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선생님. 정말 저희 부부에게도 아직 사랑이라는 게 있는 걸까요?"

상담심리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결혼한 내담자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듣곤 한다. 이런 고민을 들을 때면 결혼 18년 차인 나 역시도 다시금 우리 부부의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내담자들과 함께 '부부의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탐험하는 시간을 갖곤 한다.
 
유독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 요즘.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의 해인(김지원)-현우(김수현) 부부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해서 결혼했으나 데면데면한 이 부부의 모습에 나와 내담자들, 그리고 주변 부부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해인-현우 부부가 자신들에게 닥친 일들을 해결해 가는 과정은 '부부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어렴풋이 답을 던져주고 있었다.
 
<눈물의 여왕> 해인-현우 부부가 보여주는 '부부의 사랑'에 대해 살펴본다.
  
 부부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는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부부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는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 tvN

 
남편이 멋져 보인다니요?!
 
재벌가 딸인 해인과 평사원 출신의 변호사 현우는 3년 차 부부다. 둘은 사이좋은 척 지내지만, 서로 소원해진 지 이미 오래다. 특히 현우는 가부장제 하의 며느리처럼 살아야 하는 처가에서의 생활이 너무나 숨 막혀 죽을 지경이다. 물론, 해인에게 정이 떨어진지도 오래. 살길은 이혼 뿐이지만, '무서운' 처가 식구들 때문에 이혼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한다. 그러던 중 해인이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실을 알게 된 현우는 '살길'이 생겼음에 환호하고,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 해인에게 잘 해주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곤 해인을 세심하게 챙기기 시작한다.
 
한편, 해인은 갑자기 살뜰해진 현우가 의아하면서도 이런 현우를 보고 '멋있다' 느낀다. 그리고 비서에게 "결혼 3년 차 넘은 여자 중에 자기 남편보고 심장이 뛰고 그런 여자가 있을까?"라고 묻는다(3회). 이에 비서는 이렇게 답한다.
 
"남편이요? 어디 아픈 여자 아닐까요?."
 
이 대사에 나는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느꼈다. 하지만 곧 얼마나 많은 부부들이 서로를 힘들어하며 살고 있길래 이런 대사가 시원하게 들리는 건지 마음 한 켠이 씁쓸해져 왔다.
 
심리학적으로 본다면 이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사랑의 과정을 3단계로 나눈다. 첫 단계는 서로에게 끌리는 '사랑에 빠지는 단계'다. 그 후에 두 사람의 심리적 역동이 펼쳐지는 '사랑을 하는 단계'가 오고 이 단계를 지나면 안정감을 느끼는 '사랑에 머무는 단계'에 이른다. 이 중 상대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고 성적으로 끌리는 로맨틱한 시간은 '사랑에 빠지는 단계' 뿐이다. 그런데 이 시기는 길어야 18개월이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사랑에 빠졌을 땐 좋았던 것들이 하나 둘 '다름'으로 느껴지고 이로 인해 갈등하며 자신과 상대방을 새롭게 알아가는 '사랑을 하는 단계'가 도래한다.
 
이 두 번째 단계에서는 서로 다른 점을 그냥 보아 넘기기가 힘들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그림자(내가 억압하고 있는 나의 모습)를 상대방에게 투사하거나 내 욕구를 상대방에게 대신 채워달라고 요구하다 지치기도 한다. 이 시기는 '사랑에 빠지는 단계'보다 훨씬 길고 이런 갈등을 지나 '사랑에 머무는 단계'에 이르렀다가도 불쑥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결혼을 한 커플들은 '사랑을 하는 단계'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결혼하면 상대가 더 이상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서로의 차이에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부부의 사랑은 함께 견디는 것
 
그렇다면 부부가 사랑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걸 의미하는 걸까. 이에 대해 해인은 3회 은성(박성훈)과의 대화 도중 이렇게 답을 내어 놓는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행복한 걸 함께 하면서 달콤한 말을 해주는 게 아니라 싫어서 죽을 거 같은 걸 함께 견뎌주는 거야. 어디에 도망가지 않고 옆에 있는 거."
 
나는 이 대사에 무릎을 탁 쳤다. 해인의 말대로 서로를 둘러싼 환경과 내면의 다른 점들을 인내하고, 때로는 상대가 보여주는 나의 그림자들을 직시하는 고통을 견뎌내면서 그렇게 곁에 있어 주는 것. 그게 바로 부부의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경우 커플은 내가 갖고 있지 못한 상대의 다른 점에 끌린다. 하지만 결혼 후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서로의 다름을 더 크게 확인시키고 이 다른 점들 때문에 멀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많은 부부들은 이를 함께 인내하며 서로를 받아 들여간다.
 
