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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마을을 뒤덮은 비닐하우스의 철거를 요구하며 동시에 추가 설치 예정인 스마트팜 시설에도 반대하고 있다.
▲ 비닐하우스로 뒤덮인 산골마을 주민들은 마을을 뒤덮은 비닐하우스의 철거를 요구하며 동시에 추가 설치 예정인 스마트팜 시설에도 반대하고 있다.
ⓒ 이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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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던 전북 진안군 주천면 무릉리 산골 마을이 요즘 시끄럽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마을 안 이곳저곳에 검은 글씨로 쓰인 현수막이 어지럽다. 현수막에 쓰인 내용을 요약하면 마을을 뒤덮고 있는 비닐하우스 때문에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규모 비닐하우스라곤 볼 수 없었던 해발 450m의 고지대 마을에 70여 동의 비닐하우스가 난립하게 된 건 무슨 이유일까? 게다가 또 20억 원이 투자되는 대규모 스마트팜 시설이 추가로 들어선다는 데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이 마을 사람들의 농사에 대한 열정이 이리 드높았나?

진안군 마령면과 정천면에 이어 주천면 무릉리에 새로 들어서는 스마트팜 시설하우스가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추진된다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 돈이 이런데 쓰인다고?

마을을 뒤덮어 가고 있는 비닐하우스에 분노한 주민들이 최근 마을회관에 모였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위해 마을을 찾은 진안군 관계자는 약 1.5ha(4500평) 부지에 한 지구당 스마트팜 시설하우스 구축 비용으로 20억 원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국고 보조가 80%에 자부담이 20%다. 이건 완전히 공짜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런데 무릉리 주민들은 왜 반대하는 걸까? 마을에 20억 원의 보조금이 떨어지는 대박 사업인데...

농업 법인만 좋은 일을 왜?

군 관계자의 다음 말에 답이 있었다. 이 사업은 전체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5명 이상이 모여 만든 농업법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 물론 농업법인에는 늘 그래왔듯 지역 사람들의 이름이 올라가기는 한다. 그러나 이름을 올린 주민들이 그 사업에 실제로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외부의 사업자가 주민의 이름만 빌려 농업법인을 만들고 떡고물 조금 흘려주고는 경영은 혼자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런 걸 눈 가리고 아웅 한다고 하는 거다.

행정에서 새로 내놓는 정책의 제안서나 설명서는 언제나 그렇듯 화려하게 포장돼 있다. 마을과 농촌의 사정은 쥐뿔도 모르는 외부의 용역업체나 컨설팅업체에서 물어온 자료를 자신들의 계획을 관철하기 위한 근거로 삼는다. 진안군이 2022년에 내놓고 2023년부터 시행하기로 한 '마을단위 농업경영체 육성 추진계획'을 보면 포장은 열심히 했지만 내용은 허술하다. 아니 허접하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 것이라는 예측과 기대가 난무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농림수산업이 취업을 유발할 가능성이 타 산업에 비해 높다. 그러니 고령농과 상생할 수 있는 도시의 청·중·장년이 농사에 관심을 가지도록 기반 조성을 하고, 농작업 환경을 개선하고 소득이 보장된다면 도시의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유입될 것이다.'

고령화에 접어든 농민들이나 농사에 익숙하지 않은 도시민들에게 좀 더 편리한 농사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건 좋은 일이다. 노동집약적 전통농업으로는 경영의 효율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말도, 4차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첨단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농업경쟁력을 끌어올려야 된다는 말에도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거듭 말하지만 진안군에서 내세우는 일자리 창출과 인구 유입이라는 사업 목적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실효성과 의도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  

스마트팜이 내세우는 최고의 가치는 적은 노동력과 생산비로 최대의 수확을 얻고 기후에 영향을 덜 받거나(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을 기후 위기에 도움이 되는 걸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다) 재배 환경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팜은 인공지능과 기계가 알아서 작물을 키워내니 당연히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치 않다. 이 말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마트팜이 농업경쟁력은 키워낼 수 있겠지만 귀농 인구를 유입하고 지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도움이 되는 사업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더불어 농촌에 사람이(농민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세상을 스마트팜이 앞당기고 있다는 사실도 생각해 볼 일이다. 

나랏돈으로 하는 사업은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다수의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보에 밝고 자본과 규모를 갖춘 사업자들이 그 힘을 바탕으로 보조금이라는 이름으로 세금을 빼먹는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 

사업의 시행 절차 또한 문제가 많다. 군이 제시한 추진계획을 보면, 개별적으로 보유한 토지나 농업경영체 등 농업자원을 주민 간 협의를 통해 마을 단위로 묶어 공동자본을 형성하는 것이 첫 번째 절차였다. 농업경영의 규모화, 일원화로 농업경영비를 절감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민 협의를 언제,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스마트팜 조성에 20억 원이 투입될 예정인 주천면 무릉리에서는 이장들조차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주민들은 지금 살고 있는 주민들은 쏙 빠져있고 외부에서 들어온 농업기업이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진안군청 관계자는 23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마을 주민들과 협의를 제대로 못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주천면 무릉리에는 세 개 마을이 있는데 그 중 한 마을의 이장이 사업 신청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주민들 반대가 있어 현재 무릉리에 스마트팜을 세우는 사업은 결정을 보류한 상태"라고 밝혔다.)

생각 좀 하시라, 제발!

더구나 스마트팜 시설하우스를 왜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짓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진안군이 2023년에 내려받은 지방소멸대응기금이 80억 원이다. 이중 약 33억 원의 기금이 스마트팜 시설하우스 조성 관련 사업에 쓰인다. 지방소멸을 막는 데 쓰라고 받은 기금을 주민 동의도 없이, 주민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없이, 주민들의 농업경영체를 육성한다는 취지에도 맞지 않게 쓰는 건 행정의 책임과 권한을 내다 버리는 꼴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스마트팜은 사람의 노동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된 농사법이다. 도시민들은 스마트팜을 '식물공장'으로 부른다. 최첨단 농사시설인 스마트팜으로 농촌의 고용이 늘어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바야흐로 이 사업의 전망을 밝게 본 대기업들이 스마트팜에 뛰어들고 있다. 머지않아 땅과 사람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농사가 퇴물로 취급받아 뒤로 밀려날 판이다.

스마트팜으로 식물공장이라 불리는 농업이 유지는 되겠지만 농촌과 농민이 설 자리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 농촌의 정치인들은 이런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 미래를 내다보고 지방소멸대응기금을 그런 사업에 쓰려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정말이지 뭐 하나 밝은 구석이 없다.

농촌의 소멸을 막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써보자는 생각은 옳다. 하지만 당장 해결이 시급한 곳이 너무 많다. 당장 농촌 사람들의 교통기본권 확보와 주거, 교육, 일자리 마련 등 국가의 예산을 들여서라도 해결해야 할 일이 천지인데, 주민들이 싫다고 저 난리를 치는 스마트팜 조성이 뭐가 그리 급해서 그 귀한 세금을 펑펑 써대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군수님, 의원님들 그리고 공무원님들, 생각 좀 하시라, 제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광장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진안군, #무릉리, #스마트팜, #시설하우스, #월간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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