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서커스 소녀 심주희 양 사건'은 전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유흥업소에서 강제로 공연하다가 탈출했다는 11세의 소녀는 경찰서에서 어른들을 상대로 상식을 벗어난 기행을 저지르며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녀가 오랫동안 나쁜 어른들에 의하여 상습적인 폭행과 학대, 착취를 당했다는 숨겨진 사연이 드러나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 시절 그 소녀는, 왜 그토록 비극적인 삶에 휘말려야만 했을까. 그로부터 33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과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
 
 SBS 실화 스토리텔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관련 이미지.

SBS 실화 스토리텔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관련 이미지. ⓒ SBS

 
2월 15일 방송된 SBS 실화 스토리텔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서는 '서커스 소녀,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편을 통하여 심주희 양 사건을 재조명했다.
 
1991년 10월, 서울 북창동의 한 봉제공장으로 갑자기 한 소녀가 뛰어들어온다. 소녀는 어린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진한 화장을 하고, 몸에 달라붙는 체조복 같은 괴상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소녀는 직원들에게 자신을 숨겨달라고 간청했다. 잠시후 한 남자가 아이를 추격하여 공장으로 찾아온다. 공장 직원들은 두려움에 떠는 소녀의 얼굴에서 심상치 않은 두려움을 읽고 일단 그녀를 숨겨줬다.
 
다음날 소녀는 경찰에 신고하여 보호 차원에서 남대문경찰서로 인계된다. 그런데 소녀의 태도가 달라진다. 아이는 "입 아파 정말!""이놈의 기자!" "시끄러워"라며 어른인 형사와 기자들에게 괴성과 폭언을 퍼부으며 마구 신경질을 부렸고, 신원과 거주지를 묻는 질문에는 모른다며 일절 응답하지 않았다.
 
당시 소녀에게 욕을 먹은 취재기자였던 최일구 전 앵커는 "키가 일단 작고 특히 하체가 발육이 좀 비정상적으로 보였다. 단어나 어휘 선택이 제대로 교육을 못 받은 여자아이구나. 뭔가 첫눈에 봐도 문제가 있는 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녀의 첫 인상을 떠올렸다. 그럼에도 형사들은 과자를 건네고 TV를 보여주며 달래가면서 소녀가 천천히 마음을 열 수 있게 기다려줬다.
 
소녀가 밝힌 이름은 심주희, 당시 11세로 나이에 비하면 크게 왜소한 체구였다. 그녀는 유흥업소에서 강제로 서커스 공연을 하다가 도망쳤다고 밝혔다. 1990년대에 이르러 서커스는 국내에서 TV에 밀려나며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주희는 그중 한 단체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주희가 서커스단에서 도망친 것은 이미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형사들은 강제로 공연을 시켰다는 서커스단의 단장을 소환했다. 단장은 며칠전 봉제공장으로 주희를 쫓아왔던 바로 그 남자였다.
 
단장은 경찰서에 와서 자신이 주희의 할아버지라고 주장했다. 단장이 제출한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에는 서류상 주희와 단장이는 부녀 관계로 되어있었으나, 단장의 딸이 결혼도 하지 않고 낳은 아이라 자신의 호적에 올렸다고 주장했다. 또한 단장은 주희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며 툭하면 사고를 친다고 주장했다.
 
단장은 당시 유명 코미디언의 친형으로 밝혀졌고, 신원도 확실했다. 난감해하던 형사들은 문득 단장이 온 이후 주희의 행동이 크게 달라진 것을 포착했다. 경찰서를 뒤집어 놓던 주희는, 단장이 온 후로는 기가 팍 죽어서 계속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형사들은 집에 가자고 타이르는 단장 부부를 바라보는 주희의 눈속에 깊이 새겨진 공포감을 발견했다.
 
정상적이지 않는 가족관계임을 직감한 형사들은 주희를 다른 방으로 데려가 진실을 확인했다. 형사들의 설득에 주희는 비로소 자신이 겪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기 시작했다.
 
주희는 4살 때부터 자물쇠가 굳게 잠긴 1.5평 남짓한 골방에서 7년을 살아야 했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었고 문 밖에는 대형 맹견들이 3마리가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주희는 또래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지도 못하고 밤낮으로 하루 네 번 지하실에서 서커스 훈련을 해야했다. 밤에는 유흥업소 무대에 서 일을 하고, 낮에는 집안일까지 하며 하루에 수면 시간은 단 2시간에 불과했다.
 
심지어 제공되는 식사는 하루 2끼에 밥과 김치만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다. 이로 인하여 주희는 또래 평균 몸무게(145cm, 38kg)의 절반 수준인 20kg의 몸무게에 신장은 120cm에 불과했다. 가금씩 서커스에서 실수라도 하면 나무 몽둥이로 매일같이 무자비한 폭행을 당해야 했다. 
 
