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래리 서튼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자진 사퇴했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래리 서튼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자진 사퇴했다 ⓒ 롯데 자이언츠

 
KBO리그에서 외국인 감독의 성공 신화는 이제 끝난 것일까. 래리 서튼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최근 전격적으로 자진 사퇴하면서 또 한번 외국인 감독 실험이 미완으로 막을 내렸다.
 
롯데는 지난 8월 28일 "서튼 감독이 27일 KT 위즈전이 끝난 뒤 건강을 사유로 사의를 표했다. 구단은 숙고 끝에 서튼 감독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서튼 감독은 2023시즌까지 팀을 이끌 예정이었지만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하차하면서 이종운 감독대행이 잔여시즌을 이끌게 됐다.
 
이보다 앞서 한화 이글스를 이끌던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지난 5월 11일에 경질된 바 있다. 이로서 올시즌 개막을 함께했던 두 명의 외국인 감독이 모두 물러나게 되면서 KBO리그는 모두 국내 감독들로만 채워지게 됐다. 2019년 이후 4년 만이다.
 
역대 5명의 KBO리그 외국인 감독

KBO리그에서 외국인 감독은 역대 총 5명이 있었다. 이 중 1호인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 2호인 트레이 힐만 SK 와이번스 전 감독은 각각 팀의 가을야구 진출과 우승까지 이끌며 성공적인 계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세 명의 외국인 감독들은 전원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고 계약기간도 다 채우지 못하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KBO리그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 제리 로이스터 전 감독은 2007년 11월 롯데와 계약하여 3시즌 동안 팀을 이끌었다. 당시 2000년을 끝으로 7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하여 극심한 암흑기를 보내고 있던 롯데는, 로이스터 체제에서 '노 피어(두려움 없는 야구)'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8년 만의 가을야구행과 최초의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2008-2010)이라는 업적을 이뤄내며 중흥기를 맞이했다. 부산에서는 로이스터 신드롬이 일어날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자랑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정규시즌 204승 185패 3무(승률 .524)라는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다만 로이스터 감독은 정규시즌에 비하여 단기전에서 약한 면모를 드러내며 끝내 우승에 실패한 것이 발목을 잡았고, 그래서 롯데는 재계약을 포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 팬들은 지금도 로이스터 감독을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꼽는 이들이 적지 않을 정도다.
 
트레이 힐만 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감독은 KBO리그 최초이자 유일무이하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외국인 사령탑이다. 2017년 SK의 지휘봉을 잡은 힐만 전 감독은 팀을 2년 연속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특히 2018년에는 정규시즌 2위로 가을야구를 시작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일궈내는 업적을 세웠다. 정규시즌 성적도 153승 133패 2무(.535)로 KBO리그 외국인 감독 중 최고승률을 기록했다. 힐만 감독은 개인 사정으로 2년 계약을 마치고 구단의 재계약 제안을 거절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로이스터와 힐만의 연이은 성공은 KBO리그에서 외국인 감독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전환점이 됐다. 그동안 언어와 문화, 리그 환경과 스타일의 차이 등으로 외국인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오히려 수평적인 리더십, 선굵은 빅볼, 메이저리그식 팀 운영 등 외국인 감독들만의 장점이 더 부각됐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2021시즌에는 KBO리그 역사상 최다인 3명의 외국인 감독이 동시기에 활약하는 진풍경이 펼치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 3인은 모두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한국을 떠나며, 로이스터-힐만의 신드롬 뒤에 가려진 외국인 감독들의 한계도 극명하게 드러냈다.
 
외국인 감독들의 실패가 반복되는 이유

맷 윌리엄스 전 KIA 타이거즈 감독은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으로 역대 KBO리그 외국인 감독 중 가장 화려한 선수경력을 자랑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윌리엄스 감독은 KIA에서는 2020년 6위에 그쳤고, 2021년에는 9위까지 추락했다. KIA는 3년 계약의 두 시즌 만에 윌리엄스 감독과 결별했다. 윌리엄스 감독은 KIA에서 131승 10무 147패로 승률 .471을 기록했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한화를 재건할 '리빌딩'의 적임자로 낙점됐으나 2021년과 2022년 연이어 최하위에 그쳤고, 올해도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자 결국 경질당했다. 수베로 감독이 기록한 106승 15무 198패(0.349)의 성적은, 역대 외국인 감독 중 최저 승률이다.
 
