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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 / 숫가락(?)

밥을 먹을 때 사용하는 도구는 숟가락과 젓가락입니다. 두 개의 도구를 합쳐 흔히 수저라고 합니다. 저를 포함한 상당수의 사람은 수저를 숟가락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는 듯 합니다. 엄격하게 따져본다면 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지칭하는 말입니다.

숟가락은 술 + 가락이고, 젓가락은 저 + 가락입니다. '술'이라는 말은 "밥 한 술 떠라"와 같은 문장에서와 같이 분량을 세는 단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술'과 '가락'이 합쳐진 말이 '숟가락'으로 표기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술가락이 숟가락으로 표기되는 이유는 '숟가락'의 발음 때문입니다. 밥 먹을 때 사용하는 도구를 말할 때 [수까락]이라고 발음하지 [술가락]으로 발음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술가락'이라는 말은 강원도 지방에서 방언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강원도 방언으로는 [수까락]이라는 발음이 아닌 [술가락]이라는 발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숟가락과 비슷한 유형으로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적에 'ㄹ'소리가 'ㄷ'소리로 나기 때문에 'ㄷ'으로 표기하는 낱말로는 '반짇고리(바느질 + 고리)', '사흗날(사흘 + 날)', '이튿날(이틀 + 날)' 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를 정리해 보면, "술가락, 반질고리, 사흘날, 이틀날" 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숟가락, 반짇고리, 사흗날, 이튿날"로 표기하도록 한 것은 발음에 대한 고려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원을 밝혀적는다는 취지로 'ㄹ'로 표기할 경우 발음이 술가락[술가락], 반질고리[반질고리], 사흘날[사흘랄], 이틀날[이틀랄] 등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ㄷ'으로 표기할 경우에는 숟가락이 [수까락] [숙까락] 등으로 발음되지 [술까락] [술가락]으로 발음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글 맞춤법에서 이렇게 발음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맞춤법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글 맞춤법 총칙에서 어법에 맞도록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소리대로 적도록 규정함으로써 맞춤법의 기준이 소리인지 어법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원칙이 없는 것이죠.

현실 발음을 고려하여 'ㄹ'을 'ㄷ'으로 적도록 하였지만, 그렇다고 'ㄷ'으로 발음되는 모든 낱말을 'ㄷ'으로 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덧저고리, 웃어른' 등의 예를 보면, 분명히 'ㄷ'으로 발음되고 있는데도 'ㄷ'이 아닌 'ㅅ'으로 표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덧저고리의 '덧'은 원래 '덜'이 아니고, 웃어른의 '웃' 또한 '울'이 아니지만, 발음을 기준으로 한다면, 'ㄷ'으로 적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문제는 표기법에서 발음을 고려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표기법이라고 하는 것은 관습적으로 정해지는 것으로 세계 어느 나라의 언어를 보아도 발음을 고려하여 표기법을 정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표기와 발음은 별개의 문제일 수밖에 없으며 한글의 경우에 표기와 발음이 상당히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표기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정하는 것은 사회적 관습에 의해 임의로 정해지는 것이므로 표기법에서 발음을 고려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됩니다.

표기법에서 발음을 고려하여 혼란을 겪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입니다. 제 개인의 견해로는 표기법에서 발음을 고려하는 것은 표기법의 복잡성만 증가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알아본 '숟가락'의 경우에도 굳이 규칙으로 본다면 "원래 'ㄹ'받침인 것이 [ㄷ]로 발음될 경우 'ㄷ'으로 표기한다"고 정리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보지 말고, 숟가락, 반짇고리, 사흗날, 이튿날 등의 예를 예외로 처리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우리말 바로 쓰기]를 시리즈로 엮어볼까 생각중입니다.
자주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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