단장이 주희를 이렇게까지 학대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몸집이 작아야 어려운 묘기를 할 수 있고 돈도 더 잘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단장은 아이를 가둬두고 제대로 먹이지도 재우지도 않고 서커스단의 원숭이처럼 부려먹었던 것이다.
 
조사를 받던 단장 부부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결백을 주장했다. 그들은 아이를 사랑으로 키웠고, 자물쇠를 채워 감금한 이유는 이웃공장의 남자들로부터 주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억울함을 호소하던 단장 부인은 거품을 물고 쓰러지기도 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단장은 주희의 친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애초에 혈연관계가 아니었던 것. 오갈 데 없는 주희를 데려다 서커스를 시킨 것이었다.
 
심지어 단장은 서커스 단원이었던 10대 소녀들에게 여러 차례 잔혹한 성폭행을 저질렀던 것이 드러났다. 서커스의 인기가 떨어지고 수입이 줄자 자구책으로 어린아이들을 유흥업소에 출연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갈취한 출연료만 당시 액수로 5억여원에 이르는 거액이었다. 아이들은 좁은 방에 가둬두고 착취하면서 자신은 번듯한 집에 살며 호의호식해 왔던 것이 밝혀졌다. 만일 주희가 도망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참극은 끝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단장은 아동복지법 위반과 강간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다음 과제는 주희의 친부모를 찾아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주희는 어릴 때라 자기 부모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했고 단서도 없었다. 주희의 사건이 TV 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으나 주희의 부모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없었다.
 
당시에는 아동보호시설이 부족하여 주희를 맡아줄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다. 형사들은 고민 끝에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주희를 집에서 재우기로 했다 .주희는 낮에는 경찰서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이면 형사의 집으로 가서 잤다. 졸지에 형사들이 단체로 한 아이를 돌보는 보모 역할이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거칠고 난폭하던 주희의 모습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웃음을 되찾은 주희는 형사들을 '아빠'라고 친근하게 부르면서 어리광을 부리고 애교를 떨었다. 당시 형사들밖에는 의지할 곳이 없었던 주희로서는 살기 위한 본능적인 반응이기도 했다. 자기를 때리지 않는 어른을 만난 것은 형사들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어느새 형사들도 어느새 정이 들어 주희를 친딸처럼 아껴줬다.
 
형사들은 부모가 끝내 나타나지 않자 대안으로 입양을 결정했다. 그러나 어릴적부터 또래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고 밤무대 공연을 다니면서 어른들의 세계를 너무 일찍 알아버린 주희는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말투와 행동이 전혀 달랐다. 형사들은 주희가 일반 가정에 입양되었다가 혹시나 파양당할 것을 우려하여 일단 종교 단체인 명동 가톨릭 회관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임시 입양처가 정해지자 주희는 이별을 아쉬워하며 "여기 계신 아저씨들은 저의 친아빠 같으시며 제가 버릇없이 한 것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겠습니다. 주희 드림"이라는 편지를 남겼다. 한글을 모르는 주희를 대신하여 막내 형사가 대신 글을 받아적었다고 한다. 형사들은 주희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며 원피스와 안경 등을 선물했다.
 
1991년 10월 22일, 경찰서 생활 11일만에 떠나게 된 주희는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가고싶지 않다며 떼를 쓰는 주희를 바라보며 정이 들어버린 형사들도 눈물을 훔쳐야 했다. 주희는 형사들에게 '엄마를 찾아달라'면서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놨다고 한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1997년, 주희의 행적이 발견된 곳은, 뜻밖에도 경기도 오산의 한 정신병원이었다. 좋은 가정에 입양돼서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던 주희는 어쩌다 또 이곳까지 오게 된 걸까.
 
