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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을 앞두고 광주전남에서 재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때 '의원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사람'으로 정치신인들과 한판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정치신인들은 최근 광주전남 지역민들을 상대로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다수의 유권자가 현역의원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물갈이'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전직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근거로 "이번만큼은…"이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현재 광주전남에서 재기를 준비하는 전직 의원들은 모두 11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물러난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재기명분만큼은 하나다. '못다한 일을 이루겠다'는 것.

"그만 둔 게 아니라 뺐겼다"

광주전남지역 전직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배지를 떼야했던 이유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중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던 지역적 특성상 DJ의 뜻을 거스를 힘이 없었다는 설명.

14대 국회에 등원해 15대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던 유인학(63·영암) 전 의원은 "국회의원을 그만둔 게 아니라 뺏긴 것이다"고 주장했다. 유 전 의원은 "영암군 삼호를 목포에 편입하자는 움직임에 반대했기 때문이다"며 "영암이 삼호를 잃으면 큰 타격이 있기 때문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괘씸죄에 걸린 것이다"고 덧붙였다.

현재 유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 발기인으로 참여해 영암·장흥지역에서 재기의 발판을 다지고 있다. 그는 "이제는 정책과 인물중심으로 인재를 뽑는 시대가 왔다"며 "그 점에서 어느 누구보다 낫다고 자부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이어 "지난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를 포기한 것은 DJ에게 누가 될까봐였는데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며 "이번에는 뺏긴 것을 되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15대 국회의원이었던 박찬주(57) 전 의원 역시 '괘씸죄'를 거론했다. 박 전 의원은 "99년 도청을 무안으로 이전하는 것을 반대했는데, 이게 목포권(동교동계 핵심)의 눈밖에 났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현재 화순·보성지역에서 민주당 경선을 준비중에 있는 박 전 의원은 "지역민심은 나에게 호의적이다"고 자평하며 "그러나 일부 세력에 의해 경선이 형식적으로 치러진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며 벌써부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13대 때 등원해 3선의원을 지낸 조홍규(59) 전 의원은 지구당(광주 광산) 문제가 도마에 올라 현역에서 물러났다. 조 회장은 "지구당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김 전 대통령이 그만두라고 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김 전 대통령에게) 섭섭한 것은 없다"며 "그분의 스타일과 내 스타일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현재 원진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경영인으로 변신에 성공한 조 전 의원은 "정치는 이미 졸업했다"고 밝혀 17대 총선 출마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에 의해 스스로 물러난 경우도 있다. 박석무(60) 우리당 전남추진본부장의 경우가 그것. 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박 본부장은 김 전 대통령이 통합민주당을 깨고 국민회의를 창당할 때 합류하지 않았다.

박 본부장은 "국민회의 출범때 다른 호남 의원들이 다 가도 나는 안갔다"며 "그것 때문에 정치적 공간이 없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이제 시대가 변했다"며 "국민통합과 미래지향적 정치를 위해 하나의 밀알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 본부장은 무안·신안에서 출마하기 위해 우리당 경선을 준비하고 있다.

15대 총선때 돌연 서울로 지역구를 옮긴 정상용(53) 전 의원도 17대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광주 서구에서 13·14대 의원을 지낸 정 전 의원은 "문민정부 시절 5·18문제 전국화를 위해 YS최측근인 김덕룡 의원과 맞붙으려 서울 서초을로 지역구를 옮기게 됐다"고 지역구 이전 이유를 밝혔다.

정 전 의원은 "낙선하고 나니까 현역시절에는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라"며 "국민의 눈높이에 내 눈을 맞추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주장했다. 정 전 의원은 자신의 옛 지역구인 광주 서구에 출마하기 위해 민주당에 재입당했다.

11·12·15대 의원을 역임한 이영일(63) 전 의원은 광주 동구를 겨냥하고 활발한 물밑 활동을 벌이고 있다. 16대 총선에서 시민단체의 낙선·낙천운동에 의해 고배를 마신 이 전 의원은 "해외봉사 활동을 통해 섭섭함을 긍지와 보람으로 채웠다"고 말한다. 이 전 의원은 "당선된다면 자신에게 많은 정치적 상처를 줬던 지역구도 타파에 온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재 이 전 의원은 유동적인 정치권의 상황을 주시하며 정당 선택은 유보하고 있다.

자민련 전국구로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지대섭(60) 전 의원은 광주 북을 지역에서 총선 준비를 하고 있다. 지 전 의원의 정치역정은 민주당 일색인 광주전남지역에선 특이한 케이스다. 그는 민자당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해 자민련에서 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꾼 것.

이에 대해 지 전 의원은 "자기가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된 곳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것"이라며 "무조건 철새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역 때 못 이룬 일을 완수하고자 총선에 나설 것"이라며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지역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출정의 변을 밝혔다. 지 전 의원은 민주당 광주 북을지구당 조직책 신청을 했다.

"정치 재개 이유를 명확히 정리해야"

전직 의원들은 정계를 떠나야했던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정치재개 명분은 하나같이 "못 다한 일을 이루기 위해"라고 내놓고 있다. 또 세대교체 주장에 대해서도 "세대교체가 아닌 세력교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직 의원들의 정치재개 활동에 대해 박광우 참여자치21 사무처장은 "과거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면 안된다"며 "지역의 대표성을 지닌 사람이 국회에 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내놓았다. 박 사무처장은 "과거 특정인과 특정집단이 독점적으로 정치권력을 행사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며 "변화된 시대의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 열망에 부응할 수 있는 사람이 선택돼야 하며, 입후보자는 이에 대한 명확한 자기 평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혹자는 "이들의 정치재개는 자유고, 그에 대한 심판은 유권자의 몫이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봇물 터지듯 흘러나올 정치적 행보의 하중을 모두 유권자에게 맡기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즉 자신의 정치재개 이유에 대한 자기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

정치활동을 접은 조홍규 전 의원이 후배 정치인들에게 보내는 '충고'는 그래서 음미해볼만 하다.

"자기 스스로 정치를 하려는 이유에 대해 확실하게 정리를 하고 나서 나서야 한다. 정리를 하고 나서 자존심 때문에, 명예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면 일찌감치 뜻을 접어야 한다. 자기정리를 정직하고 명확하게 하지 않고 어설프게 살기 때문에 지금처럼 주변을 어지럽히는 거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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