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듄: 파트2> 포스터 이미지

영화 <듄: 파트2> 포스터 이미지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유혈과 패륜으로 얼룩진 그리스 신화의 세계를 소환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어릴 적 아동용으로 읽었던 이들이 훗날 성인용 판본으로 다시 접한 뒤 '동심파괴' 차원으로 충격을 받는 경우가 왕왕 생기곤 한다. 완역판으로 읽는다면 그 폭력성과 잔혹함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수위가 세기 때문이다. 살인은 그저 길에서 어깨만 부딪혀도 욱하고 행해지고, 별것 아닌 원한이 가문 전체가 죽고 죽이는 살육도로 번지는 건 다반사다. 여성은 소유물에 가깝고 약탈혼은 힘만 있다면 언제건 가능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근친상간은 신화라는 이유로 아주 관대하게 허용된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빨간 줄 쳐서 민감한 내용을 삭제할 경우 누더기가 되어 이야기가 연결되지 못할 지경이다.
 
그중 '끝판왕'이라 할 내용은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인간 가문들에서 발생한다. 제우스는 그 자신이 아버지 크로노스를 내쫓고 올림포스의 옥좌에 오른 주신이다[정작 크로노스도 아버지(제우스에겐 할아버지) 우라노스를 패륜으로 몰아냈다]. 그는 사방에 원한 가득한 신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에 최종전쟁을 대비해 자신의 세력을 늘려야 했다. 그 결과가 제우스의 '난봉'으로 무수히 자손을 늘린다는 목적으로 포장된 엽색 행각이다. 그렇게 수많은 반신반인 영웅들이 탄생한다. 그런 혈통 가운데 대표적인 가문으로 테베 왕가가 있다. 바로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로 유명한 집안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재혼한 데다, 그 자손들은 서로 죽고 죽이게 된 핏줄이다.
 
그와 쌍벽을 이루는 또다른 가문이 있다. 그 가문의 시조는 '탄탈로스', 제우스의 핏줄을 이어받고 신들의 만찬에 초대되는 고귀한 신분이었지만 오만방자한 나머지 신들의 지혜를 시험해 보겠다며 자기 아들을 죽인 후 스튜로 요리해 신들에게 대접한 자다. 이 패륜에 경악한 신들에 의해 '탄탈루스의 형벌'을 선고받아 영원한 갈증과 기아에 시달리게 된 존재다. 그의 자손들 역시 현대의 막장 드라마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가혹한 숙명에 처하게 된다. 그중에도 '아트레우스'란 이의 집안은 가히 독보적인 경지를 자랑한다. 그의 아들들이 바로 그리스 신화 후반부를 대표하는 트로이 전쟁의 주역,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다. 아트레우스의 며느리 중 하나는 정부와 짜고 남편을 살해한 뒤 아들과 딸에게 보복으로 죽임을 당한다. 또 한 며느리는 제우스의 후예인 영웅들이 몰살당하다시피 한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된다.
 
아트레우스 집안의 족보는 실제 당사자라면 정신줄 안 놓고 살 수 있을까 할 만큼 피비린내와 음모로 가득차 있다. 그런데도 해당 혈통은 고귀하고 위대한 왕과 용사 중 최상단에 속할 정도로 명성과 권위를 지닌다. 그리스 신화가 지니는 세속적 성격과 우화적 기능을 감안해 본다면 참으로 현실 권력에 대한 지독한 조소와 풍자인 셈이다. 설마 싶다면 다시 한 번 그리스 신화 완역판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몸서리쳐질 만큼 잔혹한 지옥도를 목격할 테니 말이다. 이렇게 대단한 아트레우스의 기문은 '아트레이데스'로도 통한다. 바로 <듄> 시리즈의 주역이라 할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시조인 것이다. 저릿하지 않은가.
 
복습: 왜 불모의 아라키스는 유혈과 원한으로 점철되었는가
 
 영화 <듄: 파트2> 스틸 이미지

영화 <듄: 파트2> 스틸 이미지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He who controls the spice controls the universe.
스파이스를 지배하는 자, 우주를 지배한다.

