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항저우'입니다. 9월 23일부터 10월 8일까지, 5년 만에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장소입니다. 기다림 자체가 길었던 탓인지 선수들에게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어떤 때보다도 많이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런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현장을 더욱 깊고 진중하게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편집자말]
주축 선수들의 '대표팀 졸업'이 가까워졌다. 지난 예선에서 5년 만에 만나 '격전' 끝에 승리했던 북한을 다시 만났다. 여자 농구 대표팀의 아시안게임 마지막 경기는 북한과의 동메달 결정전이었다. 

5일 항저우 스포츠 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동메달 결정전. 1쿼터 부진했던 대한민국은 2쿼터에만 25점을 몰아 넣었다. 최종 스코어 93대 63. 

당장 마지막 태극마크임이 확실시되는 이경은(신한은행) 선수는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보이며 "대표팀 후배들이 (언니들보다) 더욱 좋은 모습으로 뛰어주길 바란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내려놓는 정선민 감독 역시 "유종의 미를 잘 거뒀다"고 평했다.

"한일전 끝나고 오지랖 부렸나 싶었는데..."

한일전에서의 패배 직후 "선수들이 한국 안에서 연봉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최고라는 생각을 버렸으면 한다"고 작심 발언을 했던 김단비(우리은행) 선수는 "사실 이 이야기를 하고 나서 오지랖을 부렸나 싶기도 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단비 선수는 "주위에서 '한 명쯤은 이런 말을 해야 한다, 잘 이야기했다'라고 했다"라며 "사실 그 이야기도 대표팀 후배들보다는 여자 농구 모든 선수에게 남긴 것이었기도 했다. 앞으로 선수들이 노력해줘서 좋은 성적을 내길 바란다"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동메달의 순간 김단비 선수는 눈물을 보였다. 김 선수는 "처음엔 안 울었는데 후배들이 '언니 운다! 언니 운다!' 하지, (이)경은 언니랑 나랑 마지막이라고 사진도 찍지 하니까 안 나던 눈물도 나고 울컥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동메달을 따낸 후 만난 김단비 선수.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동메달을 따낸 후 만난 김단비 선수. ⓒ 박장식

 
1쿼터 부진에 대해서도 "전반에 너무 공격도 안 되었고, 슛을 안 들어갔다"라면서 "선수들에게 '전반에는 안 들어갔으니 후반에 들어갈거다. 쏴보자'라고 했는데 후반에 물풍선이 터지듯 갑자기 득점이 늘었다"라며 이야기했다.

분위기를 한국 쪽에 넘긴 '한방'도 있었다. 북한의 '거포' 박진아를 피해 멀찍이 떨어진 지점에서 3점 슛을 성공시키며 분위기를 뒤집은 것. 김단비 선수는 "경기 초반 박진아에게 블록을 크게 하나 당했다. 그래서 '쟤 앞에서 내가 하이라이트 하나 만들어야겠다'라고 결심했는데, 박진아가 걸릴 때 이때다 싶었다"라며 웃었다. 

"후배들, 언니보다 좋은 모습으로 해주길"

이경은 선수는 기자회견장에서 "대표팀에 8년 만에 다시 복귀를 하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 같이 할 수 있게 한 정선민 감독에게 감사드린다"면서, "항상 게임이 끝날 때마다 아쉬움이 있던 것 같다"라고 이야기하며 울컥했다. 이 선수는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둬서 행복한 시간이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 선수는 "메달 색깔이 다른 색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메달이 없는 선수들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선수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9년 만에 아시안대표팀에 복귀했다.이경은 선수는 "오래간만에 다시 돌아와서 태극기를 달고 뛰었다는 데 감사한 마음"이라며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대회에 뛸 수 있음에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이 선수는 "대표팀을 하는 후배들이 사명감을 갖고, 당연하지 않다는 책임감을 갖길 바란다"라며 "언니들에 비해 더욱 좋은 모습으로 뛰어주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유종의 미 거둬 고마워, 최선 다한 것만으로도 감동"
 
 동메달 획득이 확정된 후 기자회견에 나선 정선민 감독(왼쪽)과 이경은 선수(오른쪽).

동메달 획득이 확정된 후 기자회견에 나선 정선민 감독(왼쪽)과 이경은 선수(오른쪽). ⓒ 박장식

 
여자 농구 대표팀 정선민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늘 경기 전에 동메달이라도 가치가 있으니, 모두가 하나가 돼 이기자고 선수들에 말했는데 너무 잘 뛰어줬다"라며 "12명의 선수 전체가 코트를 밟고 마무리할 수 있어 기쁘고, 모두 최선을 다해서 동메달을 획득했기에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동메달 결정전의 무게도 컸다. 정선민 감독은 "4강에서 일본을 만나 패하고, 3·4위 결정전에서 북한을 만난 것이기에 ('남북전'이라는 점보다는) 동메달에 대한 부분만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다"라고 설명했다. 

1쿼터에는 북한에 여섯 점 차로 밀리며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정선민 감독은 "선수들이 조금 더 집중하길 원했고, 디펜스 부분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요구했다"라면서 "전체적으로 경기 운영이라던지 분위기 자체가 밀리는 느낌이 있어서 이소희 선수와 진안 선수를 투입해 분위기를 바꿨다"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2m가 넘는 '거포' 박진아 선수에 대한 분석도 승리의 요인이 됐다. 정 감독은 "(박지수 선수가) 박진아 선수가 어떤 플레이를 펼치는 지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경기를 하다 보니까 어려움이 있었다"며 "첫 번째 경기로 인해서 박진아 선수에 대한 장단점 등을 파악하고 이번 경기를 준비해 더욱 좋은 플레이를 했다"고 칭찬했다.

정선민 감독은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여자 대표팀의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그런 탓인지 정 감독은 기자회견 중간중간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파리 올림픽 출전 실패 등 아쉬움도 많았지만 아시안게임 동메달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정 감독은 "오늘 유종의 미를 잘 거둔 것만으로도 선수들에게 고맙다"며 마지막 회견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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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 김단비 정선민 이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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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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