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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작심하고 이 책의 홍보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답니다. 제가 올해 상반기에 읽은 책들 중에서 단연 최고의 도전이자 감동이었으까요. 누구와 만나든 대화의 모든 결론이 책으로 귀결되더군요. '그러니까 넌 이 책을 보는 게 좋겠다' 하는 식이지요.

일단 책의 첫 장을 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성찰의 소용돌이(가 불러일으키는 삶의 심대한 변화)가 독자의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제가 확인해본 바로는 100%였습니다.

"우리는 파리가 아까 먹은 똥이나 썩은 살이 섞여 있을 소화액을 토해내 먹이를 연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구역질을 했다. 그러면서 파리에 대한 혐오감을 정당화하고 파리에게 투사한 이미지가 정확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제 소개로 책을 접한 22살 대학생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청량음료를 마시고 1.5리터짜리 병마개를 열어뒀는데 어느새 파리가 들어가 빠져 있더래요. 재빨리 병마개를 닫고 온힘으로 병을 흔들어 파리를 익사시켰답니다. 상상이 되시지요?

책을 읽은 뒤 말하더군요. 자신이 죽인 파리에게 마음 속으로 원혼제 비슷한 기도를 올렸다고요. 이제는 집안에 들어온 파리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그 더러운 파리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신청하게 되었을까요?

"과연 어떤 종교가 모기를 사랑하라고 가르치겠는가? 딱정벌레를 사랑하는 신은 상상할 수 있겠지만, 도대체 자기보다 작은 존재의 습격을 당해 병이 들고 입이 막혀버리는 숙명을 지닌 모기를 사랑하는 신이 있을 것이라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역시 제 소개로 책을 읽은 18살 아이는 아주 신비한 체험을 했더군요. 윙윙대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까 모기더랍니다. 평소 같으면 읽던 책으로 내려쳐 죽였겠지만, 한참을 생각한 끝에 가만히 한쪽 팔뚝을 내밀었답니다. 모기는 천천히 내려와 앉아서 콕 찌르더랍니다. 자신의 피가 모기의 몸통 아래에 발갛게 고이자 모기는 곧 날아갔답니다.

희한한 것은 전혀 가렵지 않더라는 것이었지요. 속으로 '내가 너와 너의 새끼를 살릴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더군요. 기가 막히지 않으세요. 흡혈 곤충에게 선선히 피를 주다니요?

"집에 더부살이를 하는 바퀴벌레의 존재는 그 자체로 우리 살림살이가 형편없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고, 바퀴벌레의 수는 그 자체로 우리의 눈과 상상력에 대한 폭력이며 … 따라서 이러한 죄를 물어 바퀴벌레를 조롱하고 죽이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된다."

저의 집요한 권유로 책을 산 20살의 대한학교 졸업반 학생은 최근에 책상 위로 기어올라온 바퀴벌레를 컴퓨터 마우스로 찍어 죽인 적이 있다고 했지요. 지금은 망설이고 있는 중이랍니다.

바퀴벌레가 의외로 깨끗하다는 것, 곤충 세계에선 유일하게 친밀감을 표시할 줄 아는 벌레라는 것, 명을 다할 때는 먹기를 중단하고 서서히 죽음과 친화하는 곤충이라는 것에 놀라게 되었지만 집에 득시글대는 바퀴벌레 가족에게 빵 부스러기라도 뿌려 주어서 함께 살 수 있는지, 자기의 기분을 아직은 모르겠다고, 고민된다고 하더군요.

책은 이들 파리와 모기와 바퀴벌레 외에도 개미, 벌, 사마귀, 풍뎅이, 나비, 거미, 딱정벌레, 벼룩, 이 등 다양한 벌레를 주인공으로 삼지만 그렇다고 생물학 책은 아니랍니다. 대신 이들 '하찮게 인식되는' 벌레와 '자칭 위대한' 인간 사이에서 까맣게 잊혀지고만 놀라운 신화와 꿈과 농사와 미래와 우주에 관한 체험의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지요.

그것은 벌레와 인간의 관계 친화적인 회복이면서, 우월주의에 빠져있는 인간됨의 철학을 수정하는 반성이고, 생명의 신비로운 순환 고리에 있을 제 본래의 자리를 되찾아 가는 자아 여행입니다.

저는 특히 이 책에 인용되는 무수히 많은 또 다른 책들의 제목만 보고서도, 제 발 밑을 기어가는 잘 보이지도 않는 어떤 벌레와 제 손가락 끝의 가벼운 압력으로도 사라질 수 있는 어떤 벌레를 통해서, 자신의 부스러진 영혼과 산산이 조각나고 있는 세계를 온전하게 복원하고 연결하려는 노력들이 얼마나 많이 시도되고 있는지를 느꼈습니다. 전율 비슷한 감정이 차 올라서 저를 스치고 지나갔던 숱한 벌레들을 기억해보려고 무지 애를 쓰게 되더군요.

로렌스 반 데어 포스트의 <사마귀 캐럴>, 리차드 모슨의 <검은 나비 : 근본적 삶으로의 초대>, 폴 힐야드의 <거미에 대하여 : 거미 공포증에서 거미에 대한 사랑으로>, 게일 쿠퍼의 <동물 사람들>, 스테파니 랄랜드의 <평화로운 왕국>, 앨런 분의 <모든 생명과의 유대감>, 데릭 옌센의 <말보다 오래된 언어>, 제임스 스완의 <자연의 치유와 가르침>, 웨렌 그로스만의 <땅의 치유를 받기 위해>, 필 코시노의 <영혼의 순간>, 로렌스 밀만의 <유령으로 가득한 배> 등등, 어휴, 끝이 없네요.

