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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기성용, 행운의 '결승골'... 스완지 연패 탈출

<창작과비평>(이하 창비)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3개월 전 '국화꽃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9회에 걸쳐 연재되면서 뜨거운 화제를 몰고 왔던 한 네티즌의 '국화 옆에서'에 대한 비평 논문이 마침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책의 제목은 연재 당시의 논문 제목과 같은 <국화꽃의 비밀>. 도서출판 새움이 발간했다.

특히 인터넷 상에서 그 동안 '창비무명인'이라는 아이디로 활약했던 '얼굴 없는 논객'인 필자가 단행본 발간과 동시에 전격적으로 자신의 실명을 밝히고 나서면서 또 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문학인들의 '사이버 광장'으로 알려져 있는 창비 게시판은 이른바 내공이 뛰어난 문학판의 논객들이 수시로 뛰어들어 그때 그때의 문학계 이슈를 두고 '진검승부'를 벌여왔기 때문에 '사이버 무림(武林)'으로도 불린다.

'창비무명인'도 그 논객들 중의 한 명. 그는 창비 게시판에 논쟁적 글을 잇따라 올리면서 '사이버 무사(武士)'로 명성을 떨쳐왔다. 그러나 '창비무명인(創批無名人)'이라는 아이디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까지 그는 '얼굴 없는 논객'이었다. 실제로 그는 글을 올리면서 단 한 번도 실명이나 이메일 주소를 밝히지 않는 등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겨 왔다.


창비무명인이 사이버 공간에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킨 것은 지난 6월 24일.

미당 서정주의 대표작이자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국화 옆에서'에 등장하는 상징어 '황국(黃菊)' '거울' '누님'이 실은 일본 천황에 대한 숭배와 관련이 있다는 충격적 내용의 논문을 창비 게시판에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화꽃의 비밀'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가진 방대한 분량의 이 논문은 7월 3일까지 총 9회에 걸쳐 연재됐다.

그의 논문이 발표되자마자 창비 게시판은 격렬한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첫 번째 글의 조회수가 1800회를 넘어섰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창비 게시판 개장 이후 가장 뜨거운 논쟁이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창비 측도 사이버 공간에선 보기 드문 이 역작에 대해 최대의 의전(儀典)을 베풀었다. 창비의 상징이자 발행인인 백낙청 교수가 이 논문에 대한 장문의 평문을 게시판에 올렸으며, 편집위원 한기욱 씨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인터넷 글쓰기의 가능성-창비무명인의 미당론을 중심으로'란 평문을 실은 것이다.

이 논문이 일으킨 파장은 창비 게시판의 담장을 뛰어넘어 곧바로 인터넷의 바다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한 네티즌(박민규)이 7월 5일 인터넷 한겨레에 기고한 ''국화 옆에서'가 친일시라구?'가 그 징검다리가 됐다. 그리고 채 3개월이 흐르기도 전에 이 문제의 논문이 <국화꽃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져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국화꽃의 비밀>에는 도대체 어떤 '비밀'이 담겨져 있는 것일까. 아마도 책표지 뒷면에 적혀 있는 다음과 같은 4개의 도발적인 물음이 그 '열쇠'가 될 것이다.

(1)일본 만화영화 <세일러 문>의 요술봉이 왜 한 송이 국화꽃으로 이루어졌는지?
(2)<다섯 별 이야기> 주인공 이름이 왜 '아마테라스'인지?
(3)일본 왕실의 문장(紋章)이 왜 국화꽃인지?
(4)미당의 '국화 옆에서'는 오늘날 왜 국민적 애송시가 되어 있는지?

여기서 갑자기 우리는 궁금해진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일본 만화영화 <세일러 문>과 청소년에게 인기가 높은 SF만화 <다섯 별 이야기>. 이것들과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우선 물음 (1)과 (2)에 대한 필자의 답변을 책 속에서 찾아보자.

