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해직교사를 소재로 했던 1990년대의 독립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

전교조 해직교사를 소재로 했던 1990년대의 독립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 ⓒ 장산곶매


독립영화에 대한 첫 기억은 1990년의 <파업전야>(이은 감독)였다. 투박한 영상이었지만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는 보는 내내 주먹에 힘을 불끈 쥐게 만들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모두가 몽키 스패너를 치켜들 때 마치 영화 속 노동자의 한 사람이 된 기분이기도 했다. 경찰의 봉쇄를 뚫고 들어간 한 대학교의 강당에서 보던, 정부가 상영을 막기 위해서 기를 쓰던 불법영화였기에 어쩌면 더욱 잊히지 않는 깊은 추억이 됐는지도 모른다.

<왕의 남자>의 배우 정진영이 주연을 맡았던 <닫힌 교문을 열며>(1992년, 이재구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실정법 위반을 이유로 후시녹음작업이 막힌 영화는 '현장 더빙'이라는, 배우들이 스크린 옆에 앉아 직접 대사를 하는 특별한 방법으로 상영됐다. 엄격히 말해 미완성이었지만 상영을 막으려는 장벽을 그렇게라도 뚫고 틀어야겠다는 독립영화인들의 의지는 강인했다. 역사적인 작품을 월드프리미어(세계 최초 상영)로 봤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었다.

<어머니 당신의 아들>(1991년, 이상인 감독)은 상영되는 과정에서 영화속 장면이 현실로 재현되는 박진감 넘치는 경우였다. 불법상영을 막겠다는 당국은 상영하던 대학교 안으로 경찰을 투입했고 경찰은 사수대와 충돌했다. 영화 속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은 입체적으로 재현됐고, 매캐한 최루가스 냄새를 피해 학생들은 허겁지겁 상영장을 벗어나야 했다.

이렇듯 독립영화는 꽤나 역동적이고 긴장감 넘치던 순간들을 기억으로 남기고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웠고, 열악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카메라 앵글의 초점을 맞췄다. 그 자존심과 결기가 독립영화의 힘이기도 했다.

그 치열한 역사는 20년 넘는 세월이 흘러 변모했지만 요즘도 기본 줄기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어려웠던 시기, 영화를 무기로 내세웠던 그들의 노력은 한국 영화의 기초체력을 형성하며 만개하는 듯했다. 늘 배고프고 힘들던 그들이 조금씩 안정되나 싶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불기 시작한 시베리아의 찬바람은 예전과 다름없는 혹독한 시련을 안겨 줬다. 현실은 다시금 20년 전으로 돌아간 분위기다.

그렇다고 꽃이 시들었느냐고? 천만에 말씀! 야성은 더 강해졌고, 결기도 더 거칠어졌다. 그들의 자유스러움과 활기참, 재기발랄한 열정에는 어떤 난관도 뚫겠다는 기세가 가득하다. 영화로 세상과 부딪히려는 시도는 더 예술적이고 정교해졌다.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서울독립영화제다.

내 멋대로 만든 영화, 관객 향해 '리트윗'

 2011 서울독립영화제 포스터

2011 서울독립영화제 포스터 ⓒ 서울독립영화제

국내 최대 독립영화 축제인 '2011서울독립영화제'가 오는 8~16일까지 서울 신사동 CGV압구정에서 개최된다. 독립영화의 가장 큰 행사로 한 해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서울독립영화제는 올해도 불어오는 찬바람에 아랑곳없이 설레는 개막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에 정권의 탄압에 맞서 독한 맛을 보여주겠다는 뜻으로 "독(毒)립영화 맛좀볼래?"라고 호기를 부렸다면 올해는 SNS 시대에 맞게 "무한알티 : 내 멋대로 해라"를 슬로건으로 삼았다.

프랑스 감독 장 뤽 고다르의 장편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1960년)의 제목에서 '네 멋대로'를 '내 멋대로'로 패러디한 것으로, 어떠한 제약에도 자기 멋대로 만든 영화를, 트위터에서 재전송하는 리트윗(RT)처럼 관객들에게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공동주최 파트너지만 서울독립영화제는 정권 차원의 영화계 탄압에 맞서 지난해 영진위와의 협력을 단절했다. 지원을 받을 경우 간섭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굳이 독립영화의 자유스러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 기조는 올해도 이어진다. 슬로건처럼 '내 멋대로' 하기 위함이다. 상영 작품의 내용에 예민해 있는 사람들과 지원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기에 이번에도 홀로서기를 택했다.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예산이 절반 정도로 줄었지만 그렇다고 전체 작품 편수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지난해 64편이던 작품은 올해는 79편(본선경쟁작 48편, 국내초청작 27편, 해외초청작 4편)으로 15편이나 늘어났다. 예심에 출품된 작품만 685편으로 전년에 비해 50편 이상 늘어났을 만큼 열기도 뜨거웠다. 이중에서 경쟁작 48편이 추려졌기에 경쟁률은 15대 1에 달할 정도. 그만큼 작품의 질도 높아졌다. 명실상부 국내 최대 독립영화 축제의 위상은 손색이 없어 보인다.

서울독립영화제 김동현 사무국장은 "내년 상반기 사업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지금껏 적자본 적은 없었다"며 예산 압박에 대해 담담해했다. "이명박 정권의 영화 정책 자체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굳이 영진위를 탓하고 싶지 않다"며 "관객이나 제작진들에게 피해가 있겠지만 예산 문제는 그리 구애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돈이 없으면 허리띠를 졸라매면 되는 것이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우겠다는 각오다. 줄어든 예산은 온라인 소셜 펀딩이나 후원 프로젝트를 통해 마련되고 있는 중이다. 시상 내역 중 하나인 독립스타상 상금 300만 원은 이런 과정을 통해 모아졌다. 300만 원을 목표로 했던 금액은 마감을 앞두고 20만 원이나 초과 달성했다.

