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의 한 장면.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의 한 장면. ⓒ tvN

 
"시민들이 사랑하는 밝고 경쾌한 공간에,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나 우울한 기억을 자꾸 갖다놓는 것을 누군가는 싫어할수도 있다. 그런데 이 도시(뉴욕)에서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을 어디에서나 쉽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이 도시가 잊혀질 수도 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기억하려는게 아닐까?"
 
'과거를 기억하는 도시' 뉴욕이 9.11 테러라는 역사적 비극과 그 희생자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방식은 지금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8월 23일 방송된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 4회에서는 '뉴욕 편'의 마지막 이야기가 그려졌다.
 
잡학박사들은 프린스턴 대학, 앨리스 섬, 맨해튼과 9.11 메모리얼 파크 등 미국을 대표하는 대도시 뉴욕의 명소들을 돌아보며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민자들이 세운 도시,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 미국 경제-금융의 발전, 9·11 테러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수많은 중요한 장면과 사건들을 거론할 때 뉴욕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도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은 천재 과학자의 대명사로 알려졌지만 반전 운동가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독일계 유대인 출신인 아인슈타인은 이미 상대성 이론으로 이름을 떨치던 시절, 독일 사회의 권위주의 풍토에 맞서던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1차세계대전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자국 군사행동을 지지하는 성명을 낼 때도, 아인슈타인은 이에 맞서 '유럽인들에게 올리는 호소문'에서 전쟁 반대를 외치는 성명에 이름을 올린 단 4명 중 한 명으로 소신있는 행보를 이어갔다.
 
이후 아인슈타인이 나치 정권의 박해를 피하여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온 뒤에도 평화과 반전에 대한 일관된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2차대전 당시 미국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였던 '맨해튼 계획'에 대한 참여 요청을 거절했다. 미국은 과학자이자 유명인, 반전운동가로서 아인슈타인을 요주의 인물로 여기고 평생 감시했다.
 
아인슈타인은 "나의 평화주의는 본능적인 감정인데 살인은 끔찍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과학적 이론이 아닌, 인간의 잔인함과 증오심에 대한 나의 깊은 혐오에서 비롯된 태도이다"라고 자신의 철학을 밝힌 바 있다.
 
물리학자, 인도주의자, 교육자와 더불어 아인슈타인을 규정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정체성은 바로 '이민자(Immigrant)'라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미국은 인간의 권리를 존중하고 자유의 정의를 믿는 사람들의 희망이다"라고 정의한 바 있다.
 
나치가 불러온 나비효과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의 한 장면.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의 한 장면. ⓒ tvN

 
미국을 가리켜 흔히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라고도 부른다. 나치가 득세했던 1930~1940년대 박해를 피하여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 중에는 아인슈타인같은 과학자들이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과학자들같은 고급 인력들은 중요한 사회적 자원으로 여겨지기에 그들의 이동은 곧바로 큰 파급효과로 드러난다. 120여 년 노벨상의 역사를 반으로 나누었을 때 1960년 이전까지 미국 출신 물리학상 수상자는 19명에 불과했으나, 그 이후는 79명으로 약 4배 가까이 크게 늘어난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도 대부분이 이민자 출신이었다.
 
미국은 이전까지 과학 분야에 있어서는 2류 국가 정도였지만, 2차대전 이후로 오히려 세계의 과학을 선도하는 국가로 올라선다. 과학계에서는 영어 사용이 보편화되고 주요 학회 역시 미국 학계 중심으로 재편된다. 또한 2차대전 종전 이후에도 전쟁에 지친 유럽인들의 탈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치가 불러온 나비효과가 미국의 발전에 큰 도움을 준 셈이다.
 
'이민자의 섬'으로 불리우는 뉴욕 엘리스 아일랜드는 1892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으로 들어가려는 이민자들이 입국 심사를 받던 곳이었다. 당시 이민국으로 사용되던 건물은 현재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생계와 가난, 정치와 종교적 박해 등을 피하여 목숨을 건고 바다를 건너 '기회의 땅'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꿈꿨을 것이다. 시기별로 아일랜드(19세기 중반)-동유럽(19세기 후반)-유대인(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등 주 이민자의 계층도 차이를 보인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들도 20세기 중반(1960년대)부터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활발하게 이주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미국에서 한국이나 아시아 이민자들의 목소리는 유럽계 백인이나 흑인들에 비하여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소설과 드라마로 제작된 <파친코>나 영화 <미나리>같은 작품들은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 이민자들의 삶과 애환을 조명하며 현지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파친코>의 원작자인 이민진 작가나 <미나리>를 연출한 정이삭 감독은 모두 1960~1970년대에 출생한 이민 2세대 출신이다. 이민자 후손들이 성장하여 자신이 속한 집단과 세대의 목소리를 사회적으로 대변할 수 있을 정도의 경력을 갖추고 시간이 흐른 것을 고려하면, 최근 들어 이런 작품이 나오고 주목받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의 한 장면.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의 한 장면. ⓒ tvN

