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4시즌 여자프로농구가 '봄의 여왕'을 가리는 마지막 승부만을 남겨놓고 있다. 정규시즌 1위 청주 KB와 2위 아산 우리은행이 3월 24일부터 열리는 5전 3승제의 챔피언결정전에서 격돌한다. 1, 2차전은 KB의 홈인 충북 청주체육관에서 3, 4차전은 우리은행의 안방인 충남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치러진다.
 
양팀은 최근 10년 사이에서 챔피언결정전에서만 무려 4번째 만나게 됐다. 2014-15, 2017-18시즌에는 당시 왕조로 군림하고 있던 우리은행이 두 번 연속 승리하며 우승 반지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박지수가 리그 최정상급 선수로 성장한 2021-22시즌에는 KB가 챔프전에서 우리은행을 3-0으로 완파하며 설욕에 성공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2연패를 노리는 우리은행은 여자프로농구 통산 챔피언결정전 최다우승팀이다. 코로나19로 조기 종료되며 플레이오프 없이 우승이 인정된 2019~20시즌을 제외하고도 총 11회의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위성우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12년 이후만 놓고봐도 최근 11시즌 동안 8차례 정상에 올랐다. 통산 두 자릿수 우승 기록을 넘긴 팀은 우리은행이 유일하며, 이는 남성 스포츠까지 모두 포함해도 국내 프로리그 최다우승이다.
 
KB는 우승과 인연이 없었으나 박지수가 입단한 2016년 이후로만 2차례(2018-19, 2021-22) 정상에 올랐다. 챔프전 진출은 통산 9번째이고 이 중 박지수가 입단한 이후로만 5번째다.
 
KB는 박지수가 건강상의 문제로 정상 가동되지 못한 2022~2023시즌에는 4강플레이오프에도 오르지 못하며 체면을 구긴 바 있다. 절치부심하며 준비한 이번 시즌에는 27승 3패, 승률 9할, 사상 최초의 홈전승(15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압도적인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4강플레이오프에서 창단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오른 정규리그 4위 하나원큐를 3전 전승으로 가볍게 돌려세우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정규시즌부터 이어온 홈 전승 기록도 17연승까지 늘렸다.
 
우리은행도 KB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23승 7패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4강플레이오프에서는 '천적' 용인 삼성생명에게 1차전을 먼저 내주며 고전하기는 했지만 이후 내리 3연승을 거두며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성공했다. 5전 3선승제 기준으로 역대 플레이오프 1차전을 패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것은 우리은행이 사상 첫 번째(1/11)로 새로운 역사를 썼다.
 
KB와 우리은행의 정규리그 상대 전적은 4승 2패로 KB의 우위였다. KB는 올시즌 우리은행에게만 유일하게 두 번이나 패배를 당했다. 우리은행 역시 다른 4팀에게 당한 패배를 합한 것보다 KB에게 당한 패배가 더 많다.
 
챔피언결정전의 키플레이어는 역시 박지수다. KB의 전력에서 박지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챔프전에서 KB의 우위가 유력하게 예상되는 이유도 박지수의 존재 때문이다. 반면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박지수를 얼마나 막아낼 수 있느냐에 반전의 향방이 달려있다.

올시즌 공황장애와 부상을 딛고 건강하게 돌아온 박지수는 정규리그 29경기에서 평균 20.3점 15.2리바운드 5.4어시스트 1.8블록슛을 기록하며 득점, 리바운드, 블록슛, 공헌도 부문에서 모두 전체 1위를 휩쓸었다. 미자막 6라운드를 제외하고 5라운드까지 다섯 번의 라운드 MVP를 홀로 휩쓸기도 했다. 사실상 개인 통산 4번째 정규리그 MVP를 이미 예악해놓은 상태다.
 
하나원큐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박지수는 평균 19.7득점 16.3리바운드로 대활약을 펼쳤다. 큰 위기없이 3차전에서 시리즈를 일찍 끝내며 체력을 회복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까지 얻었다. 압도적인 신체 조건에 농구센스까지 겸비한 박지수의 존재감은 현재 여자농구에서는 사실상 초특급 외국인 선수를 홀로 보유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에 박지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강이슬, 허예은, 김민정, 염윤아, 심성영, 김예진 등이 든든하게 뒤를 받친다.
 
우리은행에는 베테랑 김단비가 있다. 전천후 포워드인 김단비는 평균 18.4득점으로 박지수에게 득점 2위에 올랐고, 9리바운드(5위), 5어시스트(4위), 1.72스틸(3위) 등 주요 부문에서 모두 5위권 이내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생명과 펼친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공수 양면에 걸쳐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승리를 이끌었다.
 
다만 삼각편대의 또다른 두 축이 되어야 할 박지현과 박혜진의 컨디션이 변수다. 박지현은 1차전 6점, 2차전 27점, 3차전 8점, 4차전 21점으로 경기마다 롤러코스터를 거듭했다. 베테랑 박혜진은 긴 부상에서 돌아왔지만 챔프전에서 얼마나 정상 컨디션을 회복할지는 미지수다.
 
냉정히 말해 우리은행에서 박지수를 정면으로 상대할수 있을 만한 힘과 높이를 지닌 빅맨은 없다. 정규시즌에서 우리은행이 KB를 상대하는 전술은 박지수를 최대한 골밑에서 끌어내고 끊임없는 드라이브인와 킥아웃으로 미스매치나 외곽 찬스를 만들어내는 패턴이었다.
 
하지만 KB도 이미 정규리그에서 우리은행의 전술에 충분히 적응했다. KB의 지역방어를 공략하지 못하거나 박지수의 컨디션이 정상이라면 우리은행으로서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우리은행으로서는 박지수에게 더블팀을 무리하게 가는 것보다 강이슬이나 허예은처럼 박지수에게 파생되는 찬스를 살려주는 보조 득점원들을 제어하는 것이 관건이 될 수 있다. 큰 경기 경험이 누구보다 풍부한 전술가 위성우 감독의 지략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여자농구 챔프전은 승부의 추가 한쪽으로 일찍 기운 경우가 많았다. 최근 7번의 챔프전 중 6번이나 정규리그 1위팀이 3전 전승으로 스윕승을 거뒀다. 2020-21시즌 챔프전만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정규리그 4위였던 삼성생명이 2위 KB를 3승 2패로 격침시키고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과연 많은 이들이 예상하는 대로 박지수가 있는 KB가 무난히 정상을 탈환할지, 우리은행이 최다우승팀다운 저력을 보여주며 이변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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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챔프전 박지수 김단비 W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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