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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오전 종로구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린 '96주기 3·8 세계 여성의날 기념 제16회 올해의 여성운동상 발표 기자회견'에서 수상자인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 남성이 여성계로부터 받기 어려운 상을 수상했다. 최재천 교수(50·서울대 생명과학부)가 그 주인공이다.

최 교수는 3·8 세계 여성의 날 96돌을 맞아 여성권익을 위한 활동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하게 됐다. 올해의 여성운동상은 여성의 권익을 위해 공헌했거나 전체 여성운동 발전에 기여한 개인(단체)에게 주어지는 상.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이 전국의 회원단체와 시민단체로부터 추천을 받은 후, 심사위원회(총 12인)의 심사를 거쳐 전년도 여성권익을 위한 활동을 기준으로 수상자를 선정·시상하고 있다. 올해가 16회째 시상.

남성이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은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 지난 87년부터 시작된 시상에서 최 교수는 남성으로서는 세 번째로 수상자다.

여연 "호주제 폐지에 대한 생물학적 근거를 밝힌 성평등주의 실천가"

최 교수는 지난해 12월 호주제의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한 헌법재판소의 요청으로 '호주제의 근간이 되는 부계혈통주의에 대한 과학자의 의견'을 제출했다. 호주제의 생물학적 모순을 담은 A4 7쪽 분량의 내용이었다.

이 의견서에서 최 교수는 세포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온전히 암컷으로부터 온다는 생물학적 사실을 토대로 "생물의 계통을 밝히는 연구에서는 철저하게 암컷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간다"며 호주제 폐지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정치·사회적 근거는 배제한 채 순수한 과학적 사실에만 입각해 호주제의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호주제의 근간으로 치부되는 부계혈통주의는 생물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주장인 셈이다. 호주제의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한 헌법재판소의 심리에서 최 교수의 의견서가 주요한 법적·생물학적 근거가 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최 교수의 이같은 '입바른 주장'에 대해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일반론을 사회생물학 입장에서 재해석해 호주제 폐지의 정당성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미 양성평등적 시각이 기반이 된 저작 활동이나 강연 등으로 잘 알려진 그를 "일상에서 성 평등주의를 실천하는 실천가이자 여성주의자"라고 표현하며 선정의 배경을 밝혔다.

최 교수는 26일 오전 10시 종로구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린 '96주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주간을 맞이하는 기자회견'에서 가진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 인터뷰에서 거듭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상"이라는 말로 겸손해 했다.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깨달은 바를 실천했을 뿐" 특별한 운동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최 교수는 자신을 늘 "나는 사회생물학자다, 그리고 사회생물학을 통해 깨달은 바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상의 심사를 맡았던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는 "나도 평소 최 교수의 글을 보며 흠모했던 팬이기도 하다"며 "(최 교수의 의견서는)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는 여성과 모든 인간을 위한 용감하고 귀한 일이었다"고 평했다.

올해로 만 50살이 된 최 교수는 지방의 한 대학 음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아내의 남편이자 중학교 3학년생인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내를 '나를 깨우친 여성학자'라고 표현했다.

다음은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자인 최재천 교수와 가진 인터뷰 전문.

▲ 최재천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수상 소감을 말해 달라.
"너무 뜻밖이라 2∼3일 정도 고민을 많이 했다. (주최 측에서) 극비로 해달라는 부탁을 해 아내에게도 아직 말을 하지 못했다.

여성운동상이라니, 내가 받을 상이 아니다. 내가 기껏 한 것은 여성 문제에 대해 몇 번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 전부다. 운동한 것이 별로 없다.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상이다.

내가 상을 받지 말아야 하는 결정적 이유는 또 다른 데 있다. 결국 내가 하는 일들이 남자 좋자고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성 시대가 되면 편해지고 득 보는 사람은 남자들이다. 나는 그 얘기를 열심히 했을 뿐인데 여성단체에서 상을 주다니 본심을 들킨 것 같은 생각이 든다(웃음).