 
뉴욕의 역사를 거론하며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9.11 테러'다. 2001년 9월 11일, 미국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비행기 납치테러로 총 2977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했고, 뉴욕의 상징이자 미국 경제의 심장부로 꼽히던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됐다. 미국 본토가 외부 세력의 테러로 직접 공격받은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이후 21세기 서구의 역사를 바꾸어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무역센터가 사라진 자리에, 현재는 9.11 메모리얼(기념비)과 뮤지엄이 들어섰다. 이스라엘 출신 건축가 마이클 아라드는 메모리얼파크(추모공원)의 콘셉트를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로 규정했다. 메모리얼 파크의 중심부에 있는 네모난 풀에는 거대한 구멍 아래로 끊임없이 떨어지는 인공폭포가 눈물처럼 흐르는 디자인을 통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빈자리는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풀 전체를 아우르는 난간에는 9.11 테러로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물을 구경하려고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난간을 만지면서 희생자들과 교감하게 된다. 슬프고 우울한 감정에만 휩싸이며 까만 돌벽만 쳐다보다가 오는 것이 아니라, 멋있는 자연과 물과 폭포를 감상하면서 힐링도 받고, 사건의 기억을 공유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메모리얼 건축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슴 아픈 비극조차도 거대한 나라를 하나의 마음으로 모을 수 있는 기회로 삼는 미국인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유현준 건축가와도 인연이 있는 마이클 아라드는 철저한 무명이었으나 9.11 메모리얼 공모전에 1등으로 입상하면서 일약 주목받는 건축가의 반열에 올랐다. 아라드의 공모작을 심사한 심사위원 마야 린은 아시아계 미국인이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을 기리는 미국 국립 기념관인 '베트남 베테랑 메모리얼'의 설계자로 2016년 미국 대통령 자유훈장까지 수상한 인물이다.
 
린과 아라드 두 사람은 이전까지 무명이었으나 공모전에 입상하며 스타덤에 올랐고, 모두 겉보기에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9.11과 베트남 메모리얼 모두 공간을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비움'의 미학을 통하여 추모 공간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누군가 린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봐준 것처럼, 린 역시 아라드의 건축에 담긴 진심을 알아본 덕분에 세상에 빛을 발할 기회를 얻는 선순환으로 이어졌다.
 
미국인들이 9.11 테러를 추모하는 방법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의 한 장면.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의 한 장면. ⓒ tvN

 
한편으로 미국이 9.11 테러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문화의 특징은, '비움의 애도'로 정의할 수 있다. 가슴 아픈 리얼리티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는, 그 순간의 감정과 정서를 기억하고 공유하는 데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메모리얼 파크가 눈물과 상실에 대한 추상적인 콘셉트를 살린 것처럼, 뮤지엄 내부에도 테러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놓는 조형물이나 비디오 자료 등은 보이지 않는다. 유럽의 홀로코스트 추모 시설들이 당시의 실상을 최대한 적나라하게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정답이 있다기보다는 '재현의 윤리'와 관련된 접근 방식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인들이 9.11 테러 추모 공간을 활용하는 특징은,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추모할 것인지 굳이 하나의 방식으로 규정지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뮤지엄에는 테러 당시 희생자의 숫자인 2983개의 파란색 네모를 벽에다 붙여놓은 공간이 있다. 9월 11일 그날, 하늘의 색깔은 놀랍도록 푸르고 맑았다. 희생자의 시선으로 쳐다봤을 각자의 하늘을 묘사하여 우리 곁에 있었지만 사라진 사람들을 애도하는 것이다.
 
9·11 테러 당시 타인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인물들도 많았다. 많은 소방대원이나 경찰들이 무너지던 건물에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한 생존자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건물로 올라가는 소방대원들에 박수를 보낸 순간을 내내 자책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역시 테러범들에게 공중납치되었던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에서는 용감한 승객들이 목숨을 희생해가며 테러범들과 저항한 덕분에 더 큰 테러를 막을수 있었다. 비극의 순간에도 자신을 희생하여 많은 사람들을 구해낸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영웅'이라고 부른다.
 
심채경은 뉴욕이라는 도시가 '과거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방식'에 대하여 인상깊었던 순간을 언급했다. 뉴욕의 명소인 센트럴파크 곳곳에는 벤치마다 작은 명판들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세상을 떠난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밝고 활기차야 할 일상의 공간에 돌아가신 분들의 흔적이 쌓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거부감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대다수는 뉴욕 시민들은 이를 불편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심채경은 "일상에서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어디에서 기억할 수 있구나. 어쩌면 이 도시가 잊힐 수도 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건 아닐까?"라는 의견을 밝혔다.
 
한편으로 심채경은 "9.11을 추모하는 장소가 여전히 그 장소(무역센터가 붕괴된 동일한 자리에 세워진 추모시설)라는 게 중요하다.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탑이나 추모시설을 엉뚱한 데 세워놓는 경우가 많다. 무역센터가 있던 지역은 맨해튼에서 가장 비싼 지역이다. 더 멋진 빌딩이나 새로운 것을 세울 수도 있었는데, 온전한 추모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사람들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게 하면서 희생자들을 계속해서 잊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현재를 반추하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뉴욕은 인공적이면서 동시에 자연적이고,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이 공존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하나의 정의로만 규정할 수는 없지만 고유성과 다양성, 계승과 발전을 조화롭게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배움과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뉴욕이 수많은 아픔을 딛고 여전히 매력적인 도시로 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알쓸별잡 뉴욕 아인슈타인 911테러 이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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