▲다섯 별 이야기의 주인공 '아마테라스'
(1)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만화영화 <세일러 문>에는 일본제국주의 및 신도(神道)의 상징물인 삼종신기(三種神器)―쿠사나기의 검, 야타의 거울, 야사카니의 곡옥―가 주인공의 마법적 장신구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2)
"청소년들에게 인기있는 마모루 나가노의 공상과학만화 <다섯 별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은 아예 일본의 태양신 아마테라스입니다. 그는 미래의 우주왕국(태양성단)을 수 천년 동안 다스릴 불사불멸의 제왕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 일본만화 속의 주인공 아마테라스는 흰색의 황제복을 입고, 목에는 곡옥 목걸이를 하고, 허리에는 칼을 차고 있으며, 머리에는 노오란 국화꽃을 꽂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미당의 '국화 옆에서'에 등장하는 상징어인 '황국(黃菊)'과 '거울'이 예사롭지 않은 어떤 불길한 징후를 지니고 있음을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논쟁의 '몸통'을 거론하기 전에 살펴본 논쟁의 '깃털'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물음 (3)에 대한 답변을 찾아볼 차례이다. 이와 관련, '황국'이나 '거울'과 관련된 내용은 책 속 곳곳에서 발견된다.

(3)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스런 역사를 살아온 우리 국민에게 있어서 황국은 신중한 고찰이 필요한 상징입니다. 황국이 거울과 함께 등장할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황국은 일본에서 지난 14세기 이후로 일왕과 그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紋章)이었고, <고사기>를 보면 거울은 일왕이 현인신(現人神)의 위상을 획득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상징물이기 때문입니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란 책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국화는 칼과 더불어 일본제국주의를 표상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황국은 왕실의 문장으로서 왕실가족의 모든 휘장을 장식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일왕의 예복, 일본국가훈장, 일본우표,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의 무기 등등―로 일본제국주의 문화와 삶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서구에서 발간되는 각종 세계 상징사전을 살펴보아도, 국화꽃은 일차적으로 태양을 상징하는 꽃이며 일본왕실 내지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로베르 라퐁이란 출판사에서 나온 <상징사전>의 '국화꽃'에 대한 설명에는 '16개의 꽃잎을 지닌 국화꽃으로 된 일본 문장엔 태양의 이미지와 나침반 지침면의 이미지가 겹쳐져 있는데, 그 중심에서 일왕이 세상을 통치하고, 우주의 모든 방향을 집약한다'는 내용이 기술돼 있습니다."

●"일본 문화 속에서의 거울은 천손강림 시에 태양신이 자신의 혼을 담아 하사한 신기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태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울은 삼종신기의 하나로 이세신궁에 모셔지고 있고, 또 일제 강점기엔 아마테라스와 메이지왕을 주신으로 삼는 조선신궁에도 거울이 있었습니다."

▲일본 왕실의 문장(紋章)
이러한 진술 속에서, 우리는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국화꽃이 일본왕실의 상징물임을 알고 있었을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미당의 '국화 옆에서'에 대한 문학적 해석이 진행되면서, 위에서 서술한 '황국'과 '거울'의 문화적 상징성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1915년에 태어난 미당은 서른 한 살에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일본어를 '국어'로 여기며 살아왔고, 일장기를 아랫목에 세워두고 합장까지 할 정도로 신성하게 생각했으며, 아마테라스와 메이지왕에게 신사참배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더욱이 그의 친일작품은 시, 소설, 평론, 수필, 르포 등 거의 모든 장르를 망라할 정도로 다양했고, 또 그 내용도 노골적이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그의 천황'은 그 외형만 바꾼 채 지속되었다. 해방 이후 이승만을 '제우스'와 '단군으로, 전두환을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으로 찬양한 것이다.

아마도 질문 (4)에 대한 답변은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와 관련, 필자는 "우리는 아직도 미당의 '국화 옆에서'를 교과서에 실어, 좋은 시의 본보기로 가르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일본문화의 제국주의적 공략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는 못할망정,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황국(黃菊)을 '관조의 경지에 이른 친근한 누님'의 비유로만 가르친다면 이는 너무도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라고 강조한다. '국화 옆에서'의 시인에게 추서되어야 할 상은 국화문양이 새겨진 일본의 일등공로훈장이지 우리 민족의 금관문화훈장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이러한 내용을 골격으로 삼은 필자는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추리소설 기법을 동원해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다.

관련기사-서정주 '국화 옆에서' 등 시 3편

지난주 금요일인 9월 21일 저녁. 기자는 이 책의 필자인 창비무명인과 인터뷰를 가졌다. '김환희'라는 실명을 제외하곤 나이도, 성별도, 출신지도, 출신학교도 밝히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사진촬영도 하지 않는다는 까다로운 전제조건을 수용한 뒤에야 성사된 인터뷰였다.