그런데도 받게 된 이유는 내가 상복이 많아서인가 보다(웃음). 상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평생을 그 일에 헌신한 사람에게 주는 상과 기왕에 시작했으니 앞으로도 계속 잘 하라는 뜻으로 주는 상이다. 나는 후자 성질의 상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지금까지 해온 목청 돋우는 일은 멈추지 않겠다.

결국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게 우리가 해야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별로 한 일도 없고 부족한데… 앞으로도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일단 감사히 받겠다. 그러나 마음은 무겁다."

-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성 평등주의자', '여성주의자'라는 표현으로 최 교수를 소개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평소 본인을 그렇게 소개하나?
"(웃음) 절대 그렇게 소개 못한다. 그렇게 소개했다가는 집에서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게 그대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웃음).

나는 뒤늦게 깨달은 사람이다. 내가 학문을 잘 선택한 것 같다. 생물학이란 학문을 하다 보면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자연은 암컷 위주로 돼 있다는 사실이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번식을 하면 생물, 번식 못하면 무생물로 구분하는데 생물 번식의 주체는 암컷이기 때문이다. 수컷은 암컷에게 간택 받지 못하면 자신의 후세를 남기지 못한다.

나도 부부생활 초기에 깨닫지 못해 불편했다. 하지만 자연과 인간 사회도 결국 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니 마음이 그렇게 평안해 질 수 없었다.

결혼 초기부터 설거지를 내가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설거지를 하면서 아내에게 '유세'를 했다. 내가 이 일(설거지)을 도와주니 당신도 나를 도와달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깨닫고 보니 설거지는 내 일이더라. 아내의 일을 내가 도와준 게 아니더라. 그러고 나니 그 설거지가 즐거워지고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됐다.

내 학문을 하면서 이런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됐다는 데 감사하다. 하지만 나도 남자다 보니 아무리 여성의 눈으로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하는 게 있다. 그 점을 매일 깨닫는다. 한다고 했는데 다른 평가를 보면 내가 남자의 눈으로 또 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나를 '사회생물학자'로 소개한다. 사회생물학으로 깨달은 바를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 헌법재판소에 의견서를 낸 뒤 심각한 사이버 테러에 시달렸다고 들었는데.
"지난 2000년 1월에 'EBS 특강 세상보기'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강연을 했을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사이버 테러는 주로 젊은 남성들이 하는데 상당히 원색적이다.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거나 전화로 소리지르고 욕하고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물론 어르신들도 항의를 하신다. 이번에는 주요 일간지에 보도된 이후 신문 기사를 잘라서 기사 내용이나 사진을 빨갛게 칠해서 우편으로 보내기도 했다.

항의를 보면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들하고 다른 점이 있다. 예우를 갖춰서 보낸다 '최재천 교수님 전상서'라고 제목을 붙여 (항의문을) 보낸다.

내용을 보니 두 마디를 많이 쓰더라. '진리'와 '자연의 섭리'라는 말이다. '남자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은 진리일진데' 또는 '여성이 가정을 지키며 남편을 보좌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일진데'라는 식이다.

두어 분한테는 직접 답장을 썼다. '나는 과학자이니 진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과학적 진리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생물학적 지식에 근거해서 말한다. 또 나는 생물학자로서 자연의 섭리를 연구하고 있다, 그러니 내 앞에서 자연의 섭리를 운운하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일이니 잘 생각하고 하라'는 내용으로 보냈다.

같은 남성으로 생각해보면 오랜 시간에 걸쳐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이런 얘기를 하니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문 몇 줄을 읽고 비난하지 말고 내 책을 꼭 끝까지 읽어보시고 말씀을 하셨으면 좋겠다. 몇 분께는 내 책을 직접 보내드리기도 했다."

- 남성으로서 여성계의 호주제 폐지 운동을 어떻게 보는지.
"사실 여성의 적은 남성이다. 남성이 그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여성들이 더 일어나야 한다. 어쩌면 은근히 남성위주의 세계에 안주하고 있는 여성들, 아니면 뜻은 같이 하나 용감하게 나서지 않는 여성들이 이제 나서야 할 때다."

