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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병원에 다시 입원한 김형율씨.
ⓒ 오마이뉴스 윤성효
지난 21일 오후 경남 마산의 희망연대 사무실에서, 미국의 침공 전장인 이라크 바그다드에 가 있는 ‘인간방패’ 배상현(28. 마산)씨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히로시마 원폭 2세 피해자인 김형율(34. 부산)씨가 위독하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배상현씨가 이라크 숙소로 무사귀환했다는 소식을 올려놓고 곧바로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대병원 9층에 있는 한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조심스럽게 김씨의 이름을 불렀다. 침대에서 힘들게 일어나는 사람이 있었다. 깊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체격은 나무막대기라는 말이 맞는 표현이었다. 이발한 지 오래인지 머리 모양은 밤송이 같았다.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 힘들까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힘있게 말했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 2세.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이런 사람들이 얼마가 되는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았다. 1세와 2세에 대한 정확한 자료 조사가 되지 않았다는 것도 한 원인이지만, 이같은 사실을 숨기는 이들이 많아 파악조차 힘든 것이다.

김형율씨는 ‘당당하게’ 원폭2세 피해자라 밝히고 있다. 모임 결성에도 앞장서고, 우리와 일본 정부와 사회에 대해서도 요구를 하기도 한다. 틈만 나면 원폭2세 피해자들을 위해 일을 해오던 그가 또 쓰러져 입원한 것이다.

‘선천성 면역 글로블린 결핍증’ 앓아, 지하철 계단도 못 오를 정도

▲ 김형율씨.
ⓒ 오마이뉴스 윤성효
[김형율씨의 병] 김씨의 병명은 ‘선천성 면역 글로블린 결핍증’(immunoglobulin deficiency with increased IgM, X-linked Hyper-IgM munodeficiency)이다. 만성 폐쇄성 폐질환 증세가 자주 나타나며, 중이염과 혈소판 감소증도 앓고 있다. 감기가 자주 걸리고 기침도 심하다. 폐는 30%만 기능을 하고, 70%는 기능을 상실했다고 할 정도다.

김형율씨는 사회 생활보다 병원 생활을 더 많이 했다. 지금까지 열번 넘게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지난해 10월 퇴원했다가 지난 3월 16일 다시 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것이다. 그가 병원에 처음 입원한 때는 95년, 부산 침례병원이었다. 급성폐렴 처분을 받고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뒤 다시 입원하기를 반복했다.

의료진들도 이상하게 여겨 김씨를 상대로 연구를 시작했고, 2001년 5월 침례병원 호흡기내과 황순철 과장을 비롯한 의사 6명은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논문은 결론적으로, 폐렴이 자주 나타나는 것은 원폭 피해일 가능성이 있고, 유전적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뒤부터 김씨도 각종 자료를 찾기 시작했고, 그가 ‘면역 글로블린 결핍증’을 앓게 되는 것이 어머니의 원폭 피해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씨는 ‘한국원폭2세환우회’에 참여하면서, 갖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그는 대학을 나왔지만 변변찮게 직장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병 때문이었다.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갔지만, 이내 감기가 걸려 병이 깊어지면서 사직할 수밖에 없었고, 병원과 집을 오고가는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그는 지하철 계단도 한꺼번에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 한다.

문헌상 김씨가 앓고 있는 병은 “X염색체 열성 유전에 의한 반성유전병”으로 판명이 되었다. 그리고 ‘선천성 면역 글로블린 결핍증’을 앓고 있는 사람의 평균 수명이 10세 미만이며 한국에서 이 병에 걸린 사람의 최장 수명이 29세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 6살 때 원폭피해, 이종사촌도 시력 장애 겪어

[김씨의 가족 상황] 김씨의 어머니 이곡지(65. 부산시 동구 수정동)씨는 1940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1945년인 6살 때 원폭이 떨어졌고, 이씨는 여동생(당시 3살)과 함께 2층에 있었고, 1층에 있던 언니(당시 9살)는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사망했다. 살아남았던 사람들은 히로시마 외곽으로 피신해 살았고, 가족들은 해방 후 한국으로 건너와 고향인 합천에서 살았다.

