비 방망이 같은 '동북공정'이란 낱말을 앞세워 우리의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통째로 왜곡하고 있다. 게다가 요즈음에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고구려, 발해 유적에 대한 보수와 발굴 작업을 벌이면서 중국 방식대로 적당히 짜깁기를 해놓아 고구려와 발해 유적이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고주몽과 소수림왕 얘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호동왕자, 평강공주, 을파소의 얘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기개를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리하여 그 역사가 우리의 인격이 되고 정신이 되는 것을 체험하며 자랐습니다." - 권두언 '패기와 정열의 나라 고구려' 몇 토막

중국이 '동북공정'을 내세워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라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가운데 경남지역 문인 61명이 무크지 <모국어로 되살리는 고구려의 맥박>(경남문인협회)이라는 책을 펴냈다.

오하룡, 임신행, 이영자, 이달균, 김명희를 포함 경남지역 시인 56명의 고구려에 대한 시와, 수필가 강평원 등 5명의 고구려에 대한 산문이 실려 있는 이 책은 중국의 고구려사와 발해사 왜곡에 따른 지역문인들의 발빠른 대응이라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하다.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파고 들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을.

시인 이우걸(경남문협 회장)은 권두언에서 "느닷없이 진행된다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그들 나름의 편파적인 역사 확대 시도려니 하는 마음으로 미심쩍지만 속내 드러내지 않고 지켜보았다"며 "그들의 음모는 단순한 음모가 아닐 뿐 아니라 타민족 역사 파괴는 물론 앞으로의 팽창의욕을 실현하기 위한 이론적 배경을 날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우걸은 중국의 이러한 음모는 결코 좌시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못박고, "이 소박한 언어들이 고구려를 우리 민족 모두의 가슴에 다시 일으키고 나아가 세계인의 공명을 얻어 불순한 야욕이 만들어내는 공작을 타파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나비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고구려 땅을 다 밟아보고 돌아오겠다고 날개 반쪽을 찢어 보냈다 성큼성큼 밟고 싶은 땅이었는데 뛰어다니고 싶은 땅이었는데 만주벌판의 나비는 시간의 국경을 넘어갔다 시간의 국경을 지워버렸다 캄캄한 밤 펄펄 날아 눈발처럼 땅에 발을 딛고 문득 잃어버린 땅이 생각나 검은 날개 펼치고 날아가 버렸다

나비의 연약한 날개 위에 얹혀 돌아올 고구려를 나는 기다린다.

- 36쪽, 박서영 '고구려까지 날아간 나비' 모두


시인 박서영은 잃어버린 땅 고구려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을 나비로 치환한다. 날개 반쪽 찢긴 나비, 즉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상징하는 그 날개 반쪽 찢긴 나비는 이데올로기로 갈라진 휴전선을 사뿐히 넘는다. 그리하여 시간의 국경을 성큼성큼, 혹은 뛰어다니다가 마침내 그 시간의 국경마저 깡그리 지워버린다.

옛 고구려 땅을 살피기 위해 날아간 날개 반쪽 찢긴 나비가 시간의 국경을 깡그리 지워버린 그 자리에는 대체 무엇이 있었을까. 고구려가 남긴 문화유산들이 당당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을까. 아니면 어서 잃어버린 땅을 다시 되찾으라는 광개토대왕의 우렁찬 목소리가 채찍질처럼 들려오고 있었을까.

아니다. 그곳에는 지금 "덩치 큰 땅의 탐욕/ 마침내 동북공정으로 배 채우려" 하는 중국의 검은 그림자가 수없이 일렁거리고 있다. "하늘도 모자라는 들녘/ 눈발 깊은 밤 승냥이떼"(신계식, 숨쉬는 돌)가 옛 고구려의 흔적조차 몽땅 훑어먹기 위해 밤을 새워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다.

고구려 지도 보다가
천년 후손
내가 가슴을 친다

남과 북
조각난 지도를 보다가
천년 후손
가슴 치는 모습 보인다

- 43쪽, 오하룡 '고구려 지도' 모두


시인 오하룡은 옛 고구려 땅을 더듬다가 가슴을 탕탕 친다. 그때 우리 조상들이 무엇 때문에 그리도 갈라져 살았던가에 대해. 그리고 그때 우리 민족이 하나로 뭉쳤더라면 지금 우리 민족의 사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며, "천년 후손"인 시인이 뒤늦게 가슴을 치며 후회할 일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지금도 우리 민족은 그 놈(?)의 망할 이데올로기 때문에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남북통일을 위한 화합의 손짓이 오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통일의 그날은 언제가 될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대로 남북통일이 더 늦춰진다면 천년이 지난 뒤 시인의 후손들 또한 지금의 시인처럼 가슴을 탕탕 치고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일까. 시인 이달균은 옛 고구려 땅을 되찾기 위해 북행열차를 탄다. "사리원 강계 지나며 빗금의 눈"을 맞고 "퇴화된 야성을 찾아 내 오늘 북간도로 간다." 지금은 비록 "북풍에 뼈를 말리던 북해의 사람들/ 결빙의 청진 해안을 박제되어 서성이고/ 고래도 상처의 포경선도 전설이 되어 떠돌 뿐"일지라도.

그렇게 북행열차를 타고 훠이훠이 달려가다가 마지막으로 닿아야 할 곳은 다름 아닌 "무용총 쌍영총 속의 그 초원과 준마들/ 갈기 세워 달려가던 고구려"와 발해 땅이다. 시인은 그곳에서 "수렵의 광기와 야성의 백호"를 찾기 위해 "꽝꽝 언 두만강 너머"(이달균, 북행열차를 타고) 북간도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저 날렵한 몸놀림
겨눈 화살에
호랑이도 벌벌 떨며 달아나누나
한 눈 싸매고
당태종도 혼비백산 물러갔지

춤을 춘다
땡땡이무늬 옷의 무용수들
천 오백 년 세월을 뛰쳐나와
덩실덩실 신이 나서 춤을 춘다

그 속에
오랜 잠에서 깨어난
태양의 새 삼족오
푸드덕 날개짓하며
힘차게 비상할 날을 기다리는데

누가
신명난 춤판을 깨는가
시끄러운 호적 소리
다시 한번 화살로
저 음흉한 헛소리를 잠재울 수는 없을까

- 62쪽, 이한영 '무용총 수렵도' 모두


시인 이한영은 "한 눈 싸매고/ 당태종도 혼비백산" 했던 옛 고구려의 힘찬 기상이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다시 맥박 치기를 기원한다. 무용총 수렵도에 그려진 "땡땡이무늬 옷의 무용수들"이 뛰쳐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고, 그림이 된 "태양의 새 삼족오"가 살아나 저 드넓은 고구려의 푸르른 하늘을 날아오를 그날을 애타게 기다린다.

시인은 삼족오가 고구려의 하늘을 힘차게 날아다니며 중국의 동북공정이란 헛소리를 단번에 쪼아 삼켜버리기를 바란다. 비록 정사(正史)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안시성 전투에서 양만춘 장군이 화살을 쏘아 당태종의 눈을 맞추어 고구려에 대한 침략의 야욕을 순식간에 잠재웠듯이 그렇게.

경남지역 문인들이 펴낸 무크집 <모국어로 되살리는 고구려의 맥박>은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한 역사왜곡에 철저하게 반대하면서 오히려 잃어버린 고구려 땅을 되찾게 될 그 날을 꿈꾼다. 그리고 준엄하게 경고한다. 다시는 민족의 분열 때문에 남에게 우리 땅과 우리 역사를 빼앗기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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