우선 필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마침 책 날개에 필자를 소개한 글이 있어 여기 그대로 옮긴다.

김환희 씨는 네티즌 사이에서는 '창비무명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치한 논리와 해박한 이론으로 인터넷상의 글쓰기 수준을 한 단계 높여 놓았다는 평을 듣는 필자는 이 책을 출간하면서 글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도를 고려해서 처음으로 실명을 밝혔다. 이 책의 논지가 워낙 문제적이기에 자신을 숨기는 것이 옳지 않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단이다.

그러나 필자는 자신의 얼굴과 출생년도, 출생지, 출신학교를 자세히 공개하는 것은 피했다. 이 책의 문제적 발언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겠지만 '학연(學緣)과 지연(地緣)'이 형성한 그물과 편견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롭고 싶은 한 문학도의 소박한 소망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끝마친 후에, 미국 남가주 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그 대학이 주는 장학금으로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1991년 단편소설의 본질과 서구단편소설 이론의 한계를 분석한 <단편소설의 수사학>(A Rhrtoric of the Short Story)이란 논문으로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지난 10년 동안 서울과 수도권에 소재한 여러 대학(이화여대, 중앙대, 인하대, 추계예술대, 연세대, 성균관대 등)의 여러 학과(영문과, 불문과, 비교문학과, 문예창작학과 등)에서 10여 종이 넘는 다양한 문학과목을 강의해 왔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 사이버 공간에서 논쟁이 됐던 글을 현실 공간에서 단행본으로 냈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더욱이 첫 책이라고 하는데, 소감부터 말해 달라.
"맨처음 창비 게시판에 이 글을 올릴 때만 해도 열 몇 명 정도만 읽으면 보람이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아무리 공들여 쓴 글이라도 순식간에 밀려드는 다른 글에 묻혀버리고 마는 것이 인터넷의 생리 아닌가. 그러나 네티즌들의 반응은 나의 그런 예상을 뛰어넘고 말았다. 네티즌들의 관심과 사랑이야말로 내 글이 이렇게 단행본으로 묶여져 세상에 햇빛을 보게 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 인터넷에 이 글을 연재하게 된 동기는.
"지난 해 12월에 미당 서정주 시인이 작고한 후에 신문지상에 실린 문학평론가와 원로학자의 일방적인 미당 예찬론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더욱이 최근에는 중앙일보가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문학상까지 제정하지 않았는가. 미당의 예술성이 제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백일하에 드러난 그의 친일행각을 도외시한 채, 그에게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 것은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일신상의 안위를 위해 민족을 배신한 불행한 예술인을 용서할 수는 있지만, 그가 죽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문학상을 만들고, '단군 이래 최대 시인' 운운하며 영웅으로 받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결국 기성세대의 몰지각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나라도 나서서 젊은 꿈나무 세대가 절망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 국민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비판하면서도, 구체적 친일 근거가 드러난 서정주를 기리고 본받자는 문학상을 제정한다는 사회적 흐름에 대해서 무감각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누가 미당 예찬론을 펼쳤나.
"유종호 교수와 김화영 교수가 대표적이다. 특히 유 교수는 미당을 (1)시인부락의 명실상부한 족장 (2)부족방언의 마술사 (3)단군 이래 최대 시인으로 극찬했다. 물론 나도 미당이 부족방언의 마술사라는 점은 인정하는 입장이다. 미당은 우선 상상력이 뛰어나고 나름대로의 시작법 정신을 가지고 시를 쓴 '천재'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결여했다는 점에서는 '백치'이기도 했다.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은 모든 족장에게 필요한 덕목이거니와,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저급한 마술사'보다 '고급한 마술사'가 더 위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 연구에는 얼마나 시간이 걸렸나.
"미당이 작고한 뒤 유종호, 김화영 교수가 신문에 올린 글을 보고 놀랐다. 다각도로 미당을 고찰하지도 않고 서슴없이 극찬하는 것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추악한 삶에 아름다운 예술이 있는가?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의문점이었다. 사실 미당의 작품을 즐겨 읽지 않아 처음에는 주저도 됐다. 그러나 사상과 삶의 문제점을 덮을 만큼 미당의 예술성이 뛰어난지에 대해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미당의 시뿐만 아니라 자서전, 수필도 읽고, 전문가들의 자문도 구했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것은 2월 말이었고, 6월 말에 초고를 완성할 수 있었으니, 얼추 4개월이 걸린 셈이다."

