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동

가진동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도전은 언제나 멋진 일이다. 카메라 앞에서 서기만 했던 배우들이 카메라 뒤에서 진두지휘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헌트>의 이정재, <미성년>의 김윤석, <여배우는 오늘도>의 문소리, <사라진 시간>의 정진영 등. 연기를 넘어선 배우의 꾸준한 각본, 연출 데뷔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배우 출신 감독은 누구보다 배우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배우를 중심에 두고 편안하고 안전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현장 분위기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세심한 배려다. 배우의 편에서 최고의 연기를 이끌어 낼 수 있다.
 
하지만 디렉션을 받는 수동적 입장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휘하는 종합적인 리더십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하고 책임도 져야 하는 왕관의 무게를 이겨야 하는 자리가 바로 감독이다.
 
올해도 이 쉽지 않은 길을 택한 배우 출신 감독이 두각을 나타냈다. 제27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음문석, 장동윤의 단편, 가진동의 장편이 상영되어 좋은 반응과 재능을 인정받았다.
 
감독 장동윤 <내 귀가 되어줘>, 들리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 마음
  
 영화 <내 귀가 되어줘> 스틸컷

영화 <내 귀가 되어줘>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영화 <내 귀가 되어줘>는 각본, 연출, 연기까지 선보인 장동윤의 감독 데뷔작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바른 이미지의 연장이면서도 뭉클한 감정을 사려 깊은 태도를 보인다. 700만 원으로 만든 21분짜리 단편은 꾸준히 써왔던 '시'의 연장선이라 하겠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시와 시나리오를 끄적거리며 영화감독을 꿈꿨던 그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내 귀가 되어줘>를 만들었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어느 모텔방에 두고 간 갓난아기를 집으로 데려와 정성껏 돌보는 20대 남자(장동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농인이다. 중국집에서 열심히 일하는 청년이자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남자는 여자친구와 결혼해 안락한 가정을 꾸릴 생각을 했지만 여자친구는 아이만 덜렁 놔두고 곁을 떠나버렸다. 수소문 끝에 여자친구를 찾았지만 "우리 나이에 무슨 결혼"이냐며 충격적인 말을 전한다. 그 말을 듣고 온 저녁, 남자는 아이를 앞에 두고 이제껏 지켜왔던 사랑을 온몸으로 전한다.
 
아빠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는 아기의 뒷모습과 아기를 두고 진심을 담은 수어를 담백하게 풀어냈다. 무책임한 여자친구와는 다르게 뚜렷한 목표와 책임감을 간직한 남자의 대조적인 태도가 장동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처럼 들린다. 특히 농인의 제스처와 소리, 수어를 연기하는 장동윤의 세심한 배려와 진정성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마지막 장면이 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감독 음문석 <동행>,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영화 <동행> 스틸컷

영화 <동행>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다양한 역할로 주목받고 있는 배우 음문석은 백댄서, 가수, 래퍼, 감독, 배우, 뮤지컬 배우 등 흘러넘치는 재능의 소유자다. 그중에도 감독 역할로 두각을 드러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2017년,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만들었다는 <아와어>, <미행> 두 편으로 해외 영화제를 다녀왔다. 데뷔작 주연까지 맡은 <아와어>와 <미행>은 제70회 칸영화제 숏필름 비경쟁 부분에 초청되어 겹경사를 맞았다.
 
그의 세 번째 단편 <동행>은 평소 절친으로 알려진 가수 황치열을 주인공으로 배우 이승윤과 따뜻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기타와 여행 가방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버스킹 하는 상수(황치열)와 보육원에서 자라 생활지도사로 일하는 수연(이승윤)이 우연히 버스터미널에서 만나 아산까지 동행하는 이야기다.
 
우연히 수연의 안타까운 사연을 엿듣게 된 상수가 핸드폰을 빌려주며 시작된다. 처음 본 사이지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상수를 의심하면서도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수연. 무슨 이유에서인지 상수는 수연을 졸졸 쫓아다니며 곤경에 처할 때마다 보호자를 자처하며 돌봐준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2박 3일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치유의 여정이다. 겉만 봤을 때는 티 없이 맑고 긍정적으로 상수와 내재된 아픔으로 마음의 문을 닫은 수연의 전혀 다른 모습까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상처의 깊이와 무게를 함께 나누고 극복한 아름다운 동행은 "고마웠어요"란 마지막 인사로 긴 여운을 선사한다.
 
황치열의 노래와 연기를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그대가 사라진다'를 부르며 버스킹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실없어 보이지만 밉지 않은 참견과 슬픔을 동시에 전하는 연기가 매력적이다. 앞으로 노래가 아닌 연기로 캐릭터를 확장할 모습이 기대된다.
 
감독 가진동 <흑교육>, 세 친구의 어리석은 밤
  
 영화 <흑교육> 스틸컷

영화 <흑교육>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가진동은 구파도 감독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로 스타덤에 올라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금마장영화제 신인배우상을 수상하며 청춘스타로 발돋움했다. 12년 만에 다시 구파도 감독의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2022)로 대만 국민 남동생 수식어를 떼고 진중한 연기를 선보여 호평받았다. 이제는 청춘이 아닌 30대 청년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올해 10년 만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배우가 아닌 감독과 단편 심사위원으로 찾았다. 구파도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를 연출하며 10년 동안의 변신과 확장에 성공한 가진동. 배우 이미지와는 반대되는 <흑교육>은 지금껏 고민해 온 흔적과 앞으로의 성장을 아우르는 결과물이자 전환점이 될 것 같다.
 
<흑교육>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10대 장(주헌양), 한(송백위), 왕(채범희)이 하룻밤 동안 겪게 되는 성장통이다. 세 친구는 우정의 징표와 졸업의 축하로 비밀을 폭로하기 시작한다. 장난처럼 시작된 악행은 세 사람을 걷잡을 수 없는 범죄 속으로 밀어 넣어 버린다. 누가 더 나쁜 짓을 했느냐를 두고 벌이는 치기 어린 내기는 엄청난 사건과 연결되고, 칠흑같이 어둡고 잔인한 밤을 선사한다.
 
세 친구와 함께 또 다른 주인공인 '밤'은 10대의 마지막인 졸업인 동시에 성인으로 가는 통과의례이다. 교복을 벗는 순간 어른으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선보인다. 특히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불분명함을 논하는 대사를 거듭 반복하며, 인간성의 밑바닥을 경험하는 악몽과 산산조각 난 우정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가진동 장동윤 음문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