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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작된 '집단기억'

신라는 당나라 군대와 합세해 660년 백제를 멸하고 668년에는 평양성을 무너뜨리고 고구려 사직에 종언을 고함으로써 '일통삼한'(一統三韓), '삼한통합'(三韓統合)을 구축했다. 우리는 흔히 이 사건을 '삼국통일'이라고 하지만, 이는 근현대 한국역사학이 구축한 민족, 혹은 국가라는 당대의 개념이 난데없이 1400년을 거슬러 올라가 고대에 투영된 결과일 뿐 적지않은 문제성을 내포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잘못된 용어는 필연적으로 '집단적 기억의 조작'을 부른다. 역사란 '너와 내가 공유한 집단적이면서도, 대(代)를 이어가는 지속성 있는 기억'이니 삼국통일이란 신라, 고구려, 백제가 같은 민족국가였다는 '집단적 기억의 조작'을 초래케 한다.

백제와 고구려를 신라와 같은 민족국가라고 부를 수는 없음에도 역사학계는 삼국이 정립한 고대 한반도와 만주 일대 지도를 한민족이라는 같은 밑바탕을 깔아놓았다. 이들 삼국은 서로 충돌하고 때로는 교류, 교유하면서 다른 어떤 왕조국가보다 관계가 밀접하기는 했으나 700년이나 다른 사회 시스템을 자양분 삼아 생명력을 유지했다. 언어가 상통하거나 피부색이 같거나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들 세 왕조국가 및 그 신민(臣民)이 각기 서로에게 느끼는 친연성이 다른 왕조국가 및 그 신민들에 대한 것보다 분명 더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만으로 700년이나 따로 놀아난 세 왕권체를 같은 '민족'이라고 할 수는 없다.

2. 고대(古代)를 향한 근현대의 억지

신라더러 왜 고구려 옛 땅 전부를 차지하지 않았느냐고 책임을 추궁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신라더러 왜 '이민족'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같은 '민족국가'인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렸느냐고도 따질 권리도 우리는 더더구나 없다.

신라가 고구려 옛 땅 전부가 아니라 평양 이남 일부만 자국 영토로 편입했으므로 신라에 의한 이른바 삼국통일은 '불완전'하다고 주장함은 비유컨대 고구려 광개토왕더러 왜 백제, 신라를 멸하고서 그 땅을 고구려 영토에 편입시키지 않았느냐고 대드는 주장만큼이나 억설이며 억지다.

이런 억설을 가장 맹렬하게 주창한 이가 민족주의사학을 대표한다는 단재 신채호였다. 당시 조선이 처한 식민지적 상황이 그러한 단재사학을 요구했고, 또 그것이 한민족 통합과 독립정신 고취에 대단한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단재는 헛다리를 짚었다. 그가 고민하고 부대낀 19세기말-20세기초 조선 '민족'과 조선 '국민'이라는 허상 혹은 '상상의 공동체'를 신라와 고구려, 백제에 투영했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이는 잘못된 잣대로 길고 짧음의 정도를 재려함과 같았다.

3.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러한 단재 사학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는 이론없는 정답으로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남한 또한 해방공간 무렵 서울대 국사학과를 장악한 손진태와 이인영이 주도한 이른바 신민족주의사학을 거쳐 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에서 부활한 또 다른 변종 신민족주의사학이며 내재적 발전론이며, 자본주의 맹아론 및 민중사학을 망라한 거의 경향의 역사학 흐름에서 민족과 국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절대 가치가 되었다.

손진태가 해방 직후에 남긴 글을 보라. 어느 것이건 민족과 국가가 내뿜는 파시즘점 기미가 코를 막으며 눈을 가리고 입을 닫는다. 손진태는 <국사대요>에서 말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정치가 이승만의 파시즘적 구호가 역사가 손진태에게서 변주되고 있다. 엄밀히 말해 손진태 역사학에서는 사람이 없다. 온통 민족과 국가, 국민의 교향악이 있을 뿐이다. 자유니 권리와 같은 가치는 민족 중흥과 국가 발전이라는 기치 아래서, "뭉쳐야 산다"는 토털리즘의 구호에 질식했다.

신라는 '이민족 군대'를 끌어들여 동족을 멸했기에, 또 불완전한 영토통일을 이룩했기에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고려의 이른바 후삼국통일이 한국사에서 진정한 통일국가로의 출발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까닭이 바로 이러한 민족과 국가의 초역사화에 있다.

초역사화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그렇지 않은 과거에도 그러한 현재를 고스란히 투영하는 연속적인 행위이자 과정이다. 20세기 역사학이 구상한 이러한 민족과 국가의 초역사화는 1500년 전 삼국이 정립한 한반도와 만주 일대 그 어딘가에도 없었음에도 마치 있었던 양 집단적 기억의 조작을 부르고 말았다. 따라서 초역사화와 집단적 기억의 조작은 동의어다.

신라에 의한 이른바 삼국통일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던 허깨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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