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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업 외 소득의 돌파구로 집중 투자한 농어촌 관광산업 사례지, 군산 고군산군도 선유도
▲ 군산 선유도  농어업 외 소득의 돌파구로 집중 투자한 농어촌 관광산업 사례지, 군산 고군산군도 선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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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산재한 농산어촌 마을을 먹여살리는 산업의 기본은 농업이다. 물론 어촌마을을 주로 먹여살리는 산업은 어업일테지만 대개 농업을 병행한다. 농업(agriculture)은 인류의 생존을 책임지는 기본 토대이다. 식량 및 식료품을 생산하는 국가의 기간산업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뜻으로, 농업을 장려하는 말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일컫는다.

인류사를 거슬러올라가면 신석기시대(1만~1만3000년 전)부터 인류는 작물을 경작하고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했다. 정착농업의 발생은 대개 BC 6000여 년 이전으로 추정되며, 동양에서는 농작물 재배를 중심으로 하는 집약적 경종농업으로, 서양은 양축농업(養畜農業) 중심 이동농업에서 정착농업으로 전개되었다. 역사적으로 증명된 역사적인 사실이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자연조건에 절대적으로 좌우되던 농사 일은 인간의 힘에 의해 동식물을 합리적으로 재배·사육하기 시작하면서 농업의 단계로 올라섰다. 마침내 근대에 이르러 과학기술이 농업에 도입, 생산력과 경제규모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오늘날의 농산업이라 부르는 경지에 이르렀다. 

마을의 농업도 자본주의형 상품생산농업으로 변형
 
농어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식품가공 등 6차산업화 또는 융복합산업화에 투자한 사례, 임실 치즈의 뿌리 성가리 치즈공장
▲ 임실 성가리 치즈공장  농어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식품가공 등 6차산업화 또는 융복합산업화에 투자한 사례, 임실 치즈의 뿌리 성가리 치즈공장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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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이 본격적으로, 비약적으로 농산업의 경지로 발달하고 성장한 배경과 계기는 자본주의가 성립한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 '농산업'을 새삼 사전적 의미로 풀어보면, '토지를 이용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길러 생산물을 얻어내는 산업으로서 논농사와 밭농사뿐만 아니라 과수업, 원예업, 양잠업, 양봉업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는, 즉 마을에 사는 대부분의 마을주민들은 농사를 지어서 먹고사는 농민이었다. 국가경제란 곧 자급자족형 농민경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량은 물론이고 마을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일반적인 생활필수품도 거의 농민 스스로가 만들어 썼다.

자본주의가 생성·발전하고 공장제 공업, 도시 상공업이 발전하면서 비농업인구의 증대에 따라 식량의 수요도 증대했고 아울러 공업이 발달하면서 공업의 원료가 되는 농산물의 수요(면화·양모·식료품 등)도 폭증했다.

이전의 자급자족형 농업에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산판매, 자본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상품생산농업으로 크게 변화, 농업기술도 발달하고 농업생산력도 높아지게 되었다. 이는 곧 농민층의 분해 또는 양극화로 직결, 상품생산농업을 주도하는 부유한 농민층으로서 '농업자본가'와 토지와 생산수단을 잃은 빈곤한 농민층 '농업노동자'로 양극화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마을공동체의 질서가 깨지고 토대가 무너지기 시작한 건 물론이다. 이제 농촌마을을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생활공동체 터전이 아니라, 도시의 도시민의 식량과, 공장의 원료를 조달하는 농산업의 생산기지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세계적 단위 및 차원에서도 생산과잉으로 고민하는 선진자본주의 국가들과 식량부족으로 신음하는 후진개발도상국으로 양극화가 심화된 것을 물론이다.

마을의 농업은 저임금·저농산물가격 정책의 희생양
 
해수부가 집중 투자하고 있는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의 사례지, 태안군 남면
▲ 태안 의성염전  해수부가 집중 투자하고 있는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의 사례지, 태안군 남면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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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8·15해방 직후부터 미국 등 세계시장에 의존하는 대외의존적 경제구조를 채택, 우리나라를 농산물시장으로 취급하는 미국의 압력과 국내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농업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게다가 우리의 농업은 공업에 대하여 자본 및 원료공급원이나 국내시장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노동력공급원과 부분적인 식량공급원으로서만 기능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 결과, 우리의 농업은 1970년대 후반부터 '개방농정'이 노골화되면서 식량자급률의 급격한 하락, 농가부채, 이농, 소작률의 급증 등 위기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50년대까지 국내자본의 축적기반이 취약, 경제정책은 미국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예속되어 미국 잉여농산물이 일방적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아울러 극단적인 저농산물 가격이 유지되면서 국내 농업기반은 취약하고 위태롭기 그지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1960년대에는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전략을 추진, 오직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한 저임금·저농산물가격 정책이 노골적으로 전개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970년대에는 수출을 위한 중화학공업화에 따라 대외의존적 축적방식이 구조화되면서 국내농업은 더욱 위축, 국제수지문제와 세계식량파동에 따라 주곡에 대한 자급은 강조되었지만 전체 식량자급률은 더욱 하락했다. 결국, 1970년대 후반부터는 국제무역의 보호주의 강화와 더욱 노골화된 미국의 수입개방압력에 따라 '개방농정'이 본격 전개되었다.

일과 삶이 하나되는 '농업전후방연관산업'으로 진화할 때
 
어촌의 유휴시설(어판장)을 극장식식당으로 재생한 어촌마을공동체사업의 사례지, 제주 종달리
▲ 제주 종달리 해녀의 부엌  어촌의 유휴시설(어판장)을 극장식식당으로 재생한 어촌마을공동체사업의 사례지, 제주 종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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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의 농업구조는 한마디로 '영세농'으로 대변된다. 취약한 경지기반 조건과 자작농의 분산적 토지소유에 기초한 영세소농경영구조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농어촌발종합발전대책' 등 농업구조개선정책을 전개, 개별경영의 규모확대정책, 이른바 농산업을 주도하는 기업농 육성정책과 더불어, 영세농에 대해서는 농촌공업화, 농촌지역개발사업 등을 통한 농외소득 창출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5대 곡물메이저가 세계농산업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농정개방 시대에 그런 국가단위의 정책과 전략으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농업만으로 마을을 농산업을 감당하기에는, 마을을 먹여살리고 마을주민들도 먹고사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마을의 농업 또는 농산업도 이제는 '농업전후방연관산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날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 및 농업경영체의 개념도 정보통신기술(ICT)·바이오기술(BT) 등 신기술이 접목되는 이른바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농업도 푸드테크·그린바이오 등으로 진화하고 연관 분야도 확장되고 있다.

이런 변화에 걸맞도록 농업도 전후방산업을 아우르는 '농산업'의 개념을 적용, 그 주체는 농업경영체를 포함하는 '농산업경영체'로 재정의,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식품산업, 생산 소재·장비산업, 유통·마케팅, 농업·식품 기반 벤처사업, 농업교육·지도·컨설팅 등 농업의 전방과 후방을 아우르는 '농업전후방연관산업'의 패러다임으로 진화할 때가 바야흐로 도래한 것이다.

그래야, 마을도 농사를 짓는 농민만 모여사는 농촌이 아니라, 농업전후방연관산업에 종사하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농촌주민들이 능히 먹고 사는 '일과 삶이 하나되는 살림마을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태그:#마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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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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