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달라질 것 같지 않은 현실 세계의 직장생활에 질리고 지쳤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주말, OTT가 부지불식간에 눈과 마음에 들어와 앉아 버렸다. 직장생활 전문가로서, OTT 속 직장생활 노하우를 현실에 담아본다.[편집자말]
주말 동안 드라마 <마스크걸>을 완주했다. 원작이 인기 웹툰이었는지도 몰랐다. 내용에 대해서도 일절 찾아보지 않았다. 그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직장인의 이중생활이라는 설정에 끌려 시청하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출발은 가볍고 발랄하다. 깜찍한 한 소녀가 끔찍한 직장인으로 변신하며 벌어지는 일탈을 다룬다. 시종일관 피식거릴 정도의 스토리일 거라 예상했다. 제대로 빗나갔다. 회차를 거듭하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치며 장르가 돌변했다.

<마스크걸> 감상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직장인 입장에서 두 가지가 떠올랐다. 직장인 페르소나 그리고 외모지상주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진짜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았던 기분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사회에서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으로 (혹은 가식적으로) 변했는지 슬쩍 돌아보면 안타까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비단 나뿐일까. 직장인 약 78%가 직장에서 가면을 쓰고 일한다는 한 취업포털사이트의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외모에 대한 논쟁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성공하는 데 외모가 경쟁력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직장인 10명 중 9명이 '그렇다'라고 답했고, 외모 때문에 손해를 봤다는 직장인도 10명 중 6명이나 된다.

현실 직장인인 내 마음에 이 두 가지의 찝찝함이 찐하게 밀려들었다. <마스크걸> 김모미가 쏘아 올린 일침이자 교훈이다.

가면, '진짜 나'를 드러내는 자기 계발
 
마스크걸 드라마 <마스크걸>에서 직장인 김모미가 얼굴을 가리고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 마스크걸 드라마 <마스크걸>에서 직장인 김모미가 얼굴을 가리고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 넷플릭스

 
전 직장 방송국에서 직원들 일상 브이로그 소개 코너를 만들었다.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의 일과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방송을 통해 회사와 자기가 하는 업무 등을 소개했다. 별 자극 없는 평범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삐딱한 뒷이야기가 터져 나오곤 했다.

'한가하다. 저런 거 할 시간도 있고?'

한 직장에 다니는 동료들 의견이다. 상사에게 허락받은 일임에도 공공의 적은 있다. 하물며 회사 밖에서 '나 이런 사람입니다'라며 얼굴과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간 큰 직장인이 얼마나 있을까.

직장인은 안팎으로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여있다. 현실판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보이지 않는 가면을 쓰고, <마스크걸> 김모미는 회사 밖에서 진짜 가면을 쓴다. 회사에서의 가면이 진짜 나를 숨기는 도구라면, 회사 밖 가면은 진짜 나를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

<마스크걸>은 직장인의 단순한 일탈이 아닌 용기와 노력이 가미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도전하는 부지런한 직장인의 자기 계발 모습이다. 설령 마스크의 목적이 하트팡과 성형 수술이었다 해도 이를 위한 노력은 오롯이 그녀가 감당한 몫이다. 춤과 노래 연습을 비롯해 무대 세팅, 화장, 의상 준비 등 게으른 직장인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을 숨기면서 숨겨왔던 끼를 마음껏 분출하는 모습에서 커다란 대리만족을 느꼈다. 김모미의 방송이 원색적이라는 사실을 떠나 진짜 나를 드러내 박수를 받고 싶은 욕구 분출이었기 때문이다. 가짜의 나를 감추고, 진짜 나를 드러내는 일이 주는 묘한 통쾌함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책을 몇 권 냈다. 사내 방송에도 출연하며 여기저기 얼굴도 알렸다. 본분이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다. 누군가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가장 후회된 순간을 묻는다면 "회사에서 내 이름과 얼굴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글을 썼던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직장인이 글을 쓰고, 책을 쓴다는 것. 어쩌면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견제와 감시 때문에 괴로웠다. "책 썼다며? 보고서를 그렇게밖에 못 쓰나?"라는 권력자의 비아냥거림에 의기소침해진 경험도 있다.   

내 글이 쪼그라들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그제야 본명을 숨겼다. 글 쓰는 일에도 독서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책 읽는 모습이 책 쓰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상사의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를 숨기고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종종 한다. 지금보다 더욱더 시원하고 화끈한 글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얼굴을 감춘 김모미의 춤과 노래 실력처럼.

