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 피해서 패스하는 이승현 4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정규리그 서울 삼성과 부산 KCC의 경기. KCC 이승현이 수비를 피해 알리제 드숀 존슨에게 패스하고 있다.

▲ 수비 피해서 패스하는 이승현 4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정규리그 서울 삼성과 부산 KCC의 경기. KCC 이승현이 수비를 피해 알리제 드숀 존슨에게 패스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농구에서 외국인 선수가 출전을 거부하는 사태가 또 발생했다.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큰 한국농구에서 한 선수의 일탈 행동 때문에 팀 전체가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우려를 자아낸다.
 
2월 4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삼성과의 2023-24 정관장 프로농구 5라운드 경기에서 부산 KCC는 서울 삼성과 2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88-97로 패배했다. 3연승을 마감한 KCC는 20승 16패로 5위를 유지했다. 최하위 삼성은 7승 31패를 기록하며 10연패를 탈출한 뒤 올시즌 첫 연승이라는 기쁨까지 누렸다.
 
KCC는 이날 꼴찌 삼성에게 연장 끝에 덜미를 잡힌 것도 충격이었지만, 패배하는 과정에서 더욱 찜찜한 뒷맛을 남겼다. KCC의 1옵션 외국인 선수이던 라건아가 무려 41분 58초를 소화하며 24점 18리바운드 5어시스트로 분전했으나 연장전에서 5반칙 퇴장을 당했다.
 
KCC의 벤치에는 아직 또다른 외국인 선수인 알리제 드숀 존슨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라건아가 퇴장 당한 이후 당연히 출전하리라고 예상했던 존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국내 선수로만 경기를 운영해야 했던 KCC는 2차 연장에서 삼성 쪽으로 흐름이 급격하게 기울었다.
 
놀라운 사실이 경기 후에 밝혀졌다. 전창진 KCC 감독은 연장전에서 존슨이 출전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본인이 경기에 뛰지 않겠다고 하더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전 감독은 존슨이 무슨 사유로 출전을 거부했는지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날 존슨은 앞서 정규시간 동안 2분 31초를 출장하여 2득점 2리바운드를 기록하고 있던 상태였다. 부상을 입은 것도 아니었고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중요한 순간에 출전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파업이다.
 
KCC는 이날 라건아의 퇴장 외에도 최준용이 부상으로 결장중이라 전력누수가 컸다. 주축 선수들은 대부분 40분 이상을 뛰었고, 심지어 이승현은 2차연장까지 무려 5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팀 동료들이 승리를 위하여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고 있는데, 정작 돈을 받고 뛰는 프로 선수로서 경기출전을 거부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올해 KBL 무대에 데뷔한 존슨은 지난해 정규리그의 전초전 격인 KBL 컵대회에서 최우수선수(MVP)까지 차지하며 걸출한 득점력을 과시한 바 있다. 정규시즌 개막 초반에는 라건아를 제치고 주전으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수비력과 골밑장악력이 떨어지는 공격형 포워드의 한계로 인하여 2라운드 이후 다시 라건아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출전시간이 크게 줄었다. 존슨은 현재 35경기에 나서서 평균 19분 42초를 소화하며 14점, 9.6리바운드를 기록중이다.
 
전창진 감독은 지난 1월 존슨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아직 어려서 그런지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있다. 한국 농구에 적응할 수 있도록 소통하고 있는데, 자기 고집이 강한 편"이라는 의미심장한 평가를 통하여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우려했던 존슨 리스크는 개선되지 않았고 중요한 순간에 팀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외국인 선수 태업' 트라우마 떠오르는 KCC

하필 KCC로서는 '외국인 선수 태업 잔혹사'의 트라우마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시점이었다. 불과 1년 전 이맘때 KCC의 외국인 선수 론데 홀리스 제퍼슨이 태업으로 퇴출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NBA 출신의 제퍼슨은 존슨과 비슷한 공격형 포워드로, 2022-23시즌 KCC 유니폼을 입고 2옵션 외국인 선수로 활약하며 38경기에서 10.1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시즌 중반 들어 제퍼슨은 팀 내 비중을 둘러싸고 코칭스태프와 갈등을 빚다가 불성실한 행태를 보였다
 
특히 퇴출 직전이었던 창원 LG와 울산 현대모비스전에서 자신이 공격을 해야 할 타이밍에서 패스를 돌리거나 코트를 설렁설렁 걸어다니며 단 한 번의 야투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무득점을 기록했다. 당시 전창진 감독은 "이런 외국인 선수는 처음 봤다"며 공개적으로 저격할 만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제퍼슨은 결국 지난해 2월 12일 전격 퇴출됐다. 여러모로 올해의 존슨과 매우 흡사하다.
 
타일러 데이비스의 사례도 있다. 정통빅맨인 데이비스는 지난 2020∼2021시즌 KCC의 정규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나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부상치료와 NBA 도전을 이유로 계약을 전격 파했다. 갑자기 에이스를 잃은 KCC는 정규리그 우승 1위을 차지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안양 KGC에게 4전 전패로 완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또한 KCC는 2022-23시즌에도 데이비스의 재영입을 타진했으나 또다시 선수측의 일방적인 변심으로 계약이 무산되며 같은 선수에게 뒤통수를 두 번이나 맞았다. 그리고 데이비스의 대체자로 영입한 선수가 바로 론데 홀리스 제퍼슨이었으니, 그야말로 잘못 끼운 첫 단추 때문에 한 시즌 내내 외국인 선수 문제로 곤욕을 치른 셈이 됐다.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파업 사태

이러한 외국인 선수의 파업 사태는 프로농구에서 잊을 만하면 벌어지고 있다. 프로농구 초창기에는 버나드 블런트(창원 LG), 그렉 콜버트(대구 동양) 등이 개인사를 이유로 무단으로 팀을 이탈하여 복귀하지 않는 기행을 저지르며 해당 시즌 팀이 하위권으로 곤두박질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올시즌만 해도 오마리 스펠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스펠맨은 지난해 안양 정관장의 우승 주역이었으나 올시즌에는 개막 전부터 체중관리 실패와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하며 우려를 자아냈고, 겨우 복귀후에도 부진한 성적에 감독의 출전지시를 거부하는 파업을 일심아 구단의 분노를 샀다.
 
시즌 초반 스펠맨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상위권을 유지하며 선전했던 정관장은 오히려 스펠맨이 복귀한 이후 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결국 정관장은 스팰맨을 퇴출시키기도 결정했다.
 
프로의식이 실종된 외국인 선수들의 행태는 팬들의 분노를 자아낸다. 이런 식으로 태업이나 파업을 하다가 퇴출된 외국인 선수들 중에는, 얼마가지 않아 다른 리그 구단과 계약을 맺어 아무 문제없이 멀쩡히 잘만 뛰는 경우가 다수다.
 
근본적인 문제는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인 KBL의 현실이다. 각 팀마다 외국인 선수들이 에이스를 차지하고,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유무에 사실상 시즌 성적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다보니 일부 외국인 선수들은 다른 리그에서는 보여주지 않던 돌출행동이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종종 존재한다.
 
'슈퍼팀'이라 불리우던 KCC는 시즌 초반부터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조직력 문제 등으로 아직까지 선수구성에 걸맞는 성적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외국인 선수 문제까지 또다시 터지며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왜 유독 KCC에서 이처럼 외국인 선수 관리와 관련된 잡음이 반복되는지는 구단 측에서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지난해 제퍼슨의 악몽을 겪었던 KCC가 존슨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알리제존슨 부산KCC KBL 외국인선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