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2023년 5월 26일, 부산에서 자신과 아무 연고도 없는 또래 20대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여 유기한 '정유정 살인 사건'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경찰은 범행의 중대성과 잔인성을 고려하여 범인 정유정의 신상을 공개했다. 놀랍게도 정유정은 23살의 앳된 여성에 불과했던 데다 "실제로 살인을 해 보고 싶어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범행동기를 자백하며 국민들을 더욱 경악하게 했다. 대체 무엇이 정유정이라는 인물을 이처럼 잔인무도한 희대의 살인자로 만든 것일까.
 
6월 17일 방송된 SBS 시사고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밀실 안의 살인자, 정유정은 누구인가?'편을 통하여 정유정이 살인을 저지르게 된 과정과 그 내면을 추적했다.
 
지난 5월 27일, 정유정은 낙동강변 인근의 산책로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정유정을 태웠던 택시 기사가 한밤중 여성이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인적이 드문 공원의 숲으로 가는 모습을 수상하게 여겨 112에 신고하면서 덜미를 잡혔다. 경찰에 긴급체포된 정유정은 당시 과외 앱으로 만난 20대 또래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뒤 유기하던 중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정유정은 체포된 직후 범행동기에 대하여 영어 과외를 받고 싶어 피해자의 집으로 찾아갔다가 말다툼이 생겨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정유정의 범행 과정에서는 처음부터 계획적 범죄의 정황과 증거가 대거 등장했다.
 
23세 성인으로 무직에 미혼이었던 정유정은, 과외 앱을 통하여 본인을 중학생 딸을 둔 학부모로 위장하여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사건 당일에는 머리를 단발로 자른 후 중고 마켓에서 산 교복을 입고 중학생으로 신분을 속여 피해자의 집으로 찾아갔다. 정유정은 경찰 조사에서는 영어 콤플렉스 때문에 과외를 받고 싶었는데 창피함을 감추기 위하여 나이 어린 학생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부검 결과 피해자의 사인은 '다발성 자절창'이었다. 피해자는 살해 당할 당시 몸에 많은 상처가 있었고, 특히 치명적인 급소에 해당하는 목 한쪽을 집중적으로 찔린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인 법의학자는 "치명타인 걸 알고 살해하기 위해 찌른 것으로 보인다. 스무 곳 넘게 찔렀다는 것과 찔러야 할 곳을 정확하게 아는 형태로 보아 명백한 살인 의도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정유정은 범행 후 도주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확인 사살까지 가했으며, 시신을 훼손한 후 유기하려고 했다. 이는 우발적 범죄와는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범죄자들의 일반적인 성향과도 다르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정유정을 취재한 홍승연 SBS 기자는 "전혀 전과가 없는 20대 여성이 또래 여성을 그렇게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서 유기까지 했다는 것에 놀랐다. 취재를 해도 뚜렷한 범행 동기가 밝혀지지 않는 것이 미스터리"라고 설명하며 의문점을 드러냈다.
 
