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할머니가 매일 차로 손자의 학원 등·하원을 시켜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손자를 태우고 집에 가던 도중, 차에 가속이 붙어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손자는 사망했고 할머니는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강원도 강릉에서 일어난 급발진 의심 사고 이야기다. 

지난 9일 < YTN 탐사보고서 기록 >에서는 '급발진, 액셀 vs. 브레이크' 편이 방송되었다. 강릉 티볼리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이날 방송은 급발진 의심 사례와 함께 자동차 전문가들을 만나 급발진의 원인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제작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14일 해당 회차를 제작한 시철우 촬영기자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시 촬영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YTN 탐사보고서 기록>의 한 장면

의 한 장면 ⓒ YTN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때요?
"매번 방송하면 아쉽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이번엔 아쉽다는 느낌보다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왜냐면 급발진 문제 다루기로 하고 취재를 시작했을 때 '우리가 급발진 문제를 해결하거나 원인을 증명하겠다'는 입장으로 접근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취재를 계속할수록 한계를 느꼈다고 해야 할까요. 이번에 많은 분을 만나고 고민도 많이 했는데도 무언가 계속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 급발진에 대한 취재는 어떻게 하게 되었어요?
"<YTN 탐사보고서 기록>이라는 프로그램은 사회적으로 발생한 참사라든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혹은 부조리, 그리고 거대한 권력과 맞서는 사회적 약자의 문제 등을 다뤄왔습니다. 작년에 발생했던 강릉 티볼리 차량 사망 사고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죠. '제조물 책임법 개정' 국민 청원이 엿새 만에 5만 명의 동의를 얻을 정도로 많은 분들에게 충격적인 사고로 기억이 되고 있어서 취재하게 되었습니다."

- 급발진 관련 취재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취재하기 전엔 이른바 급발진 전문가로 불리는 분들의 영상과 급발진 관련 보도물, 다큐멘터리 등을 봤어요. 급발진은 분명히 존재하고 이를 제조사는 방관하고 있으며 어떤 거대한 힘이 급발진 관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급발진 의심 사고 당사자와 사고 유족 등을 만나 어떤 의혹을 가지고 있고, 급발진을 증명해 내는 데에 어떤 문제나 한계가 있는지 들어보는 것으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급발진 전문가들의 이야기대로 국과수는 인력이 없고 장비가 없고 기술이 없어서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차량 결함을 밝혀내지 못하는지 직접 취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국과수에 여러 차례 연락을 넣으면서 감정 과정 공개를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언론에 잘 등장하지 않았던 자동차 공학자들과 소프트웨어 전문가, 한국자동차안전학회 등을 취재하면서 차량의 구조적 특성과 소프트웨어 결함이 차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취재와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 급발진의 정의부터 내려야 할 것 같아요. 급발진은 뭔가요?
"급발진은 정지 상태나 저속 상태에서 갑자기 (차가) 앞으로 튀어 나가는 현상을 말하는 거고요. 미국에서는 'SUA(Sudden Unintended Accelleration)'이라고 칭합니다. 의도하지 않은 급가속을 급발진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 강릉 티볼리 사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강릉 티볼리 사고는 작년 12월 6일 발생했고요. 할머니가 손주를 매일 학원에서 집으로 데려오는 걸 하셨어요. 이런 일상적이고 평범한 날에 갑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한 거죠. 이 사고가 다양한 상황을 내재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이 이건 100% 급발진이라고 주장했던 사고이기도 했고요."