 
영화가 시작된다. 기이한 음성으로 관객의 귓가를 파고드는 대사가 낭독된다. 마치 유라시아 대초원 유목민의 악기 연주처럼 들리는 소리는 은하제국의 황제가 자랑하는 절대무력, 제국의 '칼'이라 할 존재인 정예부대 '사다우카'의 언어다. 전투종족인 그들에게 일상의 언어나 교양은 무의미하기에, 사다우카의 언어는 꼭 필요한 부분만 축약된 '피진' 계열 특징을 강하게 지닌다. 그런 사다우카의 언어는 짧고 간결하지만 묵직하다. 그래서 그들이 휘두르는 둔탁하지만 피할 수 없는 칼날처럼 강렬하게 꽂힌다.
 
<듄: 파트1>에서 모든 사건은 모래로 가득한 혹성 '아라키스'에서 비롯된다. 식물은 자랄 수 없고 지표면 전부가 사막화된 이 불모지는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하지만 이 초라한 변경행성은 우주적 규모의 은하제국에서 핵심적인 전략요충지다. 항성 간 문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자원인 '스파이스'가 우주 전체에서 유일하게 채굴되는 땅이기 때문이다. 이 별의 지배권은 은하제국 권력과 이권의 중추를 차지한다. 우주 최강의 정예군을 가진 제국의 황제는 다른 대가문들을 무력으로 억제하는 동시에 아라키스 관할권을 또 다른 무기로 삼아 라이벌 대가문들을 관리한다. 오랜 시간 이 별은 '하코넨' 가문의 관리하에 있었고, 이들은 무자비한 철권통치로 스파이스 채굴을 독려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원주민 '프레맨'은 하코넨 가문에 저항하며 수시로 반란을 일으킨다.
 
황제는 하코넨 가문에서 아트레이데스 가문으로 아라키스 관리를 넘긴다. 엄청난 이권이 걸린 아라키스 영지의 변경은 제국 전체에 파장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건 독이 든 성배다. 황제와 하코넨 가문은 모종의 음모를 담합해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몰락시키려 한다. 물론 상대도 이런 저의를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스파이스의 생산지를 차지하는 건 너무나 거대한 유혹이다. 위험을 감수하며 아라키스로 전봉된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스파이스 채굴을 가로막는 프레맨과 접촉하고 그들이 가진 막강한 군사력을 확인한다. 한편 철천지 원수지간인 하코넨과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잠재력을 두려워한 황제의 음모는 절정에 달한다.
 
마침내 내통자에 의해 방어막이 파괴되고, 하코넨의 대군과 황제가 파견한 무적의 사다우카가 전면 침공한다. 역부족으로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멸망하고 레토 공작도 살해된다. 하지만 가문의 후계자 폴과 모친인 제시카는 간신히 살아남아 동맹을 맺었던 프레맨에게 의지한다. 실제로 사막의 유목민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풍습, 이방인을 환대하는 전통 덕분에 이들 망명자는 의심과 불신 속에서도 비밀을 감춘 프레맨 부족에 받아들여진다.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폴은 목숨을 건 결투를 치르며 상대의 피와 목숨을 거둔 뒤에야 프레맨의 일원이 된다. 여기까지가 2021년 공개된 <듄: 파트1>의 기본 줄거리다.
 
가문의 복수와 식민지인의 독립투쟁이 한줄기로
 
몰락한 명문의 생존자들의 지상과제는 단 한 가지다. '복수'다. 하지만 막강한 하코넨 가문과 배후의 황제에 무엇으로 대항할 수 있을까? 오히려 목숨 부지하기도 만만하지 않은 지경이다. 다시 아라키스를 차지한 하코넨 가문은 혹시 모를 아트레이데스 잔존세력을 처단하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고 계속 수색대를 보낸다. 소년과 미망인은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이들에게 하코넨이라는 공동의 원수를 둔 전투종족 프레맨은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건 물론 한편으로 만들어야 할 대상이다.
 
물론 프레맨은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공통목표가 있긴 하지만 정작 상대방과 동맹해봐야 현재로선 별다른 이점이 없다. 오히려 더 가혹한 탄압에 직면할 뿐이다. 정치적 거래에는 상호교환이 필수다. 일단 폴은 프레맨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노력한다. 사막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잉여인력은 가혹한 생활조건 상 금지되기에 '한 몫'을 할 수 있다는 증명을 받아야 한다. 폴은 평범한 신참 프레맨 전사로, 모친인 제시카는 부족의 장로라 할 '대모' 직책으로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한데 프레맨 부족에겐 기이한 신앙이 있다. 이 불모의 척박한 땅에서 고통 당하는 자신들에게 언젠가 외계에서 온 이방인이 구원자로 와서 사막을 녹색의 행성으로 만들어준다는 메시아 신앙이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몰락한 후예들은 자신이 구세주가 되어야만 생존에 급급하는 것을 넘어 '군대'를 재건하고 복수를 할 힘을 얻을 수 있다.
 