- 부인으로부터 많이 배웠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어떤 점이 그런가.
"아내는 울산대 음대의 학장을 맡고 있다. 그 어느 여성학자 보다 이론이 분명한 사람이다. 또 양성평등한 가정에서 자란 여성이기도 하다. 그러니 결혼해서 상대적으로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큰 내가 이상해 보였던 게 당연할 것이다. 아내와 토론을 많이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많이 배웠고 깨달았고, 변했다. 어렸을 적 (가부장적이었던) 나를 기억하는 친지분들이 지금의 나를 보면 무척 놀라실 거다."

- 학교에서는 어떤 스승인가.
"내 연구실에는 여학생이 더 많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요즘 역차별 하겠다고 장난 삼아 선언을 하기도 한다(웃음). 학생들도 나처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내 실험실은 자유스럽고 양성평등 분위기가 잘 돼 있다.

- 언론 보도 이후 학생들이나 주위의 반응은 어떠했나.
"일부의 비난도 있었지만, 침묵하고 있는 대다수는 찬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학교에서 만나는 젊은 세대들은 내가 굳이 이런 얘기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의식이 깨어 있다. 이미 10∼20대는 열린 생각을 갖고 있다. 대학에서도 내 의견서를 비난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 '호주제 폐지' 등 양성평등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지난 2000년에 EBS 세상보기 강연을 하면서 '호주제-생물학적 모순'을 주제로 한 적이 있다. 그때도 무척 많은 항의를 받았다. 반면 전화해서 50년 먹은 체증이 사라졌다고 통곡하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그 때 '이거 멈춰서는 안 되는 일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계기라면 그것이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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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최재천 교수 의견서 전문

덧붙이는 글 |  * 최재천 교수 주요 약력

학력

·1977년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동물학과 졸업 
·198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생태학 석사 
·1990년 미국 하버드대학 생물학 박사 (지도교수: Bert Holldobler & Edward O. Wilson) 

경력

·1990-92년 하버드 대학 전임강사 
·1992-94년 미시건 대학 조교수 
·1994-현재 서울대 생명과학부 부교수 
·1994-현재 국제학술지 Journal of Insect Behavior 편집위원 
·1996-현재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소식지 <자연과학> 편집장 
·1999-현재 국제학술지 Journal of Ethology 편집고문 
·2001-현재 국제학술지 Evolutionary Psychology 편집위원 
·2001-2006 Harvard University Museum of Comparative Zoology 연구원 

상훈

·1989년    미국곤충학회 젊은과학자상 수상 
·1992-1995 Michigan Society of Fellows의 Junior Fellow로 선정 
·2000년    제1회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수상 
·2002년    제8회 The Asian Environmental Award 수상 

저서 : 

영문전문서적 
The Evolution of Social Behavior in Insects and Arachnids (곤충과 거미류의 사회행동의 진화),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The Evolution of Mating Systems in Insects and Arachnids (곤충과 거미류의 짝짓기구조의 진화),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국문서적 
개미제국의 발견, 사이언스북스, 1999.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역서), 사이언스북스, 1999. 
보전생물학, 사이언스북스, 2000.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효형출판, 2001. 
알이 닭을 낳는다, 도요새, 2001. 
과학 종교 윤리의 대화, 궁리, 2001. 
인간의 그늘에서 (역서), 사이언스북스, 2001. 
과학, 그 위대한 호기심, 궁리, 2002.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 (역서), 궁리, 2002. 
이것이 생물학이다 (역서), 몸과마음, 2002.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궁리 2003 
열대예찬, 현대문학 2003 
살인의 진화심리학,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3 
제인 구달의 생명사랑 십계명 (역서), 바다출판사 2003

주요연구과제 : 

사회행동의 생태와 진화
까치의 행동생태 장기연구
땅벌의 섭식행동과 의사소통
개미의 사회구조
거미의 사회행동

성(Sex)의 생태와 진화
제주 조랑말의 번식 행동과 사회구조
인간의 사회행동과 번식구조
살인의 진화심리학
흰발농게의 짝짓기 행동

동물의 인지능력과 인간 두뇌의 진화
까치의 언어와 사회구조
침팬지의 인지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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