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온라인 공간 속 최대 화젯거리는 단언컨대 민희진 어도어 CEO의 기자회견이었다. 오후 3시부터 무려 2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회견은 주요 언론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방송됐다. 그런데 감정섞은 격한 어조뿐만 아니라 욕설까지 수시로 등장하는 전무후무한 내용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범죄도시4보다 재밌다", "이거 조만간 SNL에서 패러디 하겠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민희진-하이브 양측의 시시비비는 조만간 법적 공방을 통해 판단이 내려지겠지만 케이팝 인기 걸그룹 뉴진스를 탄생시킨 주역들이 벌이고 있는 진흙탕 싸움을 두고 한편에선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이 낳은 폐해가 아니냐는 지적이 적잖게 나오고 있다.  

자산 규모 5조 원을 보유한 하이브는 무려 65개 기업, 11개 레이블을 동시에 운영중으로 엔터 업계 최초로 대기업집단(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을 앞둔 상태다. 이와 같은 하이브의 성장은 멀티 레이블 운영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멀티 레이블이 뭐길래​
 
많은 사진기자들에 당황한 어도어 민희진 대표 하이브가 자회사 어도어의 경영권 탈취 시도 여부에 대한 중간 감사결과를 발표한 25일 오후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서울 강남구의 한 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기에 앞서 많은 사진기자들이 참석한 것을 예상하지 못한 듯 당황스런 미소를 짓고 있다.

▲ 많은 사진기자들에 당황한 어도어 민희진 대표 하이브가 자회사 어도어의 경영권 탈취 시도 여부에 대한 중간 감사결과를 발표한 25일 오후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서울 강남구의 한 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기에 앞서 많은 사진기자들이 참석한 것을 예상하지 못한 듯 당황스런 미소를 짓고 있다. ⓒ 이정민

 
음반 산업에선 하나의 모기업이 산하에 다양한 형태의 군소 레이블을 두고 운영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특히 해외 음반 업계에서 이와 같은 멀티 레이블 체제는 100여 년 가까이 가장 보편화된 운영 방식으로 활용되어 왔다.  

대표적인 글로벌 음반사 유니버설 뮤직 그룹만 하더라도 인터스코프-게펜-A&M, 아일랜드-데프 잼, 캐피톨, 리퍼블릭 등 다양한 업체를 거느리면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즉, 신생 레이블을 설립하거나 IP(지적재산권) 확보를 위해 타 회사를 인수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세를 넓혀 나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선 단순히 음반 업체뿐만 아니라 또 다른 글로벌 그룹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처럼 영상, TV 및 기타 IT 분야 등 다양한 회사의 인수 합병과 설립이 이뤄지면서 복합적인 양상을 내비치기도 한다.  

​한국 가요계 역시 이런 흐름을 참조해 멀티 레이블 체제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마무 소속사 RBW가 젝스키스, 핑클, 카라 등을 배출한 DSP를 인수하고 WM(오마이걸, B1A4)을 품에 넣는 식이다.  

기존 대형 기획사-하이브, 멀티 레이블의 차이​
 
 지난 25일 진행된 민희진 어도어 CEO 기자회견을 소개한 TV 보도 화면

지난 25일 진행된 민희진 어도어 CEO 기자회견을 소개한 TV 보도 화면 ⓒ MBC

 
그런데 SM, JYP 등 대규모 기획사들은 별도 법인 회사를 여러 곳으로 나누기 보단 1본부-2본부 식의 대규모 부서 조직 운영으로 이를 대체하고 있다. 이와 다르게 하이브는 가장 적극적으로 멀티 레이블 체제를 도입해 운영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방탄소년단을 만든 빅히트를 기본 삼아 쏘스뮤직, 플레디스, KOZ 등 이미 설립된 회사들을 차례로 인수한 데 이어 빌리프랩(CJ ENM과 합작 설립 후 지분 인수), 어도어 등을 신규 창업하는 과정이 지난 몇 년 사이 이뤄졌다.    

기존 업체들이 한 회사의 울타리 안에서 여러 아티스트들을 부서별로 배분해 이를 총괄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하이브는 재벌그룹처럼 각 계열사 단위로 아티스트들의 활동을 관장하는 식의 틀을 마련한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을 도입한 배경에는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각 회사별 자율권을 부여함과 동시에 건전한 경쟁을 유발하고자 했던 의도가 깔려 있다.각 업체마다 별도의 대표이사 체제가 확립되어 든든한 자본력의 후원 속에 각자의 방식대로 회사를 운영하고 가수들의 성공을 이끌어냈다.  ​

결과적으로 하이브만의 계열사 운영은 지난 몇 년 사이 역대급 매출 성장을 주도한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반대로 현재의 파국을 낳은 시발점이 되기도 한 셈이다. 

온갖 부작용의 시발점, 개선책 있을까?​
 
 사진은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사진은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 연합뉴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몇몇 전문가들은 멀티 레이블 체제가 이번 파장의 불씨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계열사간 협업 및 건전한 경쟁은 어느 순간 사라졌고 하이브 산하 타 레이블 또한 이겨야 할 상대로 변질된 것이다. A사가 확보한 노하우가 하이브 타 회사로 확산되어 시너지 효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소유물처럼 자리 잡았다. 

​용산 대형 건물을 함께 쓰고 있지만 계열사로서의 유대감은 실종되었고 그저 남남처럼 운영되는 현재의 상황이 하이브 vs 어도어 갈등을 야기한 구조적 결함의 근본 원인인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 23일 박지원 하이브 CEO는 "이번 사안을 잘 마무리 짓고 멀티 레이블의 고도화를 위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 지속해 고민하고 개선하겠다"라는 내용의 사내 이메일을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발송했다고 한다.  

하이브가 자랑해왔던 멀티 레이블이 속빈 강정이 되지 않기 위해선 현 사태의 봉합 못잖게 기업 체계의 전면적인 개편 등 혁신이 뒤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김상화 칼럼니스트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민희진 하이브 어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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