- 그렇게 연구하고 내린 결론은?
"성경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말이 나오는데, 공부하지 않고 결론을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당이 장인정신을 가지고 시를 썼으면 그렇게 인정하고 평가할 생각으로 공부했다. 그러나 미당을 3류급 시인으로 매도할 수도 없었지만, 위대한 장인으로 평가할 수도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진정한 장인이 아니었다. 나는 그를 문학적 거장으로서 사랑할 수 없었다."

- 기존의 미당 담론과는 다른 '국화꽃의 비밀'만의 차별성이 있다면.
"미당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진영이 있는데, 두 진영 모두 자신들의 기존의 논리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선 친(親)미당파는 미당의 예술성이 그의 삶과 사상의 허물을 덮어주고도 남을 만큼 뛰어나다는 입장이고, 반(反)미당파는 미당에 대한 신화가 문화권력자로서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허상에 불과하며 미당은 3류시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 두 입장은 현재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데, 양측 사이에 진정한 의미의 대화조차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고은 시인의 미당 비판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는데.
"고은 시인에게 가해진 반격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고은 시인도 결국 정치문인 아니냐. 둘째 고은 시인은 미당의 제자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설사 '허물 있는 자'라도 '더 허물 있는 자'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미당이 고은의 실력을 인정해줬는데 배은망덕해서야 되겠느냐는 비판도 본질을 벗어난 잘못된 것이다. 나는 거꾸로 이렇게 묻고 싶다. 도대체 삶과 분리된 예술이 있는가? 사상이 담기지 않은 시와 예술이 있는가?"

- 지금 미당 담론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나는 미당 담론의 디딤돌 하나를 놓는다는 심정으로 이 글을 썼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작품을 통한 작가 연구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작가가 상징과 신화의 구조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눈여겨 살펴봤다. 반미당파는 86년에 나온 <친일문학선집>을 적절히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근현대사 자체를 깊이있게 평가하는 글은 적었다고 본다. 나는 내 글이 미당 연구의 작은 참고자료가 되길 희망할 뿐이다."

- 이 책을 통해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가.
"미당의 시가 친일시라는 단선적 주장을 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미당의 시를 교과서에 싣기 전에, 민족의 이름으로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 전에, 그리고 미당상을 제정하기 전에, 미당에 대한 충분한 검토의 시간을 갖더라도 늦지 않다. 사실 장준하 선생도 은관문화훈장밖에 받지 못했다. 우리는 한번 자문해 봐야 한다. 현실순응적, 종천순일적 삶을 살아온 미당이 장준하, 함석헌보다 과연 위대한 인물인가.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형국을 보라. 시간에 쫓기듯, 뭐에라도 쫓기듯, 미당 신화를 만들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나의 글은 그러한 일방적 흐름에 대한 절박한 반론이자 문제제기이다."

- 책 발간을 계기로 본격적인 대사회 발언을 해볼 생각은 없나.
"내 자신 개혁인사로 비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웃사이더의 정신을 가져야 하는 문학연구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리고 평론 발표 등 본격적인 대외활동을 할 생각도 없다. 책상물림을 벗어난 인생을 살 생각도 전혀 없다. 비교문학을 전공한 문학도로서 좋은 문학연구가가 되는 것이 나의 유일한 꿈이다. 그 과정에서 평생 두세 권의 책을 내더라도 그것이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창작자에게 좋은 참고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책을 많이 내는 것은 내 적성에 안 맞는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기는 싫다."

- '국화 옆에서'를 애송하던 일반 국민들은 이 시가 친일시라는 주장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어떻게 말해줄 생각인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시와 접하게 될 때는 두 가지 경로를 갖게 된다. 자율적 선택과 타율적 선택이 바로 그것이다. 친구의 권유를 받거나 서점에서 자신의 의지로 직접 선택하는 경우가 자율적 선택이라 할 수 있는데, '국화 옆에서'는 교과서에 실려 있기 때문에 수능시험을 잘 치기 위해서 접하게 된 타율적 선택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 국민은 학창시절 문학교사가 제시하는 모법답안을 통해 이 시를 접했다. 그런 사실을 망각한 뒤, 20∼30년 뒤 마치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착각한다. 다시 말해 '국화 옆에서'에 대한 허상을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굳어진 허상을 깨는 과정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나의 작업은 그런 충격에 대한 상쇄작용인 셈이다. 내가 부지런히 미당에 대한 자료와 책을 읽고 이 글을 쓴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 백낙청 교수도 비교적 호의적인 평가를 했는데.
"백 교수의 논지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국화 옆에서'에 대한 신화적 해석은 일리가 있지만 황국(黃菊)을 천황으로 읽은 역사적 해석에는 무리가 있다. 난 백 선생이 충분히 그런 평가를 할 수 있다고 본다."

