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랜75> 포스터.

영화 <플랜75> 포스터. ⓒ 찬란

 
인구는 나라의 국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다. 많은 인구로부터 나오는 인간의 노동력은 곧 국력을 뜻하고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하기도 했다. 이에 국가는 국민들을 보호하고 국력을 유지해 왔다.

그렇다면 노동력을 잃은 인간은 국가에 어떤 의미일까?

우리나라의 출생률은 0.7명대로 매년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이에 정부는 신혼부부에게 청약을 통해 집을 제공하며 다자녀 가정에는 다양한 복지 혜택을 주고 있다. 아직 큰 효과를 일으킨 정책은 없지만 여러 가지로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 고령인구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7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4% 이상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오는 2025년에는 20%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렇다 할 고령사회에 대한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2055년 고갈될 것으로 추정된다.

지극히 현실적인 디스토피아
 
 영화 <플랜75> 스틸 이미지.

영화 <플랜75> 스틸 이미지. ⓒ 찬란

 
<플랜75>는 가까운 미래 일본 정부에서 75세 이상 고령자에게 안락사를 적극 권하는 정책이 시행된 후 상황을 그린 영화다. 정책의 이름 역시 '플랜75'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노인들에게 정부는 10만 엔을 지원하고 편하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상담도 진행한다.

78세 여성 '미치'는 갑작스러운 명예퇴직 후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노인에게 허락된 일자리는 거의 없다. 게다 살고 있던 집마저 철거 위기에 놓이고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야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지친 미치를 반겨주는 곳은 '플랜75' 상담소뿐이다. 고심 끝에 '플랜75'를 선택한 미치는 차근차근 삶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플랜75>에는 죽음을 고려하는 노인 미치 외에도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들도 나온다. '플랜75' 담당 부서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히로무'는 '플랜75'를 신청하는 노인들에게 시스템을 안내하고 있다. 그러던 중 오래 전 연락이 끊어진 삼촌의 신청서를 받게 된다. 콜센터 직원 '요코'는 '플랜75'를 신청한 이들에게 전화로 상담을 진행한다. 상담을 통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자 한다. 이주노동자 '마리아'는 아픈 딸을 위해 '플랜75' 이용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일을 시작한다.

그들은 직업적이지만 '플랜75'와 크게 연관돼 있고 노인들의 죽음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초반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진행하던 이들도 갈수록 자신의 행위가 맞는 것인지 도덕적 갈등에 놓이게 된다. 
 
 영화 <플랜75> GV 현장.

영화 <플랜75> GV 현장. ⓒ 김정현

 
이 상황을 <플랜75>의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관객들과 영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GV 상영을 통해 "고령자뿐만이 아니라 그런 제도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 역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젊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지만 그 끝은 이것이라는 점이 점점 공포로 다가오며 모두에게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스틸휴먼, 사회에서 나는 아직 인간인가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플랜75>로 재작년 제75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부문에 초청돼 신인상에 해당하는 황금카메라상 '특별언급'됐다. 제95회 아카데미시상식에도 출품하며 일본 영화계의 차기 거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만큼 <플랜75>의 소재인 고령화사회는 일본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나라에서 공감하고 있는 문제다. 그리고 노인을 넘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민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영화 <플랜 75> 스틸 이미지.

영화 <플랜 75> 스틸 이미지. ⓒ 찬란

 
영화의 도입부 피투성이가 된 한 남성은 '일본의 미래를 위해 행동했다. 언젠가 다른 이들도 나를 이해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2016년 발생한 '사가미하라 사건'이다. 20대 남성이 장애인 시설에 들어가 장애인 19명을 죽이고 27명을 다치게 한 사건으로 일본에서 벌어진 최악의 살인사건으로 여겨진다.

하야카와 감독은 해당 사건이 <플랜75>의 모티브가 되었다며 "범인이 범행 동기에 대해서 진술할 때 '장애인은 삶의 가치가 없다. 불행을 양산할 뿐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사람의 가치를 생산성으로 빗대는 것은 이미 이 사회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언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아니었나라는 생각했고 굉장히 위기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플랜75>에 관해 한 영국 언론은 기사의 제목으로 '스틸휴먼'이란 단어를 언급했다. 사회에서 나를 인간으로 봐주는 것은 어디까지인가. 내가 사회에 기여하지 못할 때 사회는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 

영화 속 정부에게 노인들은 더 이상 보호해야 할 국민이 아니다. 국가를 위해 사라져야 하는 그들에게 정부가 제공하는 목숨값은 10만 엔에 불과하다.

약자는 도태돼야 한다는 야만적인 생각. 이런 생각이 계속된다면 지금 고령자에게 겨눠진 화살은 어디를 가리키게 될까. 장애인 그리고 난민 등 사회적 약자로 규정지어진 그들에게 도움보다 죽음을 권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 화살은 언젠가 나를 가르키게 될 것이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말하는 영화 속 정부에 존엄하게 살 권리는 없었는지 묻고 싶다.
플랜75 안락사 초고령사회 노인 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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