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일영

허일영 ⓒ 연합뉴스

 
최근 프로농구에 부상 선수가 속출하고 있다. 심각한 부상은 선수 개인이나 소속팀의 전력에도 큰 타격이지만, 더 나아가 팀간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빌미가 되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지난 18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SK와 울산 현대모비스의 경기, SK 안영준이 2쿼터 중반에 불의의 부상을 당했다. 골 밑 경합을 벌이던 현대모비스 장재석이 점프 후 착지하는 과정에서 코트에 넘어졌는데 바로 뒤에 서 있던 안영준의 다리가 장재석의 체구를 견디지 못하고 무릎이 꺾인 것.
 
안영준은 그 자리에 쓰러져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고 벤치로 들어간 후 다시 코트에 복귀하지 못했다. 전희철 SK 감독은 경기 후 안영준의 내측 인대 파열 가능성을 언급하며 장기 결장이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SK는 오재현이 커리어하이인 36점을 넣으며 분전했으나 안영준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현대모비스에 94-97로 석패했다. SK로서는 이미 김선형과 허일영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 팀의 살림꾼이던 안영준까지 빠지게 되면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직후, 현대모비스 선수단이 코트에 모여 마지막 하이파이브를 나누려는 찰나에 갑자기 한 사람이 다가와서 언성을 높였다. SK의 주장 허일영이었다. 부상으로 이날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사복 차림으로 등장한 허일영은 현대모비스 선수단을 향해 항의하기 시작했다.
 
허일영은 안영준의 부상에 빌미를 제공한 장재석의 행동에 강하게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재석은 허일영의 항의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허일영과 장재석은 이전 고양 오리온 시절에 한솥밥을 먹었던 팀 동료이기도 했다. 다행히 SK와 현대모비스 양측에서 모두 허일영을 재빨리 만류하면서 큰 충돌로 번지지는 않았다.
 
공교롭게도 허일영도 불과 한 달여 전인 지난해 12월 7일 현대모비스와의 경기 도중 부상을 당했다. 심지어 상대 선수와의 충돌로 인한 부상 과정도 안영준과 흡사했다. 당시 허일영은 스크린을 하던 김준일과 몸싸움을 벌이던 도중, 김준일이 넘어지면서 그대로 오른쪽 무릎이 꺾이는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당시 심판은 허일영의 파울을 선언했다. 부상으로 교체된 허일영은 병원 검진에서 내측 무릎 인대가 손상되어 8주 간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필 같은 팀인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팀 동료인 안영준이 또다시 비슷한 부상을 당하자 허일영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다. 물론 현대모비스 선수들이 부상을 의도적으로 입혔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다. 허일영은 김준일과 통상적인 몸싸움 중이었고, 장재석은 등 뒤에 안영준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선수들의 '불필요한 행동'이 부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농구는 특성상 몸 싸움이 필수적이고 선수들이 가까이 밀착해있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파울을 유도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넘어지거나 과장된 제스처를 취한다는 것이다. 고의는 아니라고 해도 다른 선수와 충돌 시에는 자칫 큰 부상을 야기할 수 있다. 허일영이 현대모비스 선수단에 어필한 것도 이러한 동업자 의식에 대한 불만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프로농구는 동업자 의식에 관한 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고양 소노와 안양 정관장의 경기에서 소노의 외국인 선수 오누아쿠가 정관장의 필리핀 선수인 렌즈 아반도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이다.
 
당시 오누아쿠는 리바운드를 하기 위해 골대를 향해 점프한 아반도를 뒤에서 팔로 밀었다. 중심을 잃고 바닥에 떨어진 아반도는 허리뼈 두 곳이 부러지고 손목 인대 염좌, 뇌진탕 등 전치 4주의 중상을 당했다. 자칫 선수 생명까지 위험해질 뻔한 아찔한 장면이었다. 소속팀 정관장도 핵심선수인 아반도의 부상으로 전력에 큰 타격을 입어야 했다.
 
KBL은 재정위원회를 열고 오누아쿠의 행위에 고의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으나 고작 제재금 300만 원의 솜방망이 징계에 그쳤다. 해당 경기를 운영한 심판진 역시 경고 조치를 받은 것이 전부여서 오히려 논란이 더 커졌다.
 
또한 사고 이후에도 오누아쿠가 아반도에게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사실까지 알려지며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농구 팬들은 강하게 분노하며 지금까지도 KBL과 오누아쿠를 성토하고 있다.
 
지난 17일 고양체육관에서는 소노와 정관장의 경기가 열렸다. 아반도의 부상 사건 이후 약 3주 만에 두 팀이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난 리턴 매치였다.
 
경기는 이번에도 소노가 승리했지만 오누아쿠는 공을 잡을 때마다 정관장 원정 팬들의 엄청난 야유에 시달려야 했다. 홈팀 선수가 홈구장에서 응원보다 더 큰 데시벨의 야유를 받게 되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펼쳐졌다. 팀간 적대관계가 드문 KBL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오누아쿠-아반도 사건을 둘러싼 양팀의 갈등은 올시즌 내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코트에서 함께 뛰는 선수들은 선의의 경쟁자이지 적(Enemy)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몸이 재산인 프로 선수들이 부상으로 코트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선수는 물론이고 팬들에게도 손해다.
 
고의가 아니라고 해도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그럴만한 위험이 있는 플레이는 서로 자제하는 것이 옳다. 또한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진정성있는 사과와 반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동업자 의식과 페어플레이라는 기본만 잘 지킨다면 선수들의 부상도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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