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포스터

<발레리나> 포스터 ⓒ 넷플릭스

 
 
장편이라는 정식 데뷔 이전부터 큰 주목을 받으며 충무로 기대주로 떠오른 감독이 있다. 스포츠로 따지면 초특급 유망주라 할 수 있었던 이충현 감독은 단편영화 <몸 값>을 통해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을 통해 국내 유명영화 제작사 용필름의 러브콜을 받았고, 첫 장편데뷔작 <콜>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되어 화제를 모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인 <발레리나>는 그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이 영화는 배우 조합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콜>을 통해 호평을 자아낸 이충현 감독의 연인, 전종서가 사이코패스 살인마에서 복수를 꿈꾸는 전직 경호원 장옥주로 변신을 시도했다. <악의 꽃>에서 섬뜩함을 보여주며 연기 인생 2막을 연 김지훈은 메인빌런 최프로 역을, <드라이브 마이 카>의 씬스틸러 박유림이 발레리나, 민희 역을 맡았다.
 
<발레리나>는 뻔한 복수극을 어떻게 하면 더 펀(Fun)하게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상당한 영화다. 동창 민희를 만나면서 삶의 의미를 찾은 옥주, 그런 민희를 죽음으로 이끈 최프로, 그에게 복수를 하고자 하는 옥주의 모습은 복수극의 전형적인 구성을 지닌다. 이 재료로 어떻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에 대한 요리사 이충현의 고민은 크게 세 가지 측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발레리나> 스틸컷

<발레리나> 스틸컷 ⓒ 넷플릭스

 

먼저 이국적인 배경으로 시각적인 매력을 준다. 한국영화계에는 꽤나 걸출한 여성 복수극 영화가 즐비하다. 스토리의 흥미 측면에서는 <오로라 공주>, 시각적인 강렬함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캐릭터의 강렬함은 <친절한 금자씨> 등 쟁쟁한 작품들이 있다. <발레리나>가 택한 자신만의 무기는 <킬 빌>처럼 시각적인 강렬함이다. 이를 위해 완전해 판을 새롭게 짠다.
 
서양식 식당과 저택, 서부극을 연상시키는 황무지 등을 통해 할리우드 영화를 연상시키는 비주얼을 완성했다. 특히 옥주에게 당한 최프로가 복수를 다짐하며 등장하는 장면에서 김지훈의 장발머리 스타일은 조커를 연상시킨다. 여기에 옥주가 민희를 기억하는 과거회상 장면은 웨스 앤더슨 영화를 보는 듯한 형형색색의 미장센을 통해 거친 현실과 상반된 아름다웠던 시간을 보여준다.
 
다음은 클리셰 비틀기다. 옥주와 최프로의 대결이 하이라이트로 펼쳐질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초중반에 배치한 순간부터 기존 복수극 장르가 지니고 있던 클리셰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악행과 복수라는 기본적인 골격만 두고 그 안에 세부적인 전개에 차별점을 둔다. 특히 클라이맥스 장면의 경우 최종보스와 격렬한 대결이라는 기존의 공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맛을 선사한다.
 
마지막은 시의성을 지닌 주제의식이다. '발레리나'라는 제목은 강압과 자유의 의미를 동시에 담아낸다. 최프로는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며 민희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다. 발레리나에게는 엄청난 신체관리가 필수다. 이 신체에 대한 억압이 타인에 의해 이뤄지면서 민희는 누군가 내 몸을 볼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민희의 춤사위는 옥주의 총질과 함께 이 억압에 대한 해방을 의미한다.
 
 <발레리나> 스틸컷

<발레리나> 스틸컷 ⓒ 넷플릭스

 
 
옥주와 민희의 워맨스는 발레리나의 의미가 옥주까지 확장되는 과정을 담아내며 여성 사이의 연대의식을 보여주고자 한다. <콜>에 이어 다시 한 번 여성서사를 할 줄 아는 감독임을 입증한 이충현이다. 이런 세 가지 요소만 본다면 <발레리나>는 탄탄한 뼈대 위에 오락성이라는 살을 입힌 작품처럼 보이지만 그 만족도에서는 아쉬움을 크게 남긴다.
 
<몸 값>이 큰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형식적인 반전이 주는 재미도 있었지만 재기발랄한 연출의 힘이 컸다. 이런 점이 이 단편을 티빙에서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한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다만 장편에서의 이충현은 하나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집중력이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옥주의 액션과 워맨스를 통한 감정의 자극은 있지만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잡는 스릴감이 전무한 수준이다 보니 다소 지루함이 느껴진다.
 
연출에 있어서도 눈을 사로잡는 미장센과 순간적인 센스만 있을 뿐, 극 전체를 유려하게 이끌어 나가는 힘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런 단점들은 전작 <콜>에서도 비슷하게 지적되었던 부분이다. <발레리나>의 경우 클리셰를 비틀면서 복수 장르가 지닌 재미요소의 상당부분을 포기했다. 이 빈 공간을 채워줄 다른 무기들이 효과적으로 발현되었어야 했는데 극적인 완성도 보다 연출의 스타일에만 심혈을 기울이며 아쉬움을 남긴다.
 
최근 한국영화계는 스타일리스트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상황이다.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등 독보적인 스타일을 지닌 감독들이 건재하고 변성현, 박훈정 등 후발주자들 역시 인상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세련된 연출 스타일만을 장점으로 내세우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선한 시도와 발칙한 상상력, 개성이 느껴지는 세계관으로 주목받았던 충무로 유망주의 성장세가 아쉽게 느껴지는 작품, <발레리나>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발레리나 넷플릭스 부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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