- '창비무명인'이라는 필명을 가지고 창비 게시판에서 활동해 온 것은 언제부터인가.
"작년 말에 있었던, 표절을 둘러싼 김윤식-이명원 사건 무렵부터였다. 가라타니 고진의 책은 이미 읽었던 터라 김 교수와 이명원 씨의 책을 구해 비교해가며 정밀검토를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명원 씨가 제기한 것보다 표절의 양상이 더 참담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대학과 문학계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이명원 씨는 소영웅주의자로 몰리는 양상이었다. 이명원 씨에 대해서는 일면식도 없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표절 건과 관련된 내 생각을 정리한 글을 올렸다. (참고로 이 글은 1천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네티즌의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 '창비무명인'이라고 작명(作名)한 사연이 있는가.
"당시만 하더라도 한번만 글을 올릴 생각이었는데, 그때 사용했던 아이디가 '무명씨'였다. 그런데 'S대 학생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무명씨라는 내 아이디를 도용해 나와는 정반대의 논조로 글을 올렸다. 논쟁의 와중에 같은 이름으로 글을 올린다는 것은 독자에게 혼돈을 줄 우려가 있다고 여겨 '창비무명씨'라고 개명했다. 처음에는 '원조무명씨'라고 하려고도 생각했는데, 어감이 좋지 않아 포기했다. 한때는 '책상퇴물'이라는 아이디로 바꾸기도 했는데, 다른 네티즌들이 내 트레이드 마크인 창비무명씨로 돌아가라고 권고하는 바람에 바꾸게 된 것이 바로 '창비무명인'이다."

- 나이는 얼마나 되나.
"공개하고 싶지 않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 근 10년 대학에서 강사로 살면서 겪은 병폐가 바로 나이, 출신지, 학교, 학과, 종교를 따지는 것이더라. 바로 그런 것이 패거리 형성에 한몫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 육십대이든, 이십대이든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만난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인터넷 글쓰기에 몰입하게 된 이유다."

- 이번 연구작업에 약점이 있다면, 어떤 것을 들 수 있나.
"미당의 시 전체를 거시적으로 고찰한 것은 아니었다. 마치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국화 옆에서'라는 한 편의 시를 미시적으로 고찰한 것이었다. 물론 '국화 옆에서'를 센터에 두고 '신라초' '동천' 등과 불교정신 등에 대해서도 폭넓게 공부했다. 미시적 고찰을 하다 전체적 시야를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 서정주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할 생각은 없나.
"김윤식 교수는 언젠가 서정주 평전을 쓰겠다고 피력한 바 있지만, 나로서는 그런 책을 쓸 생각이 없다. 그저 내 글이 본격적인 미당 연구의 하나의 기폭제가 되길 바랄 뿐이다. 물론 더 좋은 글 나오면 내 글은 유효성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내 글의 가치가 없어지는 날이 온다면 미련 없이 그 운명을 받아들일 것이다."

- 앞으로 하고 싶은 공부는.
"나는 매년 논문을 1편씩 쓴다. 대학에 자리를 잡지 못한 나에게 주변에서 '너 아직도 논문 쓰니?'라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다세대 주택 짓던 사람이 불황에도 다세대 주택을 짓듯이, 문학을 공부하는 나는 계속 문학을 공부할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이 민족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작가의 미학을 내 나름의 시각으로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에 전력투구하고 싶다. 네거티브한 작업에 에너지를 소진하는 일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본다."

- 그런 작가가 보이나.
"물론이다."

- 실명을 밝힐 수 있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나는 그 분의 삶과 문학을 심층적으로 고찰한 책을 쓰고 싶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그런 작가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보람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작가의 미학을 밝히는 것에 시간을 투여하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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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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