정유정은 경찰조사에 "평소 방송매체나 인터넷 등을 통하여 범죄 수사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살인을 해보고 싶어서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경찰조사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했던 정유정은, 정작 검찰에 송치된 이후에는 '변호사가 오기 전까지 진술하지 않겠다', '심신 미약과 정신 이상'을 주장하며 달라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를 두고 홍 기자는 이러한 정유정의 태도가 "미리 학습한 내용들을 토대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정유정은 피해자를 만나기 전부터 과외 앱에서 다른 영어 과외 교사들에게 접근해 '혼자 사는지', '교사의 집에서 과외가 가능한지' 등을 물으며 범행 대상을 물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정유정과 메시지를 나눴다는 한 제보자는, 대화를 나누던 중 수상함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했지만 정유정이 계속 회유를 시도했었다고 밝혔다. 제보자는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정유정은 일부러 어느정도 자립하거나 경력있는 과외 선생님이 아니라. 돈이 없는 대학생이나 20대 후반을 범행대상으로 노린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골프장 캐디에도 집착... "어떻게든 집 벗어나려고 했던 듯"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사건 당일 CCTV에 포착된 정유정은 피해자의 집에서 범행 후 약 1시간 만에 시신을 그대로 방치하고 밖으로 나와 7킬로미터 거리에 있던 자신의 동네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마트에서 시신을 유기하는 데 사용할 도구와 대용량의 쓰레기 봉투를 구매하고 다시 피해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를 두고 표창원 범죄심리분석가는 "배회한다든지 망설인다든지 이런 흔적이 전혀 안 보인다. 철저하게 계획적인 범죄라는 것은 명확하다. 수개월 전 '살인, 시신 없는 살인' 등을 검색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범행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계속해 나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유정은 범행 약 8시간 후 훼손한 피해자의 시신을 캐리어에 싣고 자신의 집 인근에서 택시를 타고 약 15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낙동강변으로 이동하여 시신 일부를 유기했다.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는 정유정이 굳이 멀리 떨어진 낙동강변을 시신 유기 장소로 선택한 것에 대해 "낙동강변처럼 풀숲이 많고 소동물과 곤충들이 서식하는 곳은 백골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만약 범행 적발이 안 되고 백골화된 시신이 발견되면 신원 확인이 어려웠을 수 있다. 분명히 가해자가 그런 점을 생각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정유정은 기이하게도 범행 후 당일날에 차로 20분 거리나 떨어져있는 피해자의 집과 자신의 집을 총 3회씩이나 왕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된 범행치고는 부적절하고 비효율적인 동선인 데다, 누군가 피해자의 집을 찾는다면 범행이 발각될 위험이 컸다. 일반적인 범죄자들이 범행 이후 당황하여 최대한 빠르게 상황을 수습하려고 하는 것과도 다른, 정유정만의 특이한 성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유정의 기이한 행동패턴을 두고 "비체계적이고 비조직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정유정이 학습한 거의 모든 것들은 실제 사람과의 상호 작용이 아닌, 거의 다 미디어나 인터넷 같은 온라인상에서 학습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거기에 대해 통제하거나 대처하는 능력이 굉장히 떨어지는 인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정유정은 체포 직후 취재진 앞에서 섰을 때는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면서 뜬금없이 "감사합니다"라는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이를 두고도 "다른 범죄자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그렇다면 정유정은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의 동창과 지인들은 중학교 때만 해도 조용했지만 친구들과도 어울리고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정유정은 친구들과 소통을 끊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동창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유정은 커튼을 자기한테 둘러서 자기만의 공간을 만드는가하면, 친구들과의 대화에 늘 단답형으로 답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본인이 문제아였던 것도 아니었다. 동창들은 "사회성은 진짜 없어보였는데 나쁘다거나 못된 짓을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정유정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별다른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다. 몇 차례 구직에 나서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특히 정유정은 골프장 캐디 업무에 여러 차례 지원하며 이상할 정도로 집착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정유정을 면접했던 회사 관계자는, 입사지원서에 쓴 내용과는 달리 사회성이 떨어지고 기본적인 대화 조차도 불가능했던 정유정을 탈락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유정은 불합격을 받자 회사에 몇 차례나 항의전화를 걸어 욕설까지 했다. 이를 두고 이광민 정신과 전문의는 정유정이 이상하리만큼 해당 직종에 집착한 이유에 대하여 일보다는 '돈과 기숙사 입주'라는 조건에 주목하며, 당시 어떻게든 집을 벗어나고 싶었던 절실함이 있었을 것이라고 심리를 분석했다.
 
또한 정유정은 부모가 이혼한 후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지만, 할아버지와의 대화도 활발하지 않고 집안에서도 철저히 혼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웃들과도 교류가 전혀 없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유정에게는 가족과 연관된 트라우마가 있었다. 서둘러 집을 벗어나서 새로운 환경으로 바꾸어야 하겠다는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범행 직후 정유정의 최초 진술을 통해서도 그녀의 숨겨진 욕구가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정유정은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다른 사람이 범행 중이었다. 범인이 나에게 피해자 신분으로 살게 해 줄 테니 시신을 숨겨달라고 했다"라는 거짓 주장을 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서 박지선 교수는 여기서 "정유정에게 '피해자의 신분'으로 산다는 것은 '보상'의 의미가 있다. 정유정이 피해자의 신분과 환경에 대한 동경이나 열망이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신분으로 사는 것이 보상인 것처럼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본인의 실제 마음과 범행동기가 드러났다는 데 주목했다.
 
정유정은 범죄소설과 영화를 즐겨봤고 특히 자신이 살해한 피해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내용이 등장하는 영화 <화차>를 반복해봤다고 한다. 도한 정유정은 범행 후 피해자의 옷을 입고 나오기도 했다.이광민 전문의 역시 "집을 나오고 자신의 환경을 바꾸고 싶다는 데서 왜곡된 목적이 설정되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범죄적인 행동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유정에게는 범죄 사건에 대한 관심이 살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고 점점 몰두하게 되면서 '살인 판타지'를 실행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것.
 