2부는 여러 고민과 제약 속에서 멸망한 가문의 잔예들이 복수를 위한 세력을 키워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폴은 프레맨 중에서도 특출한 전사들로 구성된 '페다이킨' 게릴라 부대의 일원으로 훈련받고, 차례로 난제에 도전해 실력을 인정받는다. 일단 출발은 모래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한 '보법' 숙지다. 실제 사막의 유목민들이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익힌 지혜인 불규칙한 보행법을 차용한 이 보법을 익히는 것부터 출발해 스파이스 채굴을 방해하기 위한 게릴라전, 그리고 진정한 아라키스 별의 주인이라 할 거대한 모래벌레 '샤이 훌루드' 조종술까지 빠른 시일에 숙지한 폴은 마침내 프레맨 이름을 얻고 강인한 전사로 인정받는다. 그의 이름은 '무앗딥', 강대한 무용에 어울리지 않게 이 사막에서 가장 미약한 존재, 길잡이 쥐의 이름을 따왔다. 하지만 그 이름은 동시에 '길을 가리키는 자'라는 심대한 뜻도 겸비한 것이었다.
 
프레맨은 별의 지배자 하코넨 가문이 파악한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강성한 부족이었다. 하코넨과 충돌하는 북부의 프레맨은 소수에 불과하고, 불모지로 알려진 남부에는 거대한 집단이 별개로 존재한다. 이들은 하코넨과 일상적으로 충돌하지는 않지만, 부족에 전승되어 온 구세주 신앙을 맹신하는 근본주의자에 속한다. 부족의 '대모'가 된 제시카는 복수를 위한 1단계로 폴이 그들의 구세주 '마흐디'가 되어야 한다고 폴을 설득하지만,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들의 신앙을 이용하는 것을 망설이는 폴은 한사코 일개 전사로 남으려 한다. 모자의 방법론은 평행선을 달리고 갈등은 깊어진다.

그런 가운데에도 페다이킨 전사 '챠니'와 폴의 사랑은 깊어지고, '무앗딥'이라는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은 하코넨 가문의 골칫거리가 됨은 물론, 스파이스 생산에 차질이 되어 제국의 황제 귀에도 알려진다. 제국 질서의 균형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마침내 황제는 아라키스로 출진한다. 복수의 때가 도래한다.
 
지구 현대사와 겹쳐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니다
 
 영화 <듄: 파트2> 스틸 이미지

영화 <듄: 파트2> 스틸 이미지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향신료를 가진 자가 유럽을 지배한다!"
 
십자군 전쟁과 대항해 시대의 공통 원인은 중세 유럽의 필수자원, 향신료(spice)의 원활한 확보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네 마트나 편의점만 나가도 후추나 설탕 같은 여러 조미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현대인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그 당시에는 금이나 은과 맞먹는 고가를 자랑했던, 하지만 일상생활 곳곳에 빠질 데 없는 물자였기 때문이다. 유럽만이 아니다. 임진왜란 직전 왕래한 일본 사신들이 과시적 목적으로 연회 자리에서 후추 한 줌을 뿌리자 접대하던 관기들이 서로 줍겠다며 소란을 일으킨 기록처럼 머나먼 이국에서 어렵게 구해온 향신료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듄> 시리즈에서 스파이스라는 각성효과를 지닌 물질은 지구 역사의 향신료를 능가하는 효용과 희소가치를 지닌 존재다. 그렇기에 '스파이스를 장악하면 우주를 지배할 수 있다'는 수식어는 빈말이 아니라 실제인 셈이다.
 