회사에서 대부분의 직장인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맞는 마스크를 쓰고 '해야 할 일'에 에너지를 쏟는다. 하지만 직장인이 진짜 갈구하는 삶은 김모미와 같이 분출하는 삶일 것이다.

지금까지 내 업에 맞는 페르소나를 쓰고 '해야 하는 일'에만 에너지를 쏟았다면 이제부터라도 '하고 싶은 일'을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해 나갈지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좋아했던 일, 잘하는 일,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한번쯤은 시도하는 삶, <마스크걸>의 김모미처럼 희망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외모, 부디 가치 있는 불평을 하라
 
마스크걸 드라마 <마스크걸> 주인공 김모미는 못생긴 외모로 직장 남자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 마스크걸 드라마 <마스크걸> 주인공 김모미는 못생긴 외모로 직장 남자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 넷플릭스

 
직장에서 누구도 <마스크걸> 김모미에게 대놓고 못생겼다고 말하지 않는다. 바라보는 눈빛과 표정, 대하는 태도로 드러낼 뿐이다. 예쁜 동료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 자신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을 읽으면서도 애써 외면한다.

한 대기업 홍보팀에서 디자이너 한 명 채용 공고를 냈는데, 최종 두 명을 채용했다. 한 명은 포트폴리오가 뛰어났고 한 명은 외모가 뛰어나서라고. 많은 이가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외모가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이유다.

남자들만 모인 회식 자리에서 한 선배가 팀원 A의 외모를 격하게 칭찬했다. 잘생겨서 영업할 때 어디에 데려가도 환영한다고. 우리 같은 사람은 명함도 못 내민다며 나머지를 우리로 묶어 평가절하했다. 이어 테이블에 둘러앉은 후배들 외모를 품평했다. 즐겁자고 모인 술자리에서 못생긴 무리로 묶여 속수무책 외모 지적을 당했다.

사회에서 겪은 외모 관련 에피소드는 끝이 없다. 많은 직장인이 현실판 김모미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쉽게 바꿀 수 없는 현실과 외모다. 그녀는 결국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성형을 하지만, 인생이 순탄치는 않았다. 순탄함을 바라는 현실 속 직장인은 비현실을 외면하고 무모함이 아닌 합리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외모보다 중요한 요소는 많다. 능력을 쌓으면 외모는 후순위로 밀려난다. 비호감 외모, 키 162센티미터, 몸무게 45킬로그램으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를 이끌었던 마윈은 "부디 가치 있는 불평을 하라"라고 말했다. 그 시간에 실력을 쌓으라는 조언이다.

실력은 사람들 눈이 아닌 마음을 파고든다. 배우와 가수, 운동선수 중에도 실력이 외모를 능가하는 경우는 많다. 실제로 <마스크걸> 주인공을 맡은 이한별은 '비슷한 경험을 해봐서 연기하는 데 부담이 없었다'는 인터뷰를 남겼다. 결국 그녀는 남다른 개성과 실력으로 데뷔해 주목받는 신인배우로 급부상했다. <마스크걸> 시사회 무대에서 나나, 고현정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이 멋졌다.

당당하면 사람들은 매료된다. 현실 속 이한별처럼 드라마 속 김모미가 자신의 개성을 무기로 삼고 재능을 살려 실력으로 밀어붙였다면 어땠을까. 인생이 조금은 밝은 빛으로 물들지 않았을까.

반올림하면 20년, 사회에서 배운 것이 직장생활밖에 없다. 그래서 후배 직장인을 위한 글을 쓰고, 책도 쓰고, 기사도 쓰고, 틈틈이 글쓰기 강의와 수업도 한다.

내 글을 읽고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나의 외모가 아닌 콘텐츠에 집중한다. 외모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다음 스텝을 밟을 기회조차 없다. 자신감은 스스로 창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바뀌지 않는 외모가 아닌 바꿀 수 있는 인생을 가꿔야 할 때가 바로 지금 아닐까.

<마스크걸> 김모미의 이름을 거꾸로 하면 미모가 된다. '모미'와 '미모'는 한끗 차이다. 이는 어쩌면 불분명한 미래와 현실적인 지금과의 '고작' 한끗 차이를 알려주는 전(前) 직장인 김모미의 심오한 교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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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직장인,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아빠, 매 순간을 글로 즐기는 기록자. 글 속에 나를 담아 내면을 가꾸는 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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