- 앞서 말씀하신 다양한 상황이란 게 뭔가요?
"할머니가 아이를 픽업해서 첫 번째 교차로에 진입하다가 앞에 있는 모닝 차량을 추돌해요. 그 이후 갑자기 속력이 나면서 600m 이상 질주하다 결국 고속도로에서 강릉 시내로 진입하고 있는 도로와 할머니가 운행하고 있는 이면도로 쪽이 만나는 지점의 중앙분리대를 충돌하고 날아가서 또 전신주를 충돌하고 건너편에 있는 배수로에 차가 빠지면서 정지한 사고거든요. 그래서 이 차량에 충돌이 네 번 있어요. 그리고 600m 이상 계속 가속을 했다는 것도 이상하고 첫 번째 차량과 추돌하면서 앞에 보닛 라디에이터 그릴이 망가졌거든요. 그러면서 차량에 연기도 나고 굉음도 들리거든요. 이런 상황들이 종합적으로 볼 때 많은 분은 이 사고가 100%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 현상이라고 주장하게 됐죠."

- 그럼 1차 추돌 전에는 문제가 없었나요?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일상적으로 평화로운 장면들이 계속 나오거든요. 할머니가 손주를 위해서 뭘 사 왔다, 그리고 우리 앞으로 어떻게 하자 등의 이야기들이 아주 평화롭고 일상적으로 주고받던 상황이었습니다."

- (차량이) 추돌하면서 뭔가 잘못된 건가요?
"1차 추돌 전에 차량에 충돌 방지 알람 있잖아요. 그는데 차량이 정지 신호에 정차하고 있었던 그 차량을 추돌하게 되죠. 거기에서부터 사고 운전자 측과 국과수의 감정 결과가 엇갈리기 시작합니다."

- 할머니의 충격이 컸을 것 같아요. 
"할머니는 연세가 70 세 가까이 되셨거든요. 그래서 아직도 그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셔서 저희가 직접 만나 뵐 수는 없었어요."

- 할머니가 운전했던 차에서 사고로 손자가 사망한 거라 부모님도 상황이 난감할 거 같아요.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이겠죠. 인터뷰하고 사고 현장에 다니는 동안 아이의 아버지는 정말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곁에 있던 저희 제작진이 직접 묻지 않아도 고스란히 그 감정이 느껴질 정도였어요. 그 슬픔은 취재하고 제작하는 내내 제작진의 마음까지 울릴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 티볼리는 얼마나 된 건가요?
"사고 차량이 2018년식이고요. 신차를 구매해서 할머니가 직접 운전을 하신 겁니다."

- 그전엔 아무 문제가 없었던 차인데, 이후에 급발진이 발생할 수 있나요?
"말씀드리기가 대단히 어려운 게 지금까지 밝혀진 급발진의 원인은 대부분이 운전자의 페달 조작 실수로 알려졌거든요. 어떤 상황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는 그 건건마다 다양하게 남아 있는 증거를 바탕으로 판단을 해볼 일이지 이걸 일반적으로 하나의 문제로 묶어서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 할머니가 고령이신데요. 운전 조작 미숙 가능성은 없을까요?
"그런 가능성은 있을 수 있죠. 그러나 고령 운전자이기 때문에 오조작을 통해서 급발진이 일어났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급발진 의심 사고는 사고와 관계된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입니다.."

-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사고 난 지점은 (차량이) 과속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하던데요. 
"왕복 2차로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좁은 도로이기도 하고요. 길 양쪽으로 세차장과 화원 그리고 카센터 등이 밀집되어 있고 그 길에 접근하기 전까지 교차로가 2개가 더 있어서 과속할 일이 거의 없어요. 평균 시속 한 30~50 정도로 운행하는 도로라고 해요. 그리고 그 길의 끝은 고속도로에서 진출입하는 길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그 길 끝에서 달리는 차량들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운행하고 있거든요. 고속도로에서 강릉시내로 들어오는 길과 맞닿은 길이에요. 때문에 마지막엔 속도를 줄이고 조심스럽게 우회전해야만 하는 구조로 과속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 2014년까지 급발진 의심 사례가 100건 넘다가 이후 줄어드는 추세인데요. 왜 그럴까요. 
"자동차 전문가와 자동차 공학자 그리고 급발진 의심 사고를 연구하는 분들의 공통된 입장을 정리하면요. 2015년 12월 19일 자동차 관리법에서 EDR(자동차 기록 장치) 자료, 즉 사고 기록 장치에 담겨 있는 기록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한 개정안 시행 후 급발진을 주장하시던 운전자분들이 EDR 결과를 보고 이해 혹은 납득한 결과 급발진 의심 신고 건수가 줄었다는 겁니다."