이 우주에서 가장 특별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원의 산지를 차지하는 건 제국에서 가장 큰 이권이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향한 질시는 아라키스 영유권에서 비롯된다. 여기에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프레맨 군대에 주목했기에, 단지 부를 축적하는 데 집착한 전임자 하코넨에 비해 오히려 제국의 황제에겐 더 반역의 기미로 간주되었고 그 결과로 참화를 겪는다. 다른 대가문에 비해 좀 더 전략적인 데다 자비로운 통치를 행하던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원주민과의 타협을 택했기에 파생된 나비효과다.
 
프레맨은 강력한 전투종족이지만 흩어져 생활하는 자유민 집단이라는 점이 그들의 잠재력을 한데 모으는 데 제약이 된다. 그런 염원 때문인지 이들은 구세주 신앙을 갖고 언젠가 복수와 독립을 꿈꾸며 가혹한 삶과 지배자의 억압을 견뎌왔다. 몰락한 명문의 잔당은 자신들이 프레맨의 오랜 숙원을 충족시켜주는 대신, 그들의 희생을 교환하려 한다. 중세 봉건제도의 이상적인 조건을 구현하는 셈이다.

제시카는 그것이 정당하며 당연한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예지력을 가진 폴은 그 결과가 소박한 독립과 자유를 넘어 우주적 항쟁과 거대한 희생의 참화로 치달으리라 전망한다. 그래서 복수를 꿈꾸면서도 자신이 '마흐디'로 인정받아 구세주로 떠받들여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이 과연 옳은 결정일까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의 숙명은 점점 폴을 옥죄어온다. 그리고 군사적 승리와 함께 필수적인 정치적 거래를 위해 그는 연인인 챠니와의 사랑을 포기해야 할 미래를 거부하고 싶다.
 
그러나 결국 우주적 범위의 중세적 세계관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운명을 거스를 순 없다. 프레맨 역시 단일한 집단은 아니다. 북부의 프레맨은 하코넨에 맞서 게릴라 투쟁을 거듭하지만 그만큼 현실에 대한 정치적 판단, 그리고 자유민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전사 공동체 성격을 지닌다. 하지만 오랫동안 감춰진 프레맨의 주력인 남부 근본주의자들은 구세주가 강림하기만 기다리며 힘을 비축하고 있기에 오히려 압제에 맞선 투쟁 일선에는 나서지 않아 왔다. 남부 출신으로 폴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후견하던 '스틸가'가 그러한 프레맨의 이분된 개성을 상징하는 존재인 셈이다. 마치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구세주 '네오'를 믿던 '모피어스'의 아라키스 판이라 봐도 될 법하다. 그가 보여주는 메시아에 대한 갈망과 희생의 각오는 숭고한 동시에 섬찟한 대목이기도 하다.
 
결국 폴은 자신의 생존과 가문의 복수를 위해 프레맨의 구세주로 일떠선다. 그리고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고,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1부에서 몰살 당하고 불태워지던 것의 거울처럼 원수들을 도륙한다. 귀족의 책무인 양 혈육과 칼부림을 거쳐 피를 흘려야만 한다. 하지만 원한은 원한을 낳고, 뒤엉킨 핏줄은 혼란을 낳는다. 그 결과는 '제국의 역습'처럼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다. <듄: 파트2>는 그런 가혹한 운명이 브레이크 없이 가속하는 장대한 파멸의 서사시로 흘러간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조상들이 겪었던 역사의 우주적 재현인 셈이다.