이 책들은 인간에게 친숙한 애완 동물이나 가축들부터 야생의 '기괴하게' 생긴 모든 동물과 생물들, 온갖 잡초와 숱한 곤충들, 나아가 기생충과 박테리아까지, 인간이 이 모든 인간 이외의 생명체들과 대화하고 협력하며 순환하면서 서로의 생명을 온전하게 보듬어주는 거대하고도 촘촘한 우주 생태의 신비가 무엇인가를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정화되기 위해서라도 당신은 당신이 무심코 죽이고 미워하는 그 어떤 곤충과의 마주침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작은 목소리로 깨우쳐주고 주고 있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인간이 곤충을 어떻게 자의적으로 익충과 해충으로 구분했는지, 그리고 해충을 박멸하기 위한 전쟁에 어떤 가공할 방식을 쓰고 있는지, 그로써 인간 자신과 지구의 생명체 전체를 어떻게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는지, 이런 사실을 조금이라고 자각하거나 감지하고 있는 이들의 작은 실천이 얼마나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구구절절 선행자들의 체험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옵니다. 물론 파리나 모기 그리고 바퀴벌레를 싫어하는 당신이 그 증오심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야 하겠지만요.

"우리 안에는 다른 종이 자신을 알아보고, 인정하고, 심지어 사랑하기를 바라는 커다란 욕망이 있다. 이는 내면의 야생 자아, 다시 말해 우리에게 버림받은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자연적 자아의 욕구와 열망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모든 곤충과 유대 관계에 있다는 것, 더 정확히는 인간 내면에 그 모든 곤충이 살아 있다는 것, 인간이 자신과 공동체의 경계를 넓혀서 인간 바깥에 있는 뭇 생명들을 존중하고 그들과 함께 살려고 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 못할 때 곤충은 '신의 전조'를 갖는 괴물이 되어 인간의 생활과 꿈과 심리 속으로 찾아온다는 것, 그조차 엄청난 치유와 은혜를 지닌 의도와 목적이 있는 방문이라는 것, 존경과 직관의 태도로 곤충을 초대하라는 것, 거기에 당신이 잃어버린 참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 안의 바퀴벌레스러움, 내 안의 모기스러움, 내 안의 파리스러움… 아직도 끔찍하십니까? 징그러우실 겁니다. 저도 여전히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겨우 집 안에 들어온 파리 한 마리와 며칠 째 공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거든요.

'날 귀찮게만 하지 말아줘' 정도가 제 대사랍니다. 하지만 그 말 한 마디만으로도 저는 제가 벗어나야 할 두려움의 감옥이 얼마나 더 끔찍했던 것인지를, 우리 인간이 지어서 만들어낸 그 두려움 때문에 치르게 되는 대가가 얼마나 더 끔찍할 수 있는가를 '갑자기' 깨달은 기분입니다.

당신의 격해진 목소리가 들려오네요. 살인벌이 있다고요? 뇌염 모기가 당신을 공격한다고요? 독거미가 있다고요? 파리가 전염병을 옮긴다고요? 바퀴벌레는 더럽고 음습한 곳에서만 산다고요? 내 아이는 개미 알레르기가 있다고요?

그것은 최소한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거나 당신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환영이자 선입견일 것입니다. 또는 인간의 과학 문명이 심각하게 뒤틀어놓은 우주 생태의 변형에서 비롯되는 곤충 전령의 메시지일 것입니다. '넌 너를 죽이고 있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 넌 너를 살려야 한다…' 참, 이 책의 원제는 <작은 것들 속에 깃든 신의 목소리>이랍니다. 신의 목소리를 들어보시겠습니까?

이 책은 당신이 알고 있거나 익숙한 것들이 당신이 알지 못하고 있었거나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들과 만나서 창조적인 만남이 일어나는 뜻밖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당신이 믿었던 안정감과 청결함의 이면에 버티고 있는 뿌리깊은 두려움을 조금씩 상실하는 대신에 당신이 믿을 수 없었던 경계 너머의 놀라운 세계를 접하게 되는 새로운 시간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모르는 당신을 만나보고 싶다면 말이지요.

아무래도 민들레 출판사한테 비용을 받아야 한다는 소신(?)이 들만큼 제가 너무 열심히 이 책을 홍보하고 있군요. 하나 실은, 그렇게 이 책을 알리고 나누지 않고는 배겨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정정해야 맞습니다. 파리와 모기와 바퀴벌레가 저를 사랑한다는 신의 목소리를 저는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이제는 제가 파리와 모기와 바퀴벌레를, 제 안에 있다가 현현한 그들을 사랑할 차례입니다. 안 읽었다면 모를까, 펼쳐든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세계로 저는 와 버렸답니다. 한 마디로 '무서운' 책이지요.

"곤충은 늘 서로 죽이고 잡아먹기 때문에 죽음 자체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움 받는 것은 싫어한다. 미움이야말로 곤충뿐만 아니라 인간을 파괴하는 힘이다."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 작은 것들 속에 깃든 신의 목소리

조안 엘리자베스 록 지음, 조응주 옮김, 민들레(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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