서튼 감독은 이전의 외국인 지도자들과 달리 한국야구와 깊은 인연이 있었던 인물이다. 서튼 감독은 현역 시절 KBO리그 현대와 KIA에서 외국인 선수로 활약했고, 은퇴 이후 2019년부터 롯데 2군 감독으로 부임하여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2021년 5월 허문회 전 감독이 경질된 뒤 곧바로 1군 사령탑으로 취임했다. 외국인이지만 완전한 외부 인사가 아니라 내부 승진으로 지휘봉을 잡은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서튼 감독은 시즌 중 부임한 2021년 108경기 동안 50승 50패 8무(승률 .500)의 성적을 기록했고 최종순위는 8위였다. 가을야구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전임감독체제에서 무너진 팀을 어느 정도 재정비하여 반등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았다. 2022년에도 8위(64승 76패 4무·승률 .457)에 머물렀지만, 올해는 유강남, 노진혁, 한현희 등 FA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기대를 모았고 한때 1위에 오르는 등 돌풍을 일으키는 듯했다.
 
하지만 상승세가 꺾인 6월부터 이후 그동안 초반 돌풍에 가려졌던 팀 전력의 한계들이 드러나면서 꾸준히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여기에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 팀내 항명 논란, 본인의 건강 문제로 인한 결장 등 여러 가지 이슈들까지 겹치며 리더십에 큰 치명타를 입었다. 사퇴 직전에는 7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이미 가을야구에서 멀어지는 분위기였다. 서튼 감독의 통산 성적은 356경기 162승 182패 12무, 승률 0.471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외국인 감독들의 실패가 반복되고 있는 것을, 단지 개인의 역량 탓으로만 찾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외국인 감독이라서 실패했다'라기 보다는 외국인 감독들을 활용할 수 있는 준비나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게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현대야구는 더 이상 감독이 팀 성적을 좌우한다는 '명장 만능론'이 통하지 않는다. 이는 감독의 역할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 역시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전체 시스템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로이스터나 힐만은 분명히 유능한 감독이었지만, 이들이 한국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전력과 지원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로이스터의 롯데는 비록 몇 년간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었지만 선수 자원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이대호나 강민호 등 역대급 선수들이 20대 중반의 전성기에 갓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힐만의 SK 역시 불과 몇 년 전까지 '왕조'를 호령하며 우승을 경험한 주축 선수들 다수가 건재했다.
 
반면 윌리엄스-수베로-서튼이 취임할 당시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부임 당시 이들이 우승후보나 최소 5강권 이상을 보장할 전력이라고 평가받은 팀은 전무하다. 임기 중 확실한 투자를 통하여 전력보강을 지원받은 것도 올해의 서튼 감독 정도인데, 이대호의 은퇴 등을 고려하면 그나마도 가을야구를 장담할 정도의 전력은 아니었다. 심지어 수베로 감독은 이미 부임 전부터 꼴찌팀을 물려받아 임기 내내 선수 육성과 리빌딩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오히려 현대야구에서 성적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프런트의 비중이 훨씬 더 크다.
 
최근 3명의 외국인 감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실패했다고 해서, '이제 KBO리그에는 더 이상 외국인 감독이 통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렇게 따지면 그보다 더 많은 국내 감독들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경우가 부지기수다.
 
성적과 별개로 외국인 감독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도전 정신으로 나름의 존재감을 남겼다. 이는 단지 가을야구 진출 여부로만 섣불리 평가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외국인 감독들이 한국야구에 남긴 유산은 무엇인지, 혹은 이들이 왜 한국야구에서 성공하기 어려웠는지 반면교사로서 교훈을 얻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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