현실 지구 역사의 거대한 은유
 
 영화 <듄: 파트2> 스틸 이미지

영화 <듄: 파트2> 스틸 이미지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아바타> 시리즈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연상시키는 외계행성 '판도라' 원주민들과 자원 획득 및 이주를 위해 몰려온 외계의 침략자 지구인 간의 대립을 기본 설정으로 펼쳐지는 연대기이다. 누가 봐도 제임스 카메론이 북아메리카 원주민 학살과 차별의 실제 역사를 비틀어 묘사한 것임을 간파할 수 있다. 그런 이들에게 <듄> 시리즈는 프레맨의 실제 모델이 된 북아프리카 원주민 베르베르 부족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침략에 자유를 빼앗기고 차별당하던 그들은 제국주의 식민지 치하를 벗어난 후에도 불모의 사막에서 발견된 석유 덕분에 강대국의 간섭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그들의 배타적인 투쟁과 성향 때문에 우리는 흔히 그들을 무슬림 극단주의자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듄: 파트2>의 몇몇 장면은 마치 지구의 과거와 현재 아랍권 저항투쟁을 자연히 떠올리게 만든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건 종교와 구세주에 대한 영화 속 표현이다(물론 원작에서 거의 차이 없이 각색한 것이다). 여기에서 대부분의 역사적 평가는 이 모든 상황을 관찰자 겸 행위자로 참여하게 되는 숙명을 지녔던, 황제의 딸 이룰란 공주의 기록을 빌어 소개된다. 마치 중세 유럽 최초의 여성 역사가로 알려진 동로마 제국 공주 안나 콤네나를 연상케 하는 차용이다. 안나 콤네나는 십자군 원정 시기 동로마 황제로 유명한, 제국의 부흥자로 격동의 시기를 헤쳐간 부친 알렉시우스 1세의 전기 <알렉시아드>를 완성한 인물인데, 이룰란 공주 역시 <듄>의 연대기 핵심부를 수십 편의 저작으로 정리한 존재다. 시리즈의 문제의식, 즉 '초인'의 등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주제에 대해 객관적 관찰자의 해설은 일방적인 신격화에 대한 경계라는 고민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여기에 감독은 원작에 비해 보다 개성이 부각된 '챠니'의 언행을 통해 메시아가 되어가는 연인 폴에 대한 날선 비판을 강화한다. 갈등은 있어도 구세주의 충실한 연인이자 숨겨진 반려로 설정되었던 그는 이번 2부에서 폴을 사이에 두고 제시카와 우주적 고부갈등을 벌인다. 제시카는 정해진 운명을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챠니는 그 운명 때문에 가난하고 고단한 삶이지만 자유민으로 서 있던 프레맨이 거대한 '전쟁기계'화 되어 그들의 라이벌 '사다우카'처럼 종속된 노예로 전락할 것이란 의심을 굳혀간다. 
 
여기에서 감독은 이룰란 공주의 기록을 빌어 구세주와 종교가 맹신으로 치달을 때 위험을 설파한다. 황제와 공주는 아라키스의 혼란을 염려하며 대화를 나눈다. 부친인 황제가 변방의 일상적 반란으로 치부할 때 (그 자신이 고도로 훈련된 비밀결사 '베네 게세리트' 일원이기도 한) 공주는 종교는 억압으로 오히려 더 강경해지고, 구세주는 사라져도 제2, 제3의 구세주가 등장해 신비주의로 휩싸이는 바람에 더 절대적 존재가 될 것이란 비관을 드러낸다. 공주의 통찰은 곧 영화 속 폴의 행보를 고찰하는 일차적인 전제로 기능한다. 물론 이런 통찰은 지난 세기, 그리고 지금 현재도 지구 인류가 겪고 있는 모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듄>의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가 이 거대한 연작을 시작한 건 1960년대 초반이다. 이 시기는 식민지 독립투쟁과 반제국주의 운동이 절정에 달하던 시절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원작의 충실한 영상화에 초점을 둔 것은 익히 여러 경로로 알려졌다는 점에서 반세기가 넘게 지난 오늘날, 원작에 기반을 둔 세계관의 한계가 노출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어느새 잊어버린 현대사의 한 단락에 조응하는 설정은 재조명되어야 할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그 시절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연표만 한번 살펴본다면 작가가 어떤 심정으로 당대 세계를 조망했을까 파악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시각적 황홀경이 영화언어로 승화되는 가상신화
 
 영화 <듄: 파트2> 스틸 이미지

영화 <듄: 파트2> 스틸 이미지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구구절절 <듄: 파트2>의 전개와 해설을 덧붙여봤지만, 관객에게 소구될 결정적 요소는 드니 빌뇌브가 상상을 현실적 이미지로 구현한 압도적인 감각의 경지다. 당장 버석버석 모래가 씹힐 만큼 현실적인 모래혹성의 질감과 함께 신적 존재이자 이 별의 진정한 주인이라 할 모래벌레 '샤이 훌루드'의 초월적 실체, 그리고 그 거대함에서 파생되는 '숭고함'의 이미지는 보는 이의 입을 딱 벌어지게 할 경이로운 체험으로 전이될 테다. 후반부에 거듭되는 전쟁 스펙터클과 함께 미래 SF영화에 어울리지 않아 보여도 설정상 깊은 의미를 지닌 일대일 격투의 유혈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그 시각적 체험의 경이 속에서 기원이 된 현실 지구의 여러 풍경을 추출해낼 테다. 사막 유목민의 지혜가 축적된 프레맨의 생활방식, 우크라이나 반농반목 자유민 집단에서 유래된 '카자크' 종족의 거주지에서 이름을 얻어온 프레맨 마을 '시치'의 디테일한 묘사, 여러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신비주의 종파 원형질을 담은 마흐디 신앙의 형성과정, 우리 선입견과는 달리 고도로 정교했던 중세 군주와 왕국들의 정치외교 구도가 고스란히 이 거대한 가상신화에 담겨 있다.
 
