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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따지자면 마을의 최고권력자는 이장(理長)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말은 결국 마을의 최고봉사자이자 최대책임자가 이장이라는 뜻과 다르지 않다. 모든 공동체에서 모든 권력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희생이 전제되어야 하고 으레 수반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를 비롯한 현실의 공동체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지만 말이다.

'이장'은 시·군의 읍·면에 있는 마을(행정리)을 총책임하에 감독하는 최고책임자로 정의되고 규정된다. 도시 지역(행정동)으로 보면 통장(統長)과 지위와 역할이 같다. 9만9000여 명에 달하는 전국이통장연합회라는 조직이 있을 정도로 농산어촌마을의 이장과 도시 동네의 통장은 행정적으로 지위와 역할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지방자치법 시행령 제81조에 따르면 행정동의 통에는 통장을 두고, 읍ㆍ면의 행정리에는 이장을 둔다. 이때 이장 및 통장은 주민의 신망이 두터운 사람 중에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읍장ㆍ면장ㆍ동장이 임명한다.

이장의 월급은 40만 원

이처럼 마을이나 동네의 주민자치와 행정지원을 책임지는 이장과 통장의 처우는 신통치 않다. 따로 고정급여가 지급되지 않고 수고에 따른 물적 보상이 미미한 수준의 수당이 지원될 뿐이다. 낮은 기본수당으로 인한 수당 현실화 요구는 이장과 통장의 오랜 숙원이다.

지난 10월 행정안전부(장관 이상민)는 이장·통장의 역할이 증가함에 따라 현장 활동의 적극성을 확보하고 책임감 강화를 위한다는 취지로 기본수당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2024년부터 이장·통장의 기본수당 기준액을 현행 3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10만 원 인상한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인상되는 기본수당 예산 6천억 원을 재정기반이 열악한 각 지자체에서 부담한다는 점이다.

물적 보상만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보상도 중요하다. 주민들과 가장 밀접한 민원 현장에서 고생하는 이통장들에 대한 실질적 처우와 법적지위도 허술하다. 공직자와 같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도록 지방자치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통장은 마을 주민들이 선거를 통해 직접 선출한다. 그런데 사무관급 행정 공무원인 읍·면·동장이 이통장을 임명한다. 이같은 전근대적이고 비민주적인 관 중심적 사고와 행태가 아직도 지방분권과 자치행정의 현장인 마을에서는 청산되지 않고 있다.
 
봉건 권위주의시대의 마을권력을 상징하는 함양 개평마을 솟을대문
▲ 함양 개평마을  봉건 권위주의시대의 마을권력을 상징하는 함양 개평마을 솟을대문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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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주민이 직선하는 이장

이장은 마을주민들이 직선으로 선출한다. 그래서 마을마다 치열한 선거전이 벌어지곤 한다. 도가 지나쳐 이장 선거를 둘러싸고 마을 주민들 사이 반목과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특히 마을공동체사업과 관련한 이권이 걸려있는 경우가 심각하다.

가령, 경기도 한 마을에서는 귀농인 등 신규 전입자들에 대한 마을회 가입조건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면사무소에 전입신고를 한다고 그 마을의 주민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 마을의 주민으로 공인받으려면, 즉 마을회에 가입하려면 발전기금 250만 원과 연회비 5만 원을 내야하는 조건을 마을회 정관에 명시했다. 그래야 마을 운영에 참가하는 새마을회의 정회원으로 인정받고 이장 선거의 투표권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마을에 서울 등 대도시에서 귀촌인 등 신규전입자들이 늘어나면서 촉발했다. 70여 가구 수준이던 마을이 두배 이상으로 규모가 커지면서 전입자들이 기존의 마을정관에 거부감을 느끼고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마을 주민이라면 누구나 마을의 최고권력자인 이장을 선출할 권리와 출마한 권리가 부여되지 않는 마을정관이 문제의 본질이었다. 물론 불합리한 마을정관은 총회에서 표결을 통해 바꾸면 된다. 그런데 총회 표결에 참여하려면 마을회 회원 자격을 가져야 한다.

마을회 회원이 아닌 신규전입자는 총회에 참여하는 게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으니 정관을 바꾸려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기존 선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져 고소·고발로 이어졌다. 그런데 마을 정관은 자치 규약이라 행정에서도 개정을 강제할 수 없다.

이처럼 마을의 최고권력자인 이장직을 두고 선주민과 이주민, 구세대와 신세대, 남과 여 사이에 정보·소통 부재로 인한 갈등이 빈번하다. 물론 마을회 정관이나 마을자치규약에서 권리와 책임에 대해 명시하고 규정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준수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느 어촌마을에서는 이장보다 어촌계장이 더 힘이 세다.
▲ 서귀포 성산  어느 어촌마을에서는 이장보다 어촌계장이 더 힘이 세다.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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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의 처우와 자부심을 챙기려면

이장은 농산어촌 지역의 마을 출신이 맡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물론 귀농인 등 마을에서 오래 장기거주한 이주민이 이장을 맡아하거나 여성이 이장을 맡는 마을도 적지 않다. 농산어촌 마을의 인구감소, 고령화 등으로 이장직을 맡아 할만한 주민이 적거나 없는 마을이 흔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로 지방자치 시대에 걸맞게 본격적으로 이장 직선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임명제로 돌아간 지역도 많은 게 현실이다. 이장 선거로 인해 갈등과 분란이 심해 공모를 받아 시장이나 군수가 면접을 보고 임명하는 방식이다.

심지어, 어느 지역에서는 마을 이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경우도 목격된다. 이장직 이후에 단위농협 조합장, 지방의원 등 지역의 토호권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로 삼는 셈이다.

이장은 한마디로 시장 및 군수, 읍장 및 면장 다음의 지역 총책임자이다. 읍면에 속한 행정리 단위의 마을을 총책임하에 관리감독하는 권한을 가진다. 마을 공무사항, 주민치안, 범죄예방, 농사지원, 재해 복구지원 역할을 하는 권한을 맡는다.

마을회 조직편제를 보면, 이장을 보좌하는 개발위원장, 부녀회장, 노인회장, 청년회장, 영농회장, 새마을지도자 등이 있지만 사실상 마을사무는 이장이 혼자 만기친람하는 게 현실이다. 이장 혼자 책임져야할 일이 많고 다종다양하다보니 한 법정리 안에서도 나뉘는 행정리마다 이장을 따로 선출한다.

대만에서는 우리의 이장에 해당하는 촌장도 지방선거로 선출한다고 한다. 우리도 읍·면장은 물론 이장까지 국가에서 통할하는 지방선거로 선출하기를 기대한다. 그 정도는 되어야 이장직에 대한 처우와 자부심과 책임감이 정상화되지 않을까. 그 정도는 되어야 지방자치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태그:#마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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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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