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사퇴의 효과는 없었다. 'K리그 최다우승'을 자랑하던 명문 전북 현대가 또다시 2024시즌 첫 승을 따내는데 실패하며 충격의 리그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더 이상 일시적인 부진 정도가 아니라, 진지하게 강등 가능성까지 걱정해야할 만큼 '진짜 위기'다.
 
전북은 4월 7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강원FC과의 하나은행 K리그1 2024 6라운드 홈 경기에서 2-3으로 패했다. 경기 하루전에 단 페트레스쿠 감독이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자진사임하면서 사령탑이 공석이 된 전북은 박원재 코치가 임시로 감독대행을 맡았다.
 
시즌 초반에 감독교체라는 초강수를 둔 만큼 선수단 분위기에도 변화를 기대했지만 정작 경기력에서는 큰 반전이 없었다. 전북은 이날도 전반 29분 전병관의 결정적인 슈팅이 골대에 맞고 나오는가 하면, 오른쪽 측면을 돌파하던 이동준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조기 교체되는 악재까지 발생하며 경기가 꼬였다.
 
결국 강원이 이상헌의 PK로 먼저 전북에 먼저 선제골을 뽑아냈다. 전북도 다소 운이 따라준 판정 덕분에 김태환의 PK골을 얻어내며 전반은 동점으로 마쳤지만, 후반들어 강원 강투지와 이상헌에게 다시 연속골을 내주며 결국 무너졌다. 이상헌은 멀티골로 6.7호골을 연이어 뽑아내며 리그 득점선두에 올라섰다.
 
전북은 후반 종료 직전인 추가시간에 문선민의 만회골로 한 골을 따라잡았지만 동점까지는 시간이 부족했다. 대어를 잡은 강원은 2승 3무 1패 승점 9점으로 리그 5위까지 올라섰다. 반면 전북은 개막 이후 6경기 무승에 그치며 3무 3패, 승점 3점으로 꼴찌인 12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전북이 리그 꼴찌까지 추락한 것은 아직 강호로 발돋움하기 이전이던 2008년 5월 이후 무려 16년 만이다. K리그1에서 아직까지 승리가 없는 팀은 전북이 유일하다.
 
전북은 2009년 창단 첫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13년간 무려 9차례나 K리그를 제패하며 최다우승팀의 반열에 올랐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2회(2006,2016), FA컵(코리아컵) 우승도 5회나 차지했다.
 
올시즌도 전북은 '현대가 라이벌' 울산 HD와 더불어 리그 패권을 다툴 유력한 '양강'으로 평가받았다. 지난 시즌 중반에 부임했던 단 페트레스쿠 감독이 동계훈련을 거쳐 정식으로 맞이하는 첫 시즌인 데다, 전력보강에도 공을 들였다. 김진수, 박진섭, 티아고, 비니시우스, 김태환, 한교원, 문선민, 송민규, 이동준, 권창훈 등으로 이어지는 전북 라인업의 이름값은 여전히 리그 최정상급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현실은 참담했다. 전북은 지난 2월 14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2023~2024시즌 ACL 16강 홈 1차전에서 2-0 승리를 챙긴 경기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승수를 쌓지 못하고 있다. 라이벌 울산과의 8강전에서는 1무 1패에 그치며 ACL에서 탈락했고, 리그까지 포함하면 9경기째 무승행진 중이다. 내용 면에서도 리그 6경기에서 무려 10골을 내주며 김천-광주-수원FC와 공동 최다실점을 허용하고 있다.
 
페트레스쿠 감독은 루마니아 출신의 명장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며 많은 성과를 남겼던 베테랑이었다. 하지만 전북 감독으로서는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첫 시즌에는 중도에 지휘봉을 잡았음을 감안해도 리그 4위- FA컵 준우승에 그치며 무관을 막지 못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선수단을 강화했음에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무색무취한 전술과 선수단 장악력 실종으로 팬들의 지지를 상실한 페트레스쿠 감독은, 결국 개막 5경기만에 자진사임했다. 승강제 도입 이후 K리그1에서 개막 최소경기만에 사퇴한 감독이라는 불명예 기록까지 세웠다.
 
하지만 전북의 현재 위기는 단지 페트레스쿠 감독만의 책임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전북은 구단의 최전성기를 이끈 최강희 감독과 이철근 단장이 2010년대 후반 차례로 물러난 이후, 서서히 침체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나마 조세 모라이스 감독 시절까지는 전임 감독 시절의 유산과 고유의 닥공(닥치고 공격) 컬러가 유지되었으나, 2021년 김상식 감독 취임 이후 섣부른 선수단 개편의 실패와 노장들의 은퇴, 프런트의 연이은 실책이 겹치면서 하락세가 본격화됐다.
 
2021년까지 K리그 5연패, 2022년에도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자존심을 세웠던 전북은, 2023년 무려 '10년 만의 무관'에 그치며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구단 레전드였던 김상식 감독에 이어, 외국인 감독인 페트레스쿠까지 연이어 실패하면서 전북은 확실한 리더십과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선수단 역시 부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분위기를 주도해야 할 고참급과 외국인 선수들이 전혀 제몫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주장 김진수는 지난 3일 제주전에서 상대 선수에게 어처구니없는 발차기로 다이렉트 퇴장을 당하며 팀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또다른 베테랑이자 핵심수비수 홍정호도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전열에서 이탈했다.
 
또한 과거의 전북은 감독과 선수들의 능력 못지않게, 프런트의 뛰어난 수완이 돋보이는 구단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선수-감독 영입과 이적을 둘러싸고 실속은 적었던 반면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김상식-페트레스쿠 감독 선임, 조규성의 덴마크 이적, 송민규-아마노 준-권창훈-백승호-김태환 등의 영입을 둘러싸고 서포터즈와의 갈등과 충돌에 이르기까지, 소모적인 이슈에 비하여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 특히 이적시장에 깊이 관여했던 허병길 전 대표이사나 박지성 테크니컬 디렉터의 역할을 둘러싼 책임론까지 불거진 바 있다. 
 
전북 팬들은 이러다가 혹시 팀이 지난 시즌 수원 삼성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한때 K리그의 명가를 자부하던 수원은 2023시즌 꼴찌로 추락하며 다이렉트 강등의 악몽을 피하지 못했다.
 
수원은 2010년대 운영주체가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이후 지속적인 침체기로 접어들었음에도 내내 미봉책으로만 일관하며 변화와 개혁의 시그널을 외면하다가 결국 대참사를 맞이했다. 창단 처음으로 2부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된 수원은 5경기만에 벌써 2패(3승, 3위)를 기록하며 2부에서도 승강 전쟁이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스포츠에서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수원을 비롯하여 성남, 부산 등 한때 K리그를 호령하던 우승팀이거나 대기업 구단들도 승강제 도입 이후 2부리그행을 피하지 못했다. 전북이라고 해서 강등이 언제까지 '남의 일'이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 이대로라면 전북 구단은 정말로 2부리그로 내려가도 할말이 없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느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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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현대 K리그순위 페트레스쿠 수원삼성 강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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