2부에서 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많은 부분이 아직 소개되지 않은 점은, 드니 빌뇌브가 30년 전 데이비드 린치가 끝내 구현하지 못했던 내용,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 2권 <듄의 메시아>(드라마 버전은 영상화된 적이 있다)를 3부로 편입해 완성하려는 야심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원작 팬이라면 가슴 설레는 지점인 동시에, 원작에 실린 거대한 우주적 규모의 정략과 음모가 제대로 영상화될 것이란 기대를 증폭시키는 부분이다. 지금껏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또 다른 거대세력, 대가문들의 연합체가 선보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음모와 이를 헤쳐나가며 상처받고 응전하는 주인공들의 지난한 항쟁이,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천명한 것처럼 '전쟁은 피흘리는 정치,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라는 명제를 증명할 것이다.
 
데이비드 린치의 <듄>은 사실 그리 나쁘지 않은 작업이었다. 다만 원작의 무게감을 소화하기 역부족이었을 따름이다. 보다 나은 조건에서 출발한 드니 빌뇌브의 <듄> 3부작은 (비록 온전히 스튜디오 자본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지언정) 원작의 기본적인 주제의식과 세계관 설정을 충분히 만족시키며 순항 중이다. 이제 영화 속 프레맨들이 메시아를 기다리며 고단한 현세를 견뎌온 것처럼 3부의 도래를 기다려야 할 뿐이다. 아마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예산과 자원을 투입한 예술영화 연작일 <듄>이다.
 
비록 <반지의 제왕>이나 <매트릭스> 시리즈와는 달리 그 끝이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고대 그리스로부터 물려받은 피의 숙명과 골육항쟁으로 점철된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린치의 영화에선 설명되지 않았던 친족살해의 고리가 마침내 2부에서 본격적으로 구현되기 시작한다. 폴의 닮은꼴이자 '아치 에너미'라 할 페이드 로타의 등장과 대립이 그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물론 비극은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아가멤논의 자손들이 봉착한 딜레마는 우주적으로 재연된다. 그 장대한 비극의 완성을 기다리며. 또한 초인의 위험성을 예지했던 현자의 통찰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다만 거대한 원작 연대기의 영상화 과정에서 필연적인 영화적 각색과 축약 덕분에 진입장벽이 좀 있는 건 어쩔 도리가 없는데 이는 국내에 출간된 황금가지 출판사의 연대기를 예·복습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는 극복 가능하기에 추천하는 바이다.
 
<작품정보>
듄: 파트2 Dune: Part Two
2024│미국, 캐나다│액션
2024.02.28. 개봉│165분│12세 관람가
감독 드니 빌뇌브
주연 티모시 샬라메(폴 아트레이데스 역), 젠데이아(챠니 역),
레베카 퍼거슨(레이디 제시카 역)
출연 조슈 브롤린(거니 할렉 역), 오스틴 버틀러(페이드 로타 하코넨 역),
플로렌스 퓨(이룰란 공주 역), 데이브 바티스타(글로수 라반 역),
크리스토퍼 월켄(황제 샤담 4세 역), 레아 세두(레이디 마고트 역),
스텔란 스카스가드(블라디미르 하코넨 남작 역), 샬롯 램플링('교모' 모히암 역),
하비에르 바르뎀(스틸가 역), 안야 테일러조이(엘리아 아트레이데스 역)
제작 케일 보이터, 조셉 M. 카라치올로 Jr., 마리 페어런트
각본 존 스파이츠, 드니 빌뇌브
원작 프랭크 허버트
촬영 그레이그 프레이저
음악 한스 짐머
편집 조 워커
수입/배급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드니빌뇌브 티모시살라메 젠데이아 레베카퍼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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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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