- 그전엔 EDR이 있지만 공개가 안 된 건가요?
"사실 EDR 기록을 읽을 수 있는 장치가 상용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범용 리더기를 통해서 누구나 EDR 기록을 읽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이 리더기가 차량 제조사마다 규격이 다르고 시중에 보급되어 있지 않거든요. 기록 공개 의무화 이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EDR 기록을 확인하기 힘들었습니다. 기록을 읽을 수 있는 기계가 제조사에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은 EDR 기록을 읽을 수 있는 리더기가 경찰과 국과수 등 국가 기관에 보급이 되어있기 때문에 조금은 수월하게 기록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운전자가 무죄 판결받은 경우가 있던데요. 급발진이 인정 안 돼도 무죄가 가능한가요?
"법원에서 판단하는 건 형사 사건이 있고 민사 사건이 있잖아요. 형사 사건은 범죄 증명의 주체가 검사잖아요. 증명 책임이 검사에게 있는 거예요. 그런데 급발진이 증명이 안되더라도 형사 사건에서 범죄의 입증 책임이 검사에게 있기 때문에 급발진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없고, 운전자가 의도적으로 액셀을 밟아 사고에 이르게 하는 상황을 상정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 검사가 운전자 실수를 증명해야 하나요?
"형사 사건의 경우 범죄 혐의에 대한 입증 책임이 검사에게 있습니다. 반대로 민사사건의 경우에는 제조물 책임범에 따라 사용하는 소비자가 제품의 결함을 증명해 내야 합니다. 민사사건의 경우 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는 거죠."

- 법원은 왜 급발진을 인정 안 하는 거죠?
"법원이 급발진을 인정하는 주체가 아니니까요. 형사 사건과 민사 사건하고 성격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민사 사건은 손해배상 소송이거든요. 차량 제조사가 이 차량을 만들 때 결함을 발견하지 못하고 생산했기 때문에 사고로 이어졌다는 인과관계가 연결되어야 차량 제조사가 손해배상 책임을 갖게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처음 제조할 때부터 차량에 결함이 있었다는 걸 증명하려면 다른 차량들에게서도 이 같은 결함이 많이 발견돼야 하거든요. 그런데 급발진 의심 사고는 좀 독특한사고잖아요. 많이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고 그 인과관계를 추정하기가 어렵죠. 그렇기 때문에 차량 결함을 제조사가 책임져야 된다고 하기 어려운 거죠. 이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않은 이상 손해배상 급발진으로 인정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법원에서는 인정 못하는 거죠."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으시다면.
"처음엔 국과수-제조사도 급발진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취재하면서 급발진이 운전자의 실수로 발생할 가능성도 있고, 국과수 감정이 공학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검토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제조사도 ISO2626이라는 국제 표준에 맞춰서 차량을 제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또한 학계에서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자동차가 우리의 삶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연구를 열심히 진행하고 있고, 여러 유관 단체에서도 안전과 생명에 대한 논의를 심도 있게 진행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급발진 의심 교통사고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고, 누군가에게 커다란 고통이 되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인을 밝히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를 특정해 급발진의 원흉으로 몰고 가는 것은 미래지향적으로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국과수도 이번에 처음으로 감정 과정을 공개했잖아요. 국과수도 자신들의 감정 과정이 알려진 것보다 더 과학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줬고요. 제조사 측과 만나면서 우리에게 설명할 시간을 마련한 만큼 제조사 측도 안전을 위한 여러 가지 다양한 고려를 하고 있다는 사실과 안전하다는 믿음이 소비자들에게 확산될 수 있도록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무분별한 의혹 제기나 비과학적인 억측으로 막연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요. 이런 억측이 사라지려면, 국과수와 제조사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알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시철우 YTN 탐사보고서 기록 급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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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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