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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15일 서울의 어느 보통학교 국어 교실를 무대로 삼은 한 일본인의 단편소설 끝장면이다.

히로히토 천황의 무조건적인 항복 선언을 방금 전해 들은 일본인 선생님은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다가 조선인 학생들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일본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언어임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국민이 설혹 노예의 처지에 빠지더라도 국어만은 잘 지키고 있으면 스스로의 손에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때 창 밖에서 호각소리가 울려왔다. 일본인 선생님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여러분, 여러분. 나는..."하고 뭐라고 말하려 했으나 선생님은 끝내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리고 칠판으로 돌아서 분필로 "일본 만세"라고 큼지막한 글을 썼다.

이것은 19세기 후반에 활약한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1840-1897)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의 마지막 장면을 1945년 한국 상황으로 패러디화해 본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다. <마지막 수업>이 묘사하는 시대적 배경, 즉 1871년 보불전쟁으로 패한 프랑스가 독일계 주민이 다수인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로이센에 넘겨주고는 퇴각해야 했던 배경과 연합국에 패한 일본이 조선에서 물러나야 했던 상황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단편소설이 패전 뒤 어떻게 일본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에서까지 중·고교 국어교과서에 실릴 수 있었을까? 이 소설이 실리는 것이 식민지시대 향수를 잊을 수 없는 일본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해방 직후 1989년 무렵까지 중·고교 국어교과서에 버젓이 실렸던 것이다. 그 후 이 소설이 갖는 영향력은 아직도 남아 있다. 비록 이 소설이 교과서에서 사라졌다고는 해도 도데라는 이름까지 잊혀졌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동화라든가, 세계명작 같은 형태로 지금도 국내에서 '도데 신화'는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36년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을 통해 번역소개된 이 작품은 1939년에 국어(일본어) 교과서에 채택됐으며, 패전 이후에도 우리처럼 한동안 국어교과서에서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하다가 1970년대 초반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재미 있는 것은 <마지막 수업>이 교과서에서 도태되기까지 한일 두 나라가 전혀 판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도데와 <마지막 수업>이 추악한 프랑스 내셔널리즘을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임이 역사학계의 집요한 추적으로 드러나는 바람에 교과서에서 축출된 데 비해 한국에서는 "너무 오랫동안 실려 신선미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이 교과서에서 탈락하고 난 지금까지도 국내에서 도데는 여전히 사랑받는 작품, 사랑하는 작가로 통용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전세계적으로 프랑스 작가로서 2류, 3류 축에도 들지 못하고 일본에서마저 배척을 당하고 있는 도데가 한국에서만은 새천년을 맞이한 지 2년이 되는 지금까지 '식지 않은 열풍'을 지속하고 있는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의 작품은 흔히 서정성이 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부 프랑스 프로방스 출신인 그는 국내에서는 <마지막 수업>말고도 <별>이라는 단편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표면적인 서정성과 함께 <마지막 수업>은 식민지 경험과 결부돼 도데가 말하는 '잃어버린 프랑스어'와 '잃어버린 알자스-로렌'이 각각 '일본에게 잃어버린 조선말'과 '일본에게 잃어버린 조선 강토'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착각하도록 만들었다.

그러한 증거가 23년만에 다시 빛을 본 소설가 고 이병주의 <동서양고전탐사>(원제는 「허망과 진실」)에 나오는 그의 이 작품에 대한 감상문에서 포착된다.

이 글에 따르면 이병주는 일제 식민강점 치하인 열두 살 때 일본인 교장 부인에게 선물로 받은 소년소녀 동화집 같은 책에서 <마지막 수업>을 처음 접했다고 하면서 "그 작품은 내게 있어서 심각한 충격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이병주의 설명은 이렇다.

"어린아이에게도 나름대로의 의식은 있다. 열두 살 소년인 나는 그 소설에서 받은 충격으로 그때까지 전혀 해보지도 않은 생각에 차례차례로 말려 들었다. 첫째 생각한 것은 알자스와 로렌이 어쩌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알자스와 로렌처럼 슬픈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뒤따랐다."

한마디로 <마지막 수업>을 통해 조선은 일본식민지로 있을 수 없으며 우리 언어를 살려야 한다는 민족의식을 일깨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 대다수는 지금까지도 <마지막 수업>을 프랑스의 민족의식, 나아가 조선의 민족의식을 일깨운 명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 작품은 프랑스의 추악한 내셔널리즘을 가장 극명하게 표출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일본에서 이미 30년 전에 추방됐다.

이 작품이 배경으로 삼는 알자스는 14세기 이래 프랑스령이었으나 그 주민 대부분은 독일계로 언어 또한 독일어를 사용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는 이 지역에 대한 프랑스의 언어 통제 정책은 더욱 강화돼 학교에서는 프랑스어를 강제로 가르쳤다.

그러다가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다음 알자스는 프로이센에게 넘어갔다. 이로써 이 지방 주민들은 일상 언어, 곧 독일어를 되찾게 됐다.

<마지막 수업>은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면서 알자스는 독일 땅일 수 없으며 세계 언어 중에 오직 프랑스어가 가장 아름다운 언어임을 강변했던 것이다.

실제 도데는 국내에는 '서정작가'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극렬한 왕당파였으며 그의 아버지 또한 우익 왕당파의 수괴였다.

도데가 더욱 악랄한 것은 보불전쟁 당시 알자스 주민 대부분이 프랑스어를 모르는 독일계였음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의 소설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어를 모르는 알자스 주민들을 대상으로 프랑스어 교사가 마지막 수업을 진행하는 장면을 설정하면서 "프랑스 만세"라는 말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 프랑스 교사는 비유컨대 일제의 패망으로 식민지 조선땅에서 할 수 없이 물러나면서 조선인 학생들에게 "일본 만세"라는 큼지막한 글을 남긴 일본인 국어교사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도 어찌된 셈인지 한국에서 <마지막 수업>은 외세에 저항하는 민족의식을 가장 극적으로 '대리표출'한 작품으로 통하고 있다.

이는 '적대적 문화변용'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일본 제국주의 논리를 고스란히 답습한 희극적인 현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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