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 전 두산 베어스 감독

김태형 전 두산 베어스 감독 ⓒ 두산 베어스

 
우승청부사의 신화는 과연 현실에서 존재하는가.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김태형 전 두산 감독을 신임 사령탑으로 영입하면서 일약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롯데 구단은 지난 10월 20일 김태형 감독을 계약 기간 3년에 총액 24억(계약금 6억 원, 연봉 6억 원)의 조건으로 21대 감독에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 11일 KT와 3년 24억 원에 재계약한 이강철 감독과 함께 현역 감독 중 최고 대우에 해당한다.
 
김태형 감독은 현재 프로야구 최고의 명장으로 꼽힌다. 신일고-단국대를 졸업하고 1990년 OB(현 두산)에 입단하여 2001년까지 수비형 포수로 선수생활을 했던 김 감독은 은퇴 후 지도자로서 더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두산과 SK(현 SSG) 코치를 거쳐 2015년 친정팀 두산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김 감독은 2022년까지 8시즌간 재임하면서 7년 연속(2015-2021) 한국시리즈 진출과 3회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뤄내 '두산 왕조' 시대를 열었다. 통산 감독 성적은 1149경기 645승 19무 485패로 승률 .571로 감독 통산 승수는 9위이며 현역 감독 중에선 단연 최다승이다.
 
2022시즌을 마치고 계약만료로 팀을 떠난 후 올해는 올해는 SBS 스포츠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두산에서의 눈부신 성과를 바탕으로 김 감독은 야인 생활 동안에도 여러 구단으로부터 차기 감독 후보로 여러 차례 하마평에 오를 만큼 현장으로 돌아오는 것은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그리고 시즌 후반기부터는 사령탑이 공석이 된 롯데 차기 감독으로 일찌감치 유력하게 거론된 상태였다.
 
'최장기간 무관' 롯데의 결단

김 감독과 롯데의 만남은 여러모로 이슈가 되고 있다. 롯데는 1992년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마지막으로 31년간 더 이상 정상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이는 KBO리그 10개 구단(전신 포함)을 통틀어 '최장기간 무관' 기록이다.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도 1999년으로 20세기의 추억이다. 프로 원년부터 42년간 정규리그 우승을 단 한 번도 차지해보지 못한 팀도 롯데가 유일하다.
 
또한 롯데는 2018시즌부터 올해까지 6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며 극심한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 범위를 더 넓히면 최근 11년간 가을야구에 진출한 게 단 한 번(2017년 3위)뿐이다. 롯데는 KBO리그에서 가장 많은 20명의 사령탑이 거쳐가며 감독교체가 가장 많았던 팀이고, 최근 10년 동안에만 6명의 감독이 교체됐다.
 
롯데는 전통적으로 구단과 인연이 있거나(롯데 선수 출신, 코칭스태프 내부 승격), 이전에 1군 감독경험이 없는 초보 사령탑을 선임한 경우가 많았다. 롯데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외부 인사+베테랑 지도자를 선임한 것은 2007년 구단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인 제리 로이스터 감독 이후 무려 16년 만이다. 또한 김태형 감독의 영입은 신동빈 롯데 구단주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롯데가 얼마나 가을야구와 우승에 목말라 있는지를 보여주는 절실한 변화의 의지로 해석된다.
 
김태형 감독의 롯데 부임이 확정되면서 여러 감독들이 비교대상으로 떠올랐다. 강병철 감독은 유일하게 롯데를 두 차례(1984, 1992)나 정상으로 이끈 인물이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롯데의 중흥기를 이끈 인물로 꼽힌다. 김응용 감독은 '우승청부사'라는 점에서 각각 김태형 감독이 롯데에 달성하거나 넘어서야 할 목표로 꼽힌다.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할 당시 롯데는 7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2001-2007)에 실패하며 '꼴데'라는 조롱을 당할 만큼 구단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로이스터 감독은 노피어(두려움 없는 야구)를 표방하며 패배주의를 일신하고 선 굵은 메이저리그식 빅볼과 공격야구로 돌풍을 일으켰다.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이 재임한 3년간 100%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했고, 이후 양승호 감독 시대까지 구단 역사상 최초로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황금기를 열었다. 성적과 재미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면 인기면에서도 오히려 우승을 차지한 강병철 감독보다 로이스터 시대를 진정한 롯데 야구의 최고 전성기로 꼽는 팬들이 적지 않다. 김태형 감독이 6년 연속 가을야구에 실패한 롯데를 다시 5강권으로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제2의 로이스터'로 등극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로이스터 감독은 강병철이나 김태형 감독과는 정반대로 단기전에서 약한 모습을 드러내며 끝내 우승권에 이르지는 못했다. 반면 김태형 감독은 두산 시절 가을야구에서 더욱 돋보이는 용병술과 경기운영능력을 선보였고 업셋(순위가 낮은 팀이 상위팀을 단기전에서 이기는 것)도 여러 차례 달성하며 '미라클 두산'의 신화를 창조해낸 주역이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로이스터 감독보다도 더 우위에 있다.
 