주희는 천주교 단체에 보내졌으나 처음부터 잘 적응하지 못했다. 당시 주희의 건강진단 보고서에는 "심한 학대로 인해 공격적이고 대인기피증 불신증이 심해 시급한 입양이 요구된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렸고, 눈을 뜨면 다시 자신이 학대받았던 곳으로 돌아갈까 봐 두려움에 휩싸였다. 겨우 잠에 들면 매 맞는 꿈을 꾸곤 했다고 한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주희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한동안 방황의 시간을 거듭하던 주희는, 마음을 추슬러 미용 기술을 배우기 위해 직접 경기 여자 기술 학원에 입소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주희에게는 기구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1995년 8월 21일 새벽, 경기 여자 기술학원에 방화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학원 운영 방침이 강압적이라고 생각한 일부 원생들이 탈출을 위해 방화를 저지른 사건으로 138명 원생 중 40명이 사망하고 20명이 중상을 입는 대형 화재 사건이었다. 하필 그 현장에는 주희도 있었다. 특히 사상자가 많았던 2층의 옷장 안에 숨어있었던 주희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중환자실에서 열흘 만에 깨어났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몸상태는 회복되었으나 정신적 충격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당시 주치의는 "'나는 왜 이렇게 기구한가' 하면서 세상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라면서 당시 주희의 심각했던 상태를 설명했다. 꿈도 희망도 모두 잃어버린 주희는 세상을 원망하며 폐쇄병동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한동안 절망에 빠져있던 주희는 문득 엄마를 찾고싶다는 소원을 고백했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주희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옛 인연이 있던 형사들과 방송국까지 나서서 도움을 주기로 했다.
 
오랜 수소문 끝에  주희의 진짜 이름이 어질 현, 구슬 주의 '지현주'라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씁쓸하게도 주희라는 이름은 그녀를 착취한 서커스단 단장의 아내가 입버릇처럼 그녀에게 '주의해라'고 말하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한 경찰서에 자신이 현주의 엄마라고 밝히는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증거로 전해진 두장의 사진에는 어릴 적의 심주희, 지금의 지현주와 똑 닮은 여자 아이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1998년 5월 지현주 모녀의 극적인 상봉이 성사됐다. 친모의 주장에 따르면 17년 전 현주의 친모는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며 결별했다. 그녀가 외지로 돈을 벌러 나간사이에 친정에게 현주를 비롯한 아이들을 출소한 전 남편에게 보내버렸다고 한다.

남편은 그로부터 불과 1년 만에 사망했다. 친모는 시댁에서 아이들을 부잣집에 입양시켰다는 말을 듣고 아이들을 되찾는 것을 포기해야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현주는 엄마를 되찾고 새로운 가족들이 생긴데 진심으로 기뻐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친엄마를 만난지 13년만인 2011년 한 방송에 다시 출연한 지현주는 "서커스단에 있을 때가 훨씬 나았다"라고 고백하여 충격을 안겼다.

알고보니 감동적인 재회를 한줄 알았던 엄마는 카메라가 꺼진 이후 돌변하여 틈만 나면 폭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흉기로 현주를 다치게 한 적까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친모가 뒤늦게 현주를 찾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현주가 심주희 시절 받았던 후원금과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보상금을 탐내서 가로채려고 한 것이었다. 현주가 재회 두 달 만에 엄마의 집을 나온 이후에도 친모는 현주를 집요하게 따라오며 괴롭혔다. 심지어 현주의 결혼도 친모의 강요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친모는 2007년 세상을 떠나면서도 현주에게 수천만 원의 빚을 대신 갚아달라는 서류만을 남겼다고 한다.

13년의 시간, 44세가 된 그녀
 
 SBS 실화 스토리텔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관련 이미지.

SBS 실화 스토리텔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관련 이미지. ⓒ SBS

 
그로부터 다시 다시 13년이 흘렀다. 제작진은 이름을 바꾸고 힘들게 살아온 44세의 어른이 된 그 시절 서커스 소녀를 다시 만났다. 다행히 그녀는 현재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면서 새로운 가정까지 꾸려서 잘 지내고 있다는 근황을 알렸다.
 
<꼬꼬무>를 보면서 언젠가 자신도 한번 나오고 싶었다는 그녀는, 어린 시절 자신의 영상을 돌아보며 "형사 아빠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고백하여 시청자들을 뭉클하게 했다. 그녀가 경찰서에서 보낸 시간은 11일에 불과했지만 "진흙탕에 있는 나를 꺼내서 예쁘게 만들어줬던" 형사 아빠들과의 기억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33년 만에 형사 아빠와 주희의 감동적인 재회도 성사됐다.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 주희는 "감사하다고 꼭 말하고 싶었다"라며 앞으로는 연락하면서 지내고 싶다고 그동안 못전한 고마움을 털어놨다. 친딸처럼 따뜻하게 주희를 안아준 형사 아빠 역시 손을 맞잡고 "앞으로는 희로애락을 같이 공유하자"며 미소를 전했다.
 
평생에 한번도 극복하기 힘든 숱한 시련들을 모두 이겨내고 당당히 다시 일어선 서커스 소녀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그녀는  과거의 자신을 향해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 이겨내고 잘 살아낸 저 자신에게 손뼉 쳐주고 싶다"라며 비슷한 아픔을 간직한 이들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꼬꼬무 심주희사건 서커스소녀 실화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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