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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경 열린우리당 의원은 25일 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 신상발언을 통해 부친의 일제헌병 복무와 관련, "친일진상규명은 법과 절차에 따라 아주 신중하고 차분하게 진행되는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부친이 일본군 헌병으로 복무했다고 고백한 이미경 열린우리당 의원은 25일 "개인사의 족보 캐기식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친일 진상규명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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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원은 이날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해 이같이 말하고 "친일 진상규명은 법과 절차에 따라서 신중하고 차분하게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회의 말미에 신상발언을 신청, "일본에서 야간 대학을 다닌 아버지가 졸업 즈음에 성적이 우수해 헌병으로 차출되어서 복무했다고 들었다"며 "이 문제로 해서 국민들과 당원들에게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어 "(부친의 문제는) 제 개인 가족사의 비극이기고 하고, 식민지 시대를 걸어왔던 민족의 비극이기도 하다"며 "그러나 친일 진상규명은 흔들림없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 의원은 "언론에서 '누가 또 고백을 할 것이냐'는 데 관심을 보이는 보도를 봤는데 이런 방식은 옳지 않다"며 "특정인 누가 피해를 보고 누가 반사이익을 보고, 이런 식의 접근을 가지고는 정말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다음은 이미경 의원의 발언 전문이다.

"저는 오늘 신상 발언을 하겠다. 어제 보도를 보셔서 다들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제 부친의 헌병 복무와 관련 간단하게 말씀드리겠다. 이미 나와있는 데로 돌아가신 저희 부친이 아주 어렸을 때인 5∼6세 경에 할아버지가 살기가 힘드니까 전 식구를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살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중학교를 일본에서 다녔고 야간 대학도 다녔는데, 낮에는 하역작업으로 돈을 벌고 저녁에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졸업 즈음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뽑아서 헌병으로 차출해 가서 해방 전에 일본에서 헌병으로 복무했다고 들었다. 어머니께 확인해서 들었고 친지들에게도 들었는데, 어머니는 결혼 전 일이고 친지들도 저희 식구가 일본에서 살았기 때문에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헌병을 했다더라' 정도의 말을 확인했다.

저는 이 문제로 해서 국민들과 당원들에게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이것은 제 개인 가족사의 비극이기고 하고, 식민지 시대를 걸어왔던 민족의 비극이기도 하다.

그러나 친일 진상규명은 흔들림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족 정기를 바로 새우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그런데 친일 진상규명을 하는 과정에서 제가 제 개인과 관련 이런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들었다.

법과 절차에 따라서 진실규명이 신중하고 차분하게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인사의 족보 캐기식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친일 진상규명의 본질도 훼손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언론에서 '(고백) 후속 주자가 누구냐, 누가 또 고백을 할 것이냐'는 데 관심을 보이는 보도를 봤다. 그러나 저는 이런 방식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정인 누가 피해를 보고 누가 반사이익을 보고, 이런 식의 접근을 가지고는 정말 곤란하지 않겠나.

우리가 이런 민족사의 비극을 씻고 미래로 나가기 위한 친일 진상규명을 하기 위해서는 친일 진상규명을 하고자 했던 원래 취지가 무엇인가 정확하게 다시 한번 생각하고, 절차에 따라서 법을 만들고 그에 따라서 매우 신중하고 절도 있게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 이미경 의원과 임채정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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