드라마 속 해인과 현우도 그랬다. 배려심 많고 꼼꼼한 현우는 자신과는 달리 자기중심적인 해인에게, 해인은 자신과는 반대로 배려심 많은 현우의 모습에 끌렸을 것이다. 하지만, 현우가 발현시키지 못한 자기중심적인 면은 한편으론 현우가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는 단계가 끝나자 현우는 해인의 이런 모습을 참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너무 다른 가족 환경도 거리감을 보태주었을 테다. 이렇게 현우의 마음이 멀어지자 해인 역시 현우와 소원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비록, 현우가 한 때 이혼을 꿈꾸긴 했지만- 어떻게든 함께 하며 주변 환경들까지 같이 견뎌낸다. 데면데면하면서도 위기에 처했을 때 해인은 현우를 가장 먼저 찾고, 현우는 약한 모습을 보이며 기대는 해인을 진심으로 대한다.
  
 현우와 해인은 서로 가장 먼 자리에서 식사를 할 만큼 관계가 소원해진 상태였다.

현우와 해인은 서로 가장 먼 자리에서 식사를 할 만큼 관계가 소원해진 상태였다. ⓒ tvN

 
사랑은 의지다

이렇게 현우-해인 부부는 서로를 치열하게 미워하면서도 함께 견뎌내며 사랑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서로를 잘 견뎌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걸까. 드라마 속 현우의 모습은 이런 사랑에 필요한 것이 '의지'임을 잘 보여준다.
 
해인과 현우가 가까워진 것은 바로 현우가 해인에게 '잘 해주기로' 결심한 이후다. 현우는 비록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서긴 하지만 해인을 잘 챙겨주기로 다짐한다. 멀리 떨어져 먹던 식사 자리를 바로 옆으로 옮기고, 해인이 신는 구두와 옷차림 등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갖는다. 불편해 보이는 신발을 바꿔주기도 하고, 해인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순간에 곁에 있어 주려 애쓴다. 그러자 현우 마음에 다시 사랑의 감정이 다시 싹터 오른다.
 
현우가 달라지자 해인도 변한다. 현우의 살뜰함에 해인 역시 다시금 로맨틱한 감정을 느끼고 남편 현우가 '멋있다' 느낀다. 그리고 현우가 하는 말과 행동에서 자신에 대한 애정을 찾아내고 현우에게만은 보다 솔직해진다.
 
해인-현우 부부의 이런 모습은 심리학에서의 사랑의 정의를 상기시켜주었다. 잘 알려진 로버트 스턴버그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에서는 사랑의 3요소로 친밀감, 열정, 헌신을 꼽는다. 여기서 '헌신'은 의지와 노력으로 일궈가야 하는 부분이다. 저명한 정신분석의 스캇 펙 박사 역시 '사랑은 자신과 상대방의 심리적 성장에 함께 하려는 의지'라고 정의 내린 바 있다. 즉, 서로의 다름을 함께 견디는 부부의 사랑은 서로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려는 의지가 더해질 때 더욱 깊어진다 할 수 있다.
 
 소원한 가운데에서도 함께 버텨온 둘은 다시금 로맨틱한 감정을 갖게 된다.

소원한 가운데에서도 함께 버텨온 둘은 다시금 로맨틱한 감정을 갖게 된다. ⓒ tvN

   
"얘네 얼핏 사이 나빠 보이잖아. 근데 내가 보기엔 아니야. 서로 좋아해. 근데 둘 다 그걸 몰라. 그러니까 자꾸 엇갈리지."
 

6회 해인의 올케 다혜(이주빈)는 은성에게 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처럼 현실의 많은 부부들 역시 서로 견뎌주는 게 힘들어 좋아하는 걸 모른 채 지내고 있는 건 아닐까. 앞에서 언급한 사랑의 3단계에서도 갈등하고 싸우며 미워하기도 하면서 서로를 견뎌내는 두 번째 단계를 '사랑을 하는 단계'라고 부른다. 어쩌면 치열하게 싸우고 때로는 미워하면서도 서로를 버텨주고 있는 부부들이야말로 '찐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지금 부부 갈등을 겪고 있다면, <눈물의 여왕> 속 해인-현우 부부처럼 버텨주고 견뎌내는 것 자체가 사랑임을,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려는 의지가 더해질 때 견뎌내는 가운데에서도 로맨스가 싹틀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런 버텨주는 사랑엔 그 관계가 폭력이 아니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함도 함께 말이다.

덧) 부부 갈등이 폭력과 불평등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관계를 견뎌낼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눈물의여왕 김수현 김지원 부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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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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