김응용 감독은 KBO리그 감독계의 GOAT(역대 최고)로 꼽히는 전설이다. 유일무이한 한국시리즈 10회 우승과 역대 최다승(1554승)이라는 타이틀이 그의 위엄을 증명한다.
 
특히 김응용 감독은 유일하게 두 팀(해태 9회, 삼성 1회)에 걸쳐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며 최초로 '우승청부사'라는 단어를 현실로 이뤄낸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삼성은 프로 원년부터 2001년까지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는(1985년은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 무산) 징크스를 이어왔지만, '삼응용' 체제에서 2002년에 마침내 정상에 오르며 20년 만에 한을 풀어낼 수 있었다.
 
'롯태형'을 바라보는 기대와 우려
 
잠실에서 승리 거둔 롯데 9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8-1로 승리를 거둔 롯데 선수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 잠실에서 승리 거둔 롯데 9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8-1로 승리를 거둔 롯데 선수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른 팀에서 우승 경력이 있는 외부인사'를 감독으로 영입하여 우승까지 성공한 사례는 김응용 감독 외에 외국인 사령탑까지 범위를 넓히면 트레이 힐만(SK, 2018년) 정도가 유일하다 힐만 감독은 한미일에서 모두 사령탑을 역임했고, SK에 부임하기 전인 2006년 일본에서 니혼햄 파이터즈를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전력이 있었다.
 
반면 김성근(1388승), 김인식(978승), 김재박(936승), 강병철(914승), 김경문(896승), 김영덕(707승), 류중일(691승) 등은 모두 명장으로 불리우며 KBO리그에서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인물들이지만, 2개 팀에서 우승을 달성하는 데는 전부 실패했다.
 
이중 김성근의 SK, 김재박의 LG, 선동열-류중일의 삼성은 KBO리그 역사에서 한 시대를 지배한 왕조로까지 평가받는 팀들이었고 자연히 황금기를 이끈 감독들의 주가도 정점에 올랐다.
 
하지만 이들이 이후에 지휘봉을 잡은 김성근의 한화(2015-2017, 가을야구 진출 실패, 중도 경질), 김재박의 LG(2007-2009, 가을야구 진출 실패), 선동열의 KIA(2012-2014, 가을야구 진출 실패), 류중일의 LG(2018-2020, 가을야구 진출 2회) 등은 모두 저조한 성적에 그치며 거두며 이전의 성과와 명성까지도 크게 깎아먹는 악수로 '왕조의 저주'라는 징크스까지 생겨났다.
 
'롯태형'을 바라보는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엇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냉정히 말해 현재 롯데는 우승은 고사하고 가을야구도 섣불리 장담할 수 있을 만한 전력이 아니다. 김태형 감독이 처음 부임할 당시의 두산도 오랫동안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국가대표급 선수층과 '화수분'으로 불리우는 육성시스템, 꾸준한 가을야구 경험을 갖추며 전력 자체가 우승권에 근접한 팀이었던 것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롯태형의 롤모델이 삼응용이라면, 반면교사는 한화 시절의 김응용과 백인천 전 롯데 감독이 있다. 유일하게 2개 팀 우승을 달성한 김응용 감독조차 말년에 현장으로 복귀한 한화 이글스(2013-2014)에서는 달라진 현대야구 적응에 실패하며 2년 연속 꼴찌라는 초라한 성적과 함께 온갖 오명을 뒤집어쓰고 지도자 말년의 흑역사만 남겼다.

또한 롯데에서 '다른 팀에서 우승경력이 있는 외부인사'를 영입한 사례는 이미 김태형 감독보다 20여 년이나 이전에 백인천 감독(2002-2003, 연속 꼴찌)이라는 원조가 있었다. 당시 백 감독은 LG 트윈스를 1990년 정상으로 이끈 경험이 있고 삼성에서도 나름 성공적인 경력을 보내며 명장으로 꼽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정작 롯데에서는 구단과의 갈등 끝에 각종 기행 논란으로 최악의 성적을 경신하며 불명예 퇴진하는 흑역사를 남겼다. 이로 인하여 백 감독은 롯데 팬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도 '백골프'라는 오명으로 불리우며 볼드모트 수준의 금기어로 불린다.
 
한편으로 이는 명장들이 왕조 시절에 올린 성과가 단지 감독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라, 선수층과 프런트 등 구조적인 시스템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진실이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현대야구에서 '명장 전능론'의 비중과 허구성이 재조명받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김태형 감독은 야구인생 내내 두산맨이었고 카리스마 넘치는 강성 감독의 이미지가 강하다. 김 감독이 롯데에서도 두산 시절만큼의 선수장악력과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초반부터 프런트-고참 선수들과의 관계 설정이 매우 중요하다. 팀 전력에 비하여 야구열정과 성적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롯데 팬들이 김태형식 야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주목된다.
 
감독 한 명이 바뀌었다고 해서 팀 전체가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과연 '롯태형이 제2의 삼응용이 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먼저 롯데 구단이 얼마나 변할 것인지, 프런트가 김 감독을 얼마나 뒷받침해줄 것인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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