미 대사관 후원 받은 독립영화인들...'이례적'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미국 다큐멘터리 <만약 나무가 쓰러지면:지구 해방 전선 이야기>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미국 다큐멘터리 <만약 나무가 쓰러지면:지구 해방 전선 이야기> ⓒ 서울독립영화제


 2011 서울독립영화제 본선 진출작 <뉴타운컬쳐파티>

2011 서울독립영화제 본선 진출작 <뉴타운컬쳐파티> ⓒ 서울독립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는 한해 독립영화 화제작들이 망라된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행사다. 지난해 선보인 <혜화, 동>(민용근 감독), <파수꾼>(윤성현 감독), <무산일기>(박정범 감독) 등이 올해 상반기 독립영화의 흥행을 이끌었다면, 하반기는 최단시간 독립영화 흥행기록(1만 관객)을 돌파한 <돼지의 왕>(연상호 감독), <고양이 춤>(윤기형 감독) 등이 쌍끌이 중이다. 한미FTA로 영화산업이 위기로 치닫고 있는 와중에도 독립영화인들의 창작욕이 넘쳐나고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올해도 화제작들이 많이 준비됐다. 장편 경쟁에 오른 <뉴타운 컬쳐 파티>(정용택 감독)와 <줄탁동시>(김경묵 감독)를 비롯해 한국 일본 필리핀 여성들을 마주한 경순 감독의 <레드 마리아>(경순 감독), 제주 강정마을 투쟁을 다룬 <잼다큐강정>(경순 감독 외),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를 다룬 <어머니>(태준식 감독), 4대강사업에 문제를 제기하는 <강(江), 원래>(엄태화 감독 외) 등이 상영된다. 정권 차원에서 껄끄럽게 생각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지만 그만큼 불의한 세상을 향한 독립영화인들의 시선이 돋보인다.

경쟁에 오른 단편에는 재개발로 인한 주거권의 문제, 사라져가는 공간에 대한 향수, 청소년기에 대한 추억과 성장담 그리고 소외된 이웃의 이야기와 예민한 감수성을 세세하게 표현하는 작품들을 비롯해서 사회 이면에 감추어진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담겼다. 장편 경쟁의 경우 지난 10년 중 가장 다채로운 작품이 포진될 만큼 형식적인 면에서도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는 작품이 많아졌다는 것이 올해 영화제의 특색이다.

한미FTA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한미국대사관의 후원으로 미국의 독립영화가 특별 상영되는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우파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 등을 들어 독립영화인들을 반미 선동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미 대사관의 후원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영화제 측은 "미 대사관이 미국의 다양한 사회 문화 현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를 국내에 선보임에 있어, 내실 있는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소개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해, 프로그램 일체의 공급을 제안해왔고 이를 수락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상영되는 작품들은 한국 독립영화처럼 주제 의식이 강한 영화들이다. 미국 남부 지역을 여행했던 시민 인권 운동가들의 도전을 그린 미국판 희망버스 <프리덤 라이더스>(2009년, 루크 페레즈 감독 외), 급진적 환경 운동 단체였던 '지구 해방 전선(Earth Liberation Front)'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환경과 운동 그리고 테러로 규정된 행위들의 관계와 타당성에 대해 질문하는 <만약 나무가 쓰러지면: 지구 해방 전선 이야기>(2011년, 마샬 커리 감독 외) 등 현대 미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인종, 환경, 평화, 언론의 자유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우수 다큐멘터리 4편이 상영된다. 미국 독립영화인들의 방한도 예정돼 있어 한국 독립영화인들과 교류할 전망이다.

개막작은 독립영화 여배우 3인의 셀프 카메라

 서울독립영화제 2011 개막작 <나 나 나 :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

서울독립영화제 2011 개막작 <나 나 나 :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 ⓒ 서울독립영화제


상징성이 큰 개막작은 부지영 감독의 <나 나 나 -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가 선정됐다. 2009년 이재용 감독이 연출하고 고현정, 윤여정 등이 출연한 <여배우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영화는 김꽃비, 서영주, 양은용 세 명의 독립영화 배우가 자신의 일상을 촬영해보는 방식으로 만든 영화다.

서울독립영화제 조영각 집행위원장이 직접 프로듀서를 맡았는데, 날 것 그대로의 여배우의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조 위원장은 "오랜 시간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은 평상시 어떤 모습으로 생활을 하며 지낼까 궁금했다. 배우들에게 카메라를 주고, 직접 자신의 일상을 촬영해보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이들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영화 이면에 담긴 그들의 삶과 고민을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며, "제목 속 '나 나 나'는  세 배우 자신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독립영화제의 주최단체인 한국독립영화협회 임창재 이사장은 "비주류로서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 독립영화의 진정한 힘인데, 한국영화를 비롯한 기존 독립영화의 관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다양한 작품들이 상영작에 포진돼 있어 올해 영화제가 기대된다"며 관객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다.

그간 서울 강북에서 개최되던 영화제가 강남으로 진출한 것도 달라진 점이다. 민간독립영화전용관 개관 계획이 지연된 데 따른 것이지만 영화제 측은 강남 관객들의 저변 확대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울독립영화제는 8일 오후 7시 개막한다.

독립영화 서울독립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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