이곡지씨는 합천에서 1960년 결혼을 했으며, 3남2녀를 낳았다. 김형율씨는 ‘1란성쌍둥이’였으며, 같이 태어났던 동생은 1년6개월만 살았다. 김씨의 다른 형제들은 건강한데, 유독 그만 병원에 제집 드나들 듯 하고 있는 처지다. 김씨의 어머니 이곡지씨도 병을 앓았는데, 10년전 등에 종양제거 수술을 했고, 피부병이 생겨 고통을 받고 있다.

원폭 투하 당시 3살이던 김씨의 이모도 10년전 자궁암 3기 판정을 받기도 했다. 김씨의 이종사촌들은 2남1녀인데, 막내가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울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다. 김형율씨는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이종사촌이 겪고 있는 병은 모두 원폭 피해 때문이라 보고 있다.

2300여명 규모... “정부는 원폭 피해자 방치 상태, 인권 차원의 문제”

[김씨의 호소] 김씨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부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다. “우리나라는 원폭 피해 2세는커녕 1세도 생각하지 않고 있고, 그 정도는 ‘방치’라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원폭2세 환우 문제는 인권문제라 지적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한국원폭피해자 실태조사. 1991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원폭후유증 2세로 추정되는 사람은 2300명에 이른다는 것. 김씨는 “우리는 평생을 병마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간다. 자식된 도리, 형제된 도리, 인간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부모와 자식간에 ‘친생자 포기 각서’를 통했어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끊는 마음 아픈 사연도 있다”고 말했다.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마음 한편으로 죄 아닌 죄의식을 가지며 평생을 살아간다. 부모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죄의식 때문에 자식들 앞에서 평생을 숨죽이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는, 인간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행복권마저 박탈하게 만드는, 그러므로써 가족간에 의사소통마저 단절되어 정상적인 가정을 유지할 수 없으며 평생을 세상에 대한 원망을 하면서 살아갈수 밖에는 없다.”

김씨는 우리 정부는 물론, 일본 정부도 원폭2세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더 분개한다. “일본정부는 ‘방사능과 유전’의 관계가 규명되지 않았다지만, 그 이면에는 과거 일본정부가 일으킨 침략전쟁과 식민지 만행에 대한 국가 보상과 전후책임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또 일본의 우경화와 함께 군국주의 부활을 시도하는, 일본정부의 우익세력과 사상에 근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

또 “일본에서 실시하고 있는 “피폭2세 건강영향조사”에 한국원폭2세들도 동등한 자격으로서 향후 일본정부로부터 일본원폭 2세들과 같은 동일한 법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호소하고 있다. 나아가 일본의 이 영향조사는 2005년까지 예정되어 있는데, 한국정부도 조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또 김씨를 비롯한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원들은 미국과 일본정부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방사능영향연구소’(www.rerf.or.jp)에, 같은 원폭피해자들을 국민으로 두고 있는 한국정부도 정부차원에서 연구활동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2세환우회’ 결성... 뜻있는 인사들 모여 지원모임도

[각종 단체 활동] ‘한국원폭2세환우회’는 지난해 9월 대구에서 한 차례 모임이 있었다. 이들은 인터넷에 카페를 만들어 정보를 나누는 활동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조만간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낼 예정이다. 지난 3월 8일 부산에서 모임을 갖고, . ‘원폭2세’는 인권문제로 봐야 한다는 차원에서 자료를 취합해 오는 6월 안으로 진정서를 낸다는 것.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돕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환우회 지원모임’이라 하여 지난해 8월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졌으며, 점차 회원수를 늘리고 있다. 이 모임을 중심적으로 이끌고 있는 사람은 조석현 부산 구남초교 교사와 일본인 아오야기 전 부산대 교수를 비롯해 몇몇 대학원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환우회 지원모임’은 한달에 한번 정도 모임을 갖고, 현재까지 김형율씨의 경제적 도움을 주는 일을 해왔다. 앞으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해 내기 위한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조석현 교사는 “무엇보다 당사자들인 원폭2세들이 ‘커밍아웃’을 해야 하고 힘이 모아져야 하는데, 그 하나로 드러내놓고 활동은 하지 못하더라도 인터넷 카페에 가입부터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한국원폭2세환우회 인터넷 카페 주소 : http://café.daum.net/KABV2PO 

도움주실 분 : 대구은행 017-08-251017-001 (예금주 : 김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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