전문가들 "사이코패스 성급한 판단 우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정유정의 충격적인 범죄가 알려지면서 세간에는 그녀가 '사이코패스'라는 추측이 쏟아졌다. 실제로 사이코패스 테스트에서 28점이라는 높은 점수가 나오기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다만 전문가들은 일각의 섣부른 판단과 추측에 우려를 제기했다. 표창원은 사이코패스 테스트의 신뢰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며 "범행만이 아니라 범인의 생애 전반을 봐야 한다. 그런데 정유정은 전과경력, 사회경험, 언변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한 항목에 해당되는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지선 교수 역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찾아가서 죽이는 행동에 합리적 설명이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정유정이 날 때부터 사이코패스라고 단정 지어야 안심하게 되는 것"라며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으니 정유정은 사이코패스다' 그리고 '정유정은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에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다' 이러다보면 순환 논리의 반복일 뿐이다"라고 성급한 판단을 경계했다.
 
'사이코패스설'과 함께 정유정이 사회성이 없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며 '은둔형 외톨이'에 의한 범죄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 바 있다. 정작 우리가 흔히 은둔형 외툴이라고 규정하는 이들과 정유정에게는 분명한 차이도 많다. 전문가들은 정유정에 대해 "은둔 성향은 있으나 은둔형 외톨이는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보통 은둔형 외톨이는 상처를 받은 경험으로 자신을 비난하고 학대하는 경향이 있어 공격성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반면, 정유정은 타인을 향해 분노를 발산하는 경향을 갖고 있어 에너지의 방향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이른바 우리 사회의 은둔 경험자나 아웃사이더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여 자칫 부정적인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위험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심리 전문가들은 오히려 정유정의 성격에서 '자폐적인 성향'에 더 주목했다. 정유정의 경우에는 '고기능성 자폐(아스퍼거 증후군)'의 특성을 보이고 있어서 타인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홀로 지내는 것을 선호하며 한 가지 관심 분야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고, 이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전형적인 모습 중 하나다.
 
정유정은 범행과정에서 슬리퍼만 신고 특이한 걸음걸이를 보였다. 자폐 성향자들은 신체 감각이 예민해서 타이트한 옷이나 이런 것들을 많이 불편해하고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메시지를 통하여 대화할 때는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며 문제가 없었던 정유정이, 상대와의 대면 상황을 어려워하는 것도 자폐 성향자들의 특성이라는 것.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유정의 충격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가 단지 특정한 성향이나 증상 때문이라고 섣불리 재단하는 것에는 선을 그었다. 자페 역시 하나의 특성일 뿐 그 자체로 정유정의 범행동기를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임명호 교수는 "길이 다른 이야기다. 심각한 정신질환이나 사이코패스도 선천적인 것만으로 사고를 치지는 않는다. 어떤 잠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트라우마에 직면했을 때 '두 번째 충격'이 오면서 극단적 행동으로 분출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표창원은 "정유정은 아직까지 섣불리 규정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다른 범죄자들은 과거 행적을 통하여 범행동기와 원인을 어느 정도 파악할수 있는데 정유정에게는 전혀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하며 "도대체 그가 왜 이런 괴물이 됐는지 그 과정 중에 우리 사회가 발견하거나 막을 수 있는 여지는 없었는가 주목해야 한다. 정유정을 섣불리 단순하게 규정지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정유정을 괴물로 만든 학교 졸업 후 지난 5년의 시간, 그동안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물론 정유정의 삶과 범행동기를 밝혀낸다고 해서 피해자가 살아돌아오는 것도, 그녀의 흉악한 죄가 가벼워지는 것도 결코 아니다.하지만 정유정의 이상행동과 심리를 미리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더라면? 익명성과 무관심이 일상이 된 시대에, 한 인간의 뒤틀린 정신과 끔찍한 상상력이 살인 욕구로까지 변해가는 모습을 감지하고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던 것일까.
 
미국 등의 해외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강력 범죄 후 범인의 동기를 분석하기 위해 장기간의 시간을 들여 연구하고 이를 통해 범죄 예방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있다. 이제 우리도 정유정과 같은 범죄자들에 대해 '묻지마 살인', '은둔형 외툴이', '사이코패스'라는 손쉬운 딱지만을 붙이는 것을 넘어서, 무엇이 한 인간을 살인자로 만드는 '두 번째 충격'이 되었는지 그 구조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꾸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래야 예방책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알고싶다 정유정 사이코패스 은둔형외톨이 아스퍼거증후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