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영화 '서울의 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나서는데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게 보지 말자니까 쯔쯔, 속으로 혀를 찼다.
 
남편은 특전사 출신이다(이 글은 특전사 개개인을 비난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다). 한때 "군에 말뚝을 박으려다" 군의 부패를 목격하고 전역했다고 한다. 그가 평생 한 결정 중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군에 대한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 내 보기엔 아직도 군을 사랑한다. 군 관련된 프로그램만 보면 눈이 반짝반짝한다. 그에게 군대는 대체 뭘까.
 
그는 분명 군의 부패를 목격했으면서도 군의 속살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을 참지 못한다. <진짜 사나이>는 좋아하면서 <디피>는 보지 못한다. 군에 대한 판타지엔 연호하면서 군에 대한 비판엔 발끈한다. 군에 관한 한, 그는 완전히 모순된 존재다.
 
남편에게 군대는 대체 뭘까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결혼 초 그의 군 동기 가족 모임에 갔을 때, 남편과 그의 동기들이 보인 군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놀랍게도 특전사가 군인 중의 군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2.12'도 '5.18'도 모른단 말인가, 얕은 탄식이 나왔다. 그들이 종종 군대 옛이야기를 꺼낼 때면, 하급자에게 가혹행위를 한 상급자나 비리를 저지르던 상사, 고문관이라 불리던 누군가를 함께 욕했지만, 이를 개인적 일탈로만 간주했지 군 조직의 문제로 다루지는 않았다. 남편뿐 아니라 그들 대부분이 <디피>를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의 기울어진 이성을 알고 있기에 <서울의 봄>을 보지 말자고 했다. '12.12'를 다룬 영화는 이미 있었고 군인들이 권력을 찬탈한 역사를 모르는 바도 아닌데, 반란의 한복판에 있었던 군인들 그것도 공수 특전사 역할이 상세히 그려질 영화를, <디피>조차 못 보는 특전사 출신 남편이 겸허히 혹은 비판적으로 성찰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영화 관람을 후회하는 게 역력했다.
 
이 영화평 중에는 '12.12'를 자세히 몰랐던 역사적 무지를 책망하는 후기도 있던데, 어쩌면 남편도 여기에 속했던 걸까? 그는 특전사가 '12.12' 성공의 수훈장이었다는 것은 모르고, 특전사 사령관이 반란군에 끝까지 저항했다는 것만 기억하는 인지 부조화를 겪고 있었던 걸까. 특전사 개입을 촘촘히 엮은 영화를 보고 "저 지경이었다니"라는 낮은 탄식을 섞어 내는 그가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해서 이 영화가 탄력적인 연출로 시종일관 아드레날린을 고르게 분비시킨 흥미진진한 영화임엔 분명하지만, 좋은 영화인가에 대한 개인적 판단은 유보할 수밖에 없다. 남편 같은 특전사 출신이나 군필 그리고 예비 군인이 될 남성들에게 이 영화가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하긴 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유보의 이유이다.
 
내 짐작대로 남편은 군 조직의 문제나 나아가 이 사회 속에 내재한 군사주의 이데올로기와 군대의 권력 지향을 문제 삼지는 않을 것이다. 반란군에 섰든 아니든, 군인들만의 역동으로 가득한 이 영화는 그에게, 어떻게 정치와 시민이 '12.12'를 용인했는가는 영화 속 먼 배경으로 자리잡을 테고, 단지 '나쁜' 군인 전두광(황정민)과 '좋은' 군인 이태신(정우성)의 대립으로만 각인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광화문 한복판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이 이태신을 '내가 너를 안다'며 마치 출정하는 휘하 장수를 북돋기 위해 굽어보는 듯한 인상은, 이태신에게 간신에 대립하는 충신의 신화를 덧입혀 우뚝한 영웅을 탄생시키지 않았는가.
 
영화가 간신 대 충신 이데올로기를 계승해 '나쁜' 군인과 '좋은' 군인으로 남겨진다면, '12.12'라는 비틀린 역사를 다룬 이 영화의 소명은 대체 무얼까. '나쁜' 군인 전두광과 그의 하나회 패거리들을 어쩌면 저리도 속속들이 속물들일까 싶게 재현해 증오를 가지게 하는 것으로, 그리고 의로운 군인 이태신을 그 대척점에 놓아 영웅을 만드는 것으로, 한국 사회의 고질적 권력 찬탈 이데올로기(무조건 권력만 잡으면 된다)를 어떻게 성찰하게 할 것인가.
 
'좋은' 군인으론 다할 수 없는 이 영화의 소명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속 전두광은 반란을 성공시키기 위해 부하들을 이렇게 자극한다. 너희들 다 서울대 갈 실력이지만 가난해서 육사 온 거니 그 오욕에 복수하기 위해 반란을 성공시키고 여봐란듯이 떵떵거리며 살아보자고. 대의 따위 상관없는 '박정희 키즈'들의 성공과 부로 들끓는 욕망의 자리에 군인의 충정이라는 역사적 알리바이를 슬쩍 끼어 넣어 주면서 말이다. 성공한 '군인 혁명가'가라는 헛된 계보는 박정희에서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다 중단됐지만, 그래서 지금 군대는 국민을 지키는 사명을 다하고 있는가.
 
멋진 군인이 되겠다는 성소수자 군인을 강제 전역시켜 죽음으로 내몰고, 동료 여성 군인을 성폭행하고 고립시켜 자살로 몰아넣고, 홍수로 불어난 강에 안전장치도 없이 군인들을 입수시켜 익사하게 만들고, 이를 공정히 수사한 군인을 매장하려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고, 군인 반란을 알고도 미국 대사관으로 도망간 영화 속 국방장관(김의성)은 중요임무 중에 주식거래를 하는 국방장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런 이 나라의 군대는 쿠테타를 하지 않으면 '좋은' 군인들의 군대인가. 드라마 <디피>를 주목하지 않거나 군대 고발 드라마를 여전히 개인의 일탈을 다룬 서사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서울의 봄>을 '좋은' 영화라 칭송하고 감명받는 한국 사회는 지금 정말 괜찮은 나라인가.
 
영화가 막바지에 이르며 승기를 놓친 이태신은 사면초가다. 이제 마지막 남은 카드는 자신의 남은 부하를 데리고 결사 항전에 임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앞서 그는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지고지순한 아내는 오늘도 귀가하지 못하고 나라를 지키는 남편을 걱정한다. 휑한 목에 갑옷처럼 두른 아내가 장만한 목도리는 출정을 응원하는 아내의 전송가다. 전투에 임하는 '좋은' 군인에게 가부장의 이미지를 급하게 소환하며 영화는 무엇을 각인시키고 싶어 하는 것일까.
 
이태신 같은 군인다운 군인에겐 양처와 '공부 잘하는 아들'이 당연한 부산물이기라도 한 듯, '좋은' 군인은 자상한 남편이자 멋진 아버지인 역할이 기본값이기라도 한 듯, '졌잘싸' 군인인 가부장은 영원하다고 믿기라도 하라는 듯, 남자들의 영화에 여자들은 여전히 남편을 살뜰히 내조하는 양처나 요정에서 일하는 접대부로 남자들을 위무하기 위해 동원되고 소모된다.
 
게다 이 위기에 시민들이 보이지 않는다. 민주화 투쟁이었던 '프라하의 봄'을 연상시키는 '서울의 봄'이라는 작명이 무색하다. '5.18'이 코앞이었다. 이태신이 없어 '5.18'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이 영화는 '광주의 처절하고 슬픈 봄'을 기이하게 배신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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